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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믿음을 나타내는 것

작성자도산|작성시간24.08.17|조회수17 목록 댓글 0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나라에서 구원 받은 자이고 세상에서 구원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를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 나라를 살지 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지 못하는 자들은 자기의 믿음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분명히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말했습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아멘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내가 정말로 예수를 믿는다면 내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세상나라에서 임금인 마귀의 다스림 속에서 힘들어하고 괴로워 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을 의심합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당신은 오늘 밤에 죽는다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네 갑니다.”라고 확신 있게 대답하는 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바로 믿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아는 데서부터 시작 됩니다. 알지 못하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이고 정보입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0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아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라고 하였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바로 정보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정보가 내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어야 하고 보아야 한다 듣고 보는 것은 그것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눈과 귀를 통하여 들어온 정보가 내 마음에 쌓일 때 우리는 깨달아 알게 되고 그 깨달아 아는 정보를 통하여 믿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 산다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고 내가 아는 만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이 성장한다고 말합니다. 보고 들음으로 알게 되는데 온전한 믿음 생활을 하려면 온전한 것을 듣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온전한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여준다는 것은 형상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형상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모형이고 다른 하나는 실체입니다. 코끼리의 형상을 보여주면 코끼리 형상을 보고 코끼리를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예수님의 실체와 모양을 들려주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알게 되고 그 앎에 대하여 확신이 생깁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실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믿음은 실체가 없지만 모양은 있습니다. 그 모양이 내 삶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 말씀을 읽고 사람들에게서 듣고 사람들로부터 나타나는 예수님을 봄으로 알게 되고 믿음이 생겨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적인 것들은 형상이나 모양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 안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도 영적인 것이므로 형상이 없어서 보여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지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아멘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육체만 지으신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영을 지어서 보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흙으로 지어진 육체 안에 영을 지어서 불어넣어 주시니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람 속에 있는 영을 산 영이라고 말합니다. 산 영은 그저 살아있는 영입니다. 그러나 산 영은 영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산 영이 살려면 살려주는 영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아멘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개역 성경에서는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아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고 새번역 성경에서는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해서 보면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은 내 안에 있는 영에 생명을 주어 살게 하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영에 생명을 주어 영을 살게 하는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내 안에 영을 살려주는 생명을 주시는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영에 하나님의 생명을 주어서 그 생명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생명을 주어서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살아가는 것이 바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온전히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생명이신 예수님을 나타내고 살면 예수를 믿고 사는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복을 다 누리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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