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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詩文[중국시문]

고방[7203]유우석(劉禹錫)-秋詞[추사]

작성자古方|작성시간26.06.17|조회수24 목록 댓글 0

고방[7203]유우석(劉禹錫)-秋詞[추사]

 

秋詞(추사)

 중당(中唐)시인 유우석(劉禹錫 772∼842)

「가을 노래(秋詞)」

自古逢秋悲寂廖 (자고봉추비적요)

我言秋日勝春朝  (아언추일승춘조)

晴空一鶴排雲上 (청공일학배운상)

便引詩情到碧霄 (변인시정도벽소)

예로부터 가을이 되면 적막하고 쓸쓸하다.

슬퍼지지만, 난 가을이 봄보다 낫다 말하리.

맑은 하늘 학 하나가 구름 뚫고 날아오르니,

내 시심도 곁따라 창공으로 오르네.

 

시인이 봄날과의 대비를 통해 가을을 예찬하는데

분위기가 꽤 호쾌하고 낙관적이다. 

 

위로 날아오른다는 표현이 시정(詩情)을 돋운다

劉禹錫 (유우석 772~842)

이름: 刘禹锡(Liú Yǔxī), 자 몽득(夢得)

국적: 중국 당(唐)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주요저서: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외집(外集)》

 

중국 중당(中唐)의 시인.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두우(杜佑)의 막료가 되었으나 정치 개혁 실패로 낭주사마(朗州司馬), 연주자사(連州刺使)등으로 전직되고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에는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외집(外集)》등이 있다.

자 몽득(夢得). 허베이성[河北省]출신. 일설에는 장쑤성[江蘇省] 출신이라고도 한다.

795년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여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두우(杜佑)의 막료가 되었다.

얼마 후 중앙의 감찰어사로 영전되어 왕숙문(王叔文) ·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정치 개혁을 기도하였으나 805년 왕숙문은 실각되고, 우석은 낭주사마(朗州司馬)로 좌천되었다.

10년 후 다시 중앙으로 소환되었으나 그 때 지은 시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 다시 연주자사(連州刺使)로 전직되고 그 후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역임하면서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최후로 생애를 마쳤다.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농민의 생활 감정을 노래한 《죽지사(竹枝詞)》를 펴냈으며, 만년에는 백낙천(白樂天)과 교유하면서 시문(詩文)의 도에 정진하였다.

시문집으로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30권) 《외집(外集)》(10권)이 있다.

 

[출처] 누실명(陋室銘)-유우석( 劉禹錫)/山不在高 有僊則名(산부재고 유선즉명)산이 높지 않더라도 그 안에 신선이 있으면 명산일 것이요 水不在深 有龍則靈(수부재심 유룡즉령)물이 깊지 않더라|작성자 kbs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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