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松柏金錦子

고방[7207]-花潭徐敬德(화담,서경덕)大興洞[대흥동]

작성자古方|작성시간26.06.19|조회수52 목록 댓글 0

고방[7207]花潭徐敬德(화담,서경덕) -大興洞[대흥동]

 

大興洞(대흥동)

       -花潭  徐敬德(화담  서경덕)

紅樹暎山屛  碧溪瀉潭鏡 

行吟玉界中  陡覺心淸淨
홍수영산병  벽계사담경  

행음옥계중  두각심청정

산 병풍을 비추는 붉은 단풍
연못에 쏟아지는 파란 시내.
옥 같은 세계 거닐며 읊조리니
문득 마음이 맑아지고.


直譯
붉은(紅) 나무는(樹) 산(山) 병풍을(屛) 비추고(暎)
파란(碧) 시내는(溪) 연못(潭) 거울에(鏡) 쏟아지네(瀉).
구슬(玉) 경계(界) 속을(中) 거닐며(行) 읊조리니(吟)
문득(陡) 마음이(心) 맑고(淸) 깨끗해짐을(淨) 깨닫네(覺).

•山屏산병=산병풍, 산이 병풍처럼 둘러선 것
•潭鏡담경= 못의 수면이 거울처럼 매끄러운 것
•行吟행음= 길을 가며 시를 음조 리다.
•陡두= 험할 두 부사-돌연. 갑자기. 별안간. 형용사-가파르다. 깎아지르다.



 

원문=花潭先生文集卷之一 / 詩

大興洞

紅樹映山屛。碧溪瀉潭鏡。

行吟玉界中。陡覺心淸淨。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88

 

조선 중기의 유학자·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개성을 대표한 송도3절(松都三絶)로 지칭되기도 하며,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유명하다.

'이(理)'보다는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철학의 입장에 서 있다.

1489년 황해도 개성(開城) 화정리(和井里)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당성(唐城)이며, 자는 가구(可久), 호는 화담(花潭)·복재(復齋),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무반출신의 부위(副尉) 서호번(徐好蕃)의 아들이다.

 

화담이라는 호는 그가 송도의 화담에 거주했으므로 사람들이 존경하여 부른 것이다.

그의 집은 농잠(農蠶)을 하였고 가세가 빈약하여 독학으로 공부를 하였다.

그는 학문을 하면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중시하였고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격물(格物)에 높은 관심을 두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자득지학(自得之學)으로 나타난다.

후일 그는 "나는 스승을 얻지 못하여 학문을 익히고 깨달음을 얻는데 힘이 들었지만

나의 문인들이 나에게서 학문을 익힌다면 나와 같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스스로 독학임을 표현하였다. 그는 주로 산림에 은거하면서 문인을 양성하였으며,

신분에 관계없이 문호를 개방하여 많은 후학들이 모여들게 하였다.

그는 평생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조식(曺植), 성운(成運) 등 당대의 처사(處士)들과 지리산. 속리산 등을 유람하면서

교유하였으며, 1544년 김안국(金安國)이 후릉참봉(厚陵參奉)에 천거하였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학문경향은 궁리(窮理)와 격치(格致)를 중시하였으며, 선유의 학설을 널리 흡수하고

자신의 견해는 간략히 개진하였다. 또한 주돈이(周敦頤)·소옹(邵雍)·장재(張載) 등

북송(北宋) 성리학자의 학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노장사상으로 대표되는 도가사상(道家思想)에도 관심을 보여 도가의 행적을 기록한

《해동이적(海東異蹟)》에는 그의 도가적인 성향이 소개되었다.

그의 학풍은 조선 전기의 사상계의 흐름이 주자성리학 일색만이 아니었던 분위기를 보여주며,

그의 문인들 중에서 양명학자나 노장사상에 경도된 인물이 나타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 문인으로는 허엽(許曄)·박순(朴淳)·민순(閔純)·박지화(朴枝華)·

서기(徐起)·한백겸(韓百謙)·이지함(李之函) 등이 있으며,

그의 학문은 남북분당기에 북인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단편 논저로는 〈원리설(原理說)〉 〈이기설(理氣說)〉 〈태허설(太虛說)〉

〈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 등 네 편이 있는데,

이들 논저에는 '이(理)'보다는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철학의 입장이 정리되어 있다.

〈태허설〉에서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태허 또는 선천(先天)이라 하고

태허에서 생성 발전된 만상(萬象)을 후천(後天)이라 하였으며,

〈귀신사생론〉에서는 인간의 죽음도 우주의 기에 환원된다는

사생일여(死生一如)를 주장하여 기의 불멸성을 강조하고,

불교의 인간 생명이 적멸한다는 논리를 배격하였다.

황진이·박연폭포와 함께 개성을 대표한 송도3절(松都三絶)로 지칭되기도 하며,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는 시조작품으로도 전해질 만큼 유명하다.

한편, 북한에서는 그의 주기철학을 유물론의 원류로 평가하여

그의 철학을 높이 평가한다. 개성의 숭양서원(崧陽書院)과

화곡서원(花谷書院)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으로는 《화담집(花潭集)》이 있다.

 

詩. 大興洞(대흥동) 花潭 徐敬德(화담 서경덕)

 

紅樹暎山屛(홍수영산병) 산병풍을 비추는 붉은단풍

碧溪瀉潭鏡(벽계사담경) 연못에 솓아지는 파란시내.

行吟玉界中(행음옥계중) 옥같은 세계 거닐며 읊조리니

陡覺心淸淨(두각심청정) 문득 마음이 맑아지고.

<檀紀3831年朝鮮9代成宗20年己酉1489~1546檀紀3879年朝鮮13代明宗1年丙午)

 

◆ 처사로 지낸 일생

 

 

 

 

당시에는 중종이 상당한 개혁의지를 보였음에도 사화의 후유증으로 뜻있는 선비들이 선뜻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중종은 덕이 높은 선비들을 불러내기 위해 추천을 통해 벼슬을 주는 현량과를 만들었고, 서경덕은 31세 때 120명의 선비 가운데 첫째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 43세 때 어머님의 청을 못 이겨 과거시험을 보지만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을 뿐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툼이 생기면 관청보다 서경덕에게 옳고 그름의 판정을 구하였다.

 

 

유학은 본래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이를 통해 도덕적 인간을 완성해가는 학문이다. 하지만 서경덕은 도덕보다 자연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서경덕의 독특한 학문 경향은 어린 시절 일화에 잘 나타나 있다. 어느 날은 나물을 뜯으러 나갔다가 나무 꼭대기에 사는 종달새의 움직임에 정신이 팔려서 빈 바구니로 들어온 적도 있었다. 종달새는 왜 쉴 새 없이 제 집을 들락거리는 것일까? 종달새의 날갯짓에는 어떤 원칙이 들어 있을까? 어째서 높은 나무 위에 집을 짓는 것이며 왜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대는 것일까?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해를 보냈을 것이다.

 

 

18세 때는 『대학』을 읽다가 사물에 나아가 그 사물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내 앎을 완성한다는 대목을 보고 ‘사물에 대한 탐구를 먼저 하지 않으면 독서는 해서 무엇하는가’라고 하였다. 그 뒤 매일 책상 위에 사물 이름을 하나씩 써 붙여가며 그 이치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가 바로 서경덕의 기(氣) 철학이었다. 그는 특히 「귀신사생론(鬼神死生論)」에서 이러한 생각은 예전 성인들도 밝히지 못한 것이므로 이 글을 잘 보존해서 훗날 동방에도 큰 학자가 있었음을 알리라고 하였다.

 

 

서경덕은 58세의 나이로 죽었다. 죽음에 이른 서경덕에게 둘러앉은 제자들이 물었다. “선생님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요?” 그러자 서경덕은 “죽고 사는 이치를 안지가 오래라서 내 마음이 편안하다.”고 답하였다. 죽음 앞에서도 서경덕의 마음을 편하게 했던 그 깨달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람은 氣이다.

 

서경덕 철학의 중심은 기이다. 기는 번역할 서양 용어가 없을 정도로 동양적 사유를 잘 담고 있는 개념이다.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 발음 그대로 Chi 또는 Ki라고 쓴다. 기는 리와 함께 성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쓰였다. 리는 사물의 원리인 동시에 도덕 법칙이고, 기는 구체적인 사물을 이루는 바탕이다. 기가 구체화되면 기질(氣質)로, 그리고 다시 형기(形氣)로 드러나는 것이다. 기는 고대부터 만물의 변화를 설명하는 개념이었다. 우리말에 남아 있는 기와 관련된 단어들을 보면 기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빈 공간을 공기라고 부른다. ‘공기(空氣)’는 빈 것 같지만 기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사실 모든 사물은 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 몸속에도 혈기가 흐른다. 또한 우리는 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추울 때는 한기를 느끼고 더우면 열기를 느낀다. 심지어 생기를 느끼기도 하고 살기를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기는 쉼 없이 움직이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기가 막혀 죽겠다’는 말은 사실이다. 또한 가수나 탤런트가 인기를 누리다가 인기가 떨어지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기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아울러 모든 만물은 기를 삶의 동력으로 삼는다. 기를 쓰고 일하고 기를 쓰고 말한다. 더구나 기는 물질만이 아니라 기분, 노기(怒氣), 오기(傲氣)처럼 감정과도 관련이 있고, 호연지기(浩然之氣)처럼 도덕적인 개념까지 포괄한다.

 

바람은 왜 생기는가

서경덕은 재상 김안국이 부채를 보내오자 「김재상이 부채를 선물함에 감사하며」라는 글을 썼다. 그 앞머리는 ‘부채를 흔들면 바람이 생기는데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가? 부채에서 나온다면 부채 속에 언제부터 바람이 있었는가? 부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로 시작된다. 서경덕은 우주가 기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부채질이란 가득 메운 기를 밀어내는 행동이며, 그 순간 밀어낸 만큼의 빈 공간이 생긴다. 하지만 온 세상은 항상 기로 가득 차 있으며 어느 한 곳도 빈곳이 없기 때문에 옆에 있던 기가 그 자리로 몰려들게 되며 바로 그것이 바람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서경덕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과학적인 설명인 셈이다.

 

서경덕은 모든 것을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았다. 종달새가 날갯짓 하고, 바람이 불고, 눈 비가 내리고, 꽃이 피고, 나이가 드는 자연 변화부터 기뻐하고, 슬퍼하고, 성 내는 마음 씀까지 어느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은 없으며, 그 변화가 모두 기의 변화인 것이다.

 

서경덕은 기란 생겨나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촛불을 예로 들면 촛불을 껐을 때 냄새와 연기가 나고 조금 지나면 연기도 냄새도 없어지는 것 같지만, 기의 본 모습으로 돌아 간 것일 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질량불변의 법칙을 보는 듯 하다. 서경덕은 태허 상태에서 기가 모이면 사물이 되고, 사물이 소멸하여 기가 흩어지면 다시 태허 상태로 돌아간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죽고 사는 이치를 안지가 오래 라서 마음이 편안하다.”고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경덕은 이러한 생각을 기자이(機自爾)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기자이’란 서경덕의 독창적인 용어로서 바람 불 때가 되면 바람 불고 비 올 때가 되면 비 오는 것처럼, 어떤 계기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현상을 설명한 용어이다.

 

서경덕의 여러 호 가운데 그의 철학을 잘 드러내는 호는 복재(復齋)였다. ‘복’은 주역의 복괘를 뜻하는데, 서경덕이 지은 글 가운데에도 ‘복괘에서 천지자연의 중심을 본다’는 글이 있다. ‘복’은 1년 가운데 동지에 해당하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가리킨다.

 

화담철학의 역사적 역할

오늘날 개념과는 다르지만 서경덕은 뛰어난 물리학자였다. 그는 도덕 원리를 추구하는 성리학자들과 달리 자연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면서, 기의 변화로 설명하려 하였다. 리철학은 모든 현상을 마음 속 도덕문제로 설명하려 하였다. 이런 입장에서는 사회문제도 그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기보다 인간의 도덕적 타락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리철학에 관념지향적 성격이 많다면 기를 중시한 화담의 철학은 물질지향적 측면을 띠게 된다. 그래서 북녘 학자들은 서경덕을 15-6세기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유물론 철학자라고 하였다. 하지만 서경덕의 기 개념에 순수한 유물론 같은 주관적인 면이 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역사적 상황과 연결하여 보면 리의 도덕성을 강조함으로써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 역할을 했던 철학과 달리 기를 바탕으로 변화를 중시한 철학의 토대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훗날 실학자들이 사회변화를 추구하면서 기 문제를 중시한 것과도 많은 연관이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