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에 앉아
김도성
가끔은
시간이 오래 비워 둔 방 하나를 연다
먼지 쌓인 창문 너머로
산은 옛 이름을 부르고
바다는 접어 둔 파도를 펼쳐
젊은 날의 발자국을 씻어 낸다
강물은 흘러간 계절을 물고 와
가슴 한구석에 조용히 놓아두고
들녘의 바람은
잊은 줄 알았던 풀씨 하나를 흔든다
골목길 모퉁이에서는
해 질 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낡은 연처럼 하늘에 걸려 있다
이름을 부르지 못한 첫사랑은
저녁노을 끝에 앉아
아직도 붉게 익어 가는데
세월은 말없이 지나가고
문득
곁에 두고 아끼던 작은 물건 하나
누군가 슬며시 치워 간 자리처럼
마음 한쪽이 비어 있다
허망함이란
잃어버린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소중했던 것들이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026.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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