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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 있느냐

작성자둥근달|작성시간23.04.30|조회수5 목록 댓글 0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你在哪里)

창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  창 3장은 뱀이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하고 하와는 아담에게도 먹게 하여 죄를 범하게 한다.

선악과를 따 먹는 게 무슨 죄냐 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작든 크든 지켜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하나님은 그 성을 떠나는 롯의 가족에게 뒤돌아 보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므로 소금기둥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어겨서는 안된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원죄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므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자신들의 몸을 가렸다.

죄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일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죄를 짓는 자는 숨을 곳을 찾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므로 죄에 빠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은 10절에 두려워 숨었다고 말한다.

죄란?

요일 3: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롬 14:23"~~ 믿음으로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불법을 행하는 것이 죄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것이 불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부르실 때에 지금 우리는 떳떳하게 저 여기 있어요 할 수 있는가.

 

2)  창 4:9절은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동생 아벨을 찾으시는 장면이다.

가인은 고의로 동생 아벨을 죽였다.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돌아와도 문제인데 뻔뻔하게 하나님의 물음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따진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어디에 있냐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아온다.

돌아온 둘째를 기쁘게 맞이한 건 아버지이다.

첫째는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해 했고, 아버지는 그런 첫째를 달랜다.

자신이 데리려 가지 못했다면 돌아온 것만으로 아버지와 같이 기뻐해야 하지 않았을까.

첫째는 무엇이 더 크게 보였나 생각해 본다.

 

3)  왕하 5:25"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나병환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온 소녀의 말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간다.

엘리사는 그를 맞이하지 않고 사자를 보내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한다.

나아만이 후에 그의 말을 순종하고 나병이 나았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예물을 드리려고 하나 엘리사는 거절한다.

나아만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나아만을 좇아가 예물 중 일부를 받아 몰래 챙긴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디서 오느냐고 묻고 게하시는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다고 거짓말을 한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나아만의 예물을 받고 26절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라고 그를 책망하고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시에게뿐만 아니라 그의 자손에게도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고 저주를 내린다.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는 문자적으로 '나가다', '느껴지다'의 뜻.

풀이하면 '내 영혼이 너화 함께 있었던 것을 느끼지 못했느냐'란 말이다.

돌아온 탕자에서 첫째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게하시는 엘리사를 옆에서 보필하던 자이다.

그는 엘리사에게서 배워야 할 부분을 배우지 못하고 욕심에 사로잡혀 엘리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

엘리사가 그에게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을 때에는 회개의 기회인데 그는 거짓말을 하므로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4)  말 2:17"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公義的 神在哪里呢)."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예언서이다.

말라기을 끝으로 예수님의 탄생까지 400년이라는 긴 침묵의 시대가 있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은 임하지 않고 고달픈 생활만 계속되자 그들은 점점 나태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들에게 닥치는 고난의 원인이 바로 자신들의 죄악 때문임을 말라기는 밝히고 있다.

껍데기뿐인 예배 형식과 타락한 결혼관을 지적하고 있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자들이 오히려 주를 멸시하고 괴롭히는 것을 지적하는 장면이다.

자신을 뒤돌아 보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쉽게 배반하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자신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은 한 번도 틀리신 적이 없다.

 

5)  요 14:4-5"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하나님과의 교제는 끊어지고 사람의 힘으로는 그 끊어진 길을 이울 수가 없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그러므로 구원의 구속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이 생활하며 보고 듣고 배웠으나 깨닫지 못하였지만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실 것임을(26절) 말씀하고 계시다.

성도 또한 믿음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알게 하신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하나님께서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실 때에 여기 있다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출처:성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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