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땅에서 그 무엇보다도 긴급한 것은 각성과 참회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역사들에는 이치와 순서들이 있는데 그러한 긴급이 심히 마땅하고 당연함은 본 교단을 위시해서 교계의 한 가운데에서, 또한 제일 위에서와 앞에서의 신앙 지도자들의 여러 모양의 성추문, 간음, 불법, 욕설 등과 같은 있을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생각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실상 믿지 않는 자들까지, 심지어는 이단, 사이비들까지도 잘 알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때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가장 앞서서 보란 듯이 정결과 거룩과 공의를 열정적으로 외치는 것만큼 외식과 모순과 위험은 더 있기 힘든 것이고, 조금만 따지고 봐도 자기 소견과 성향대로 함부로 정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목과 시간에 맞춰 하나님보다 위에 서는 것은 다른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 때의 바리새인과 맥이 닿고 결을 같이 하는 형태입니다..
현재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주 예수님께서는 하시지 않았던 언행들, 구주 예수님이시라면 결코 하시지 않을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무엇보다 모든 것들을 다 아시는 분이자 처음부터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있어서 정면으로 어긋나거나 오히려 가증스러움까지 될 수 있는 상황이 적지 아니 된 것으로 보이며,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속에서 모든 실제와 누림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 있어 하나님 나라와 부흥의 일들의 충만함과 강렬함들이 되게 하시는 준비와 여건들이 되는 대신 반대로 애통과 탄식들이 되시는 이유와 실상들이 더욱 많아 보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 이 땅과 이 세대의 정치, 사회, 경제, 국제 정세 속에서의 수많은 문제들이 바로 그와 같이 믿는 자들의 위선적인 불신앙과 죄악들, 하나님을 넘어서는 교만과 모순들로 인한 직간접적인 결과와 열매들인 경우들이 작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이유와 원인들로 인한 진노와 결과들에 있어서는 결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볼 수 있는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다른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자복하면서 죄악들, 온갖 불신앙과 세속과 악행들에서 돌이킴과 함께 제대로 된 말씀의 신앙을 최우선적으로 회복할 때, 좀 더 정확하게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 안에서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내 힘과 세상적인 능이 아닌 하늘의 힘과 은혜로 죄악들, 악한 세력들, 불신앙들 등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능히 극복하면서 순전한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더욱 치열해 지고 뜨거워지게 될 때 참으로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당장에라도 하실 수 있는 회복과 역전들, 이적과 흥왕들이 결코 작을 수 없을 것이고, 사실상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 부터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 센터 대표이사&대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행복카페교회
담임목사 양범주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21세기 두란노 서원 1부, 2부 통합/20260612>
*1부/고린도전서12장QT/20260610/21세기두란노서원/'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린도 전서12:12~20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등과 같이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파악할 수 있는 것이듯이 교회 공동체에 있어, 넓게는 하나님의 세계에 있어 하나됨이 중요하고, 그에 있어서는 몸의 지체들이 종종 비유로 쓰이곤 하는데..
실제로 몸의 각 지체들은 그 각각의 본질이나 수준, 가치, 역량 등의 차이가 아닌 역할의 차이인 것이고, 서로가 완전히 다름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조화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모든 교회 공동체에 있어, 더 나아가 전체적인 하나님의 세계에 있어 전적인 중심, 근본,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서도 그 이치와 원리와 실제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는 것이고, 결코 다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특히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창조하실 때 성부, 성자, 셩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좀 더 구체적이면서 실질적으로는 하나되심의 이치와 원리대로 하신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인데..
어쨌든 분명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 창조에 적용하심에 있어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하나됨은,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역할에 따른 하나됨은 모든 기본이자 전제이며 중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은 것이라면, 만에 하나라도 그와 같은 하나됨이 전제와 중심과 실제인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몸이나 교회 공동체의 원리 뿐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원리에 있어서도, 게다가 구약과 신약 성경 모든 곳들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다양한 교리와 신학과 복음적인 측면에서의 하나로 연결됨의 원리에 있어서도 말이 안 되거나 전반에 걸쳐 불일치가 되거나 셀 수도 없는 모순들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사람의 몸에 있어서 손이나 발, 눈은 서로가 다르지만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서로 섞이거나 부딪히지 않는 것이고, 오히려 다른 만큼 더욱 더 조화되며, 한편으로는 그 중요도와 높낮이와 우열에 있어 차이가 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다만 그 역할에 따라 온전하게 조화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있어서도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있다면 분명한 것은 서로 여러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원론적으로 볼 때 서로 간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사이인 것이며, 게다가 주님 안에서 잠시라도 서로 부딪혀서는 안 되는 것이고, 오히려 하나되기 까지 말씀대로 온전히 조화되어야 하는 것이며, 따지고 보면 근본적으로는 그 중요도나 높낮이, 우열에 있어 차이를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사실상 전적으로 그 역할에 따라 조화되고 하나되는 관계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러한 이해와 통찰의 연장선상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이고, 사실 그러한 삼위일체에 있어서는 사람의 몸으로 하는 비유가 제대로 된 해석에 그마나 많이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것이며, 실제로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기에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야 말로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아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많은 비유들 중에 사람의 얼굴의 눈, 코, 입으로 비유한 것이 그 중 가장 제대로인 것들 중 하나라고 나름 분별하고 있는데 곧 무더운 여름날 어머니께서 상에 호박죽을 준비해 주시고 외출을 하셨는데 자고 일어나 배가 출출해서 먹으려고 할 때 가장 우선은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생각하며 결정하는 것이고,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입으로 먹음으로 인해 기운이 생기고 현실적인 에너지가 되는 것이나..
다만 동시에 그에 있어 하나의 과정이 더 필요하다면 더운 날씨에 얼마든지 상할 수가 있기에 당장에 다른 방법과 별도의 통로가 없는 상태에서 그 자리에서 코로 냄새를 맡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으로 실상 그러한 음식 섭취라는 하나의 뜻, 목적을 이룸에 있어 눈과 입과 함께, 코 또한 동일한 역량으로 그 역할에 따라 온전히 조화되어 필수적인 연결과 통로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며, 그 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곤란하거나 적지 않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유사하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주권과 통치, 섭리와 인도라 하실 수 있는 것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대속과 대신, 길과 통로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성령님께서는 모든 실제와 나타남들, 누림과 경험들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이시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말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라고 증거되어 있고,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말 그대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모든 모양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실행하시고 맛보게 하심에 있어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진정 그와 같은 실제와 누림들에 있어서는 진정 하나님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도, 구주 예수님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도 아니신 것인데..
동시에 그렇듯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일들 하나하나에 있어서, 그리고 그에 있어서의 성령님으로 인한 실제와 누림들 하나하나에 있어서 반드시 그 전에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처음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면서 전적으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셔야 하고 그의 시간에만 가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덧붙여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서 또 다르게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 어떤 이가 길을 가다가 어린 아이를 물려고 하는 사나운 이리를 만났을 때 머리에서 생각과 판단과 대처와 관련해 결정함과 함께 온 몸으로, 특히 주먹으로 이리를 긴급하게 내리치면서 싸우는 것이고, 그때 사람의 몸에 있는 힘이 주먹을 통해 나와서 이리에게 타격이 되어 물리칠 수 있는 것인데 그러한 판단의 머리, 연결과 통로가 된 몸, 실질적인 에너지와 누림이 된 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른 하나되심과 많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사람과 관련해서 비유를 들면 이는 지난 5년여 동안 2500개 이상의 삼위일체 관련 글들을 대다수 교단들의 목회자들이 절반 이상이 포함된 15000인 이상의 다양한 SNS와 그룹과 홈페이지 등에 공유해 온 삼위일체 센터 대로로서의 제가 아는 한 현재까지 공유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서의 모든 비유들 중 원래의 의미와 이치에 가장 가까워 보인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람에 있어서의 영과 육과 혼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 잘 알 수 있게 한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람의 영의 정확한 의미는 그냥 영이 아니라 생령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단순하게 말해 대체로 사람의 혼은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하는 역할인 것이고, 몸은 그러한 혼의 모든 일들에 있어서의 연결과 통로와 방법이 되는 것이며, 영은 살아 있는 힘, 생명력, 역동성의 원천이자 실제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한 영육혼의 온전한 조화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와 인도의 하나님 아버지, 모든 대속과 대신과 길과 통로의 구주 예수님, 모든 실제와 나타남과 누림과 경험의 보혜사 성령님의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른 조화에 더 많이 근접해 보인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모든 이치와 원리와 실제들에 있어서 몇 가지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우선 그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한 조화 및 완전한 하나됨이 가능하실 수 있는 것은 각 위격이 모두 같은 하나님이시기에, 곧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구주 예수님께서도, 성령님께서도 그 자체가 모두 하나님이시고 하나님 만큼이시기에, 참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은 다르시지만 하나님만큼의 본성, 본질, 수준, 역량, 비중이시기에 모든 하나되심, 대등하고 합당한 하나되심이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이고, 뿐만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자체부터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인 것이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며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라는 사실인 것이며..
특히 본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며,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이기에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과 기뻐 역사하심에 있어 모든 전제와 기준과 관건과 통로라는 사실인 것이고,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과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다양한 구원의 일과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역전과 기적과 부흥들에 있어서, 참으로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 생생하심과 강렬하심과 풍성하심에 있어서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고린도전서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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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페북두란노서원66' 중 누가복음 파트/20260610/21세기두란노서원/'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누가복음10: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조금만 통찰해 봐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을 친히 보이시고, 절대 진리이자 절대 의이며 완벽한 선이자 완벽한 하나님의 법인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경험케 해 주셨으며, 무엇보다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심으로 인해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믿음과 함께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며,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말씀의 백성으로 전적으로 뒤바뀔 수 있는 길과 방법이 되어 주신 구주 예수님이신 것이기에..
참으로 그 예수님께서 모든 인생들을 향해서,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면서 간절히 바라시는 것이고 절대적으로 뜻하시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신앙인 것이자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에 합당한 삶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 누구라도, 진정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도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완전한 말씀을 보이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과 같이 완벽하게 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은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곧 좀 더 정확하게는 말씀대로의 결단과 간구와 몸부림과 치열함들 가운데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더욱 생생하게 일하시는 것이고, 게다가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함께 하는 믿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수 없는 것이고 실상은 그 이상으로 응답하시는 것이며, 심지어는 기도하기도 전에 아시고 그 앞길을 예비하시며 친히 인도하시곤 하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의 간구에 있어서야 말로 합당하고 또 합당한 것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는 말씀의 신앙과 함께 생생하고 강렬하게 되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일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사실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구원에 참예케 되었다는 것 그 자체부터가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이자 말씀의 나라인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 영적으로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가 아니라 말씀의 친백성으로 완전히 뒤바뀌고 전적으로 거듭나게 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은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신 것이라 여러 가지 견해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긴 하겠지만 강도당해서 죽어 가던 자를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은 당시 겉으로는 자타공인 가장 큰 믿음과 신앙의 사람들로 보였고 인정되었을지는 몰라도, 특히 말씀과 기도와 찬미와 경배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이고 대단해 보이는 위치와 직분들에 있었던 것임도 분명한 사실이나 실은 그 속에서 제대로 된 말씀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진정하거나 성숙된 믿음도 아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다시 말해 참으로 하나님께는 인정받을 수 있는 신앙부터가 아닌 것이었을 뿐 아니라 복음과도 관계가 아예 없거나 아니면 만일 있다면 따지고 보면 아직은 아이와 같은 어린 신앙 정도들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당연히 말씀과의 거리만큼 그들의 기도들에 있어서도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열납이나 응답들이 실제하거나 생생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러한 사실이 참으로 마땅하고 당연할 수밖에 없음은 다시 한 번 더 반복하면 십자가 붙잡고 의지하면서 바로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분, 곧 구주 예수님부터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에 말씀과 관계없는 기도와 믿음들이, 좀 더 정확하게는 예수님께서도 드러내셨듯이 중심이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과 외식이 가득하며 특히 행함의 측면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지 그 자신이 내세우는 신앙과 아예 관계없거나 완전히 분리되거나 전적으로 별개인 기도와 믿음들마다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한 하나님 아버지께 있어서의 열납들이나 응답들에 결코 합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으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제와 응답과 경험들이 되게 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공을 넘어 하나하나 모두 실제로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기에 그렇듯 제대로 된 말씀의 신앙이 아닌 자들의 기도들이나 경배들에 결코 기뻐하시면서 직접적, 경험적으로 생생하게 누리고 충만하게 역사해 주실 리도 없는 것이며, 그 전에 다시 한 번 좀 더 구체적으로 강조하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여러 모양의 기도들을 주권적으로 들으시고 열납하시면서 온갖 모양으로 역사하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믿음, 제대로 된 신앙과 오히려 반대였던 아래 본문의 비유에 등장하는 그 당시의 제사장이나 레위인 등에 있어 종종 그들의 외식과 위선들을 책망하신 것이며, 더 나아가 굳이 이러한 비유까지 하신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 아래 본문과 같은 예수님의 비유 중심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인해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외형적으로는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일 뿐 아니라 당시에 실제로 심히 천대당하는 위치에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인식이나 통념 상 믿음이나 신앙과도 많이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었던 실상과 현실들 한가운데 있는 자였다고는 하더라도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그러한 외형적인 면이나 상황들 등은 조금도 중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면서 게다가 주님의 기뻐 역사하심들에 있어서도 그 어떤 제한도 될 수도 없는 것임이 분명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더군다나 앞의 제사장이나 레위인과는 반대로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좀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 까지의 행함이 있는 순전하고 제대로 된 믿음은 외형과 신분과 선입견 등을 떠나 다른 누구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예수님을 온전히 닮은 것으로 진정 자신의 시간과 물질들, 부담과 손해들 등을 감수했을 뿐 아니라 그 이상의 긍휼과 진심들, 정성과 섬김들 등을 아끼지 않음과 같은 진정하고 깊으며 치열하고 견고한 말씀의 신앙이었던 것이고, 참으로 그러한 믿음이야 말로 그 사마리아인 자체에 있어서의 모든 형편과 상황들, 어려움과 난제들, 제한과 한계들을 넘어, 아니 사실상 그러한 것들은 처음부터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상관이나 막힘이나 흠이 될 수 없었던 것으로 어쨌든 실상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며 내세우시고 강조하시는 믿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오늘날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도전과 감동들, 열매와 영향력들이 되게 하시는 등과 같이 진정한 믿음의 본이자 모델로 제시해 주시기까지 할 정도의 참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일반적으로는 신실한 심령과 정결한 영성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꼭 그렇게 실천할 상황이나 타이밍은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또는 실질적, 현실적으로 그 정도로 대단해 보이는 믿음이기보다는 겨우 겨자씨 정도의 믿음 밖에 안 되는 정도라고 해도 어쨌든 그 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주야로 읽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보통 믿음이 아닌 것이고, 결코 작은 힘과 은혜와 복들이 예비됨인 것임이 아닌 것이 분명하나..
그렇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의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허락하시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떤 식으로든지, 얼마만큼이든지,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간에 진정으로 말씀대로 실천하고 실행하는 것까지가 진실한 믿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받으시며 기뻐하시는 최고와 최대의 믿음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임을, 사실은 잘 분별하고 통찰해 보면 참으로 믿음이라는 것이 결코 애초부터 그러한 실천적 측면과 아예 분리되거나 별개일 수 없는 것임을 주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명료하고 선명하게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그 정도까지 대단하고 견고하며 엄청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따라 돕고 대처하며 실천할 수 있는 여러 모양의 방법과 경우와 정도와 분량들이 있을 것인데..
어쨌든 참으로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행위와 분리되는 것이라든지 삶의 자리와 결코 동떨어지지는 않는 것이며, 사실상 날마다 순간마다, 또는 하나님께서 보이시고 주시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나라도 더, 한 번이라도 더 실천하며 때로는 좁은 길, 십자가의 길까지도 감수하는 말씀의 신앙, 몸부림들이야 말로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늘의 것들로 생생하게 하시는 좋은 믿음인 것임을 굳이 강조하시면서 정죄나 비교의 근거나 기준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목표와 정체성과 기도 제목이 바로 그러한 살아 있는 말씀의 믿음이어야 함을 알려 주고 싶으신 것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모든 실체와 중심을 보시는 분인 것으로 만일 그러한 믿음에 있어 행위나 실천을 보이고 나타낼 수 있는 상황이나 타이밍이 안 되었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전혀 그럴 수 있는 기회나 계기가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시대들 등 모든 것들을 뛰어넘고 초월하시어 얼마든지 그렇게 되었을 때를 감안하셔서 라도 아실 수 있는 분인 것이며, 좀 더 정확하게는 모든 시간과 공간들, 상황과 형편들, 한계와 제한들을 초월해 중심을 완벽하게 보시면서 어떤 식으로든 행함과 실천이 분리되지 않고 얼마만큼 이든지 간에 포함되어 있는 믿음인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 이상, 상상 이상으로 확실하게 다 아시면서 선악 간 행하시고 판결하시며 심판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실제로 바로 그와 같은 온전하고 제대로 된 믿음 가운데에야 말로 요셉이나 다니엘, 베드로, 바울 등과 같이 오직 말씀대로 사모하고 행하면서 진정 말씀에 살고 죽은 믿음의 선배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것이듯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와 응답과 역사들로 채우시는지를, 곧 다름 아니라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생명조차 아끼지 않았던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행함이 있는 믿음과 함께..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얼마나 생생하고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어느 정도로까지 기뻐하시고 풍성하게 역사하시는지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직간접적으로 연결됨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약속하시고 있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성경 전체와 더불어 증거가 되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연결 선상에서 다시 한 번 결론적으로 부연하면 사실 근본적으로 말씀 그 자체이시자 말씀으로 존재, 창조, 인도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로 정직한 말씀의 신앙인가를 보시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행함이 포함된, 진정 어떤 식으로든 결코 행함과 분리되지 않는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그 믿음과 중심을 정확하게 아시고 구별, 판별하시는 것이며, 더 나아가 바로 그러한 제대로 된 말씀의 신앙을 가장 기뻐하시고 소중히 여기지 않으실 수 없고, 그와 같은 말씀의 신앙에 선 믿음의 기도들에 어떤 식으로든 생생하고 강력한 응답들이 없기가 힘든 것이며..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 믿음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복과 부흥들 등이 갈수록 차고 넘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 한참 뒤에 이어지는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라고 증거된 예수님의 우려처럼 그와 같은 진실한 믿음들은 갈수록 보기 힘들고 복음의 능력들을 생각 이상으로 많이 놓치고 있는 이 세대에서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한 부분들, 한 순간들에서부터 말씀을 사모하고 갈망하며 말씀대로 몸부림쳐 나가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하고, 한편으로는 오늘 본문의 비유에서와 같은 사마리아인의 신앙은 가장 모범적이며 은혜가 되고 복된 것이면서도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험한 세상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결코 쉬울 수만은 없는 믿음인 것인데..
그렇기에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늘의 힘을 갈망하며 몸부림쳐 나가고 성화되어져 감에 있어 푯대와 목적지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렇지 못한 자신을 수시로 정죄하거나 자책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방하는 사례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보다는 특히 다른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부터 자신의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가장 우선해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조금씩이라도 더 죄악들과 싸우면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고 실천해 나가는 말씀의 결단들, 곧 어떤 식으로든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으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며 어떤 면에서는 긴급하고 절실하며 절대적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갈수록 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직접적인 하늘의 힘과 은혜들, 또한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을 누리고 경험하며 풍성케 되는 것이 그러한 진정한 말씀의 신앙, 주님께서 더욱 기뻐하시는 장성한 믿음의 분량의 실제와 성취에 있어 실질적인 과제와 과정들인 것이자 더욱 더 가깝게 하고 증진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사실상 잘 헤아려 보면 우리의 그러한 몸부림들이 혹 겨자씨 한 알만큼이나 오병이어 정도 밖에 안 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단 하나도 모르시지 않는 것이고, 게다가 주님의 역사와 계획들에 있어서도 결코 작은 쓰임인 것일 수가 없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더더욱 분명한 사실은 우리 자신의 힘이나 의, 세상적인 능력이나 방법들로는 그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믿음이 되는 것이 아예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는다면 그 누구라도 결코 불가능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는 꼭 그렇게 대단한 사안들 뿐 아니라 실상은 크고 작은 모든 일들, 모든 제목들이 하나하나 모두 다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면서 그와 함께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야 하는 일들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사실 바로 그러한 자들만이 매사에 자신의 힘이나 세상적 능력으로 살면서 마치 자기가 다 한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 찬미도 제대로 못할 뿐만 아니라 종종 버거워 하고 걸려 넘어지곤 하는 허약하고 위태한 신앙이 아닌 반대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순간순간에 있어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은혜로 살면서 더욱 더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올려 드리는 아름답고 복된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10: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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