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6:1-15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을 시작한 주전 627년경, 남유다의 종주국 행세를 하던 나라는 애굽이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이전의 종주국이었던 앗수르와 달리 남유다를 크게 간섭하지도, 많은 부담을 지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남유다의 분위기는 친애굽 성향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여호야김 왕조차도 애굽이 세운 왕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외쳤던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미움과 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급변합니다. 주전 612년, 바벨론과 메대 연합군에 의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함락되면서 앗수르는 급격히 쇠퇴합니다. 결국 주전 605년, 유프라테스 강변의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에게 대패하며 앗수르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이 승리로 바벨론은 고대 근동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확고히 부상했고, 애굽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이러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워진 남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바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임명한 왕이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이처럼 요시야 왕 때부터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성경의 구조를 보면, 1장에서는 예레미야의 소명이 나오고, 2장부터 25장까지는 남유다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살펴볼 26장에서 45장까지는 예루살렘 함락 전후와 바벨론 포로기 전후에 일어난 구체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3절은, 여호와께서 남유다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절박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의 성전 뜰 설교(1-7절)
(1-3)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이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본문 1절은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 즉 유다의 18대 왕인 여호야김의 등극 첫해(B.C. 609년)라고 밝힙니다. 어제 본문인 25장 1절은 ‘여호야김 넷째 해’의 일이었는데, 예레미야서는 시간 순서대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사실 어제보다 3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유대인에게 열린 공간인 '성전 뜰'에 서서 설교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단서를 붙이십니다.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빼놓지 말고 있는 그대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셨겠습니까? 선지자도 사람이기에, 듣는 이들이 불편해하거나 그로 인해 당할 핍박이 두려우면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가리거나 타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시드기야 왕도 이 점을 잘 알았기에, 예레미야 38장에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내게 한 마디도 숨기지 말라"고 청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감 없이 다 전하라고 하신 이유는, 유다의 악행이 심판 직전에 이를 만큼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는 파국을 맞이하기 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곡한 호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한두 번만 말씀하시고 단번에 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양한 통로를 통해 끊임없이 경고하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만약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지체치 말고 속히 깨닫고 돌이킬 수 있어야겠습니다.
4-7절은 예레미야가 가감 없이 전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4-7) 너는 그들에게 이와 같이 이르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하나님은 남유다 백성들이 그동안 선지자들의 말에 전혀 순종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시며 무서운 경고를 하십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만들고, 이 성을 세계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실로’가 어떤 곳입니까? 엘리 제사장 시절까지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백성들은 실로에 언약궤가 있으니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맹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블레셋에게 패했고 언약궤마저 빼앗겼으며, 실로는 결국 황폐한 폐허가 되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실로처럼 될 것이라는 경고는, 그들이 가장 감추고 싶어 하는 아픈 곳을 사정없이 자극하는 말이었습니다. 이 불편한 진실을 성전에 모인 제사장들과 선지자, 그리고 모든 백성이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8절에서 11절입니다.
예레미야의 체포와 변론(8-15절)
(8-11)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 성전이 실로 같이 되겠고 이 성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리라 하느냐 하며 그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예레미야를 향하여 모여드니라 유다의 고관들이 이 말을 듣고 왕궁에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의 입구에 앉으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예레미야의 설교가 끝나자마자 성전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사람들은 격분하여 예레미야를 붙잡고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며 윽박지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실상을 고발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닫고, 오직 자신들의 자존심이자 심장인 성전과 도성이 황폐해진다는 그 '기분 나쁜 소리'에만 분노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나의 종교적 전통이나 내 생각, 내 감정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행하지 않고 불순종했다는 원인은 쏙 빼놓은 채, 오직 예레미야를 죽이겠다는 목적으로 왕실 관리들 앞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사형수로 몰아세웠습니다. 일종의 종교 재판이 열린 것입니다.
이에 대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가 담대히 변론합니다. 12절에서 15절입니다.
(12-15) 예레미야가 모든 고관과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가 들은 바 모든 말로 이 성전과 이 성을 향하여 예언하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예레미야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나를 보내어 하신 말씀이니, 너희가 살길은 오직 행위를 고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뿐이라고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너희 뜻대로 나를 죽여도 좋으나, 만일 나를 죽인다면 무죄한 피를 흘린 대가를 너희와 이 성이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무서운 경고를 날립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안위나 손해를 계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하는 믿음의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바로 진위를 증명할 수 없기에 예레미야는 진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면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어야겠습니다.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 중 <벌거벗은 임금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옷을 너무나 좋아하는 허영심 많은 임금님이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옷”을 만든다는 사기꾼들에게 속아 벌거벗은 채 거리 행진을 합니다. 임금도, 신하도, 백성들도 모두 자신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서,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해 “참으로 아름다운 옷입니다!”라며 거짓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군중 속 한 어린아이가 순수하게 진실을 외칩니다. “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이 아이의 한마디에 모든 이들의 위선과 거짓말이 탄로 나게 됩니다.
결국 이 동화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허영심과 군중심리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권력 앞에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전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남들의 시선과 자기 체면을 참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허영의 시장과 같은 세상 속에 살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하나님의 진리를 담대히 전하며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체면과 세상의 시선은 종종 사명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붙잡곤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간절히 요청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라고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었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 즉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리를 선포하는 진실된 복음의 증인들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눈가림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그리고 ‘주께 하듯’ 행함으로,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참된 증인의 삶을 살아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남유다 백성들이 자신의 악행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닫고, 자신들의 체면과 종교적 자존심만 내세우며 선지자를 죽이려 했던 위선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혹시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과 감정, 세상의 평판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모습은 없었는지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한 번에 심판하지 않으시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시며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고,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속히 주님께로 돌이키는 순종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은 온통 타인의 시선과 허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체면 때문에, 혹은 손해를 볼까 두려워 진리를 외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어린아이처럼,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선포했던 예레미야처럼,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눈가림의 신앙에서 벗어나,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전심으로 '주께 하듯' 행하는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다양한 통로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최근 예배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반복해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나 마음의 감동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2.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자존심과 종교적 전통을 더 앞세웠습니다. 혹시 당신에게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 내 기분, 내 경험을 더 앞세우는 모습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3. 세상의 시선과 내 체면 때문에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거나 진리를 외면했던 적이 있습니까?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오늘부터 무엇을 결단하고 실천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가정, 직장, 교회, 인간관계 등).
(작성: 오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