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566]澤堂택당 李植이식-修池偶書수지우서
修池偶書 수지우서
못을 닦으면서 우연히 쓰다.
澤堂 택당 李植 이식
山池一面寫淸泉 (산지일면사청천 )
蒲葉初齊柳影連 (포엽초제류영연)
臥聽中宵風雨響 (와청중소풍우향)
却勝終日玩文漣 (각승종일완문련)
산골 연못 한쪽으론 맑은 샘물 쏟아지고
가지런한 창포 잎에 버들 그림자 잇따르네
누워서 한밤중에 비바람 소리 듣는 것이
온종일 잔물결 보는 것 보다 훨씬 낫네.
瀉= 쏟을 사, 게울 사.
蒲葉포엽=부들잎
宵= 밤 소(다른 표현: 닮을 초)
響= 울림 향(다른 표현: 울릴 향)
却= 물리칠 각
玩= 희롱할 완. 동자(同字)貦
漣= 물놀이 련, 큰물결 란(다른 표현: 잔물결 련)
이식 [李植]
1584(선조 17)~1647(인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당대의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로 문풍을 주도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이정구·신흠·장유와 더불어 한문4대가(漢文四大家)로 꼽혔으며,
여한9대가(麗韓九大家)로도 꼽혔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택구거사(澤癯居士).
좌의정 행(荇)의 현손이며 좌찬성에 증직된 안성(安性)의 아들이다.
1610년(광해군 2) 문과에 급제하여 7년 뒤 선전관이 되었으나
폐모론이 일어나자 낙향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조좌랑이 되었다.
대사간으로 있을 때 실정(失政)을 논박하다가 여러 번 좌천되었다.
1642년(인조 20) 김상헌 등과 함께 척화(斥和)를 주장하여
청나라 군사에게 잡혀갔다가 돌아올 때 다시 의주에서 잡혔으나
탈출하여 돌아왔다. 그뒤 대사헌, 형조·이조·예조 판서를 지냈다
. 문장의 짜임새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장기로 삼았고,
고문다운 문장이란 한문이 지닌 표현능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간결하고도 품격이 높고 꾸미지 않은 것 같은 데서 우아한 흥취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5언율시를 가장 잘 썼다.
소설배격론이 대두되었을 때 한문4대가의 한 사람으로서
문풍을 바로잡는 책임을 절감하며 소설의 폐단을 강경하게 지적하고
허균을 공격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원문출처=澤堂先生集卷之三 / 詩
修池偶書 수지우서
澤堂 택당 李植 이식
山池一面瀉淸泉。산지일면사청천
蒲葉初齊柳影連。포엽초제류영연
臥聽中宵風雨響。와청중서풍우향
却勝終日玩文漣。각승종일완문연
못을 닦으면서 우연히 쓰다.
산골 연못 한쪽으론 맑은 샘물 쏟아지고
가지런한 창포잎에 버들 그림자 잇따르네
누워서 한밤중에 비바람 소리 듣는 것이
온종일 잔물결 보는 것보다 훨씬 낫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현 (역) |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