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피아노-조윤영
피아노 연습을 하기 싫어하던 내가 악보를 펼치게 된 이유.그 애한테 피아노 연주 소리를 들려주고싶었다.
나에게 피아노 연습은 지루하고 재미없던 시간이었다.그래서 학원을 다니는 동안 연습실(방) 안에서 쉽고 내가 능숙하게 칠 수 있는 '비행기' 곡만 쳤다.
그렇게 내 (연습)시간을 버렸다. 학원과 공부 때문에 학원을 끊은 후 피아노에 대한 관심과 흥미도 끊겼다. 그러다 중학교2학년 체육시간 때 강당에서 자유시간을 가진 후 나의 마음이 바뀌게 되었다. 나무를 인사하게 만들었던 바람이 이젠 나무를 춤을 추게 만드는 4월,조금 서늘해진 공기에 아이들은 짧아진 패딩을 입고 장갑대신 핫팩을 귀마개 대신 목도리를 맸다. 마스크 의무제도가 끝난지 몇개월이 지났지만 곳곳에 몇명 빼고는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학기가 시작된지 1개월이 지났다. "정예영, 비켜~나 안경 놓아야 돼" " 알겠수다. 너 근데 시력 안좋은데 왜 안경 안 쓰고 다녀?" "안경 쓰는거 안좋아해. 안예쁘잖아~" 대부분의 아이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종 치기 6분전, 아이들이 강당으로 가고 있었다. 체육 시간 강당에선 남색 체육복을 입은 여자애들 여럿이 무대에 걸터 앉아 수행평가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한 송이 포도에 알알이 맺힌 포도알들 같았다. "어? 저기 피아노 있다." 피아노 발견에 힌명한명 포도알들이 떼지듯 움직였다. 그 중 한명이 자리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 애의 손가락을 따라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나는 애들이 떠드는 소리보다 피아노 선율이 강당을 채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따스한 햇살이 창을 타고 피아노 뚜껑을 비췄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봤다. 그러다 내 시선에 그 애가 들어왔다. 내가 짝사랑하고 있는 김이겸. 피아노를 보고 있는건지, 연주하는 아이를 보고 있는건지 정확히 모르겠는 그 애의 시선이. 이겸이의 눈빛은 볼 수 없었지만 시선은 볼 수 있었다. 친구와 무대에 끝자락에 앉아있던 이겸이는 시선을 고정한 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감상하는 건지, 연주자를 보는건지 모른다. 그 때 내 깊숙한 곳이 쩌릿해지면서 고개가 돌려지지 않앗다. 눈가가 안약을 넣은 것 처럼 반짝거렸다. 귀에선 감성적인 클래식과 영화ost이 맴돌있다. 노래를 탓을 했다. '노래가 감성적이라서 그런가 뭉클하네'
생각이 끊나자마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고개를 올리고 눈동자를 한번 위로 올렸다가 감았다. 잠시 후, 선생님꼐서 들어오셨고 가로로 4줄씩 서 준비 운동을 했다. 다들 체육부장을 따라하며 구호를 외쳤다. 준비운동을 끝맞친 후 수행 전 마지막 연습시간을 가졌다. 다들 머리에 찌찍이 밴드를 두르고, 얇은 고무줄 끝에 달린 공을 주먹을 치는 리플렉스볼 수행평가가 한창이였다. 툭 치며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피하느라 잘하는 몇몇을 빼고는 강당 여기저기엔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피하는 아이들이 난무했다. 정해진 10분이 지나고 1번부터 순서대로 수행평가가 시작됬다. 중간 번호인 나는 친구들과 구석에 모여 앉아 떠들었다. 수행평가가 끊난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오면 다시 하나 둘 씩 평가를 보러 자리를 일어났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자리에는 별 시원치않은 사소한 얘기들이 오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왁자지껄 떠들다가 선생님께 한 소리 듣고 조용해 지나 했더니 분침이 한바퀴를 다 돌기도 전에 다시 말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31번까지 수행평가 다 봤다. 이제 자유시간 가져라" 선생님에 말씀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나도 같이 그 소리에 껴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이겸이는 아까와 같이 친구랑 무대 끝자락에서 벽을 기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겸이의 눈길을 한번 받기 위해 피아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금새 부끄러움이 몰려 왔다. 내 피아노 실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람이 여럿있으면 시선이 분산될 것 같은 생각에 난 예영의 팔을 잡아 피아노로 향했다. 예영이는 순순히 따라와주었다.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려놓고 연주 할 곡을 생각해봤다.
'역시나 내가 칠 수 있는 곡은 비행기 뿐이네.' 그 생각에 잠시 위축됬지만 이겸이한테 눈길 한번 받는게 더 좋았던 나는 건반 위에 올려져 있던 손에 힘을 주어 소리를 냈다. 짤고쉬웠던 곡이 끝나고
민망함에 친구를 바라봤다. 예영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3초간 서로를 응시했다. 예영는 내가 그 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에 걔가 나를 바라봤는지 말을 해주길 바랬다. "왜? 뭐 할 말있어? 다 쳤으면 나도 연주할래" 나는 차마 이겸이가 나를 봤는지 물어볼 수 없었다. 부끄러움이란 자물쇠에 내 입이 잠겨졌기 때문이다.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이겸이를 확인했다. 여전히 땅만 보며
친구와 대화 중이였다. 예영의 손이 건반에 올라가자 연주가 시작되었다. '물에 빠진 나이프다'친구는 영화ost 코우를 쫓아라는 곡을 연주했다. 예영의 연주를 감상하면서 걔도 감상하고 있나 궁금해져
눈동자만 돌렸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보지말걸'
이겸이는 어느새 대화를 마치고 고개를 올려
예영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걔의 얼굴을 보고나선 연주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행동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바로 고개를 돌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를 감상했는지. 연주가 끝난 예영이를 따라 무대에서 내려와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집에 가서 연습해야겠다. 유치한 곡말고
애들처럼 입에서 오 소리가 나올 곡을 연주하면 내가 주목받겠지?'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면서 어떤 곡이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연습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집에 와서 짐을 풀고 바로 피아노 앞에 섰다. 누구의 강요없이 내가 연습하고 싶어 악보를 찾고 건반을 눌렀다.
악보를 보며 건반 하나하나를 눌렀고 연습은 하루도 빠지지않고 3주간 연습했다. 학교 창문을 열면 조금은 따뜻해진 공기가 볼을 스쳐 들어와
반 안에서 빙빙 돈다. 조회,영어,역사가 끝나고 드디어 기달리던 3교시 체육시간이 왔다. 시험이 끝났기에 선생님께서 자유시간을 주셨다. 연주를 하고싶은데 혼자 가기엔 아직도 쑥스러워
나별이와 같이 무대에 올랐다. 이겸이는 여전히
무대 끝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의자에 앉아 건반에 손을 올렸다. 긴장은
안됐다. 막힘없이 소리를 냈다. 연주가 끝나니 나별이가 나의 어깨를 여러대 치며
놀란듯 입을 열었다. "야 김이겸이 너 쳐다봤어! 너 연주하는거 봤어!!" "어? 뭐 진짜?? ㅎㅅㅎ" 그 말에 입꼬리가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내 스스로 만든 결과에 기뻤다.
002 졸업식 -조윤영
살이 베일것 같은 바람이 부는 겨울에 공식적으로 내 중학교 생활을 끝내는 날이 찾아왔다.
3년간 한번도 일어나 본적 없는
시간에 눈을 떴다. 얼굴과 치아를 닦고 보관만 해오던 학교 가디건을 첫게시했다. 마지막을 예쁘게 마무리하고 싶어 별로 없는 화장품을 꺼내 화장을 시작했다. 처음해본 화장에 피부는 하얗고 색조는 보이질 않아 얼굴이 달걀귀신처럼 되어있었다. 도저히 이렇게 갈 수 없어 오일로 얼굴을 문질러 닦았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방에 가서 기초를 다시했다. 그랬더니 일찍 일어난게 헛된 짓같이
시계가 12와8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선크림을 바르고 한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똥머리를
묶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정말 예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