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문창과 합격 후기

2022 중앙대학교 문창과 합격 후기

작성자이승엽|작성시간22.06.19|조회수996 목록 댓글 0

안녕하세요. 2022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수시 합격한 이승엽입니다. 제 합격 후기를 보고 많은 분이 어이 없어 하실 거라 예상합니다. 이 사람은 무슨 합격 후기를 6월에 올리지? 저 스스로도 너무 늦지 않았나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술 먹고 노느라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도 한때 입시를 해봤던 사람으로서 이 ‘합격후기’라는 게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작년에 고도에서 재수할 때 선배들 합격후기를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거든요. 하물며 지금은 6월, 여름입니다. 입시생들의 고비는 언제나 여름이죠. 고비를 넘고 있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드리고자, 염치 불문하고 이제 와 합격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산문반이었습니다. 다들 원장선생님한테서 제 얘기를 한 번쯤은 들으셨을 겁니다. 중앙대에서 와서 고도 출신 친구들을 몇 명 만났는데, 같은 반이 아니었음에도 저를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너 나 어떻게 아니? 라고 물어보니까 원장선생님이 오빠 칭찬하는 걸 들었다고, 다른 반 아이들도 오빠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그러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저는 원장선생님을 되게 좋아했거든요. 직접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충성을 맹세했었습니다. 명쾌하시잖아요. 글에서 어떤 지점이 문제인지, 이 글이 더 나아지려면 어떤 방향으로 퇴고를 해야 하는지, 딱딱딱 짚어주시잖아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언젠가 느끼겠지만(혹은 이미 느끼고 있겠지만), 누군가를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해도 그 욕조차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이 더러 있습니다. 저라고 늘 원장선생님에게 칭찬만 받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글을 써서 신랄하게 까여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조차도 무언가 재미있더라고요. 원장선생님의 기운, 말씀하실 때 사용하는 단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 딱 찝혔을 때 몰려오는 부끄러움… 그 모든 것들이 다 한 데 뒤엉켜서. 저는 퇴고를 받을 때마다 웃었습니다. 전혀 웃을만한 분위기가, 웃을만한 내용이 아닌데도 그냥 웃었습니다.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쓴 글이 까이고 있는데도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게 사랑의 힘이겠죠. 어쩌면 제가 이상한 걸 수도 있습니다. 좌우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퇴고를 받을 때 안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너무 상처받지 마시라는 말입니다. 6월을 맞아 슬슬 입시라는 벽에 숨통이 조이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일수록 원장선생님에게 충성을 맹세하세요. 이제까지 대학 보낸 학생 수만 사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는 채우고도 남으시는 분입니다. 문창과 입시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입지전적인, 어떠한 경지? 반열?에 도달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분입니다. 또한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기에, 여러분이 원장쌤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고도에서의 입시 생할도 그리 괴롭지만은 않을 겁니다. 한번 믿어보십쇼. 산증인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지금은 대학을 붙었으니까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거지. 사실 입시는 너무나도 힘든 과정입니다. 재수를 하면서 저는 살이 15kg 찌고, 흰 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친구들이 저보고 교수님이냐고 놀릴 정도입니다. 1억을 준다 해도 재수 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네요. 랭보의 시집 제목처럼 그야말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었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 노력이 나를 배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정말 사람 미치죠.

매일 재수 학원에 아침 8시 20분까지 가서, 아침에 영단어 시험을 보고, 수업을 듣고, 밤 열 시까지 빈방에서 혼자 글을 쓰고… 그 짓을 매주, 매달.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앞서 말한 대로 6월에 이르러 나사가 풀려버리게 됐습니다. 매일 잤습니다. 재수 학원에서 점심을 먹고 자습실에서 저녁까지 쭉 잤습니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만 잔 날도 있습니다. 자는 게 좋더라고요. 괴로운 현실에서 꿈으로 도망칠 수 있고, 무엇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서 좋았습니다. 정신 차려보면 집 갈 시간이니까. 그렇게 혼자 저녁에 집으로 걸어오면서 또 자괴감에 빠지는 거죠. 나 오늘 한 게 아무것도 없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하면서. 재수 일 년 동안, 고도 친구들이랑 같이 저녁 먹는 거 빼고는 단 한 번도 타인이랑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없습니다. 항상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아웃백도 혼자 가서 스테이크 시켜 먹은 적 있습니다. 직원이 되게 안쓰럽게 보았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빵을 막 가져다주더라고요. 그건 뭐 좋았습니다. 제 재수 시절의 절반은 자괴 나머지 절반은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을 고도 학원의 입시생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 여러분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느낄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고, 다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합격한 노하우를 몇 개 알려주려고 합니다. 이미 원장쌤에게 다 들었을 내용일 겁니다. 가급적 개성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인물을 중심 인물로 삼아 글을 쓰려고 하세요.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상처 혹은 절실하게 바라는 것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쓰려고 하세요. 100편을. (재수험반 기준입니다. 고3반은 백일장도 있고 뭐 여러 가지 챙길 게 많죠?) 사실 100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100편이 뭐 드래곤볼도 아니고 다 채웠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100편을 딱 채웠을 때 도리어 허무한 느낌도 조금 들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각오입니다. 100편이나 쓸 각오가 중요한 겁니다.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 나 뽑아주쇼 하고 당당하게 대학 문 두드릴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은 아무나 구원해주지 않습니다. 행동하는 인간만 구원해줍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행동하십쇼. 토하듯이 쓰시고, 절박하게 쓰십쇼. 김수영 시인의 「절망」이라는 시에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일백 번 공감하는 말입니다. 정말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옵니다. 여러분이 가장 밑바닥일 때, 너무 불태운 나머지 재가 돼버렸을 때,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일 때, 구원은 찾아올 겁니다. 뻔한 말이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남은 입시 기간 파이팅하시고, 내년에 중대 문창과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되면 내년 봄에 군대를 갈 생각이라 직접 만날 수도 있고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중대 합격하시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아니면 만나서 ‘혹시 승엽 맞아요? 저 고도에서 왔어요.’ 얘기해 주세요. 중대 친구들 중에 술 좋아하는 애가 별로 없습니다. 같이 술 친구 합시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인 이성복의 「그 여름의 끝」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행이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입니다. 재수 시절 항상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절망이 ‘장난’처럼 끝날까. 그토록 괴로웠던 절망인데. 대학 합격하고 나니 알겠더군요. 정말 장난처럼 끝납니다. 그간의 고통이, 절망이, 외로움이, 15kg가, 흰 머리가, 다 한여름 밤의 꿈 같고 애기들 장난 같습니다. 샤베트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입시의 고통을 잘 견뎌내어, 장난 같이 절망이 끝나는 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p.s (저 잘하면 다시 고도 학원 갈 수도 있습니다. 종강해서 여름 방학 동안 고도에서 시를 좀 배우고 싶은데, 아직 원장선생님한테 답장은 못 받았습니다. 선생님 이거 보시면 연락 좀 주세요. 시 배우고 싶어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