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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견탄(犬灘)
이규보(李奎報)
첫 새벽에 용포(龍浦)를 떠나 / 淸曉發龍浦 황혼에 개여울에 대었네 / 黃昏泊犬灘 간교한 구름이 지는 해를 놀려대고 / 黠雲欺落日 험상궂은 돌이 미친 물살을 막는구나 / 狠石捍狂瀾 수국에 가을이 먼저 서늘하고 / 水國秋先冷 선정은 밤에 더 차네 / 船亭夜更寒 강산이 참으로 그림보다 나으니 / 江山眞勝畫 혹시나 그림이라 보지 마소 / 莫作畫圖看
57. 우 용암사(寓龍巖寺)
이규보(李奎報)
길이 돌자 머나먼 장강 / 路轉長川遠 구름도 나직한 빈 벌판 / 雲低曠野平 날씨가 추우니 기러기도 괴로운 듯 / 天寒征雁苦 모래에 물 넘치니 자던 갈매기 놀라네 / 沙漲宿鷗驚 숲새에 퍼런 것은 도깨비 불인가 / 鬼火林間碧 빗속에 환한 건 어선의 등불 / 漁燈雨外明 돌아가는 배는 밤에도 대지 않고 / 歸舟夜未泊 삐거덕 노 젓는 소리 울리누나 / 鴉軋櫓猶鳴
58. 초당에 고요히 거처하여 두자미의 「새로 세든 초가」의 운에 화답하여[草堂端居和子美新賃草屋韻]
이규보(李奎報)
두문불출, 찾아오는 손도 없으니 / 杜門無客到 중[僧]과 나 기약해서 차를 끓이네 / 煮茗與僧期 따비[耒]를 메고 농사나 배워볼까 / 荷耒且學圃 전원에 돌아갈 때가 응당 있으려니 / 歸田當有時 가난하니 빨리 늙어감도 좋으이 / 貧甘老去早 한가하매 해[日]가 더디 감이 싫기도 / 閑厭日斜遲 차차 쇠해지고 병이 들려 하지만 / 漸欲成衰病 내 워낙 소용한 사람, 그 탓만은 아니로세 / 疏慵不啻玆
흥이 나면 오동 거문고를 어루만지기도 / 寓興撫桐孫 허심(虛心)으로 대군[竹君]을 대하네 / 虛心對竹君 수풀이 깊으니 까마귀가 새끼를 먹이고 / 林深鴉哺子 동산이 고요하니 새들이 무리를 부르네 / 園靜鳥呼群 돌에 앉아 해[日]가 기울도록 시를 읊기도 하고 / 坐石吟移日 창을 열고 누워 구름을 보내기도 하며 / 開窓臥送雲 진세의 소음이 지척 고대이나 / 塵喧卽咫尺 문을 꽉 닫고 있으니 아무 것도 안 들려라 / 閉戶不曾聞
점점 섬돌의 이끼가 붉고 / 點點階苔紫 더북더북 길에 풀이 푸르구나 / 茸茸徑草青 생각하니 인생은 그저 뜬 구름 / 殘生浮似夢 헐려진 헌 집이 정자보다도 넓어 / 破屋豁於亭 빈 주머니 찌그러졌거나 말거나 / 不省空囊倒 하루라도 술 깨는 것 싫어 / 猶嫌一日醒 시를 지었으나 누가 이를 사랑하리 / 詩成誰復愛 베개밑 병풍에 써두고 혼자 볼밖에 / 自寫枕頭屏
내 마음은 이미 불에 탄 곡식 / 心已如焦榖 어떤 이는 독한 모래를 쏘기도 하지만 / 人誰射毒沙 어즈버 늙으려네, 시의 세계에서 / 老於詩境界 그까짓 살림이야, 술 마시는 생애로 그만 / 謀却酒生涯 잠자코 웃으며 변하는 시세를 보고 / 默笑觀時變 한가로이 읊으며 철 따라 자연을 느끼네 / 閑吟感物華 집안에 있으면서 부처님이 될 만 / 在家堪作佛 영운은 출가 않고서도 집을 잊었거니 / 靈運已忘家
농사짓기 배우는 늙은이가 될지언정 / 寧爲學稼老 재물 바치고 사는 낭관은 되지 않으려네 / 不作出貲郞 먹을 것 나눠 주면서 원숭이들을 기르고 / 賦食籠狙類 기심)을 잊었으니 새들 축에 끼네 / 忘機入鳥行 깊이 감추면 옥이 절로 귀해지나니 / 深藏玉自貴 몰라 안 캔들 난초야 어떠리 / 不採蘭何傷 그 중에도 기쁜 건 동오의 무리 / 獨喜童烏輩 "걸음마", 내 평상에 둘려 있네 / 蹁躚繞我床
[주D-001]허심(虛心) : 대[竹]가 속이 비었기 때문에 허심(虛心)이라 한다. [주D-002]불에 탄 곡식 : 탄 곡식[焦穀]은 싹이 날 수 없다.《妙法蓮華經》 [주D-003]독한 모래를 쏘기 : 역(蜮)이 물 가에서 독한 모래를 입에 물고 사람을 쏘는데, 맞으면 부스럼이 나고 병이 난다 한다. 이것은 남을 음해(陰害)ㆍ중상(中傷)하는 데 비유한 것이다. [주D-004]영운(靈運) : 송나라의 사령운(謝靈運)이 불교를 독신(篤信)하였으므로 집에 있으면서도 집을 잊었다는 말이다. [주D-005]기심(機心) : 어느 사람이 바닷가에 살면서 매일 갈매기[鷗]와 노니, 갈매기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고 놀았다. 어느 날 그 아버지가, “내일은 갈매기를 한 마리 붙들어 가지고 오라.” 하였더니 다음 날 바닷가에 나간즉 갈매기가 멀리 피하고 오지 않았다. 그것은 갈매기를 붙들겠다는 기심(機心)이 있는 때문이었다. 기심은 꾀를 쓰는 마음이란 뜻이다. [주D-006]동오(童烏) : 양자운(揚子雲)이 《태현경(太玄經)》을 초(草)하는데, 그의 아홉 살 난 아이 오(烏)가 같이 거들었다.
59. 거문고를 듣고 학정 진화의 시에 차운하여[聞琴次韻陳學正澕]
이규보(李奎報)
사람과 거문고가 다행으로 은근히 맞았으니 / 人琴幸暗合 손과 줄이 척척 서로 어울리누나 / 絃手穩相迎 옛 뜻을 풍기니 마음 더욱 맑아지고 / 寓古心逾淡 신선과 통하는 듯, 뼈가 홀짝 가벼워지네 / 通仙骨欲輕 맑기는 바위에 샘물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 淸於巖溜落 깊숙하긴 골짝에 바람이 생기는 듯 / 幽到谷風生 듣고 나니 달이 적이 기울었는데 / 聽罷月微側 써늘하게 맑아지는 내 심정(心情) / 泠然洗我情
60. 구품사(九品寺)
이규보(李奎報)
산이 험하니 말[馬]이 자주 미끄러지고 / 山險馬頻蹶 길이 머니 사람이 쉬 피곤하네 / 路長人易疲 놀란 다람쥐는 가끔 풀로 들어가고 / 驚鼯時入草 잘[宿] 새는 벌써 제 가지에 앉았구나 / 宿鳥已安枝 텅 빈 각에 가을이 일찍 오고 / 虛閣秋來早 가파른 봉에 달도 늦게 올라오네 / 危峯月上遲 중은 한가하여 아무 일도 없구나 / 僧閑無一事 점다(물을 끓인 다음에 차를 넣는 것)할 때를 제하곤 / 除却點茶時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