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그는 누구인가? 필자는 가끔 손봉호 박사를 떠올린다. 자그마한 키에 왜소한 몸매 어쩌면 삭개오에 비유될 법하다. 그러나 그의 신앙과 신학은 철저하게 개혁주의적이었다. 필자가 총신대학원에 다녔던 1970년대 때 손봉호 박사는 총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셨다. 그분의 정직성과 성실성과 경건성에 대해서는 그때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분이 가르치던 시절에는 출석을 대리 출석 체크하는 학생도 없었고, 시험 시간에 감독관 없을지라도 한 사람도 훔쳐보는 학생이 없었다고 학생들이 자랑했다.
그때부터 필자는 손봉호 박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분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교수이시면서 영동교회에서 설교자로 봉사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거쳐서 화란 자유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것 등 그분은 설교자의 자격자로서 손색이 없었지만, 그러한 지식적 자격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은 그분의 실천적이 삶이었다. 그는 항상 겸손했지만 냉철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하여 분명한 선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실천하면서 살아왔다.
그에게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겉보기에 흐물흐물한 고물 비슷한 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덕성여대 총장으로 초빙을 받고 부임했을 때 학교 측에서 총장 대우로 고급 대형차를 구입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본래 사용하던 자동차를 그대로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유별나서가 아니라 학교의 공금을 필요한 곳에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만일 필자에게 그런 환경이 온다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정당한 위치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봉호 박사는 크리스천의 실천적인 삶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나 바울 사도의 검소하고 겸손하며 온유하게 섬기는 삶을 말이다.
필자는 실력에 있어서 손봉호 박사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을 만큼 비천한 사람이요, 인격 또한 그러하고, 실천적인 삶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더 흠모하고 존경하는지 모른다. 닮고 싶은 것이리라. 흉내라도 내고 싶은 것이리라. 따라갈 수 없는 삶인 줄 알면서도 따라가고 싶은 선한 욕망에서 말이다.
2.8%의 소금물이 그 넓은 오대양을 썩지 않게 보존한다는 말이 있다. 손봉호 박사와 같은 실천적인 크리스천 2.8%만 있다면 한국 사회는 변화시킬 수 있고 썩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1200만 명이나 된다고 자랑하기엔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교회당 크고 교인 숫자 많다고 자랑하는 것은 어린 동자(童子) 앞에서 키 재기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서 작은 예수님, 작은 바울님은 고사하고 작은 손봉호님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손봉호 박사 닮은 실천적인 크리스천이 많이 태어나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분을 실천적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분에게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필자의 이런 글마저 그분에게는 뉘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함에도 그분을 소개하면서 따라가고 싶은 것은 대표적인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덕여대에 계셨던 손봉호 총장이 동덕여대에서 은퇴하시며 교수 시절 가장 아쉬운 점이 ”정직성과 공정성을 학생들에게 지도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철학, 윤리, 도덕 등 교육을 통해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인성 교육이 부재했고 이미 혈연, 학연, 지역 간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구조, 환경에서 자란 대학생에게 정직성과 공정성이 비집고 들어가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과제는 조기 인성 교육이다. 어려서부터 예의범절을 배울 때 커서도 실행하게 된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알았다는 것을 칭찬한 것은 성년이 된 그의 삶이 올바르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부패한 도덕성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뿐인 것이다. 손봉호, 그분은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라면 우리 또한 그분을 따름이 옳을 것이다.
| 이석봉 / 수원신학교 성경원어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