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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예레미야

예레미야 25:15-29

작성자오직은혜|작성시간26.06.09|조회수22 목록 댓글 0

예레미야 25:15-29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예레미야 25장은 예레미야 전체에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유다에서 이제 열방으로 확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단순히 열방도 심판 받는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그 심판의 첫 번째 대상은 남유다입니다. 오늘은 본문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진노의 술잔’이라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진노의 술잔(15-16)

(15-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기 때문이니라 하시기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한 가지를 주십니다. ‘진노의 술잔’입니다. 고대 시대 왕이 신하에게 내려주는 술잔은 단순한 음료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신하가 받을 몫을 의미하였습니다. 실제 성경에서도 여러 잔들이 나옵니다. 시편 23편 5절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잔’이, 116편 13절에서는 ‘구원의 잔’이, 이사야 51장 17절에는 ‘진노의 잔’이 나옵니다. 이 잔을 받은 자는 이제 복의 몫, 구원의 몫, 심판의 몫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노의 술잔’을 원문으로 직역하여 보면 ‘진노를 담은 포도주의 잔’으로 읽혀집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 담은 잔이 예레미야를 통해 전달된다는 의미입니다.

16절은 이 잔을 마신 자의 상태가 나옵니다.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한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닙니다. 혼란과 요동함과 붕괴되는 상태, 곧 스스로를 제어할 통제력과 질서가 무너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진노의 술잔을 마신 인간은 그의 삶의 질서와 자랑 등이 허사가 되고 무너진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세운 계획과, 내가 모은 자산과, 내가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미래를 꿈꿉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묻습니다. 과연 인간이 스스로의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게 된 인간이 과연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은 오히려 말합니다. 하나님이 흔드시면, 정치도, 경제도, 인간의 지혜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가 마시는 잔은 끝내 이런 허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계획하는 인생이라는 신을 벗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유다가 먼저 마시다(17-26)

(17-18)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

하나님을 떠난 자는 마침내 그가 주시는 진노의 잔을 마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7-26절에는 이 잔을 마시는 열방의 명단이 나옵니다. 애굽, 블레셋, 에돔, 모압, 메대 등 온 열방이 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명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는 이 심판 명단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이 예루살렘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악랄한 블레셋도, 힘이 세보이는 애굽도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 예루살렘이 가장 먼저 이 잔을 받습니다.

우리는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왜 유다가 먼저인가. 유다는 언약 백성이었습니다. 말씀을 알았고, 은혜를 받았고, 이 명단에서 가장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장 잘 알았기에 유다는 더 큰 책임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한 가지 착각을 했었는데,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괜찮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7장을 보면 “여호와의 성전이라”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 성전과 선민의식을 신뢰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있는 성전이, 거짓 선지자들의 달콤한 말들이 자신들의 영적인 실태를 바로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 말씀도 준행하지 않은 채 경건의 모양만 있는 채로 안일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두 번째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 믿는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안도하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니까 괜찮다. 오래 믿었으니까 괜찮다. 이런 말들은 참 신앙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통한 안도감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은 은혜는 이제 적당히 죄와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백성은 그의 거룩한 소유입니다. 그리고 이는 특권이 아닌 책임의 영역입니다. 그의 소유된 백성은 보장된 천국을 기대하며, 적당히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의 기이한 빛을 비춰야 하는 거룩한 반사체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종교적 안도감이라는 신을 벗고 거룩한 백성의 삶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진정한 통치자(28-29)

(28)  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오늘 본문을 구문론적으로 보면 특정 동사의 명령형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마시게 하라’입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마시게 하라",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 이것은 권유가 아닙니다. 선택도 아닙니다. 거절할 수 없는 온 우주의 왕이 하사하는 잔입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이 했던 두 번째 착각이 있는데, ‘결국 바벨론이 이길 것이다’라는 착각입니다. 당시 국제정세는 애굽과 바벨론의 패권 경쟁이 계속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국제정세를 더 믿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친애굽파, 다른 이는 친바벨론파를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결국 이 잔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애굽도 바벨론도 아닌 하나님만 바라볼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하기에, 온 열방을 다스리는 통치자를 바라보길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힘이 있어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경제, 주식, 정권, 부동산, 기업 등 우리는 이것들에 민감하며, 이것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 아니 나의 내일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에 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따른다면 과연 신앙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본문 속 열방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이민족의 신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역의 지방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신에 불과했지만, 결국 유다도, 애굽도, 바벨론도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습니다. 국제 사회는 우리 삶에 영향을 주지만, 그 국제 사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적 시력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9)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본문의 결론부는 바로 29절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진노의 술잔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본문은 마지막에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라는 표현은 이제 이 진노의 술잔이 유다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표현은 직역하면 "내 이름이 그 위에 불려진 성"으로 번역됩니다. 오늘날에도 물건의 품질과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브랜드를 상품에 붙이고는 합니다. 특정 브랜드의 옷, 자동차, 전자기기 등은 확실히 품질이 뛰어나고 훼손되거나 고장나도 A/S가 철저히 이뤄집니다. 우리는 그 브랜드를 보고 해당 물건을 신뢰하며 삽니다. 고대 사회에서 특정 인물의 이름이 붙여지는 대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당 대상은 소유권, 통치권, 보호권이 보장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성입니다. 예루살렘의 주민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원수를 먼저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이름이 불려진 성에 가장 먼저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를 볼 때 우리는 한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암울한 모습을 보며, 심판이 가까웠다고 외치는데, 과연 하나님이 거기 먼저 심판하실까라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논리대로라면 하나님은 세상부터 심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먼저 교회를 향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한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 참고만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악한 세상 속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나를 또한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가끔 이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세상 말세다. 이 나라 참 문제다. 한국교회 참 문제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먼저 너를 보라.

우리는 나라를 걱정하기 전에 먼저 정직하게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세금은 정직하게 내고 있는가. 준법 정신을 유지하며 작은 이익 앞에서도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이 세상이 말세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이 세상 속 우리의 정체성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당장 나는 스마트폰으로 하루 종일 무엇을 보고 사는가. 악하다고 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외 또한 사랑하는 것은 없는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교회가 문제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의 경건 생활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매주 주일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며 오는가. 나의 한 주를 보내는 내 입술에는 기도가 많은가 불평이 많은가. 메이드인 헤븐이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진 백성인 교회는 그리고 이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생각보다 하나님과 어긋난 곳을 바라볼 때가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불평과 비관적인 시각을 나 자신에게 향하고, 하나님께 향할 때 우리는 이 악한 세상 속에서 빛이신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으며, 분노를 일으키는 이 세계의 이슈를 넘어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역시 진노의 술잔을 마셨기 때문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삶을 살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하나의 잔을 하나님께 하사 받았습니다. 이 잔은 오늘 본문에 나온 진노의 잔이요. 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잔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원래라면 이 잔을 마셔야 할 사람은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가 마셔야 할 진노의 잔을 대신 마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최후의 만찬에서 진노의 잔이 아닌 죄 사함의 잔, 생명의 잔을 하사해주셨습니다. 이 잔은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먼저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어떤 정체성으로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은 모두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잔이요 생명의 잔을 마신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 앞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세속의 신을 벗고 거룩하신 주님 앞에 나를 드리는 이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른 사람의 죄는 쉽게 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 앞에 선 우리의 모습은 살피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우리 안의 교만과 안일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권의식이 아니라 거룩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옵시고, 오늘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의 잔을 대신 마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옵시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은 열방보다 먼저 유다에게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 장면이 오늘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신앙생활 가운데 무엇을 의지하며 안도하고 있습니까?
3.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강대국과 국제정세를 더 의지했습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보다 더 크게 바라보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은 세상보다 먼저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회개하거나 변화되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작성: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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