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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名言,名句

고방서예자료[349]劉禹錫(유우석)7언절구烏衣巷(오의항)

작성자古方|작성시간21.03.09|조회수327 목록 댓글 0
烏衣巷(오의항)
                - 劉禹錫(유우석)


朱雀橋邊野草花 (주작교변야초화) :
주작교 주변에는 들꽃 피었고

烏衣巷口夕陽斜 (오의항구석양사) :
오의항 입구에는 석양이 진다.

舊時王謝堂前燕 (구시왕사당전연) :
그 옛날 왕도와 사안의 집 앞 제비들

飛入尋常百姓家 (비입심상백성가) :
지금은 일반 백성들 집으로 날아드네.

朱雀橋(주작교):秦淮河(진회하)에 놓인 다리.
오의항과 도시를 통한다.


王謝(왕사):東晉(동진)의 재상 王導(왕도)、
謝安(사안) 양대 부호 귀족을 가르킨다.


尋常(심상):普通(보통),평상시(平常時)의 준말. 항상(恒常)

오의항은 지금의 남경 부근으로 진회하(秦淮河)는 그 남쪽에 있으며,
주작교와 가까이 있다. 동진(東晉)의 왕도(王導), 사안(謝安)등 여러 귀족이
모두 이곳에서 살았는데, 그 자제들이 오의 (烏衣) 입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오의항이란 이름이 생겼다.


그 옛날 호사함을 구가하던 왕사 (王謝)의 구택(舊宅)에는 지금 잡초만 무성하고
이름를 들풀만이 자라고 있다. 시인은 제비와 주인의 변환(變換)을 통해
상전벽해(桑田碧海)에 대한 감회를 기탁하는 방법이 아주 교묘하다.

 

오의항(烏衣巷)은 동진(東晉) 때 왕씨(王氏)와 사씨(謝氏) 등의 거족(巨族)이 살면서

번성해진 지역이다. 당(唐)나라 때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烏衣巷〉이란 시를 읊기를,

“주작교 근처에는 야생화만 피어 있고 오의항 어귀에는 쓸쓸히 해가 진다.

그 옛날 왕씨, 사씨 살던 집의 제비들 이제는 평범한 민가로 날아든다.

〔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夕陽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라고 하였는데,

이 시는 한때는 거족들이 살면서 번성했던 오의항이 지금은 쇠락하여

쓸쓸해진 것을 보면 인생이 무상하다는 의미이다.

 

劉禹錫(유우석)

자는 몽득(夢得). 뤄양[洛陽:지금의 허난 성 뤄양 시] 사람이다.

일찍이 왕숙문(王叔文) 개혁단체에 참가하여 환관·번진 세력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에 실패한 후, 낭주사마(郎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후에 연주자사(連州刺史)가 되었다.

이후 배도(裵度)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태자빈객 겸 검교예부상서가 되어 세간에서는

'유빈객'(劉賓客)으로 불렸다. 유종원(柳宗元)과 교분이 매우 두터워서 '유유'(劉柳)라고

병칭되기도 했으며, 항상 백거이(白居易)와 시문(詩文)을 주고받는 등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유백'(劉白)이라고도 병칭되었다. 그의 시는 통속적이면서도 청신하며 〈죽지사 竹枝詞〉가 유명하다.

철학저작인 〈천론 天論〉에서는 천·인(天人)의 구별에 대해 논증했다.

즉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음덕설(陰德說)을 반박하고 '하늘과 인간은 상승(相勝)한다'는

설과 '상용(相用)된다'는 설을 주장하여 하늘이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을 더이상 주재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유신론(有神論)에 대한 근원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즉 법제가 잘 행해져서 상벌이 분명하다면 사람들은 천명(天命)에 바라는 것이 없겠지만,

만일 법제가 흐뜨러져 있어서 상벌이 분명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오로지 천명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말년에 불교에 대해서도 타협적인 자세를 보였다.

저서로는 〈유빈객집 劉賓客集〉(〈유몽득집 劉夢得集〉이라고도 함)이 있다.

 

  劉禹錫의 <烏衣巷>詩 (거침없이 써내려간 아름다운 초서체 )

     朱雀橋邊野草花

     烏衣巷口夕陽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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