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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서)에스겔

에스겔20장1절-32절/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강한 질책

작성자happy시온|작성시간14.07.02|조회수69 목록 댓글 0

 

에스겔20장1절-32절

 

 

예수님께서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5:39)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5:44)라고 하십니다. 말씀은 쉬운데 이 말씀을 삶에서 적용하기에는 녹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자연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죽은 사람도 부활시키신 그 분이 자기 백성들 앞에서 인간으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박해를 당하셨고, 심지어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모욕하고 때리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에 불과한 하찮은 인간들을 사랑으로 넉넉히 품으셨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치꾼들의 작태에 한숨지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을 향한 긍휼함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한 줌의 먼지로 허망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 앞에서도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야욕과 탐욕의 불꽃 속으로 덤벼들고 있는 나방과도 같은 그들을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8장의 두 번째 말씀이후 11개월째에 주신 말씀인데,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강한 질책이 주 내용입니다. 어제부터 8강을 가리는 시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가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지만, 이번 월드컵은 이변이 많이 속출해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번 월드컵 경기중 일본의 경기를 보면서 같은 아시아권이자 바로 이웃 나라인 일본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국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일본이 전후 독일의 반성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고자 했다면 이렇게까지는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35년간의 일제강점기로 인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그 잔재들이 산재해있었습니다. 애굽의 문화권에서 약 400년이라는 시간을 지낸 이스라엘의 본 모습이 오늘 본문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말미암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애굽의 우상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였다고 밝히십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이 거주하는 이방인의 눈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9)

즉 패역한 죄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것은 애굽에게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지, 이스라엘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즉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를 율법을 통해 알려주셨고, 그 말씀대로 살 것을 언약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12) 광야에서 안식일을 지정해서 여섯째 날 아침에 만나를 거두어 안식일 아침까지 두어도 상하지 않을 것이라 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전날 준비해놓지 않고 있다가 안식일에 만나를 구하려고 나왔습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치는 기간이었습니다. 즉 40년간 안식일을 지키는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의 체질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변화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40년이라는 긴 세월의 반복되는 훈련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원점으로 돌아가다 못해 이제는 장자를 화제로 드리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던 명령 속에는 당시 만연했던 장자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우상숭배의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개혁의 의지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는 현 상황에서도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 우상 숭배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산당을 다니며 우상숭배를 하다못해 아들을 화제로 삼는 파렴치한 행위를 하고 있음을 질책하고 계십니다.

당시의 상황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상황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직접 오랜 기간 광야에서 훈련시키신 이스라엘이 이 정도라면 우리는 이들 보다 패역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가능성이라는 수치에서 상대가 되지 않기에 패역하게 사는 것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그토록 비참하게 돌아가셨을까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패역할 가능성은 오히려 오늘을 사는 우리가 훨씬 작습니다.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잘나서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이스라엘보다 더 패역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 대속의 보혈을 흘리셨고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을 패역한 인생으로 낭비하며 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패역한 나를 한량없으신 사랑으로 품어주셔서 지금의 나로 세워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품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 이웃, 설사 나를 적대시하며 미워하는 이웃조차도 긍휼히 여겨 넉넉하게 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속에서 구현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더 패역하게 살았을 우리의 본 모습을 보았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보혈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잊을 때가 있음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주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긍휼함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웃을 넉넉히 품고 함께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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