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예언서)예레미야

예레미야 25:1-14

작성자오직은혜|작성시간26.06.09|조회수23 목록 댓글 0

예레미야 25:1-14
찬송가 263장 ‘이 세상 험하고’


끊임없는 돌이킴 그러나 완고함(1-4)

(1-2)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의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말하여 이르되

앗수르의 시대가 저물고 애굽의 시대가 오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바벨론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유다는 강대국들의 거친 숨소리 사이에서 유다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세상의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왕 여호야김은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왕위에 오른 자였습니다. 애굽의 영향력 아래에서 그들의 눈치를 보며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는 지금 난처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갈그미스 전투로 그의 배경이 어 되었던 애굽이 바벨론에게 처참하게 패한 것입니다. 그가 있는 궁궐 안에는 무거운 한숨이 가득했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상황에서 유다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여전히 애굽을 의지하며 버텨야 할지, 아니면 새롭게 떠오른 바벨론에 굴복할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나라의 앞날은 안개 속에 가려진 듯 불투명하기만 했습니다.

유다에게는 눈앞에 다가온 바벨론의 압도적인 힘을 막아낼 방법은 없었습니다. 국제 정세의 주도권은 이미 바벨론으로 넘어갔습니다. 유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복종하는 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였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결국 바벨론을 섬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것이 유다와 같은 작은 나라가 거친 국제 정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편에 서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계산으로 그들의 마음은 분주했고, 답답했습니다.

유다가 눈앞 강대국들로 전전긍긍하고 있던 바로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3-4) 유다의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 왕 열셋째 해부터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꾸준히 일렀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유다의 문제는 바벨론이 아니었습니다. 애굽도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위기나 외교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갈 것인가,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할 것인가. 유다가 바벨론의 위협을 마주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은 이에 대해 말씀해오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통치 제13년에 부름을 받은 후, 여호야김 제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2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한두 번 경고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조롱을 당했고, 매를 맞았으며, 차가운 착고에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백성들 앞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한때 예레미야 자신도 깊은 낙심에 빠져,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 해도 말씀이 마음속에서 불처럼 타올랐습니다. 예레미야가 말씀의 자리에 서게하신 것은 자기 백성을 돌이키려는 하나님의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외에도 우리아, 스바냐와 하박국 같은 선지자들을 같은 시대에 보내어 죄악을 꾸짖었고, 심판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끝내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눈물로 외쳤던 23년이라는 시간은 실패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눈물 어린 기다림이었습니다. 유다는 신을 벗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했습니다.


심판 선언(5-14)

(5-7)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 너희는 다른 신을 따라다니며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키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써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전한 메시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것, 그리고 다른 신을 따라다니며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이후 줄곧 말씀해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땅을 주셨고,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알려 주셨습니다. 그들이 만약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그 땅에서 평안히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정반대의 길을 갔습니다. 우상들이 유다 땅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러야 할 성전에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 대신 자신들의 손으로 깎고 만든 우상을 더 붙들었습니다. 생명도 없고, 보지도, 듣지도,말하지도 못하는 헛된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손의 행위로 자신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결코 해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회개의 길은 열려 있었습니다. 돌이킬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우상을 선택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파멸의 길로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판결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7절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일반적으로 말씀을 의미하는 '다바르'가 아니라 '네움'입니다. '네움'은 선언, 판결, 최종 선고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권면 아니라 판결로 그들을 대했습니다. 유다는 이를 듣고 돌이켜야 했습니다.

(8-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보라 내가 북쪽 모든 종족과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주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을 놀램과 비웃음 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 끝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는 선언 역시, 앞선 7절과 동일하게 판결과 최종 선고를 뜻하는 법정 용어 '네움'입니다. 7절의 '네움’이 유다의 죄악에 대한 법적 판결이었다면, 9절의 ‘네움’은 죄에 대한 심판 집행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북쪽 모든 종족”과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 이 땅과 사방 모든 나라를 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북쪽 모든 종족’이란 바벨론과 연합한 모든 민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유다 뿐아니라, 유다가 의지하려 했던 주변 나라들까지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을 가리켜 "내 종"이라고 부른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정치적 야망과 정복욕에 사로잡혀 침공했던 이방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내에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은 죄악된 동기로 행동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당시 유다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이 선언은 충격적입니다. 여호야김 왕과 유다 백성들은 눈앞에 들이닥친 바벨론이 세상을 쥐고 흔드는 절대적인 지배자로 보였습니다. 그를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에게 "내 종"(9절)이라 부르셨습니다. 이는 유다의 착각을 깨부스는 말씀입니다. 유다의 눈에는 바벨론이 거대한 거인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저 쓰시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시는 겁니다. 유다의 흥망성쇠도, 천하를 호령하는 바벨론의 미래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두려워하고 엎드렸어야 했었던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붙들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심판하실 것입니다. 유다는 주변 나라들의 놀람과 비웃음 거리가 될 것이며, 약속의 땅은 영원한 폐허처럼 변해버릴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탄 성전을 보며 큰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여기서 선포된 “영원한 폐허”라는 말이 문자 그대로의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선언 뒤에 ‘70년의 포로기’라는 기한을 두셨고, 징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시키겠다는 소망을 이야기 하기 때문입니다.

(10-11)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지게 하리니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은 참혹한 심판의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유다 땅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가 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쁜 일이 다시 없다는 뜻입니다. 일상생활과 관련된 행복한 소리들은 파괴 이후 깊은 침묵으로 바뀌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어, 하나님은 맷돌 소리와 등불 빛 마저 사라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맷돌과 등불은 고대 사회의 평범한 일상을 상징했습니다. 아침이 되면 집집마다 맷돌을 돌려 하루 동안 먹을 곡식을 갈았고,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되면 등불을 켜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이는 그 땅에 생명이 살아 숨 쉬고 가정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이토록 당연하고 평화롭던 일상의 소리와 빛이 한순간에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맷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먹을 양식이 없고 생계가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맷돌 소리의 부재는 가장 극심한 재앙과 저주의 징조였습니다. 등불의 빛이 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이 되어도 불을 밝힐 사람이 없고, 등불을 켤 기름도 없이 삶의 온기가 사라져버린 절망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본문이 말하는 "폐허"는 단순히 전쟁으로 건물이 부서진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살던 흔적이 사라지고, 삶의 온기가 떠나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때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던 성전이 있고 풍요를 자랑하던 나라가 처참하게 황폐해질 것입니다. 훗날 그곳을 지나는 이들은 이것을 보며 충격을 받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 두려운 선포 가운데, 하나님은 징계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하나님이 정하신 기한은 “칠십 년”이었습니다. 70년은 한 세대를 가리키도 합니다. 포로로 잡혀간 1세대 선조들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하는 시간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70년이라는 숫자에는 절망만 담겨 있지 않습니다. 징계에 ‘끝’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한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12-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그리하여 여러 민족과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들을 섬기게 할 것이나 나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12절에도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가 나옵니다. 여기서도 '말씀'은 앞서 사용된 것과 같은 '네움'입니다. 바벨론을 향해 판결입니다. "칠십 년이 끝나면" 바벨론은 자신의 죄로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오면 그들의 권세도 끝납니다. 그들은 심판을 위해 일시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자기 힘인 양 착각하고, 악용했습니다. 교만했고, 유다를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 대한 죄값을 치르게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느부갓네살에 대한 호칭의 변화입니다. 9절에서는 그를 "내 종"이라고 부르지만, 12절에서는 단순히 "바벨론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에는 특별한 호칭이 주어졌지만, 이제는 심판의 대상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은 이어서 말했습니다.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여기서 “이 책”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서기관 바룩에게 대필하게 했던 두루마리를 가리킵니다. 앞서 말했던 유다의 악한 왕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경고가 듣기 싫다며 선지자의 두루마리를 칼로 찢어 불에 던져버렸습니다. 불꽃 속에서 말씀은 탔지만, 심판의 경고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심판의 원리를 밝히십니다. "나는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바벨론은 다른 민족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들이 다른 나라들의 종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행한 대로 돌려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마땅히 받아야할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유다가 아닙니다. 바벨론도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입니다.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인지, 끝까지 붙들고 버틸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굳어진 마음입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다시 말씀하십니다.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것이냐? 돌이키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보다 현실을 더 크게 바라보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걱정과 두려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답을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순종하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했던 우리를 돌이켜 주옵소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무너지고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시고, 주 앞에 온전히 서게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유다는 바벨론과 애굽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까?
2. 유다는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듣고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알고 있지만 여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3. 유다는 바벨론과 애굽을 바라보느라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크게 바라보고,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있는지 돌아봅시다.
4. 유다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하나님은 "누구에게 돌아올 것인가"를 물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작성: 김대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