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 146~150

작성자古方|작성시간13.03.06|조회수402 목록 댓글 0

11-36. 巧者는 拙之奴요 苦者는 樂之母니라

        (교자    졸지노    고자    낙지모)

재주 있는 사람은 재주 없는 사람의 종이요. 괴로움은 즐거움의 모체(母體)이니라.

 

⋇ 巧者(교자) : 재주 있는 사람. 재주라는 것.

⋇ 拙(졸할 졸. 쓸모없다) : 재주 없음. 서 틂.

⋇ 苦者(고자) : 괴로움 이라는 것.

 

(해설)

흔히 말하기를 12가지 재주를 지닌 자가 밥을 굶는다. 한 가지 재주를 지닌 자는 그것에만 집중하기에 전문가가 되지만 재주가 많은 자는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한 가지 재주로 집중한 자의 부하가 된다. 한나라의 고조인 유방한신의 대화에도 나오지만(한신은 병졸이 많으면 많을수록 통솔하기 쉽지만, 왕께서는 병졸이 많으면 통솔하기 어렵지만 자기와 같은 장수들을 통솔하고 제자리에 쓰는 능력이 뛰어나다. …陛下, 不能將將兵, 而能將將, 此所以陛下禽…: …계하, 불능장장병, 이능장장, 차소이계하금…) 그릇의 크기가 다르고 담는 것도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그릇에 많은 것을 담으려 하면 넘쳐 버리고 말기에 헛수고만 하게 된다. 그릇의 크기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너무 재주가 뛰어나면 많은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고, 견제를 받게 된다. 그래서 모든 걸 내보이지 말고, 삼 푼은 감추라 했지만 낭중지추라 때가 되면 빛을 발하게 되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난세와 평화의 시기에 따라 그 경중은 색깔을 달리하게 된다. 그리고 섬기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뜻을 펴게 되거나 아니면 생명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적의 적은 동지라 했듯이 남에게 이용당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과감한 결심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처신을 할 것인가와 어떤 사람을 섬길 것인가와 어떤 시기에 앞으로 나설 것인가를 잘 선택하는 고도의 상황판단이 요구된다.

苦盡甘來(고진감래)라 하지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만 그 고생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와 그 고생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는가와 그 고생을 어떻게 기회로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평생을 고생만 하다 죽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고생 없이도 평생을 안락과 평온 속에 지내는 사람도 있다. 괴로움을 겪어보지 못하면 즐거움의 크기를 알지 못하고, 배가 고파보지 못한 사람은 飢餓(기아)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때론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돌아보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만 고통을 겪는 시기에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원망과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한탄하고 온갖 생각에 자괴하기도 한다. 성장이란 고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강도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괴로움이 크면 즐거움 또한 크게 온다. 파도와 같다고 하지요, 작은 파도인가 커다란 파도인가의 차이지만 하나의 고비를 넘기며 괴로움으로 여기지 말고 그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 전에 알게 될수록 빨리 극복하고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지요. 자신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어떠한 일이든 온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은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다. 精神一到 何事不成(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고 집중한다는 것은 큰 힘을 발휘하고 성취도를 높여줍니다. 대충하다 집어치우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번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라 하듯이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보고 마는 치열함을 지녀야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그러한 정신으로 매진할 때 노력한 만큼의 보상 또한 따라 오게 마련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정진합시다. 성공의 그 날까지.

자원입니다.

拙(졸할 졸)은 손(扌)이 머물러야 할 곳(凵)을 벗어나다(出). 즉 빗나가서 서툴다.

 

돈 빨래

박지원 “양반전”에 보면 양반은 兩(양) 分(푼)하는 돈의 액수를 입에 하지 않고 손에 돈을 대지 않으며, 쌀값을 묻지 않는다 했다. 그만큼 마음을 흔드는 금전을 천시하고 천대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팁이나 妓房(기방)에서 기생에게 주는 花代(화대)를 젓가락돈이라 했는데 돈에 손을 대지 않고자 젓가락으로 집어 주었기에 생긴 말이다.

돈을 이처럼 천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같은 값의 돈이라도 그 돈이 어디서 나왔고 어떻게 벌었느냐로 그 가치가 크게 달라졌었다. 이를테면 浮錢(뜬돈)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같은 값의 돈이라도 땀 흘리지 않고 못되게 번 돈은 물에 담가도 가라앉지 않고 뜬다 하여 부실-부정한 돈을 뜬돈이라 일컬은 것이다.

우리 家訓文化(가훈문화)를 논할 때 거론되게 마련인 顧菴先生家訓(고암선생가훈)에도 돈은 쇠와 구리를 녹여 만들지만 못되게 벌면 물에 뜨는지라 너희는 뜬돈을 벌어서는 안 되고 뜬돈을 받아서도 안 된다고 후손에게 가르치고 있다. ※ 菴(풀이름 암).

한말의 뼈대 있는 奇人(기인)인 鄭壽銅(정수동)은 빈한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그가 門客(문객)으로 드나들던 안동 김씨가 내린 돈푼이나 먹거리나 베나부랑이는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것이 뇌물로 들어온 뜬돈이요, 뜬재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뜬돈의 범위는 양반의 품격에 따라 넓어진다. 이를테면 기방이나 風流房(풍류방), 社堂輩(사당패)에서 흘러나온 돈이나 전당포-돈 놓는 집-노름방-야바위 방 등에서 불로소득으로 생긴 돈도 뜬돈으로 기피하였다.

퇴락하여 먹고 살기 어려워진 양반들이 명분을 살리고서 먹고 사는 편법으로 이 뜬돈의 부정을 세탁하는 “돈 씻이”라는 습속을 형성시킨 것이다. 灰(회)가루나 잿물을 탄 물에 엽전을 담가 빨면 돈에 묻은 부정이나 불의를 세탁할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이 돈 씻이라는 돈 빨래 습속은 등짐 봇짐 지고 행상을 하는 褓負商(보부상)이나 개성상인들이 도둑이 무서워 돈을 버선발 밑에 깔고 다녔으며 그래서 구린 돈이요, 그 구린 악취를 빼고자 한데서 비롯되었다 기도 하고 원한이나 질투의 대상을 해치는 詛呪(저주)의 수단으로 무당으로 하여금 돈에 呪力(주력)을 불어 넣어 당사자에게 들어가게 하는 수가 있었는데 바로 이 저주의 주력을 세탁하는 수단으로 돈 빨래가 비롯되었다 기도 한다. 이처럼 전통사회에 있어 돈 빨래는 그지없는 財慾(재욕)에서 인간과 인격을 구제하는 훌륭한 정신작업인데 요즈음 부각되고 있는 돈 빨래는 惡錢(악전)을 善錢(선전)인 체 위장시키는 사기수단으로 변질되고 만 것이다. 돈 빨래를 한 자들은 고성능 세탁기에 넣어 마구 돌려대는 인간빨래로 다스렸으면 어떨까 한다.(이규태 코너 1992년) ※ 褓(포대기 보), 詛(저주할 저).

 

歸雁(귀안)        - 杜甫(두보) -

春來萬里客(춘래만리객)        봄에 와 있는 만 리 밖에 있는 나그네는

亂定幾年歸(난정기년귀)        난리가 그치거든 어느 해에 고향으로 돌아가려느냐?

膓斷江城雁(장단강성안)        강가의 성위에 나는 기러기가 높이

高高正北飛(고고정북비)        바로 북쪽으로 날아감에 창자를 끊는다.

※ 膓(창자 장, 腸의 속자)

 

 

 

11-37. 小船은 難堪重載로 深逕은 不宜獨行이니라

        (소선    난감중재    심경    불의독행)

작은 배는 무겁게 싣는 것을 견디기 어렵고, 으슥한 길은 혼자 다니기에 마땅치 않느니라.

 

⋇ 難堪(난감) : 견디기 어려움.

⋇ 深逕(심. 소로 경, 좁은 길, 지름길) : 으슥한 길

⋇ 不宜(불의) : 마땅하지 아니함.

 

(해설)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럴 것이다 모두가 이해하고 수긍하는 상식은 오랜 기간 동안에 겪어 왔고 또한 변하지 않는 진리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상태를 말함이다. 예를 들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 돌은 물에 가라앉는다, 걷는 것보다는 뛰는 것이 빠르다 등등 그러나 때론 예외는 존재하기도 한다. 그래서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 하지요. 작은 배는 무거운 짐을 견디기 어렵고 그럴 경우에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라앉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집니다. 사람 또한 같다. 능력을 벗어난 어려운 문제나 과중한 일을 맡기거나 문제에 봉착하면 그것을 해결하려 노력을 하지만 어느 시점에 다 달으면 과중한 스트레스를 못 이겨 좌절하거나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과격한 행동을 취하기도 합니다. 술로 푼다고 과음을 한다거나 줄담배를 피어댄다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파괴하는 등으로 잠시 상황을 피해 보려 한다. 그것이 계속해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최악의 상태까지 벌어지는 불행한 사태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론 그러한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냄으로써 한 단계 성숙하거나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극복하느냐 혹은 슬기롭고 지혜롭게 돌파해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해결책은 늘 함께 한다고 하는데 대개의 경우 멀리서 찾으려 합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혹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존재하는데 고난도의 해결책을 찾으려 하다 보니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뒤에야 비로소 그 길을 찾게 되는데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경우입니다.

욕심은 늘 무리를 강요하고 억지를 동반하는 독약과 같은데 그 욕심이 없다면 발전이나 진보를 하지 못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잘 쓰면 보약이요, 잘 못쓰면 독약이란 말처럼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는가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극한체험을 하게 만들지요. 사적인 욕심과 공적인 욕심의 차이도 존재합니다. 사적인 욕심이야 몇몇 사람만 괴롭히고 힘들게 하지만 공적욕심이 잘못 사용되어지면 많은 사람들을 고통과 시련 그리고 눈물과 피를 흘리게 만듭니다.

어두운 밤에 으슥한 골목길이나 불빛 하나 없는 그믐밤에 밤길을 걸어간다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공포와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게 마련이지요. 특히나 공동묘지라든가 폐가나 흉가의 옆을 지나가게 된다면 배가되는 오싹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귀신이야기와 공포영화에 등장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며 스스로 제어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지요. 조그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수상한 그림자에 심장이 덜컹하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풀잎의 소음에도 오싹 돋는 소름에 오그라드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자기최면을 걸으며 무사하기만 기도하던 순간들 기억하기조차 싫은 일이지요.

자원입니다.

獨(홀로 독)은 개는 홀로 사는 동물인데 안개(蜀) 속에서 길을 잃은 개(犭)는 더욱 외로워 보인다.

 

페테르부르크

레닌그라드 네바 강가에 러시아를 중흥시킨 피터大帝(대제)의 동상이 서 있다. 한말,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대관식에 참석했던 忠正公(충정공) 閔泳煥(민영환)이 이 동상을 구경하던 날 일기는 이렇다. 皮得(피득)대제는 25세에 임금이 되니 백성이 아직 미개하고 정치가 문란한지라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평민이라 자칭하고 유럽에 가 과학을 배우고 목공이라 자칭하여 造船(조선)하는 법을 배우고 돌아와서 이 땅을 발견하고 개척하여 수도로 삼은 뜻은 西北(서북)을 진압하려 함이다. 그가 53세에 죽으니 국민들이 흠모하여 이 도시를 皮得堡(피득보 : 페테르부르크)라 이름하고 동상을 세운 것이다.”

이 개척도시 페테르부르크가 후에 이곳에서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로 개명한 것은 1924년이다. 그 도시이름을 공산주의와 레닌의 퇴색에 때맞추어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환원시키기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가 결의하고 있다. 67년만의 원상복귀다.

공산주의 사회의 통치에는 민심을 구심시킬 영웅적 인물이 필요했음인지 도시 이름에 까지 인명을 침식시키고 있다. 동독의 카를마르크스슈타트시市(시)가 그렇고 유고의 티트그라드市(시)가 그러하며 몽골의 울란바토르市(시) 베트남의 胡志明市(호지명시)가 그렇다. 소련에서 레닌의 이름을 딴 도시는 레닌그라드뿐만 아니다. 아르메니아공화국 수도인 레니나칸, 타지크 공화국 수도인 레니나바드, 우즈베크 공화국 수도인 레닌스크가 그렇고 수도가 아닌 도시로 레닌스크쿠즈네키 그리고 레닌의 이름인 우랴노프를 따 우랴노프스크란 도시까지 있다. 이번 레닌그라드의 원 지명 환원으로 모두가 환원돼야 할 운명에 놓인 지명들이다.

뿐만이 아니다. 공산당 지도자의 이름을 딴 도시로 그밖에 엥겔스-오르죠니키제-카리닌-카리니그라드-키로프-지다노프-제르진스즈크-페트로자봇스크-프룬제…헤아릴 수 없이 많다. 스탈린도 생전에 스탈린그라드와 스탈리노 등 자신의 이름으로 두 도시의 이름을 개명하고 있다. 스탈린 격하 후에 원명으로 환원되고 말았지만-.

北韓(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함경도 新波(신파)가 김일성 전처인 金貞淑郡(김정숙군)으로, 厚昌(후창)이 김일성의 아버지인 金亨稷郡(김형직군)으로, 豊山(풍산)이 김일성의 삼촌인 金亨權郡(김형권군)으로, 그리고 城津(성진)이 金策市(김책시)로 개명되고 있다.

이름을 많이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만큼 사람이 많이 모자라고 이름을 길이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만큼 사람이 짧다는 “近思錄(근사록)”의 가르침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이규태 코너 1991년)

 

劍客(검객)        - 賈島(가도) -

十年磨一劍(십년마일검)        십년 간 칼을 갈았어도

霜刃未嘗識(상인미상식)        시퍼런 칼 한 번도 쓰지 못 하였네

今日把示君(금일파시군)        오늘 그대에게 보이는 것은

誰有不平事(수유불평사)        무엇인가 공평하지 아니하기 때문일세

※ 磨(갈 마), 嘗(맛 볼 상), 把(잡을 파), 誰(누구 수).

 

 

 

11-38. 黃金이 未是貴요 安樂이 値錢多니라

        (황금    미시귀    안락    치전다)

황금이 곧 귀한 것이 아니요, 편안하고 즐거움이 보다 값 많은 것이다.

 

(해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보배스러운 존재는 보석도 아니요, 황금도 아닌 바로 사람이라 말한다. 사람이 있고 나서야 보석도 황금도 제 값어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이나 다름없지 않는가? 많이 쌓고 가지려고 몸부림치는 재물 또한 같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이 죽을 때 가지고 가느냐? 반문하지요. 사람들이 필요하여 돈이란 요물을 만들어 놓고 사람이 홀려버리는 아이러니를 범하고 있지요.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를 필요 이상 가질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으로도 행복하게 살아 갈 것인가는 각자의 가치관이나 욕망에 의해 좌우된다고 하지만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인한 자본주의는 모든 평가기준이 금전으로 환산되어 인격이나 지식이나 재주의 가치는 고려되지 않는다. 모든 초점이 성공이란 목표에 맞추어지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무한경쟁체제로 그 대열에서 낙오되면 실패자로 무능력자로 굴욕의 삶을 영위하기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어려서부터 몸으로 체감하며 자라나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역투를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의식주를 떠나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자체를 정의 내린 무수한 말이 있지만 정작 당사자가 그런 삶을 살았는가? 몇 되지 않고 말만 앞세운 결과 그러한 말에 신빙성이 결여되어 공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염세주의를 주창한 쇼펜하우어로 자신은 정반대의 애착을 보였다. 말과 실천을 강조하는 이유가 말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려운 현실을 어떻게 진정성을 보이는가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회의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사상인 경우는 그나마 파괴력이 다소 떨어지지만 신앙에 접목되면 그 폐해가 광범위해지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잊을 만하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종말론과 말세론이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포장이 어떻게 되었는가도 중요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회가 불안정하게 되는 전란이라든가 전염병의 창궐이라든가 광범위한 자연재해의 빈번과 불황의 긴 터널을 통과할 때 그리고 새로운 이념이나 사조의 대두로 가치관에 혼란이 올 때 그러한 경향이 다수의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카드로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면 또 속았다는 허탈감에 빠지지만 사회가 혼란하고 불안정하면 무엇인가에 기대고 싶은 강한 욕망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교묘하고 그럴듯한 상황의 연출이라든가 시국에 맞춘 해결책처럼 생각이 들거나 여린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 이상향을 제시하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마력을 갖는다.

모든 일들이 시작되는 출발점은 마음인데 朝夕(조석)으로 변하고 상황에 따라 변화되며 처한 환경에 따라 바뀌며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편하며 이익이 될 것이라는 환상 같은 기대감이 클수록 쏠려버리는 변덕이 심하고 남이 쫒으면 무의식적으로 동조하며 쫒는 성향을 보인다. 자신의 색깔과 의지대로 판단하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고 그럴 것이다 란 막연한 기대감과 요행수를 바라는 판단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의 판단을 적극 옹호하고 어쩔 수 없는 최상의 판단임을 자위하면서도 전전긍긍하는 나약함을 감춘 채로.

산해진미로 식사하고 금침에 자고 황금 옷을 입는 다고 행복하고 안락한 삶은 아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안락하여야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 된다. 욕을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지만 원성과 원망이 누적되면 평탄한 삶이 아닌 욕되고 부담스러운 가시방석에 앉은 격의 하루하루가 된다. 마음이 부자가 되어야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3D 忌避現象(기피현상)

세상을 살아가려면 궂은 일(Dirty)도 해야 하고 힘든 일(Difficult)도 해야 하며, 또 위태로운 일(Dangerous)도 해야 한다. 이 3D현상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치열한 人生競走(인생경주)의 시발점에서 달려갈 트랙을 배정받는다. 그래서 이 3D현상을 극복하는 成人式(성인식)이 꽤나 발달했었다. 이 시련을 거치지 않으면 나이 들어도 반말을 들어야 하고 품을 팔아도 반품 밖에 받지 못했으며 결혼대상에서 소외당해야 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시련방식은 달랐다. 이를테면 나무에 올려놓고 가지를 쥐고 몸을 늘어뜨리게 한다. 그리고서 한 손을 번갈아 놓게 하고서 바짓가랑이를 잡아끌어 半裸身(반나신)이 되게 한다. 이렇게 위험하며 힘들고 창피스러운 고비를 넘김으로써 成人(성인)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한 해도 이 3D로 시작된다. 정월 대보름의 “아홉치레”가 그것이다. 나무도 아홉 짐 하고, 새끼도 아홉 발 꼬며, 빨래도 아홉 가지, 삼도 아홉 바구니 삼는다. 매도 아홉 번 맞고, 심부름도 아홉 번 한다. 이렇게 아홉치레로 고되게 한 해를 시작함으로써 한 해의 일이 수월해지고 따라서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것이다.

동서와 시누이가 짜고 시집온 새 며느리를 골탕 먹이는 의식도 같은 맥락이다. 깊은 오줌항아리에 호미를 담가 놓고 그것을 꺼내오라 시킨다든지, 귀신이 득실거리는 상여 집에 신발을 숨겨놓고 야반에 혼자 가서 찾아오라 시킨다든지, 또 갓 농사일을 시작한 애송이는 소매(인분) 퍼 다가 거름 주는 일, 외양간이나 돼지우리 치는 일, 묵정밭 돌 골라내는 일 등 궂고 힘들고 어려운 일 3년을 해야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렇게 궂고 치사하고 위태로우며 고된 일을 겪음으로써 닥쳐올 인생의 고난에 패배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정신적 기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반드시 母乳(모유)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법통이 돼 있는 유럽의 합스브르크 王家(왕가)의 자제들은 소년의 한 시기를 가난한 농가에 의탁시켜 기름으로써 3D를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가풍으로 돼 있다 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거의가 핵가족화의 진행으로 逆(역) 3D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공부만 잘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면죄, 면책되는 역시 역 3D의 無菌(무균)상태에서 뼈가 굵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던져진 세상은 궂고 힘들고 험한 일투성이다. 헌데 그걸 감내할 기틀이며 역량이 없다.

열매가 잘 열리는 나무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메마른 땅과 돌무더기와 그리고 벌레나 세균과 싸우는 뿌리가 무성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경제 나무도 바로 그 고난과 싸우는 뿌리가 성쇠를 가름한다. 젊은이들에게 팽배돼 가는 3D 기피현상이 바로 그 뿌리가 죽어간다는 것이 된다. 시름시름 시드는 나무를 보고도 속수무책인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규태 코너 1991년)

 

午倦(오권)        - 袁枚(원매) -

讀書生午倦(독서생오권)        책을 읽다 싫은 싫증이 나서

一枕曲肱斜(일침곡굉사)        팔을 베고 잠이 들었다

忘却將窓掩(망각장창엄)        잊어버리고 창문을 닫지 않았더니

渾身是落花(혼신시낙화)        온 몸에 낙화되어 있더라

※ 倦(게으를 권), 枚(줄기 매), 肱(팔 굉), 掩(걷을 엄), 渾(흐를 혼).

 

 

 

11-39. 在家에 不會邀賓客이면 出外에 方知少主人이니라

         (재가   불회요빈객       출외    방지소주인)

집에 있으면서 손님을 맞아 대접할 줄 모르고, 밖에 나갔을 때 비로소 주인 적은 줄을 알리라.

 

⋇ 不會邀(아니 불. 모일 회. 맞을 요) : (손님을) 맞아 모실 줄 모름.

⋇ 方知(방지) : 비로소 알게 됨. 바야흐로 알게 됨.

 

(해설)

사람이 사는 집에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아니할까?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평소에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인색하거나 야박하게 대접하였든지 아니면 처세에 문제가 있어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였든지 또는 가세가 빈천하여 찾아올 엄두조차 접게 만들든가 등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사람의 인격과 연관이 깊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다는 말도 있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베풀기를 잘하고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면 어찌 사람들이 외면을 할까?

내 것이 귀하면 남의 것도 귀한 법인데 내 것은 내 것이고, 남의 것도 내 것이라는 심보로 매사에 임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상태를 맞게 된다. 인간사 주고받는 것이 상식이거늘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하거나 아까워서 못주면 그 결과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내가 대접 받으려면 남부터 대접하라고 하였다. 자신만 우러러보기를 원하면서 남 알기를 발가락에 낀 때처럼 여기고 무시한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존중과 배려 그리고 내 몸 같이 아껴주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마음 씀씀이야 말로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진가는 빛을 발하게 된다. 친구는 오래 사귈수록 좋다 하였는데 그 속에 숨은 뜻이 바로 그것을 실천하였는가에 달려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기의 목숨도 아깝지 않게 내 놓을 수 있는 우정이야말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이 세상에 태어나 그런 친구를 한 명이라도 사귈 수 있었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말하지 않는가.

남을 대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대접하는 가에 달려 있다. 아무리 산해진미와 美酒(미주)를 내어 놓아도 진정어린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면 차라리 나물에 보리밥이라 할지라도 정성과 마음이 담긴 식사가 손님의 마음을 만족하게 할 것이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마음으로 아무리 산해진미의 식사를 대접받는다고 제대로 맛을 음미하며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을까. 높은 지위에 있거나 적을 많이 두고 있는 경우에는 음식에 독이나 위험한 것을 넣지는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며 사전에 점검도 하고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 먼저 먹여보는 등의 수고를 하게 된다.

자신이 그러할진대 남이야 오죽하겠는가. 주인 된 입장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정성을 보이지 않았는데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가서 대접을 받을 때 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마치 원수의 집이나 죄짓고 감옥에 들어가 먹는 식사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였는가에 따라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점을 새기고 정성과 온 마음을 다 바쳐서 극진하게 마음 편안하고 즐겁게 대접하도록 하여야 한다. 한 치의 소홀함도 서운한 감정도 없이 진정으로 귀빈처럼 대접받았고 그 어느 식사보다도 만족하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효도상속제

고대 로마에서는 노인을 다리에서 떠민다는 뜻인 데폰타니(Depontani)라 불렀다. 부양에 힘이 드는 부모를 다리 위에서 떠밀어 익사시켰던 데서 비롯된 말이다. 남태평양 일부의 섬에서는 부양이 힘든 부모가 생기면 야자나무에 올려놓고 자식들이 흔들어 추락사시키는 관습도 보고되고 있다. 흉노족은 노부모를 자루 속에 담아 나무에 걸어놓고 활을 쏘는데 단발로 사살하는 것이 지상의 효도로 쳤다. 우리나라에서는 늙으면 흙구덩이 속에 가두어 죽게 하거나 병들면 病幕(병막)에 버려 죽어가게 하는 관습은 북방 이동민족의 노인 학대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 같은 학대에 미래의 노인들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반동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하나가 기득권을 죽을 때까지 보유하는 상속거부형 문화로서 게르만문화권에서 발달했다. 70~80대의 아버지가 40~50대의 자식에게 가산을 상속하지 않고 예속시킴으로써 일어나는 갈등이 독일문학의 한 유형을 이루고 있을 정도다. 문호 괴테는 80세가 넘어 병석에 누워 있을 때까지 창고열쇠를 자리 밑에 깔고 가족이 필요한 빵을 저울로 달아 주곤 했다.

다른 하나가 일본 같은 점진상속형이다. 장자가 일가를 이루면 일부 가산을 물리고 남은 가족들과 작은 아들집에 가서 사는 것을 隱居(은거)라 하고, 작은 아들이 일가를 이루면 셋째 아들과 동거하는 散居(산거)를 한다.

한국처럼 부모부양을 우선된 덕목으로 치고 장자 상속을 고정시킨 것이 절대상속형이다. 이렇게 하여 노인 학대를 순화시켜 내렸는데 핵가족의 진행과 자기중심주의의 팽배로 다시 부양거부의 노인 소외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에게 50% 가산된 상속을 하도록 한 효자상속제는 가속하는 이 노인소외의 수레바퀴에 약간의 제동을 거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독일 같은 상속거부형 문화가 차츰 거세어 가리라 보는 것이다.

(이규태 코너 1998년)

 

大雪(대설)       - 正祖大王 御製詩(정조대왕 어제시) -

玄化參天地 群生一大包(현화참천지 군생일대포) : 성인의 덕화가 천지에 참여하여 뭇 생령들을 하나로 크게 포옹하니

陰陽隨節變 風雨以時交(음양수절변 풍우이시교) : 음양은 절후에 따라 변천하고 풍우는 때에 따라 교대하네.

遠水寒生骨 深宮暮折膠(원수한생골 심궁모절교) : 먼데 물은 한기가 뼈에 사무치고 깊은 궁전엔 저녁에 아교가 적이로다.

玄冥初按節 風伯更承旓(현명초안절 풍백갱승소) : 겨울 귀신은 처음 속도를 늦추었는데 바람귀신이 다시깃발을 이어 받아

拂石糚鹽虎 飄空鬪玉蛟(불석장염호 표공투옥교) : 돌에 부딪쳐서는 염호를 장식하고 공중에 날리면 옥룡이 싸우는 듯

白三徵臘瑞 藤六象陰爻(백삼징납서 등육상음효) : 백삼은 납서의 징조가 되고 등륙은 음효를 상징하였도다.

連璐千門逕 裁瓊上苑梢(연로천문경 재경상원초) : 천문의 길은 구슬을 꿰어 놓은 듯 상원의 나뭇가지는 옥을 조각해 놓은 듯

烛調欽聖德 尺厚認天敎(촉조흠성덕 척후인천교) : 촉조로써 성덕을 흠모하겠거니와 최후의 깊은 눈은 하늘의 시킴일세.

皎潔凝雙闕 豊穰占四郊(교결응쌍궐 풍양점사교) : 희고 깨끗한 빛은 쌍궐에 모여 있고 풍년은 사방의 들녘에서 점치도다.

休祥遍八城 歡忭幷同胞(휴상편팔성 환변병동포) : 아름다운 상서가 팔방에 두루 미치니 온 나라 동포들 손뼉 치며 즐거워하네.

※ 膠(아교 교), 按(누를 안), 旓(깃발 소), 糚(단장할 장), 蛟(교룡 교), 璐(고은 옥 로), 逕(좁은 길 경), 梢(나무 끝 초), 皎(횔 교), 烛(촛불 촉), 穰(풍족할 양), 郊(들 교), 遍(두루 편), 忭(기뻐할 변).

 

 

 

 

 

11-40. 貧居鬧市無相識이요 富住深山有遠親이니라

         (빈거요시무상식      부주심산유원친)

가난하면 번화한 시장에 살아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고, 넉넉하면 깊은 산중에 살아도 먼데서 찾아오는 친척이 있다.

 

⋇ 鬧市(시끄러울 료. 시) : 시끄러운 시장.

⋇ 無相識(무상식) : 서로 아는 사람이 없음.

 

(해설)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 수 있거나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공기 같이 바람 같이 살아간다고 하는데 사람들과 부대끼는 곳에서는 힘들고 어려우며 번거롭기에 은둔하거나 홀로 떠도는 생활을 하는 수도자나 구도자가 아니면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무런 연고도 없고 가난하며 눈에 들어날 행동이나 시비에 무관하게 살아간다면 누구에게도 주목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터이다. 어느 정도로 가난해야 하는가, 어느 정도로 평범해야 하는가, 어느 정도로 시비나 재물 명예 권력에 무관해야 하는가, 어느 곳에 살아야 하는가는 시대나 그 사회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추구하는 목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살갑고 입만 살아가지고 나불대는 사람보다는 진중하고 필요할 때 그에 걸 맞는 布施(보시)나 봉사를 실천하는 사람과 남과 비교하여 떨어지지 않는 재산과 인품을 지니고 원만한 인간관계로 꼭 필요로 하는 사람 그리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온 정성으로 해결하려 애쓰는 사람은 이웃하는 누구라도 피하려 들지 않고 사귀려 들 것이다. 세상이치가 차면 넘치고 예도 과하면 비례가 되듯이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은 늘 존재하는데 그런 기준이 되는 것들은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관습과 윤리 속에 함축되어 있다. 도움도 정말 간절하고 절박한 상황에 딱 맞추어 줄 때 사소하고 작은 일이라도 오래 기억되고 가슴에 깊게 새겨질 것이다. 정말로 필요로 할 때는 외면하다가 필요하지 아니할 때 선심 쓰듯이 베푸는 호의는 베풀고도 욕먹기 십상이다. 정보의 가치도 바로 시간에 따라 좌우되듯이 도움이나 호의를 베푸는 것도 어떤 시간 혹은 상황이냐에 따라 극대화되는가 아니면 사소한 의미로 제한되는가가 달려있다.

넉넉하다고 사람들이 찾아드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찾아오도록 만든 지난 세월 속에 선행이나 도움 등을 실천한 일상사라든가 학식이나 높은 인격을 지녀 흠모하거나 배움을 청하고자 찾아오거나 오랜 지기로서 평상적인 왕래도 있을 것이다. 가난하다고 사람이 찾아들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찾아들지 못하는 사유가 존재할 것인바 그것이 해소된다거나 앞서 본대로 찾아들 이유가 확실해지면 가난해도 찾아들 이는 찾게 된다. 어떠한 삶과 철학을 지니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 가난할 때 찾아주는 친구가 진정한 지기라 하듯 잘 살건 못 살건 어려움에 처해 있건 부유하게 살건 불문하고 그 모든 것을 벗어나 허심탄회하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장점을 배우려 드는 자세를 견지할 때 金蘭之交(금란지교)니 水魚之交(수어지교)니 管鮑之交(관포지교) 刎頸之交(문경지교)의 호칭을 듣게 되리라.

어디에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중요하다.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심심산골도 바다 한 가운데 무인도라 할지라도 필요하고 보고 싶다면 찾아올 사람은 있다. 아무런 색깔도 없고 무색무취하여 존재조차 투명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곁에 서있어도 주시하지도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 같이 바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기도 버거운 상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 하듯 늘 외롭게 존재하리라.

 

狎鷗亭(압구정)

옛날 어느 바닷가에 한 어부가 살았다. 그는 갈매기와 친하여 어깨에 와서 앉기도 하고 손 위에 내려앉아 놀기도 했다. 그는 이 친해진 갈매기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그 갈매기 한 마리를 잡아오라고 하였다. 어부는 아내 말대로 한 마리 잡을 마음을 먹고 바닷가에 나갔더니 그렇게 줄줄이 날아들던 갈매기가 한 마리도 날아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 어부에게 갈매기를 잡아가야겠다는 機心(기심)이 있었기 때문이요, 그 기심을 갈매기들에게 갈파당한 때문이었다. 機心(기심)이란 이처럼 음모가 내포된 음모성의 예비심을 일컫는다. 그리하여 정자 이름을 기심이 없음을 과시하는 뜻에서 갈매기와 친하다는 狎鷗(압구)란 말을 선호하였고 雅號(아호)를 지을 때도 기심을 잃은 노인이라 하여 忘機老(망기로)란 말을 선호하였다.

송나라의 정승 韓忠獻(한충헌)이 임금을 들여세우고도 권세와 등지고 산천에 묻혀 살았기에 그가 거처하던 草亭(초정) 이름을 狎鷗亭(압구정)이라 불렀고 사람들은 그를 망기로라 우러렀던 것이다. 이 한충헌처럼 살고 싶은 분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世祖靖難(세조정란)의 일등공신이요, 세조와 成宗(성종) 두 임금을 들여세웠으며 두 임금의 장인인데다가 벼슬은 영의정으로 일흔 세 살까지 장수한 韓明澮(한명회)가 바로 그분이다. ※ 澮(봇도랑 회).

한명회는 한강 건너에 정자를 짓고 명나라 사신 倪謙(예겸)에게 청하여 압구정이란 정자 현판을 써 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호로서 망기로를 하나 더하고 있다. 그 압구정 위치는 그 때문에 동명을 얻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88올림픽 도로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가 鄭敾(정선)이 그린 압구정 전경을 보면 강가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열 칸 남짓의 넓은 몸채와 그 담밖에 거의 그와 맘먹는 규모의 사랑채 두 채로 된 호화별장임을 알 수 있다. 이 호화정자가 평소에는 비어 있었던지 뜻있는 선비들이 빈정대는 시를 써 남기고 있다. “임금이 하루에 세 번씩이나 불러보아 총애가 흐뭇하니/ 정자는 있어도 와서 노는 주인은 없구나/ 가슴 가운데 機心(기심)만 끊어졌다면 비록/ 벼슬바다 앞에서도 갈매기와 親狎(친압)할 수 있으련만.(三接慇懃寵渥優 有亭無計得來遊 胸中政使機心靜 宦海前頭可狎鷗 : 삼접은근총악우 유정무계득래유 흉중정사기심정 환해전두가압구)” 선비 崔敬止(최경지)의 압구정 시다. ※ 倪(어린이 예), 敾(글 잘 쓸 선), 慇(괴로워할 은), 懃(은근할 근), 渥(두터울 악).

그리고 많은 선비들이 친할 압구정이 아니라 짓누를 押鷗亭(압구정)으로 표기하여 정자 주인의 기심을 빗대기도 했다. 서울의 6백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압구정을 복원할 것이라 한다. 문화유적 복원은 많이 할수록 좋다. 다만 정난공신으로서 권세를 누린 이의 호화별장이고 보면 복원 서열이 앞 당겨진 느낌이 들 따름이다. 靖難(정난)한 이의 유적은 후세에까지 두고두고 지탄 받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위하여 복원한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이규태 코너 1991년)

 

蟬(선)        - 虞世南(우세남) -

垂緌飮淸露(수유음청로)        갓끈 늘어뜨리고 맑은 이슬 마시고

流響出疎桐(유향출소동)        노래 부르며 오동나무 숲을 나왔노라

居高聲自遠(거고성자원)        높은 곳에서 소리치면 자연 멀리까지 들려오니

非是籍秋風(비시적추풍)        가을바람에 떠드는 것 옳지 아니하다

※ 蟬(매미 선), 緌(갓끈 유), 響(소리 울릴 향), 籍(문서 적).

 

 

 

 

 

 

자료출처-http://cafe.daum.net/sungho52

                      박광순선생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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