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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와 우리 영혼의 실상에 대하여

작성자뭉게구름|작성시간22.11.19|조회수8 목록 댓글 0

순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예언을 받은 사람의 대부분은 기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해지며 걱정 근심이 앞서게 됩니다.

이것은 그만큼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이 마음에 부담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해외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다가 핍박과 고문과 상상도 못 할 고통 속에서

순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을 우리는 여러 영상매체를 통하여 접하고 있습니다.

 

정말 마지막 때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우리의 믿음을 지켜나가기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순교란 우리 마음에 부담을 주며

무섭고 떨리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죄수들은 재판정에 서게 되면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극도의 긴장감에 빠집니다. 재판장은 자기의 소신에 따라 사형이나 무기징역 혹은

가벼운 형벌이나 무죄로 그 죄수에게 형량을 내리는데 오직 판사의 판결로

자기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에 재판관은 죄수들에게는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입니다.

 

그러면 이 순교한다는 것과 재판정에 선 죄수보다 더욱 우리 가슴을 조이며 긴장하며

마음이 두려움으로 떨리는 일들이 또 있을까요?

분명 그보다 훨씬 더 두렵고 떨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도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면 누구든 예외 없이

한번은 통과해야 하며 맞닥뜨려야 할 무섭고 두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있으며 우리의 장래 일도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며

그 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생명에 관한 결정과 심판권을 쥐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나는 너를 안다 혹은 모른다 또는

너를 인정한다 인정할 수 없다는 말에 따라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결정됩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오직 결정권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결정이 마지막 때가 아닌 현재 지금 상태에도

우리에게 내려지고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노력을 해왔는데도

아직도 하나님이  나를 모르신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며 떨리는 일입니까.

내가 성경을 너무나 잘 알고 기도도 많이 하고 교회에서 충성하며 헌신했어도

하나님은 나를 알지 못한다고 얼마든지 하실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외우다시피 했고 누구보다 기도도 많이 하고 믿음생활은 열정적이었으며

우리들의 믿음보다 그들은 훨씬 더 헌신적이고 확신이 있고 실천하는 행함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외면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현재도

여전히 우리를 모르며 인정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설마 나만큼은 인정을 해주시겠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은 아마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현재도 또 최종적으로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며 인정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으로 우리 영혼의 소망은 끝이 나며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이 한마디 말보다 더 무섭고 떨리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본체이시지만 우리 영혼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진노하시고

징계를 가하시는데 그것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본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지만 만약 우리가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세상 헛된 길로만 가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멸망의 길에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사랑의 회초리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는데

어쩔 수 없이 징계를 내리셔서 우리를 바르게 이끄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대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크게 네 가지 경우가 있는데 주님을 온전히 인격적으로 또 영으로

실질적으로 만나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진실로 알기에 오직 영혼구원을 위해 모든 삶의 목적을

거기에 집중하는 경우로서 이것은 비유하자면 극심한 파도에 휩쓸렸지만,

 

무사히 헤엄쳐 나와 같이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며 죽음 직전에 처한 많은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열심히 그 목숨을 살려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자이며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무한한 상급과

면류관을 쓰는 영광된 자리를 보장받습니다.

 

또 한 부류는 본인은 하나님을 일대일로 영으로 만나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자이지만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만나지 못한

수많은 영혼을 외면하고 무관심하며 나만 천국 가면 된다는 매우 이기적인 경우인데

사실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만난 자가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같이 파도에 휩쓸렸다가 자신만 극적으로 뭍으로 나와서 살아났지만

아직 물에 빠져 헤쳐나오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수수방관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영혼구원에 소홀하고 무관심한 이런 경우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며

거듭난 자로서 우리가 혹시라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지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혼구원에 모두가 앞장서야 합니다.

 

또 한 부류는 본인도 파도에 휩쓸려 죽어가고 있으면서 같이 빠진 주위 동료들을 구하겠다고

애쓰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는데 이것을 교회에 비교한다면 본인도 구원받지 못했는데

주위 세상 사람들을 전도하고 구원하고자 사방팔방으로 열심히 찾아다니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지금 현재 교회의 신자들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할 수가 있으며 하나님이 보실 때는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파하며 답답해하실 것입니다.

 

또 한 부류는 성도라 하면서도 하나님을 영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지도 못했고

또 주위의 불신자들에게도 그 영혼구원에 관해서는 별 관심도 없는 종교적이고 명목상의 신자입니다.

 

비유해 본다면 본인도 물에 빠져 익사 직전이나 본인의 생명을 위해 발버둥 치거나 애착이 부족하여

쉽게 목숨을 포기하며 같이 빠진 동료의 생사에도 별 관심이 없는 경우로서

아마 현대교회의 적지 않은 신자들이 여기에 해당할 수가 있으며 마지막 추수 때에

쭉정이로 분류되어 버려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첫 번째와 같은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교인 중에는 대다수가 율법주의자가 아닌데도 행위구원론자가 이외로 많습니다.

교회에서 충성 헌신하고 세상에서는 이웃을 돕고 봉사하고 전도함으로써 구원받는다고

생각이 굳혀진 성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또 그 행위로써 이 땅에서 복을 받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성경말씀이 기준인데 성경 어디에도 이러한 행위들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므로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수많은 성도를 보면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를 받아

주님과 연합하여 구원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옛사람의 품성에서 새롭게 거듭난 사람의 품성으로 변화되지도 않았으며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여전히 옛 자아와 성품과 세상 영이 주는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옛 자아가 깨어져서 주님의 품성으로 변하고 닮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영으로 만났지만,

이들 중에도 여전히 옛 성품과 자아가 깨지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힘들게 만나고도

마음 중심에 변화가 안 일어났다면 이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다고 봅니다.

 

우리 영혼이 깨어서 주님을 갈망하며 바라보며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힘써 노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주님을 찾으며 그 뜻을 구할 때

주님께서는 응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행위로써 주님께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는 행위보다는 우리의 마음 중심과 동기를 더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갖고 열심히 충성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이것은 우리가 교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본분에 불과하며 이러한 행위들을 구원에 직결시켜도 안 됩니다.

 

지금의 교회는 많은 성도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구원의 확신에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 믿음이어야 하는데 본인의 확신에 찬 자기만의 믿음으로

주님을 머리와 입술로 외치고 시인하므로 또 지식으로 주님을 알고 깨닫고 확신하므로

구원받았다고 선포를 하는 것이 지금 교회의 실정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우리의 입술로 선포하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성도들에게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은 성도들 각 개인의 변화에 그 중점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변화를 체험한 지도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에게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지만

성도들 개인에게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교회는 많지 않다는데,

이 시대 교회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교회의 잘못된 점을 보고 계시며 세상을 향한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부터도 세상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난날의 잘못된 믿음과 삶에 대해서 심각한 회개의 기도를

매일같이 드려야 할 죄인임을 이 시간도 고백할 뿐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근본 마음을 돌이키는 철저한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하며 영혼에 변화를 받아

온전히 주님만을 따르기를 늘 주님께 간절히 구하며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하던 욕심과 교만한 마음에서 나의 자아와 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거룩한 품성으로 바뀌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세상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의의 병기로 탈바꿈하게 되며

주님의 강한 용사로 이 땅에서 악한 마귀의 궤계를 파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마지막을 향해 급박하게 달려가고 있는

지금 시대에 주님은 이러한 준비된 군사를 들어 쓰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지금은 하나님의 외치시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고요히 한밤중 같이 잠들어 있습니다.

저부터도 너무나 나약하고 힘은 부족하지만, 우리를 불러 깨우시는 주님의 음성과 명령을 듣고

깊은 밤중에 깨어 일어나 싸움터로 향하는 준비된 군사로 쓰임 받기를 오늘도 원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쓰시기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저희입니다.

이러한 불쌍하고 연약한 저희에게 담대한 마음과 의지와 지혜와 권능을 부어주시옵소서.

세상을 바꿀만한 새 힘과 온갖 능력이 임하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게 하시며 이 마지막 때

죽어가는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게 하소서.

주님 우리를 쓰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의 자비하심과 권능으로 우리를 강력한 군사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모든 것 주님께 의탁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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