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김도성
몸은 떠나도
말은 남아
허공에 씨앗을 뿌린다
책이 되고
시가 되고
이름 석 자가 되어
낯선 가슴의 텃밭에서
꽃으로 웃는다
2026. 6. 14.
----------------------------------------------------------
**시평 : 「흔적」 / 김도성**/편집부
이 시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언어의 영속성을 짧고 담백한 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삶의 본질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한 편의 명상처럼 독자의 마음에 여운을 남깁니다.
첫 행의
> 몸은 떠나도
는 인간 존재의 필연적인 소멸을 인정하는 구절입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시는 시작됩니다. 그러나 곧이어
> 말은 남아
라고 전환함으로써 육체의 소멸과 정신의 지속을 대비시킵니다. 여기서 '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오며 남긴 생각과 사랑, 삶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특히
> 허공에 씨앗을 뿌린다
는 이 시의 핵심 은유입니다. 허공은 실체 없는 공간이지만, 그곳에 뿌려진 씨앗은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싹을 틔울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이는 문학이 가진 전파력과 생명력을 아름답게 표현한 대목입니다.
중간 연의
> 책이 되고
> 시가 되고
> 이름 석 자가 되어
는 인간이 남기는 흔적의 형태를 구체화합니다. 책과 시는 창작자의 정신이 담긴 그릇이며, '이름 석 자'는 존재의 마지막 표식입니다. 짧은 나열 속에서도 한 인간의 삶 전체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의
> 낯선 가슴의 텃밭에서
> 꽃으로 웃는다
는 매우 따뜻한 결말입니다. 자신의 말과 생각이 알지 못하는 타인의 마음에서 꽃으로 피어난다는 상상은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역할을 보여줍니다. '웃는다'라는 의인화는 흔적이 단순히 남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존재로 계속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은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슬픔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 이후에도 이어지는 정신의 계승과 문학의 힘을 조용히 노래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언어와 명료한 이미지가 장점이며, 특히 고령의 시인이 삶을 돌아보며 얻은 통찰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한마디로 이 시는
**"사람은 사라져도 그가 남긴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서 꽃이 된다"**
라는 메시지를 맑고 따뜻하게 전하는 서정시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집의 권두시나 작가의 문학관을 드러내는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