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2021.6.21~7.5.
장소--연일복지회관1층전시실
언제부터인가 부채를 팔덕선(八德扇)이라고 불렀다.
부채에 여덟 가지 덕이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1.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는 덕,
2.험한 자리에서는 깔개 역할을 해 주는 덕,
3.밥상이 없을 때 밥상 대신 간단한 음식을 차릴 수 있게 해 주는 덕,
4.똬리(짐을 일 때 머리에 받치는 고리 모양의 물건) 대신 머리에 받치고 물건을 나를 수 있게 하는 덕,
5.오뉴월 따가운 햇볕을 가려 주는 덕,
6.예측하지 못한 비를 잠시라도 막아 주는 덕,
7.파리나 모기를 쫓아 주는 덕,
8.남녀 간에 내외(內外)를 해야 하는 등 뜻밖의 상황에서 얼굴을 가리게 해 주는 덕
사신을 따라 고려에 왔던 송나라 문신 서긍은 고려의 여러 풍물을 보고 돌아가서
「선화봉사고려도경」 이란 책을 지었는데,
거기에다 '고려인은 한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니는데,
접었다 폈다 하는 신기한 부채를 들고 다닌다.'고 적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뿐만아니라 그 후로 고려에 온 중국 사신들은 접선을 얻어가면
이를 귀한 보물로 여겼으며, 나중에 이를 모방하여 부채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 부채를 가리켜 '고려선'이라 불렀습니다.
고려 때 부채 기술이 우수했던 것은 대나무 한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한지는 질기고 가벼우며 수명이 오래가는 특성을 가져 부채 종이로 쓰임이
적합했으며 대나무 또한 견고하고 잘 쪼개지는 특성으로
부채살을 만들기에 적합했습니다.
손잡이의 나무 역시 뚜렷한 사계절의 영향으로
미려한 무늬가 남겨져 있어 그 품질이 우수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우수한 재질 덕분에 고려선은 일본, 중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8덕에다가 판소리꾼들이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손과 발뿐 아니라,
온몸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
즉 ‘발림(너름새라고도 한다)’을 할 때
합죽선은 필수적인 소도구 역할을 하므로 이 덕 하나를 추가한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단오 때마다 임금이 각 지방의 명장들을 시켜
부채를 진상케 했고, 궁에서 만든 부채를 단오날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임금으로부터 부채를 하사받은 신하들은 부채 위에
수묵화를 그리거나 시를 한 수 적어 남기기도 하였고
백선(흰 부채)으로 웃어른이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민가에서도 단오가 되면
부채를 주고 받는 풍습이 유행하였습니다.
게다가 호신술을 익힌 옛 선비들은 급한 상황에서
부채를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호신을 해 주는 덕 하나가 또 추가된다.
이래서 10덕선이라는 말도 있다. 부채 하나에 이처럼 많은 용도를 부여한
조상들의 지혜와 해학(諧謔)이 자랑스럽다.
혹자는 습기에 약한 한지로 만든 부채로 어떻게 비를 피하며,
방석 대용, 심지어 밥상 대용으로까지 쓸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다 가능하다. 천년을 버틴다는 닥나무 한지로 만든 부채에 들기름이나
콩기름을 먹이면 닥종이의 질긴 재질에 기름으로 입힌 방수효과가
더해져 비도 가리고, 방석 대용, 밥상 대용으로도 가능하다.
올여름엔 전주의 합죽선을 하나 장만하여
부채의 10덕을 체험해 보면 어떨까?
이 아니 시원하겠는가!
부채질 한 번이면 선면(扇面)이 커서 바람도 제법 인다.
초록빛 들길을 부채 부치며 걸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그 옛날 양반이 이렇듯 호사를 누렸던가.
지금이야 쓰임이 많이 바래졌지만 어릴 때만 해도 부채에 의존했다.
여덟 가지 쓸모 있는 사람은 못될지라도 무덥고 짜증 나는 이 여름에
나도 누군가에게 시원한 바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선물용으로도 사용되던 부채는 그 속에 명필의 글씨나 그림을 그려 선물하게 되면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요, 부채에 글씨를 쓰는 것과 관련하여
추사 김정희와 부채 장수에 대한 일화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어느 날 추사김정희가 외출하고 돌아오니 집에 부채 보따리가 있어
청지기에게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부채 장수가 부채를 팔러왔다
날이 저물어 하루 묵고 가기를 청했다고 전했다. 김정희는 이야기를 듣고는
문득 부채에 글씨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청지기에게
부채 보따리를 가져오라 해 부채에 쓰고 싶은 글귀를 써 내려갔다.
이를 본 부채 장수는 부채를 다 버리게 되었다며 슬퍼했다.
그런 부채 장수에게 김정희는 장에 가서 추사 선생이 글씨 쓴 부채라 하고
가격을 몇 곱절을 더 부르면 너도나도 사 가려고 할 것이라 귀띔해주었다.
그날 부채 장수는 순식간에 부채를 다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