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예언서)예레미야

예레미야 23:9-22

작성자오직은혜|작성시간26.06.09|조회수27 목록 댓글 0

예레미야 23:9-22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예전에 혼자 자취할 때 작은 미니 냉장고를 쓰다가 고장이 나서 큰 냉장고를 하나 샀습니다. 냉장고가 커지니까 괜히 기분이 좋아서 이것저것 장도 많이 봤습니다. 고기, 음료수, 과일, 반찬 등 냉장고 안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하고 와서 맛있는 거 해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안에 음식들이 거의 다 상해 있었습니다. 설치 기사님이 30분 뒤에 전원 연결하라고 했는데, 그걸 깜빡한 것입니다. 겉은 멀쩡한 냉장고였습니다. 크고, 깨끗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전기가 연결되지 않으니까 안에 있는 것들은 결국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신앙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알고, 사역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 안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없이도 신앙의 모양은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의 무서움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정말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 없이 신앙의 모습만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없이 말하는 신앙 (9-15)

(9)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

예레미야는 지금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백성들의 죄악을 동시에 보면서 마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상한다’는 말은 단순히 속상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이 부서지고 산산이 무너진 상태를 말합니다. 또 ‘내 모든 뼈가 떨린다’는 것은 존재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향해 ‘술 취한 사람 같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실제로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무겁게 다가왔고,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왜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았을까요?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당시 선지자와 제사장은 하나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사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14절 말씀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을 행하는 자의 손을 강하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과 다름이 없고 그 주민은 고모라와 다름이 없느니라

이 말은 죄를 막지 않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계속하도록 만들었다는 뜻입니다.회개해야 할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했고, 돌아와야 할 사람에게 평안을 말했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흔들어 깨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의 기분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보다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더 자세히는 그들은 하나님을 말했지만 하나님과 함께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속 선지자와 제사장은 단지 목회자만의 이야기만으로 제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이런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삶에서는 하나님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또 공동체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팀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팀원들에게, 리더라면 공동체에게, 구역장이라면 구역원들에게, 겉으로는 믿음의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입술로는 은혜를 말하지만, 삶에서는 미움과 비교와 정죄가 가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짓 선지자와 예레미야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서도 아무런 아픔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먼저 자신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먼저 찌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먼저 내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있지만 정말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믿음의 말을 하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언어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듣는 신앙 (16-18)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 라고 매우 강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이 전하는 말을 ‘헛된 것’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하벨‘이라는 단어인데, 원래는 숨결, 안개, 입김 이라는 뜻입니다. 즉, 잠시 보이는 것 같지만 금방 사라지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생명도, 능력도, 진리도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또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기서 ‘묵시’는 원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나 계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들은 것도 없고, 하나님께 보여 받은 것도 없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하나님께 받은 말씀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거짓 선지자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계속 언급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이 괜찮다고 하신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실제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17절을 보면 더 심각합니다.

(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에게도 평안을 말했습니다. 또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심판을 이야기해야 할 때 평안을 이야기했습니다. 회개를 이야기해야 할 때 위로만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듣기 좋은 말은 했지만, 정작 꼭 들어야 하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게 있습니다. 문제가 선지자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도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평안을 원했고,위로를 원했고, 괜찮다는 말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 귀에 좋은 말을 선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18절에서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여기서 ‘여호와의 회의’는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신하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회의’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듣는 자리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언제 내 앞에 서 있었느냐?”, “언제 내 말을 들었느냐?”, “언제 내 뜻을 구했느냐?” 거짓 선지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말을 잘못한 것이기 전에 하나님께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듣지 않으니 자기 생각을 말하게 되었고, 듣지 않으니 자기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게 되었고, 듣지 않으니 백성들까지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해서도 안 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도 안 됩니다. 내 생각과 맞는 말만 듣고, 내 마음이 편한 말만 듣고, 나를 찔리지 않는 말씀만 들으려고 한다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분별해야 합니다. 이 말이 정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인지,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인지, 이 생각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내 감정과 욕심에서 나온 것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말하기 전에 먼저 듣습니다. 결정하기 전에 듣고, 판단하기 전에 듣고, 행동하기 전에 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없이 듣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하며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듣고 싶은 말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신앙 (19-22)

(19) 보라 여호와의 노여움이 일어나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여기서 ‘폭풍’과 ‘회오리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회오리바람은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괜찮다고만 말하고, 평안하다고 말하고, 재앙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결코 괜찮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 없는 삶은 결국 심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절에서도 말씀합니다.

(20) 여호와의 진노가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그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하나님의 심판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당장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22절에서 모든 문제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을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내 회의에 참여하였다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달라졌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들을 그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말씀의 특징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참된 말씀은 사람을 편안하게만 만들지 않습니다. 때로는 찔리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회개하게 합니다. 또 때로는 방향을 바꾸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거짓 선지자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회개를 말하지 않았고, 돌이킴을 말하지 않았고,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계속 죄 가운데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신앙의 가장 큰 특징은 돌이킴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듣는데 변화가 없습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회개가 없습니다. 기도는 하는데 삶은 그대로입니다. 신앙은 있는데 방향 전환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삶에서는 하나님 없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결국 내 생각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역은 하지만 정작 하나님과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찬양은 하지만 마음은 메말라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의 모습인데 혼자 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가장 위험한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삶은 죄를 점점 익숙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분명 처음에는 죄가 불편합니다. 하지만 반복되면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결국 죄를 죄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죄는 방치하면 자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돌이키기 위해 말씀하십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주시는 목적은 정죄가 아닙니다. 바로 회복입니다. 심판을 말씀하시는 목적은 멸망이 아닙니다. 바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점검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말씀을 들을 때마다 돌이킴이 있는가?’, ‘예배를 드릴 때마다 변화가 있는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의 모습만이 아닙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날마다 돌이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아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말씀 때문에 변화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말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보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했습니다. 또 하나님 없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듣기보다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을 하나님의 뜻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없이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 말씀은 있었지만 변화는 없었고, 신앙은 있었지만 돌이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레미야 시대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예배를 드리고, 사역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의 신앙도 어느새 메마르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정말 내 말을 듣고 있느냐?’, ‘너는 정말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느냐?‘ 신앙은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앞에 무릎 꿇고, 그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없이 말하는 자리에서, 하나님 없이 듣는 자리에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돌이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없이 말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사람들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없이 듣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내가 듣고 싶은 말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하시고, 내 생각과 감정, 욕심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말씀 앞에서 분별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돌이키게 하시며, 예배를 드릴 때마다 변화되게 하시고, 기도할 때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할 때도 주님과 함께 말하게 하시고, 들을 때도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살아갈 때도 주님과 동행하게 하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실줄 믿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최근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반응을 더 의식하며 말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2. 나는 평소 하나님에게 어떤 말씀을 더 듣고 싶어하나요?
3. 말씀을 듣고도 변화되지 않은 채 반복하고 있는 습관이나 모습이 있나요?
4.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시선보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