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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서단[迎日書壇]

朱木님 출품자료-葵亭 申厚載선생시 龍潭竹枝詞

작성자古方|작성시간14.08.06|조회수212 목록 댓글 2


龍潭竹枝詞

門前芳草綠初肥
離外桃花紅未稀
문전방초녹초비
리외도화홍미희

罷釣歸來溪路晩
一輪明月照蘿衣
파조귀래계로만
일윤명월조라의

문앞에 어린풀은 초록이 짙어가고
울타리 밖의 도화는 분홍이 눈에 띈다
낚시대 거두어 들고 황혼녁에 돌아오니
동산에 솟은 달이 송라에 비치는구나

申厚載 선생詩

龍潭竹枝詞
원본출처-葵亭集卷之二

門前芳草綠初肥。籬外桃花紅未稀。
罷釣歸來溪路晩。一輪明月照蘿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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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후재(1636~1699) 선생은 조선시대의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이며, 호는 여암 또는 규정이라 했고 자는 덕부이다.
조선 현종 1년인 1660년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그러나 숙종 6년인 1680년에 남인 세력을 정치적으로 대거 축출한 사건인 '경신대출척'에 삭직이 되었다. 그 후 숙종 19년인 1689년에 숙종의 후궁인 소희 희빈 장씨가 낳은 소생을, 원자로 책봉할 것을 반대한 송시열 등이 정권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때 서인들이 물러나고 남인들이 다시 정권을 장악한 사건을 '기사환국'이라 하는데, 신후재도 이때 벼슬길에 나아가 우승지와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사은사 겸 진주주청부사로 청에 다녀왔으며, 강화와 개성부 유수, 한성부 판윤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 후 숙종 20년인 1604년 폐비 민씨의 복위운동을 둘러싸고 소론에 의해 남인들이 몰락한 갑술옥사에 관련이 되어 여주로 귀향을 갔다가, 풀려난 후에는 음성군 감곡면 오궁리에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목천선생님 해석-
門前芳草綠初肥 籬外桃花紅未稀
罷釣歸來溪路晩 一輪明月照蘿衣

- 申厚載 -

문 앞의 방초는 초록빛 짙어 가고
울 밖의 복숭아꽃 붉게 물 든다오.
낚시 파하고 늦게 개울길 돌아오니
동그란 보름달이 솔가지에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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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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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주목 | 작성시간 14.08.09 선생님! 출품자료 올려 주심에 감사드리며, 배움의 아침시간이 되었습니다.
    詩文(해석)이 너무나 아름다움을 느껴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古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8.21 고맙습니다
    뜻을 이루는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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