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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예레미야

예레미야 25:30-38

작성자오직은혜|작성시간26.06.09|조회수20 목록 댓글 0

예레미야 25:30-38
찬송가 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학수고대’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괴롭게 기다린다’라는 의미입니다. 단순한 기다림보다는 간절함과 애절한 마음으로 기다릴 때 주로 사용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학수고대가 많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어서 사랑하는 애인에게 달려가기를 학수고대하는 군인, 자녀의 출산을 학수고대하는 부부 등 우리는 주로 좋은 일에 대해 소망을 품고 학수고대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학수고대하는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품고 계시는 학수고대, 기다림이 우리가 생각하는 소망의 기다림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그 때는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말씀으로 마주하길 원합니다. 30절과 31절입니다.

심판의 날을 학수고대하는 여호와(30-33절)

(30-31)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며 그의 초장을 향하여 크게 부르시고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하여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시리라 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뭇 민족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내어 주셨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든 나라에 진노의 술잔을 내리신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포효하시고, 소리를 내시며, 크게 부르신다고 합니다. ‘높은 데서, 거룩한 처소’는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거룩한 보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다스리는 왕좌에서 일어나셔서 소리치십니다. 그런데 무서운 사자와 같이 포효하시는 하나님이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신다고 합니다. ‘포도 밟는 자’는 1년 농사가 마무리되며 수확한 포도를 발로 밟아 포도주를 만드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때 농부는 당연히 콧노래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농사를 통해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기를 학수고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 이전 본문에서 열방을 향해 진노의 술잔을 내리셨던 분입니다. 그렇다면 농부가 포도를 밟아 포도주, 술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포도주, 술을 만드는 것입니다. 포도 농부가 열매를 수확하기를 학수고대했는데, 하나님은 열방을 심판하기 위해 학수고대 하셨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는데, 하나님도 그날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그의 초장’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초장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 예루살렘의 삶의 터전을 의미합니다. 심판은 유다와 예루살렘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시작된 심판은 어디까지 이어지겠습니까? 땅 끝까지 이어집니다. 심판, 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어지며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뭇 민족과 다투신다는 표현은 법정에서 피고를 고발하는 검사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유다뿐만 아니라, 모든 육체,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닌, 법 즉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의해 진행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끊임없이 거짓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심판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32절입니다.

(3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하나님의 심판은 재앙이 온 나라에 미칠 것입니다. 또한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납니다. 땅 끝에서 일어나는 큰 바람은 유다를 멸망시킬 바벨론과 느부갓네살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임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게만 향한 재앙이 아닌, 온 나라의 재앙이 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유다만 다스리고 상관하는 하나님이 아닌, 온 세계 열방을 다스리고 주관하는 하나님임을 재앙을 통해 선포하고 계십니다. 큰 바람을 통한 재앙이 임한 곳은 어떤 모습이 되겠습니까? 33절입니다.

(33) 그 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땅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고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도 없고 매장하여 주는 자도 없으리니 그들은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큰 바람과 같은 재앙이 임한 그 날은 끔찍한 현장이 됩니다. 그런데 그 재앙을 입은 자들을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라고 합니다. 바벨론에게 재앙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진노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큰 바람이 휩쓸고 간 곳에는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고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도 없고 매장하는 자도 없습니다. 참으로 참혹한 현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신을 수습해서 장례를 치뤄줄 사람과 여건 조차 되지 않아, 그 시신들이 분토, 거름처럼 버려진다고 합니다. 비참하고 끔찍한 이 날이 바로 여호와의 진노가 임한 심판의 날입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해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토록 비참할 것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시고 심판의 날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목자들의 애곡(34-38절)

(34)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 떼의 인도자들아 잿더미에서 뒹굴라 이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 될 것이라

온 세상 열방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지만, 하나님은 특히 목자들에게 애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양떼의 인도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목자는 짐승을 관리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유다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지도자들을 향해 큰 진노를 가지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심판에 대한 책임은 모두에게 있지만, 유다의 지도자들, 왕과 제사장들은 더 큰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애곡하고 슬퍼하라고 명령하시는데, 그 방법은 잿더미 속에서 뒹구는 것입니다. 이들이 애곡해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다는 것입니다. 흔히 도살이라는 단어는 양과 같은 짐승에 어울리는 단어이지만, 흥미로운 점은 짐승이 도살되는 장면이 아닌, 너희(목자)가 도살 당하고 흩음을 당한다고 합니다. 흩음은 유다가 하나님의 땅에서 추방되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시 유다의 지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큼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35절과 36절입니다.

(35-36)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 떼의 인도자들은 도주할 수 없으리로다 목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양 떼의 인도자들이 애곡하는 소리여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함이로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목자들은 도망할 수도 없고 도주할 수도 없습니다. 도망하려는 시도가 있을지언정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려고 몸부림쳐도 그 진노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로를 피할 수 없는 목자들은 부르짖는 소리와 애곡하는 소리를 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유다는 특별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맡은 유다의 지도자들은 그 양 뗴가 자신의 떼가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망각해서는 안되는 자들이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이자, 자신 또한 하나님을 따라가는 양임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양이 아닌 자신의 양으로 보았고, 그 양을 생명을 다해 지키고 돌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안위와 생명을 위해 양을 희생시키는 악한 목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양을 돌보지 않는 그들에게 더 큰 책임을 물으십니다. 37절 말씀입니다.

(37) 평화로운 목장들이 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 앞에서 적막하게 되리라

유다는 사람들이 보기에 평화로운 목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내리지 않을 것이고, 내리더라도 이것은 악한 이방인을 위한 심판이라고 백성을 호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으니 평화는 언제나 보장된다고 거짓을 선포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평화로웠던 그 목장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열기로 모두 적막이 흐르게 됩니다. 목장을 관리하던 목자들이 도살당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를 잃은 양 떼는 모두 흩어집니다. 흩어진 양은 짐승에 먹잇감이 되고, 시력이 좋지 않아 낭떨어지로 떨어지며, 푸른 초장을 찾지 못해 굶어 죽습니다. 결국 평화를 외쳤던 목장에 목자와 양떼가 사라지니, 적막이 흐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짓 평화로 소란스러운 목장에 적막을 흐르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세속적 가치관으로 우리의 귀를 현혹시킵니다. 하나님을 목적삼는 것이 아닌 세상을 목적삼도록 유혹하는 거짓 평화를 하나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거짓 평화로 소란스러웠던 거리를 조용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실 진정한 평화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마지막 38절입니다.

(38) 그가 젊은 사자 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 하시니라

오늘 본문의 시작이 높은 데서 포효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본문의 마지막에도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젊은 사자와 같이 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경우는 배가 고파 먹잇감을 찾아 사냥을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자신의 때에 유다를 비롯한 온 열방에 내리실 심판을 행할 것입니다. 거짓된 평화로 아무런 걱정이 없던 목장에 사자가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 사자로 인해 목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갈 곳을 잃은 양은 흩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 닥칠 재앙이었습니다. 사자처럼 임하는 하나님의 재앙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절망적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25장 30절에서 38절은 하나님의 포효로 시작하여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지속적으로 묘사되는 하나님의 심판은 구체적이고 끔찍하고 비참합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것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다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양을 자기 양이라고 여기며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을 속이고 이용했습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하나님의 양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왕 같은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일을 주께하듯 하지 않고, 거짓으로 자기가 맡은 일을 외면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하나님의 재앙을 받은 목자와는 달리 참된 목자로 양을 인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목자되신 그리스도는 양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닌,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진 참 목자이십니다(요 10:11). 우리는 목자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거짓된 평화를 주는 악한 목자를 따라갈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분만 따라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어진 오늘 나의 신을 벗고 선한 목자되신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데로 따라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새벽 말씀으로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유다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온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속 유다 목자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큼을 배웁니다. 그러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어진 오늘 나의 신을 벗고 세상에 헛된 목자를 찾고 좇는 것이 아니라,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만 따라가며 삶을 영위하는 복된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최근 내가 학수고대하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었습니까?

2.하나님은 마치 포도를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신다고 합니다. 포도를 밟는 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하나님의 진노는 누구에게 더 큰 책임을 물으십니까(34절)? 이 땅의 지도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맡은 역할을 다해야합니까?

4. 우리가 따를 선한 목자는 누구십니까(요 10:11)? 오늘 나는 그분을 따라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작성: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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