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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言 절구

백거이(白居易)―‘술을 마주하고(대주·對酒)’

작성자古方|작성시간20.04.03|조회수892 목록 댓글 0


[이준식의 한시 한 수]〈10〉

백거이의 中隱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입력 2019-06-07

백거이(白居易·772∼846)
―‘술을 마주하고(대주·對酒)’

巧拙賢愚相是非,
何如一醉盡忘機.
君知天地中寬窄,
鸞皇各自飛.
능숙하니 서투니, 잘났니 못났니 서로 시시비비하지만 
 흠뻑 취해 세상만사 다 잊은들 어떠리 그대 아실 테지,
 천지는 공교롭게도 넓고 또 좁아서
보라매든 봉황이든 제 흥대로 난다는 걸.
 유능한 인재가 산림에 은거하면 소은(小隱),
혼잡한 시정 속에서 담담하게 살아가면 중은(中隱),
관직에 있되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
그걸 대은(大隱)이라 했다. 도가에서 말하는 진정한 은자의 모습은
 대은의 삶이었다. 백거이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속세로 나온 듯 초야에 묻힌 듯, 바쁜 듯 한가한 듯 살겠노라’
천명하면서 그것을 중은이라 명명했다. 대은이란 게 원래 도가
사상의 산물이니, ‘중용되면 벼슬을 하되 그렇지 않으면
자기 수양에 힘쓴다’는 유가적 관료 입장에서는 차마 대놓고
대은을 표방하지는 못했으리라. 이 시는 쉰여섯쯤,
그가 관직에 있을 때 지은 것인데 그 후에도 근 20년을 더 관직에 머물렀다.
길조든 흉조든 세상이 넓든 좁든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법.
시인은 얕은 능력과 지혜를 다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인지를
자문자답처럼 되뇌고 있다. 세상살이란 어쩌면 알량한 재주를 겨루며
아등바등 밑도 끝도 없는 싸움터를 헤매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허방지방 나대면서 분주히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억지로 수식을 욱여넣거나 관념적 시어를 동원하지 않고
달관의 철리(哲理)를 시구에 담아내는 재주,
이게 백거이 시의 미덕이다. 이 시는 전체 5수로 된 연작시 가운데
제1수, 제2수에서도 시인은 “달팽이 뿔 같은 공간에서 무얼 다투랴.
부싯돌 번쩍하듯 순간에 맡겨진 이 몸, 부유한 대로 가난한 대로
즐기면 그만, 허허 웃어넘기지 못하면 이자가 바보”라 했으니,
부박(浮薄)한 우리네 삶을 문득 되짚어 보게 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對酒 五首(대주오수)

 <술울 마주하고>       白居易(백거이)

[其一]

巧拙賢愚相是非(교졸현우상시비),

何如一醉盡忘機(하여일취진망기)。

君知天地中寬窄(군지천지중관작),

雕鶚鸞皇各自飛(조악난황각자비)。

재주가 있고 없고 잘나고 못나고 서로 따지지만

한번 취해 모든 욕심 다 잊어봄이 어떠한가.

그대는 아는가, 세상이 넓고 좁은 데가 있고

독수리나 봉황새도 제 나름대로 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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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巧拙(교졸) : 교묘(巧妙)함과 졸렬(拙劣)함. 익숙함과 서투름

○ 賢愚(현우) : 어짊과 어리석음.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

○ 機(기) : 욕심. 권세. 거짓.

○ 寬窄(관작) : 넓고 좁다. 寬은 너그러울 ‘관’, 窄은 좁을 ‘착’.

○ 雕鶚(조악) : 독수리.

○ 鸞皇(난황) : 난새와 봉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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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二]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

隨富隨貧且歡樂(수부수빈차환락),

不開口笑是痴人(불개구소시치인).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다투는가?

부싯돌 번쩍이는 불꽃같은 이 내 몸이라네.

부유한 대로 가난한 대로 즐거움은 있는 법,

입 벌리고 웃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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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蝸牛(와우) : 달팽이.

○ 蝸牛角上爭(와우각상쟁) : 달팽이 뿔 위에서 싸움. 莊

子(장자) 則陽篇(칙양편)에 나오는 우화.

<참고> 莊子 雜篇 第25篇 則陽(칙양)

 第3章/ 04.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蝸角相爭)

 http://blog.naver.com/swings81/221114894946

달팽이 왼쪽 뿔에 사는 촉씨(觸氏)와 오른쪽 뿔에 사는 만씨(蠻氏) 두 부족이 영토 다툼을 벌이다가 큰 희생을 치렀다는 우화가 나오는데, 이로부터 좁은 세상에서 하찮은 다툼을 벌이는 것을 비유하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 石火光中(석화광중) : 부싯돌의 불이 번쩍이는 것처럼 지극히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 不開口笑是痴人(불개구소시치인) : 입 벌리고 웃지 않는 사람은 바보라네.

<참고>장자(莊子) 雜篇/ 제29편 盜跖(도척) 7.공자의 도는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다. http://blog.naver.com/swings81/221021828793

其中開口而笑者(기중개구이소자),一月之中不過四五日而已矣(일월지중불과사오일이이의)。

그 짧은 인생 속에서 입을 벌리고 웃으며 지낼 수 있는 것은 한 달 중에 사오일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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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三]

丹砂見火去無迹(단사견화거무적),

白髮泥人來不休(백발니인래불휴).

賴有酒仙相暖熱(뇌유주선상난열),

松喬醉卽到前頭(송교취즉도전두).

단사는 불 만나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백발니인(白髮泥人)은 내게 와서 쉬지를 않네.

주선(酒仙)의 힘을 입어 서로들 따뜻해지고

적송자나 왕자교도 취하면 쓰러지고 만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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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丹砂(단사) : <丹沙ㆍ丹砂>수은으로 이루어진 황화 광물을 말하며 신선이 되려면 단사(丹砂)를 복용했다. 《廣宏明集(광굉명집)》에, “丹砂(단사)를 태워 수은(水銀)을 만들고, 수은을 되돌려 단사(丹砂)를 만들기 때문에 還丹(환단)이라고 한다.[燒丹成水銀 還水銀成丹 故曰還丹]”라고 하였다.

○ 酒仙(주선) : 세속(世俗)에 구애(拘礙)됨이 없이 두주(斗酒)로써 낙을 삼는 사람

○ 松喬(송교) : 신선인 적송자와 왕자교를 말함.

* 赤松子(적송자)는 말하며 전설 속의 선인(仙人)이다. 《漢書(한서)》 안사고(顔師古)의 주(注)에, “적송자는 선인(仙人)의 호(號)이다. 신농씨(神農氏) 때에 우사(雨師)였다.[赤松子仙人號也 神農時爲雨師]”라고 하였다. 음식으로 물을 먹고 옥으로 옷을 해 입은 적송자는 신농에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견디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금화산(金華山)에 살다가 스스로 몸을 태워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 王子喬(왕자교)는 태평광기(太平廣記) 제4권 신선4(神仙四)에 실려있으며 그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王子喬者,周靈王太子也。好吹笙作鳳凰鳴。游伊洛之間,道士浮丘公,接以上嵩山,三十余年) : 왕자교는 주나라 영왕의 태자이다. 생황을 잘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수와 낙수 사이를 노닐었는데 도사인 부구공이 그를 데리고 숭산에 올라 30여 년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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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四]

百歲無多時壯健(백세무다시장건),

一春能幾日晴明(일춘능기일청명).

相逢且莫推辭醉(상봉차막추사취),

聽唱陽關第四聲(청창양관제사성).

백 살을 살아도 몸 성할 때 많지 않고

봄 중에 맑은 날은 또 며칠이겠소.

서로 만났으니 또 사양 말고 취하여

양관(陽關)의 이별가를 들어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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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推辭(추사) : 물러나며 사양함.

○ 陽關第四聲(양관제4성) : 陽關(양관)은 고대 관문(關門)의 명칭으로, 지금의 감숙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 서북쪽이다. 양관곡은 〈위성곡(渭城曲)〉 혹은 〈陽關三疊(양관삼첩)〉이라고도 불리며, 소동파는 이 시의 창법을 여러 가지로 정리하기도 하였는데, 그 창법 중에 하나가 앞의 세 구는 한 번 창(唱)하고, 제4구만 세 번 중첩하여 창(唱)하는 방법인데 간단하면서도 음악적인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훗날, 벗을 송별할 때 불러주는 송별가(送別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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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五]

昨日低眉問疾來(작일저미문질래),

今朝收淚吊人回(금조수루조인회).

眼前流例君看取(안전류례군간취),

且遣琵琶送一杯(차견비파송일배).

어제 고개 숙여 병문안하고 왔는데

오늘 아침 눈물을 거두며 조문하고 돌아왔네.

눈앞에 흐르던 눈물 사이로 그대를 보고

비파 한 곡조와 술 한 잔을 그대에게 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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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低眉(저미) : 고개를 숙임

○ 看取(간취) : 보아서 내용을 알아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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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의 '대주오수(對酒五首)'는 모두 5수로 전당시《全唐詩/卷449》에 실려 있으며 헛된 명예를 추구하지 말고 삶은 짧은 것이니 술이나 즐기면서 모든 것을 잊자는 내용으로 이와 유사한 시로는 이백의 對酒行(대주행)이 있다. 대주행(對酒行)은 조조(曹操)가 지은 시 〈단가행(短歌行):대주당가〉에서 유래하였으며, 짧은 인생 중에 세간의 헛된 명예를 추구하지 말고 술을 즐기자는 내용으로 악부(樂府) 상화가사(相和歌辭)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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