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136~140

작성자古方|작성시간13.03.04|조회수217 목록 댓글 0

11-26. 疏廣이 曰 賢人多財면 則損其志하고 愚人多財면 則益其過니라

        (소광    왈 현인다재    즉손기지       우인다재    즉익기과)

소광이 말하길 “어진 이가 재물이 많으면 그 지조를 손상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으면 허물을 더하느니라.”고 하였다.

 

⋇疏廣(소광) :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의 사람. 대부(大傅)라는 높은 지위에 있다가 나이 들어 벼슬을 그만 둠에 선제와 태자가 많은 선물을 내리니, 이것들을 모두 옛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때 위에 말을 남겼다고 함.

⋇損其志(덜 손. 그 기. 뜻 지) : 그 지조를 손상시킴.

 

(해설)

돈의 씀씀이에 대하여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벌었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그 돈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돈의 값어치가 결정된다는 말인데, 우리는 반대로 버는데 더 열중하지 사용함에 있어서는 무관심하거나 함부로 낭비하는 작태를 보여 존경보다는 비웃음과 경멸 그리고 무시에 대한 분노까지 유발시키는 사례를 많이 목격하게 된다. 부자들의 생활을 보면 검약과 절약 그리고 돈에 대한 경외감으로 푼돈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미국의 부자로 강철 왕으로 유명한 카네기의 예를 보면 “어느 날 은행에 예금하러 들렸는데 잠시 방심으로 주머니에서 1센트 동전을 떨어졌다. 떨어진 동전이 또르르 굴러 의자 밑으로 들어갔는데 그를 줍느라 10여 분을 헤매다 마침내 주워 예금을 마치게 된다.”

돈의 속성이 마물이라 정신 줄을 놓게 만들거나 심신을 제압당하여 돈의 노예로 전락시키는가 하면 심지어 “귀신도 부린다.”할 정도로 그 힘은 대단하다. 돈을 지배하는 자가 되느냐, 아니면 지배를 받는 자가 되느냐의 차이는 돈의 속성을 잘 알고 그 쓰임에 맞게 사용할 줄 알며 그 폐해와 정도를 벗어났을 때의 후유증이 어떠한가를 예측하고 멈출 줄 아는 혜안을 지닐 때 비로소 돈을 지배하게 된다. 축재를 하게 되면 게으르게 되는 한편 상대방을 깔보고 경시하는 거만함과 재산에 대하여 과시하는 경솔함을 범하기 쉽다. 돈도 물과 같아서 쌓아 두기만 하면 흐르는 물을 막으면 썩고 부패하듯 역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그 쓰임새에 맞도록 사용하여야 하며 과도하거나 과소한 때에는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고,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에 시달리듯 곳곳에 병리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인체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피가 잘 돌아야 하듯이 세상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돈의 흐름이 왜곡되거나 머무르거나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일정한 양으로 돌아야 건강하고 활발한 사회활동이 유지된다.

재물이 많아지면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 또한 커지는데 대부분의 경우 권리와 共有(공유)의 개념이 아닌 私有(사유)의 개념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도 괜찮다는 착각으로 과오를 범하게 된다. 굳건하던 의지가 약화되는가 하면 겸손하고 예의 바르던 행동이 변하게 되며 검약하던 생활이 호화스럽고 낭비가 심해지는가 하면 모든 것이 최고와 고급스런 재료나 물품으로 대체하려 하고 품위를 갖추기 위한 취미나 격식은 도외시하고 겉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는데 정성을 다하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소위 猝富(졸부)라고 어느 날 갑자기 돈방석에 앉게 된 사람일수록 그 도가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나 자기 제어장치를 미처 갖추지 못하였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 찾아 낸 방법이자기 눈높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했던가?

자원입니다.

損(덜 손)은 손(扌)으로 일부(員)를 떼어내다. 덜다.

志(뜻 지)는 목적을 향해 발(土 = 止)이 향하는 마음(心). 행하고자 하는 마음. 뜻. 기록.

 

秘資金(비자금)

권력이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비자금.

임금의 비자금을 內帑金(내탕금)이라 했는데 이권을 독점시키고 그 수익에서 얼마큼씩 챙겼다. 이를테면 한말에 雲山(운산)금광을 미국인 모르노에게 넘겨주는 조건을 보면 광산의 경영과 일체 경비는 미국에서 대되 그 광산에서 나는 이득을 4등분하여 3등분은 미국이 1등분은 왕실 내탕고에 넣는 것으로 돼 있다.

세도가나 권력자의 비자금은 식객의 입에 풀칠한다는 미명으로 食客糊口錢(식객호구전)을 줄여서 식객전 혹은 호구전이라 했다. 그 끌어 모우는 수법도 다양했는데, 한양 五江(오강)나루에 분산돼 있던 객주 가운데 뚝섬나루에 모여 있던 객주는 세도가들의 앞잡이로 寺洞大監(사동대감)댁 객주니 竹洞府院君(죽동부원군)댁 객주니 安洞駙馬(안동부마)댁 객주니 하는 별칭이 붙음. 또 柴炭(시탄)이며 祭需(제수), 뗏목 등 물화별로 독점하여 그 이득으로 식객전을 늘렸다. 또 객주는 세도가의 돈을 맡아 대금업까지 했다. 지방의 벼슬 지망생들을 이 세도 객주집에 유숙시켜 벼슬거간으로 식객전을 모우기도 했다. 가장 하위직인 9품의 참봉 벼슬이 벼 80섬이었다 하니 알아봄직하다.

평안감사의 식객전 모으는 방법은 잔인할 정도다. 감사가 갈릴 때 인수인계 문건 가운데 하나가 평안도 지역의 돈 많은 집안의 재산별 명부였다. 식객전이 필요하면 그 명부를 보고 벼슬帖紙(첩지)를 내린다. 虛職(허직)이라 하여 명예만의 그 벼슬 값으로 재산의 절반을 바쳐야 되기에 감사를 찾아가 그 벼슬을 거두어 주길 청원하게 된다. 그 벼슬첩지를 반납하는데 “마다리”라는 벼슬 값 절반이나 되는 식객전을 바쳐야 했다.

백성 한 사람에게 한 해 벌이의 10분의 1만 세금을 거두는 什一稅(십일세) 이상을 거두거나 그 이하를 거둬도 악정이라 했듯이 식객전으로 什一口(십일구)라 하여 식객을 열 명을 먹일 액수 이상이나 그 이하를 끌어 모우면 악덕이요 부패로 쳤다.

아마존 강 유역에 사는 야노마마의 추장들은 이웃 부족과 친화를 유지하거나 동맹을 할 필요가 있을 때 추장끼리 모여 기발한 합의를 한다. 예를 들면 A부족은 그들이 기르던 개를 모두 죽여 버리고, B부족은 그들의 닭을 모조리 죽여 버린다. 그 없애버린 개나 닭을 이웃부족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결손을 자초, 그런 뒤 A부족은 B부족에 없는 닭을, B부족은 A부족이 없는 개를 선물함으로써 서로 감사하고 친화력과 유대력을 강화시킨다. 선물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친화력을 북돋아 주는 촉매제다.

의리와 인정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인지라 이를 유지하는 선물이 유별나게 발달한 나라이다. 백일, 돌, 생일, 입학, 결혼, 회갑, 장례 등 통과의례 겪을 때 선물하고, 설, 추석, 어버이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에 선물하며 몸져눕거나, 불나거나 이사 등의 일상변화가 있을 때도 선물한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선물이 오가는 명분이 무려 83가지나 되고 한 가정 당 贈答(증답) 건수가 연중 평균 68건에 이르고 있다. 증답비용이 평균 총 가계지출의 16%를 웃돌고 있다. “증답론”을 쓴 인류학자 마르세르 모스에 의하면 프랑스는 가계지출의 3% 내외라던데, 한국은 출혈이 대단하다. 서양은 꽃 몇 송이나 카드로 대체하고 젖 아기의 경우는 생일선물로 중고품 아기 옷으로 해도 예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선물과 뇌물의 사이가 분명한데, 우리나라는 선물왕국이라 그 한계가 불분명하여 선물을 빙자한 뇌물이 난무하는 것이 큰 병폐가 되고 있다. 이권이나 특혜 같은 반대급부를 바라는 사람일수록 그 권한 쥔 사람에게 뇌물 바칠 명분을 찾다 보니 83가지로 증대했는지도 모른다. 순수하고 아름답던 우리 의리와 인정의 선물습속이 선물과 뇌물의 완충지대, 회색공간에서 익사해 버리고, 부정부패와 汚職(오직)이 기승을 부린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모 기업의 비자금이 100억이라 한다. 어디에 쓸려고 마련하였는지. 서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5만 원 권의 발행할 때도 우려했던 부분인데, 백화점에서 상품권의 액면가가 50만 원짜리까지 발매한다 하는데 과연 그 쓰임새가 어떠할 지 궁금해진다.(이규태 코너 1995년)

 

 

 

11-27. 人貧智短하고 福至心靈이니라

         (인빈지단      복지심령)

사람이 가난하면 지식이 짧아지고, 복이 이르면 마음이 신령스러워진다.

 

(해설)

가난하면 지식이 짧아지는 이유는 왜일까? 개천에서 용 나고, 미꾸라지가 용 되는 예도 많은데 가난하다고 하여 배우지도 못하고 배우지 못하여 지식도 가난해 진다면 누가 화려한 미래를 꿈꾸고 성공하는 희망을 가지게 될까?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그런데 간혹은 둘을 동일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일 때가 많다. 지식은 새로운 것에 대하여 배우며 반복하고 깊이 탐구하며 알아가는 것인데 반해 지혜는 창조적이며 실용적인 성격이 강하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관습이나 생활 속에 지켜온 예절이나 금기사항 혹은 경험에 의해 체득한 다양한 문화 등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고 현실에 맞게 개선되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도 있다. 새로운 문명이나 과학의 발달로 지평을 연 길을 거부하거나 늦게 받아들이면 그 결과는 참담하다. 국가 또는 민족은 멸망하거나 지배를 받게 되고 개인은 직장에서 퇴출되거나 속한 조직 내에서 왕따 당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실감할 수 있다. 연령층에 대한 간극은 있다. 60~70년대 이전에 출생한 세대에 있어 생활하던 방식의 변화에 따른 기존의 사용되었던 많은 도구와 친숙했던 소리들이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제품들로 바뀌었음을. 그 중에는 재래시장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거나 아니면 민속박물관에서나 가야만 볼 수 있다. 4~50년 사이에 천지개벽을 한 셈이다. 식생활은 물론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가전제품들과 사회생활을 편리하게 영위하도록 제공되는 모든 제품들이 해당된다. 사라진 것에 대하여 방송된 것 중에 하나가 소리와 생활용품 등이 있다. 나막신, 다듬이, 풍로, 요강, 굴렁쇠 등등.

해외여행 혹은 문화재나 유적 등을 탐방할 계획을 세우면 먼저 그것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사전에 공부를 하고 출발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생각의 깊이도 결국은 얼마나 경험했고 알고 있는가에 따라 천태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젊어서 많은 여행을 다니고 많은 책을 읽을 것을 권고하는데 지금까지 先人(선인)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최적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과 간접체험이란 두 가지 방법 모두를 충족시키며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최단의 시간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의 발달은 독서의 양과 시간을 단축시켰고 유해한 정보의 무제한적 제공으로 어떻게 필요한 정보만 골라 활용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자동화와 디지털화는 인간을 바보로 만들어 가는 주범이라고 한다. 배운 것을 암기하고 생각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계산하고 쓰고 하는 일련의 행동을 모두 생략하게 만들기에 편리하지만 반면에 그러한 부분들이 인간본연의 기본 행태를 저지 혹은 불필요하게 만들기에 퇴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일상생활 속을 들여다보면 많은 부분이 자동 혹은 원터치 형으로 바뀌어 버렸음을 알게 된다. 여자들을 가사에서 해방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전기밥솥, 전기 오븐, 전자레인지, 믹서에 압력밥솥하며 가스보일러 등. 관혼상제에 대한 변화도 눈부시다. 온 마을의 잔치에서 전화 한 통화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웨딩홀과 뷔페, 장례식장에 맞춤 차례 상까지.

되는 집안은 나갔던 암소가 황소를 데리고 들어온다고 했다. 복이 들어오는 집안은 화목과 웃음꽃이 피고 얼굴에 화색이 돌며 매사에 여유로워진다. 늘 다툼과 고성으로 불협화음이 잘 날이 없는 집은 들어오던 복도 놀라서 멀리 달아날 것이다. 신령스럽지 않더라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 우애가 돈독하며 이웃과 화목하고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 들며 어른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질서를 준수하고 예를 다하는 집이 복을 받지 못하면 어느 집이 복을 받을 것인가?

자원입니다.

靈(신령 영)은 무당(巫)이 기우제를 지내며 비(雨) 방울(口口口)을 비는 신령.

 

歡迎殺人(환영살인)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상급생들이 신입생들을 환영한다고 과분하게 술을 먹이거나 학대를 가한 것이 도를 넘어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신입생들의 이질요인을 동질화한다는 명분으로 살인까지 유발한 이 악습을 앞으로 형사처벌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1997년)

새내기의 기를 꺾는다 하여 免新禮(면신례) 또는 新來侵虐(신래침학)이라고 하는 이 신입생 학대 풍습은 서양에도 있다.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가하는 이 괴롭힘을“스톰”이라 하는데 옛날에는 창피를 주는 정신적 학대이던 것이 근년에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육체적 학대로 달라졌다.

프랑스의 명문학교인 스타니스라스 중학교에서 유행했던 스톰 메뉴가 “피가로”지에 보도된 것을 보면 이렇다. 개밥에 돼지머리와 초를 섞어 끓인 걸쭉한 죽을 맥주에 타서 몇 그릇이고 퍼 먹인다. 이를 두고 당시 교육장관은 이를 금지시키지 못하고 스톰 메뉴를 덜 고약하게 개선시켰을 뿐이라 했다.

일본서도 지난봄에 500㏄ 술잔에 폭탄주 다섯 잔을 연거푸 먹여 죽게 한 신입생 환영 살인이 사회문제가 됐었다.

우리나라는 免新文化(면신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아닐까 싶다.

서당이나 중학, 예문각, 교서관, 성균관 등 각 급 학교에 새로 입학하거나 전입해 온 서생은 반드시 면신례를 겪어야 했다. 唐糞香(당분향)이라 하여 얼굴에 인분 칠을 하거나 미친 여인의 오줌을 받아 칠하고, 개가 홀례 하는 시늉을 지으라는 등 창피를 주었다. 또는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에 말굽쇠를 박는 가혹행위도 자행했다. 실록에 보면 이 면신례가 지나쳐 죽거나 병신이 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양평대군도 백운대 정상의 뜀바위를 뛰어넘는 담력을 과시함으로써 면신을 하고 있으며, 율곡 李珥(이이)도 승문원 면신례의 희생자로 이 폐습에 대한 장문의 상소를 하고 있다. 율곡은 상소문에서 면신례의 기원에 대해 언급했는데, 고려 말에 紅粉榜(홍분방)이라 하여 권력자의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들을 급제시킨데 대한 불만과 원망의 분풀이로 이들이 부임해 오면 가했던 학대가 그 뿌리라는 것이다.

신입생 환영 학대는 악습적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학생간의 괴롭힘 “이지매”는 면신례와 반비례의 관계가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다.(이규태 코너 1997년)

 

漢浦尋月(한포심월)         - 李穡(이색) -

日落沙逾白(일낙사유백)        해가 떨어져 모래 더욱 희고

雲移水更淸(운이수경청)        구름 옮기니 물 다시 맑구나

高人弄明月(고인농명월)        높은 사람 밝은 달과 노나니

只欠紫鸞笙(지흠자난생)        오직 자란생(신선이 부는 피리)만이 없구나

※ 穡(거둘 색), 逾(갈 유), 紫(검붉을 자), 鸞(난새 난), 笙(저 생).

 

 

 

 

11-28. 不經一事면 不長一智니라

         (불경일사    부장일지)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못하면, 한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 經(지날 경. 길. 도로) : 겪다. 경험하다.

⋇ 長(긴 장. 늘이다) : 자라다.

 

(해설)

책이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얻는 지식은 간접경험이라 실제로 느낌은 강렬하지 못하며 피부로 느끼질 못하기에 위험한 사항이나 어렵고 힘든 과정에 대하여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럴 수 있다와 직접 경험하는 차이는 천지간의 간격만큼 넓고 머리에 새겨지는 强度(강도)도 다르다. 간접경험은 시간이 흘러가면 잊어버리지만 직접 겪은 경험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몸에 각인되어 잊어지지 않는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하고 험난한 것일수록 오래 기억되고 심약한 사람의 경우는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모든 습관이 몸에 정착되는 데는 많은 시간에 걸쳐 반복되어야 가능하다. 어린아이가 기어 다니다 일어서는 데는 5천 번의 실패를 겪어야 한다고 한다. 하찮은 동작하나도 적게는 수십 번에서 많게는 수백 번의 반복된 동작을 통해 완성된다.

평범한 일상의 동작 하나도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와 반복된 행동 속에 완성되며 그런 과정에서 몸으로 각인되는 실패에 대한 교정은 새로운 지식으로 남게 된다. 성장하면서 겪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가장 뼈아프게 기억되는 것은 참담한 실패와 고통스럽고 지난한 일들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과 思考(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를 준다. 교훈 내지는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가치를 지닌 경험은 그만큼의 대가를 요구하거나 다시 재기하기 힘들 정도의 타격과 상실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때론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하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친인척과 주위 친분 있는 동료들 까지 도매로 넘어가는 회오리바람 같은 사태도 발생한다.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는다고 서슴없이 몸을 던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된다.

산지식을 얻기 위한 필수 과정이고 커다란 이익과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위험에 대한 도전과 끊임없이 닥치는 어려움을 극복하여야 한다. 큰일을 맡기기 위한 테스트는 늘 가혹하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급박하고 어지럽게 꼬아 놓는다. 남이 겪지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할 격랑과 파고를 넘고 넘어야 비로소 준비가 되었다며 목적한 바대로 걸어갈 수 있게 한다. 얼마나 강한 의지와 주어진 어렵고 힘든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돌파하는가에 따라 그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다. 어느 때는 평생을 두고 하여도 못 이루고 다음대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평생을 개고생만한 당사자에게는 미안하고 안 된 일이지만 그 뜻과 지나온 여정은 두고두고 기리게 된다.

나이에 따라 경험하고 실행하여야 하는 일은 반복되지 않는다. 성장이란 말은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여야 한다. 몸은 성장하는데 정신적 면은 답보상태를 유지하면 사회에 부적격자가 되고, 반면에 육체적 성장보다 정신적 면이 앞서가면 많은 이들의 시기와 질시를 받게 된다. 누구나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處身(처신)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한 발 앞선 지혜를 바탕으로 현실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발상과 넘치는 에너지로 새롭고 획기적인 일들을 주도한다. 초기에는 이해하지 못하여 벌어지는 많은 장애와 방해에 고전하지만 결국은 옳았음이 증명되며 저항과 의혹이 사라지며 자연스레 일상에 동화된다.

 

炮烙之刑(포락지형)

- 뜨거운 쇠로 담금질하는 형벌. -

殷(은)나라 紂王(주왕) 때, 속국 有蘇氏(유소씨)의 나라에서 복종한다는 표시로 妲己(달기)라는 미녀를 바쳐왔다. 주왕은 요염한 달기에 사로잡혀 그녀가 하자는 대로 해 주었다. 酒池肉林(주지육림) 속에서 음탕을 즐기기 위해 세법을 새로 만들어 곡식과 훌륭한 말과 개, 진기한 보물 등을 마구 거둬들여 內帑庫(내탕고)에 가득히 채워 놓았다.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백성의 원성은 나날이 높아갔고 반기를 드는 제후도 있었다. 그의 학정을 비방하면 포락지형에 처해졌다. 즉, 離宮(이궁) 뜰에 구리기둥을 걸쳐 놓고 기름을 발라 매끈매끈하게 하고 그 밑에는 숯불을 이글이글 피워 놓고는 건너가게 하는 것이었다. 미끄러져 떨어지면 그대로 타 죽게 되는데, 주왕달기는 그 모양을 보고 좋아하였다. 나중에 周(주)나라 文王(문왕)이 되는 西伯(서백)이 사소한 일로 주왕의 노여움을 사서 투옥되었는데, 서백의 신하가 진귀한 물건과 좋은 말을 바쳐 겨우 그 형벌만은 면하게 되었다. 그 후 서백이 자기 소유의 땅 洛西(낙서)를 바치면서 포락지형을 폐지할 것을 아뢰어 이 잔인한 형벌은 없어졌다고 한다.(출전 史記 殷本紀)

※ 炮(통째로 구울 포), 烙(지질 락), 紂(밀치끈 주), 妲(여자의 자 달), 帑(금고 탕).

 

西伯(周 文王)이 紂王에 간한 말(詩經)

文王曰咨(문왕왈자)        문왕이 탄식하며 말하길

咨如殷商(자여은상)        슬프도다! 은상이여

人亦有言(인역유언)        사람이 또 할 말이 있도다

顚沛之揭(전패지게)        넘어지고 쓰러진 것을 일으켜 보니

枝葉未有害(지엽미유해)        가지와 잎은 피해가 없어도

本實先撥(본실선발)        뿌리는 본래 먼저 끊어진다고

殷鑑不遠(은감불원)       은나라의 거울은 멀지 않다

在夏后之世(재하후지세)        하후의 세상에 그것이 있다

※ 咨(물을 자), 顚(꼭대기 전), 沛(늪 패), 撥(다스릴 발).

 

崔北歌(최북가)        - 申光河(신광하) -

君不見崔北雪中死(군불견최북설중사)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최북이 눈 속에 죽음을

貂裘白馬誰家子(초구백마수가자)        초구에 백마를 탄자 뉘 집 자식들인가

汝曹飛揚不憐死(여조비양불련사)        거들먹거리는 너희들 그의 죽음 동정하지 않겠지만

北也卑微眞可哀(북야비미진가애)        미천한 정말 슬프다

北也爲人甚精悍(북야위인심정한)        은 사람됨이 몹시도 정한해서

自稱畵師毫生館(자칭화사호생관)        자칭 화가 호생관이라 했다

軀幹短小眇一目(구간단소묘일목)        작달막한 키에 애꾸눈이지만

酒過三酌無忌憚(주과삼작무기탄)        술 석잔 들어가면 아무 거리낌 없네

北窮肅愼經黑朔(북궁숙신경흑삭)        북으로 흑삭을 지나서 숙신 끝까지 가보고

東入日本過赤岸(동입일본과적안)        동으로 적안을 지나 일본으로 들어갔네.

貴家屛障山水圖(귀가병장산수도)        대갓집 병풍의 산수도는

安堅李澄一掃無(안견이징일소무)        안견 이징을 쓸어버렸네.

索酒狂歌始放筆(색주광가시방필)        술을 찾아 미친 듯 노래하며 붓을 놀릴 적에

高堂白日生江湖(고당백일생강호)        좋은 저택에 강호의 풍광이 살아난다.

賣畵一幅十日饑(매화일폭십일기)        열흘을 굶다가 그림 한 폭 팔아서

大醉夜歸臥城隅(대취야귀성우)         취하여 돌아오다 성 모퉁이에 쓰러졌네

借問北邙塵土(차문북망진토)        묻노라 북망산에 진토 된

萬人骨(만인골)        만인의 뼈다귀

何如北也(하여북야)       

埋却三丈雪(매각삼장설)        세길 눈 속에 파묻힌 것과 어떠하뇨?

鳴呼(명호)         슬프도다!

北也身雖凍死(북야신수동사)        은 비록 얼어 죽었으되

名不滅(명불멸)        그 이름 불멸하리.

⋇ 貂(담비 초. 돈대 초), 裘(갓옷 구), 悍(사나울 한 , 모질 한), 軀(몸 구), 眇(애꾸눈 묘), 憚(꺼릴 탄), 朔(초하루 삭), 肅(엄숙할 숙), 澄(맑을 징), 掃(쓸 소), 隅 (모퉁이 우).

신광하 : 영조시대의 대표적 시인. 당시 유명한 시인 申光洙(신광수)의 동생. 震澤集(진택집)이 전한다.

崔北(최북) : 영조 때의 화가, 호는 七七, 星濟(성제), 성격이 활달하고 술을 잘 했으며 자칭 毫生館(호생관)이라 했다. 秋景山水圖(추경산수도)가 유명함. 49세에 죽음.

 

 

 

 

11-29. 是非終日有라도 不聽自然無니라

        (시비종일유       불청자연무)

시비(是非)가 종일 있을지라도 듣지 않으면 저절로 없어진다.

 

(해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많고 기분 나쁜 일도, 괴롭고 슬픈 일과 즐겁고 흥겨운 일,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치를 떨게 만드는 일도 생긴다. 늘 행복하지만은 않으며 늘 불행하지만도 않고 어려움이 있으면 기쁜 일도 공존하니 苦盡甘來(고진감래)요 새옹지마이며 호사다마에 설상가상과 南柯一夢(남가일몽)에 一場春夢(일장춘몽)등 많은 고사성어가 말하듯 돌고 돌아가기에 잠시 멈칫할 뿐 또 하나의 역사를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서로 생각과 보는 시각이 다른 남남이 만나 똑 같이 인정하는 결론을 얻기까지는 많은 다툼과 논쟁의 파고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양보와 배려 그리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등의 결론에 도달하기 까지는 많은 곡절을 겪어야 한다.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에 많은 시행착오와 협상 그리고 계속해서 현실에 맞는 대안을 찾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조금만 방심하거나 너무 많은 것을 얻으려 하면 진전은커녕 원상태로 후퇴하거나 더 악화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툼이란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하는 바가 다르거나 노력한 바에 비해 작다고 판단될 때에 격렬하게 반응하며 자기의 확실한 몫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일어난다. 또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시각차나 해석상의 사소한 견해차이로 비롯됨도 있다.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침범할 때 혹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로 인하여 심각한 손해나 피해를 받았을 때에도 일어난다. 특히나 재산상에 막대한 피해나 생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일 경우에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공동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질서의 위반이나 파괴 등의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잠재적 위험이나 환경파괴를 가져올 사안일 경우는 법으로 제한하여 금지시킨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싸움으로 확대되듯이 조그마한 불씨가 순식간에 대형화재로 번지듯 시비는 그를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사람들에 의해 점차 결렬해지며 군중심리까지 더해져 광란에 휩싸이는 사태로 확대된다. 왜 다투게 되었는지는 뒤편으로 물리고 자존심과 이기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최면에 걸려 오직 전진만을 외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생겨난다. 국가와 국가 간의 명분싸움은 전쟁이란 극단의 상황까지 전개되는 경우는 드물다. 주변 국가의 중재와 작은 양보나 명분의 후퇴를 통한 실익을 챙겼을 때는 언제 그러했는가? 하고 끝맺는다. 그러나 개인과 개인의 다툼은 빨리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끈질긴 악연을 만들기도 한다.

사소한 시비에 초연하거나 처음부터 한 귀로 흘러 버리는 습관에 익숙해지거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수긍할 수 있는 선을 유지한다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은 많이 감소하리라. 사사건건 대립하고 모든 것을 이기려 든다면 자신도 피곤하거니와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할 모든 이들이 얼마나 피곤하고 신경을 쓰게 될까. 그러지 않아도 매사에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할 요소가 도처에 깔려있는 사회생활에서.

자원입니다.

然(그러할 연)은 개(犬)고기(月)를 무르게(軟) 불(灬)에 태워서 익히다. 肰(개고기 연).

 

臟器部品時代(장기부품시대)

고대 이집트의 “死者文書(사자문서)”에 보면 사람이 죽으면 지옥왕 오실리스는 死者(사자)의 염통, 폐, 간, 쓸개, 콩팥을 따로따로 꺼내어 정의의 저울로 단다. 특정 장기에 따라 이승에서 악을 저지른 것, 비겁하게 굴었던 것, 약자를 구박했던 것, 저울질에 속임수를 썼던 것 등이 무게로 나타나게 돼있다. 그리고는 장기부품 창고에 인도되어 이승에서 손상된 장기를 신품으로 교체 재생시킨다.

토끼의 생간을 먹어야 병이 난다는 용왕 앞에 유인된 토끼는 이렇게 말한다. 곤륜산 정기를 타고 달빛 받아 환생하여 아침이슬, 저녁안개와 기화요초만을 먹고 자란지라, 내 오장육부는 신약이 된다하여 나만 보면 간 달라 쓸개 달라 하여 귀찮아 오장육부를 꺼내어 청산유수에 설레설레 씻어 산 속에 말려 두고 다닙니다. 필요에 따라 이 장기 저 장기를 빼냈다 빨래 널듯 널어 놨다 갈아 끼우는 장기부품시대는 이미 한국 토끼가 누렸던 세상이다. 명퇴니 정리해고니 하는 샐러리맨 수난시대에 간과 쓸개를 꺼내 빨래 줄에 널어놓고 출근한다는 말이 유행하니 별주부전 토끼시대의 도래 인 셈이다.

프랑스 혁명 전 유럽 상류 사교계에 “불사의 백작”이라는 괴인물이 선풍을 일으키며 인기를 집중하고 다녔다. 그 생 주르맹 백작은 2,000년 전부터 살아왔는데 오실리스의 특혜로 장기가 손상되면 갈아 끼워 수천 년을 죽지 않고 젊음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가 사교장에 나타나면 성서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을 만난 이야기며 유다가 목을 매어 죽은 것도 바로 곁에서 보듯 실감나게 말했기에 귀족 귀부인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음직하다. “불사의 백작”이야말로 용왕을 감쪽같이 속인 서양판 토끼였다 할 수 있다.

앞으로 인공 배양된 오장육부의 조직을 이식하여 훼손되거나 노화된 장기를 새롭게 대체하는 오실리스의 기적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보도는 이미 동물실험에서 성공한 이 장기부품시대의 개막은 인류의 불사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가공할 철학적, 윤리적 문제가 수반되는 과제이다. 인간복제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이규태 코너 1997년)

 

思親詩(사친시)       - 吳達濟(오달제) -

風塵南北各浮萍(풍진남북각부평)        어수선한 풍진 속 남북으로 갈리우니.

誰謂相分有此行(수위상분유차행)        이번 길 어느 뉘라 이별하라 이르셨나.

別日兩兒同拜母(별일양아동배모)        지난 날 두 자식 어머님께 절 하였더니

來時一子獨趨庭(내시일자독추정)        올 때는 아들 하나 훗훗하게 기어들리.

節裾已負三遷敎(절거이부삼천교)        불효자식 옷깃 끊어 삼천지교 저버렸소.

泣線空巷寸草情(읍선공항촌초정)        어머님 바늘 들고 상침 놓으며 우시리라

關塞道修西景暮(관새도수서경모)        새방 길 따라갈 제 해는 지고 바람 차오

此生何路再歸寧(차생하로재귀녕)        이 생 어느 때에 다시 와서 또 뵈 오리.

※ 趨(달릴, 쫓을 추), 裾(옷자락 거), 巷(거리 항).

 

 

 

 

11-30. 來說是非者는 便是是非人이니라

        (내설시비자    변시시비인)

와서 남의 시비를 말하는 자는 이것이 곧 시비하는 사람이니라.

 

⋇ 來說(내설) : 와서 이야기 함.

⋇ 便是(변시) : 이것이 바로. 다를 것이 없이 바로 곧 이것임.

 

(해설)

어느 현상에 대한 이해나 그러할 것이라는 수긍은 사람마다 그 궤를 달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시일이 흐른 뒤에 알아보면 같거나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각자의 시각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차이이다. 앞서 예를 든 20:80 이론에서 보듯 똑 같은 강의나 설명을 들어도 그를 받아들이는 숫자와 이해도는 천태만별이 된다. 특히나 여러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단어의 사용은 받아들이는데 혼란을 야기 시킨다. 단어에 따른 해석의 차이는 크기에 그러한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해설이나 설명은 전하고자 하는 본연의 정의가 왜곡될 수 있다.

본인의 의사와는 전하고자 하는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자의적인 해석은 전달자를 당황스럽게 만들고 또 그러한 왜곡된 정보가 유통될 경우에 생기는 오해와 반발이 심각한 상황을 유도할 수도 있다. 말의 속성이 전달하는 과정에서 점차 전달하는 사람의 주관과 예측까지 보태서 늘어나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말다툼을 하다 따귀 한 대 맞았다.”“따귀를 맞아 쌍코피를 흘렸다.”에서 “나가 떨어져 기절을 했다.”로 바뀌고 “병원에 실려가 오늘 내일 하고 있다.”까지 점차 확대되어 간다. 이러한 경험을 한 번쯤은 하였으리라.

악의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도 무언가 하나의 현상에 대한 설명이나 해설이 개개인의 상상력과 주관 그리고 그럴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의 경험에 따른 예측이 하나씩 더해지면 처음의 형태와는 동 떨어져도 한참이나 어긋난 결과를 초래한다. 마지막에 듣는 사람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며 사실 확인을 하고나서는 허탈감에 허허 웃고 마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이렇듯 전달하는 것이 사실대로 보태지 않고 자신의 주관적 생각도 배제하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시비 자체도 그러한 예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소한 것이 점점 보태어져 당사자의 귀에 들려올 때면 부풀려지고 과장된 악의적 요소가 첨가되기 마련이라 듣는 순간 욱하게 만드는 감정적인 내용으로 포장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흔히 반만 믿어라, 혹은 다 떼어내고 10%만 사실로 인정하라고 충고하지 않는가?

큰 길에서 들은 말들을 집에 와서 전달하지 말라고 하지요. 악의적인 말로 남을 흉보거나 흠집 내는 말과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말 그리고 약점이나 잘 못된 점을 파고드는 말 등은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동조하거나 더 보태서 다른 사람에게 유포시키는 행위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유포하는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됩니다. 결국 돌고 돌아 자신에게로 언제인가는 돌려받게 됩니다. 이자에 이자까지 붙어서 아주 힘겹게 등을 굽히게 만듭니다. 싹이 돋기 전에 없애 버리는 지혜와 순발력이 필요합니다. 그를 판별하는 안목 또한 필요함은 물론이구요.

 

옥수수

흔히 말하길 역사를 바꾼 작물로 감자와 옥수수를 든다.

프리드리히대왕 시절 독일의 대기근, 루이 16세 시절의 프랑스 대흉작, 그리고 고질적인 아일랜드의 기근을 해소해 준 것이 바로 감자와 옥수수였다.

불모지 히말라야는 가파른 중턱까지 온통 옥수수 밭이다. 옥수수가 히말라야 지방의 주식이 되면서 히말라야 인구취락이 적지 않아 300미터나 상승되었다고 한다. 인도문화권에서 옥수수 도입을 기근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큰 소리 치는 힘도 미국의 옥수수 창고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말이 있다. 세계 도처에 빈발하는 굶주림, 그 굶주림과 연관된 국제역학을 조종해 온 미국의 옥수수이기 때문이다. 콜럼버스가 중남미로부터 유럽으로 옮겨간 옥수수가 중국에 건너간 것이 16세기요,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전래된 것은 1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그 무렵에 지어진 “增補山林經濟(증보산림경제)”에 옥수수(玉蜀黍 : 옥촉서)는 오색의 색색가지가 있는데 한 자 거리를 두고 심는다고 했다. 열매를 쪄 먹어도 되고 죽을 쑤어 먹으면 한결 좋다고 했다. 옥수수가 첫 등장하는 기록은 숙종 때 문헌인 “譯言類解(역언유해)”로 玉薥(옥촉)으로 나온다. 그 후 17세기의 실학자 李瀷(이익)“수염달린 꾸러미 속에 구슬처럼 생긴 열매가 맛이 달아 먹음직하다.”하고, 실학자 李德懋(이덕무)는 옥수수엿에 대해 적고 있음을 미루어 우리나라에는 17세기 후반에 들어 온 것으로 보인다. ※ 薥(접시꽃 촉).

19세기 전반기의 문헌인 徐有榘(서유구)“林園十六志(임원십육지)”에도 푸르고 희고 붉은 세 종류가 있어 가루 내어 죽을 쑤면 보리보다 못할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19세기 초기에 筆寫(필사)된 “東稗落誦(동패낙송)”이란 문헌에도 옥수수가 나온다. 경상도 순흥골에 사는 만석꾼 황부자가 버려진 채로 있던 묵정밭을 개간해 옥수수를 심고 주막에 가서 행인들의 대소변을 받아 밭을 걸우는 것으로부터 만석꾼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 瀷(강 이름 익), 懋(힘쓸 무), 榘(곱자 구), 稗(피 패).

아프리카에서 기근의 해결사로 옥수수가 되지 않았던 것은 천적인 “악마의 풀” 때문이었는데, 김순권 박사가 20여 년 동안 현지에서 이 악마의 풀을 이겨내는 100여 새 품종의 옥수수를 개발하여 아프리카 전지역의 74%에 기근탈출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옥수수는 기근에서 살아 내거나 가난을 극복하는 구황식품으로 뿌리내렸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옥수수란 말도 옥촉서의 중국발음인 위슈슈에서 비롯된 것이며 옥수수의 별칭인 강냉이, 강나미는 전래시킨 중국 남부지방 통칭인 강남에서 비록된 것이란 설도 있다. 옥같이 생긴 수수라 하여 옥수수요,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충청도 해안 지방에서는 강냉이라 하는데, 강낭콩, 강남 죽처럼 강남에서 전래되었다 해서 얻은 인지 모르겠다. 강냉이의 사투리에 강낭대죽, 강낭새끼, 강낭숙구 등이 있으므로 이를 미뤄 강냉이는 그 줄인 말일 확률이 높다.

흉년이 들거나 병란이 심하면 우리 조상들은 男負女戴(남부여대)하고 목숨을 보존하고자 保勝地(보승지)을 찾아 이동하기 마련인데, 그때 싸들고 가는 것이 옥수수 씨앗이었다. 그래서 무일푼임을 강조할 때 가진 것이라곤 옥수수 한 줌 밖에 없다고들 한다. 유랑하다 아무데나 심어도 잘 나고 땅이 각박해도, 춥거나 기온이 높아도 정직하게 자라 결실을 잘한다. 옥수수 죽이 가난과 굶주림의 상징이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이규태 코너 1996년)

 

蓮沼(연소)        - 朱子(주자) -

亭亭玉芙蓉(정정옥부용)        우뚝 솟은 예쁜 연꽃

逈立暎澄碧(형입영징벽)        오래오래 맑고 푸르게 비추며 서있네

只愁山月明(지수산월명)        다만 산위에 달이 밝으면

照作寒露滴(조작한로적)        차가운 이슬방울이 빛날까 걱정일세

※ 逈(멀 형), 滴(물방울 적).

 

 

 

 

 

 

 

 

자료출처-http://cafe.daum.net/sungho52

박광순선생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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