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시편51편QT/20260617/21세기두란노서원/'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51:
작성자루아흐작성시간26.06.17조회수33 목록 댓글 0<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의 '21세기 두란노 서원 1부/20260617>
*1부/시편51편QT/20260617/21세기두란노서원/'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다윗이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했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래의 본문 말씀 자체가 다윗이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기도한 것인데 어떠한 방법이었고, 어떻게 가능했냐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구약과 신약, 오늘 이 시대, 세상 끝 날, 영생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에 걸쳐 구원자은 오직 한 분 예수님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 있어서도 그러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는 오직 예수님으로 나아갈 수 있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으며, 오직 예수님 이름으로만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모든 구원의 일들에 있어, 실상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가능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과 방법, 곧 말 그대로 유일한 구원자는 그 어떠한 때에든지 오직 한 분 예수님 외에는 달리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래 본문에서 증거되어 있는 다윗의 기도에 있어 자세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더라도 다윗은 하나님 아버지께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올려 드린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전에 그러한 다윗이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자인 것이기에 이와 같은 기도가 가능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대선배일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러한 이신칭의의 구원부터도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과 방법, 다른 구원자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 그러한 여러 모양의 구원의 일들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한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오실 메시야는 오늘 이 시대의 우리들이 믿고 의지하고 있는 구주 예수님과 비교해 볼 때 모양과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어 보일 수 있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분, 같은 예수님이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 시대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의 온갖 모양의 구원의 실제들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을 준비하시면서 구약 성경 여기저기에 온갖 모양과 방법과 형태들로 포함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아벨에 있어서의 첫 양 새끼와 기름으로 올려 드린 희생 제사, 구약 시대 전반에 걸쳐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특히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할례, 회막, 지성소, 제사장, 사사, 선지자, 왕,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멜기세덱, 성전 등인 것으로 그 하나하나마다 구주 예수님의 예표와 모형과 상징과 계시 등의 역할과 통로로서 예수님과 직결될 수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시대에 있어서도, 모든 믿음의 선배들에 있어서도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외에 다른 구원자, 다른 구원의 길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아예 다른 여지조차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이치와 실제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근거는 십자가에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 그 자체가 모든 것들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이시고, 따지고 보면 그러한 구원이 하나님 만큼인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곧 구주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며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고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모든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있어 유일한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렇듯 하나님 만큼이신 그 목숨값으로 모든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뛰어넘고 초월하시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래 본문에서의 다윗 뿐 아니라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 더 나아가 십자가 이후 대략 2000년이나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에 있어서도 모든 것들을 초월해서 온갖 모양의 구원의 일들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포함되고 직결될 수 있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복이자 상상 이상의 능력인 것으로 원론적으로는 하나님만큼의 구원의 일들이 약속되어 있는 것이고, 예비되어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원자이신 그러한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모든 구원의 일들마다,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조금만 따지고 봐도 예수님 단독이신 것은 아닌 것으로 그 전에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자 반드시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셔야 하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에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기에..
더군다나 동시에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서 생생히 나타날 수 있고 강렬하게 경험케 될 수 있는 것이기에 좀 더 넓게 통찰해 보면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의 기도 한 번에 있어 원론적으로는 하나님 자체이신 구주 예수님 목숨값 만큼인 것일 뿐 아니라 거기에 플러스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상상도 못할 사랑과 계획만큼, 또한 더 플러스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만큼, 진정 근원적으로 볼 때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는 만큼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통찰해 봐도 삼위일체라는 존재와 개념 자체부터가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일 수 없는 반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고 완전히 하나되어 한 뜻을 이루는 의미인 것입니다..
물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뜻과 섭리, 계획과 시간에 따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도 구약의 때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달리 참과 원형에 비해 모형과 그림자라 할 수 있는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 것과 같이, 또한 성령님의 역사에 있어서도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 이후부터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보편적으로 임재 및 내주하셨고 때로는 불길 같이 임하시고 진동하듯 하시면서 그 어떠한 시대들보다 더더욱 강렬하셨던 것과 달리 구약의 때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그렇게 전반적으로 보편적이었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특정한 때에, 특정한 자들에게, 특정한 목적에 따라, 특정한 시간 동안, 특정한 강도 정도로 그렇게 하신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 및 성령님의 역사에 있어 모양과 방식과 강도에 있어서는 시대에 따라, 특히 구약의 때와 신약의 때에 있어서는 차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약의 때에든지 신약의 때에든지 어쨌든지 간에 모든 시대들에 걸쳐서 단 하나, 단 한 번, 단 한 순간도 예외 없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그대로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전적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하나되시어 역사하신다는 것이며, 당연히 오늘 이 시대,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있어서도 그러한 이치와 역사와 실제는 조금도 다를 수 없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아무렇게나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조건 생생한 역사들이 있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 만큼의 역사들이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닌 것인데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며, 성령님께서도 말씀의 영이신 분이고,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들을 실행하시면서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믿음이 모든 근본과 중요와 긴급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곧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하나님의 세계, 구원의 세계에 있어서, 기도 응답 한 번에 있어서 까지의 생생함과 강렬함과 풍성함들에 있어 모든 기준과 관건과 방법인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실제로 성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기이한 응답과 역전과 흥왕들에 있어 모든 공통점은 믿음, 참으로 말씀대로의 믿음이었던 것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며, 사실상 그렇지 않고 죄악 가운데 있는 믿음의 백성들에 있어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더 이상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그 당사자가 원하는 응답이나 강력한 하늘의 역사 대신 오히려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을 보게 되고, 그에 있어서는 다윗과 솔로몬 같은 믿음의 대선배들에 있어서까지도 예외가 아니셨던 것으로 아무리 그렇게나 대단한 자들이었다고 하더라도 죄악들의 때에서 조차 계속해서 변함없이 생생하고 풍성한 응답과 복과 형통들을 예비하시고 허락하시며 누리게 하셨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며,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 이상의 곤고와 징계들이 넘쳤던 것을 잘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편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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