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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名言,名句

고방서예[1780]유호인(兪好仁)7절-군자사(君子寺)

작성자古方|작성시간22.07.10|조회수284 목록 댓글 0

고방서예[1780]유호인(兪好仁)7절-군자사(君子寺)

 

續東文選속동문선 제10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군자사(君子寺)-  유호인(兪好仁)

烟樹平沉雨意遲。연수평침우의지

晩來看竹坐移時。만래간죽좌이시

老禪碧眼渾如舊。노선벽안혼여구

更檢前年此日詩。갱검전년차일시

 

내 낀 숲은 어두울 제 비 내릴 뜻이 더디어라 
늦게 와서 대를 보려 오랫동안 앉았었소
늙은 선사 푸른 눈이 예와 다름 없어 
지난 해 읊은 시를 다시금 읽어보네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9

 

平沈평침=가라앉다.

渾如舊혼여구=예와 다름없다.

更檢갱검=다시 자세히 살피다.

 

유호인(兪好仁)

 

                                                유호인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본관은 고령. 자는 극기, 호는 임계(林溪)·뇌계.

아버지는 음(蔭)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합격하여 봉상시부봉사가 되었다.

1478년 사가독서를 했으며, 1480년 거창현감이 되었다.

이어 공조좌랑·검토관을 거쳐, 1487년 노사신 등이 찬진한 〈동국여지승람〉 50권을

다시 정리해 53권으로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뒤 홍문관교리로 있다가

1488년 의성현령으로 나갔으나, 백성의 괴로움은 돌보지 않고 시만 읊는다 하여 파면되었다.

1490년 〈유호인시고 兪好仁詩藁〉를 편찬했다.

1494년 장령을 거쳐 합천군수로 나갔다가 1개월도 안 되어 병으로 죽었다.

시·문장·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3절로 불렸다. 특히 성종의 총애가 지극했는데,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외관직을 청하여 나가게 되자

성종이 직접 시조를 읊어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저서로 〈임계유고〉가 있다. 장수 창계서원, 함양 남계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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