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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지 믿음의 종류 ​

작성자둥근달|작성시간23.09.24|조회수9 목록 댓글 0

네가지 믿음의 종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듣고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믿음'일 것이다. 여기서는 믿음의 종류를 살펴봄으로 더욱 깊은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첫째 역사적 믿음이다.

역사적 믿음은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 상태이다. 역사적 믿음은 단지 그 사건이 실제 로 발생한 사실이라고 여기는 믿음이다. 예수 님 당시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을 목격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은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믿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자신의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깨닫고 거기에 맞게 삶의 방식과 목적까지 변해야 참된 믿음이 아닌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영적으로, 그리고 마음과 생활속에서 살아 역사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6장을 보면 아그립바는 구약의 예 언자가 실재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예언자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언자의 존재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자기와 자기 영혼과 무슨 관계인지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받아드리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의 믿음은 역사적 믿음일 뿐이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마술사 시몬은 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고' 세례를 받았고(행8:13) 세례를 받은 그는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를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성령을 받게 하는 권능을 돈으로 사려고 하다가 베드로에게 큰 책망을 받고 말았다. 그의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이적적 믿음이다

이적적 믿음이란 이적과 관련된 믿음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역자들에게 자연적 능력을 넘어서서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러면 그 사역자는 본인이 이적을 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능동적인 경우의 이적적 믿음이다.

마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이러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이런 제자들을 '믿음이 작다'라고 평가하셨다. 그러나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명령하셨다. 이때 거론된 '믿음은 예수님이 누군가의 병을 낫게 하는 이적을 행하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의미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적적 믿 음이다. 그런데 마르다의 이 이적적 믿음은 앞으로 살펴볼 '구원적 믿음'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마르다는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을 믿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도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적적 믿음이 진정한 구원적 믿음과 분리되지 않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 둘이 분리되는 경우도 있다. 누가복음 17장에 등장하는 나병환자 열 명을 생각 해보자. 예수님을 향해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친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적적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아홉 명은 병이 나은 후에 예수님 을 떠나버렸다.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다. 예수님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 이 한 사람만 이적적 믿음이 구원적 믿음으로 연결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역 사적 믿음은 영적이며 삶속에서 생명력 있게 역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일시적 믿음이다.

일시적인 믿음이란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를 말한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오래가지 못해시 들어버린다. 일시적 믿음이란 뿌리가 얕은 나무의 잎사귀가 결국은 시드는 것처럼 한동안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시드는 믿음이다.

일시적 믿음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 는 비유 중 돌밭에 뿌려진 씨의 사례와 같다. (마13:21) 돌밭에 뿌려진 씨는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린다. 그와 같이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잠시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 나면 곧 넘어지는 자들이다.

우리 주변에도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는 신실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신실함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신앙이 위선적이라 고만은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 자신조차도 자신이 진실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일깨다.

이것은 중생한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종교적 확신 일 것이다.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발생하면 곧 믿음을 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시적인 믿음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속는다. 왜냐하면 진정한 구원적 믿음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 다. 비록 허구적이기는 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는 모습, 신앙생활을 예쁘게 하는 것을 보고 의심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심령의 깊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말라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앙의 기초가 인간적 감정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교회의 직분이나 그것도 중직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직분자를 세울 때 그 사람의 신앙을 철저히 검증해보아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신앙 양심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일시적 믿음과 참된 구원적 믿음을 분별하는 신중함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넷째 진정한 구원적 믿음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적 믿음, 이적적 믿음,

일시적 믿음은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진정한 구원적 믿음은 우리를 참 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중생한 사람에게 있는 믿음으로서, 진정한 구원적 믿음은 하나님이 중생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중생한 자에게 믿음의 씨앗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령을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은 항상 일정한 대상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세상 사람들을 이것을 종교심이라고도 한다.(전3:11)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속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중생의 믿음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경험을 쌓고 교육을 받으면서 사람의 특성을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내듯이 마찬가지로 믿음의 씨앗을 품은 중생한 사람도 처음에는 신자의 특성이 잘 들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인하여 믿음이 분명해지며 믿어진다. 악을 행하면 마음이 아프고 싫고, 말씀을 따라 살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적인 믿음인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출처]

네가지 믿음의 종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듣고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믿음'일 것이다. 여기서는 믿음의 종류를 살펴봄으로 더욱 깊은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첫째 역사적 믿음이다.

역사적 믿음은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 상태이다. 역사적 믿음은 단지 그 사건이 실제 로 발생한 사실이라고 여기는 믿음이다. 예수 님 당시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을 목격했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은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믿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자신의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깨닫고 거기에 맞게 삶의 방식과 목적까지 변해야 참된 믿음이 아닌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영적으로, 그리고 마음과 생활속에서 살아 역사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26장을 보면 아그립바는 구약의 예 언자가 실재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예언자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예언자의 존재와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자기와 자기 영혼과 무슨 관계인지 관심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받아드리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았다. 그의 믿음은 역사적 믿음일 뿐이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마술사 시몬은 빌립의 전도를 받아 믿고' 세례를 받았고(행8:13) 세례를 받은 그는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를 통해 나타나는 표적과 능력을 보았다.

그런데 그는 성령을 받게 하는 권능을 돈으로 사려고 하다가 베드로에게 큰 책망을 받고 말았다. 그의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 인간적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이적적 믿음이다

이적적 믿음이란 이적과 관련된 믿음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사역자들에게 자연적 능력을 넘어서서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그러면 그 사역자는 본인이 이적을 행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능동적인 경우의 이적적 믿음이다.

마태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이러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이런 제자들을 '믿음이 작다'라고 평가하셨다. 그러나 마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8:10)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명령하셨다. 이때 거론된 '믿음은 예수님이 누군가의 병을 낫게 하는 이적을 행하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의미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이적적 믿 음이다. 그런데 마르다의 이 이적적 믿음은 앞으로 살펴볼 '구원적 믿음'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마르다는 예수님이 부활과 생명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을 믿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도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적적 믿음이 진정한 구원적 믿음과 분리되지 않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 둘이 분리되는 경우도 있다. 누가복음 17장에 등장하는 나병환자 열 명을 생각 해보자. 예수님을 향해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친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자기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적적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아홉 명은 병이 나은 후에 예수님 을 떠나버렸다. 오직 한 사람만이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다. 예수님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 이 한 사람만 이적적 믿음이 구원적 믿음으로 연결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역 사적 믿음은 영적이며 삶속에서 생명력 있게 역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일시적 믿음이다.

일시적인 믿음이란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를 말한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오래가지 못해시 들어버린다. 일시적 믿음이란 뿌리가 얕은 나무의 잎사귀가 결국은 시드는 것처럼 한동안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시드는 믿음이다.

일시적 믿음이란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 는 비유 중 돌밭에 뿌려진 씨의 사례와 같다. (마13:21) 돌밭에 뿌려진 씨는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버린다. 그와 같이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서 잠시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 나면 곧 넘어지는 자들이다.

우리 주변에도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는 신실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신실함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신앙이 위선적이라 고만은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 자신조차도 자신이 진실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일깨다.

이것은 중생한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종교적 확신 일 것이다.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발생하면 곧 믿음을 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시적인 믿음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속는다. 왜냐하면 진정한 구원적 믿음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 다. 비록 허구적이기는 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싹이 나는 모습, 신앙생활을 예쁘게 하는 것을 보고 의심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심령의 깊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말라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앙의 기초가 인간적 감정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람이 교회의 직분이나 그것도 중직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직분자를 세울 때 그 사람의 신앙을 철저히 검증해보아야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신앙 양심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일시적 믿음과 참된 구원적 믿음을 분별하는 신중함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넷째 진정한 구원적 믿음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적 믿음, 이적적 믿음,

일시적 믿음은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진정한 구원적 믿음은 우리를 참 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중생한 사람에게 있는 믿음으로서, 진정한 구원적 믿음은 하나님이 중생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중생한 자에게 믿음의 씨앗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성령을 부어 주시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은 항상 일정한 대상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세상 사람들을 이것을 종교심이라고도 한다.(전3:11)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 속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니 이것이 바로 중생의 믿음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경험을 쌓고 교육을 받으면서 사람의 특성을 점점 더 강하게 드러내듯이 마찬가지로 믿음의 씨앗을 품은 중생한 사람도 처음에는 신자의 특성이 잘 들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인하여 믿음이 분명해지며 믿어진다. 악을 행하면 마음이 아프고 싫고, 말씀을 따라 살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적인 믿음인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출처] 네가지 믿음의 종류 ​/작성자 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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