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2026. 06. 10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 1열왕기 18,20-39 마태오 5,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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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자세히 보면 기존 율법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목적을 이루려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구약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이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무너뜨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 본디 의미를 끝까지 찾아,
목적지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율법을 ‘완성하신다’는 말씀은
‘참된 의미를 밝힌다’는 뜻으로,
율법을 철저히 따르거나 빈틈없이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가 뜻하고 의도하는 바를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율법의 규범과 실천은 늘 그대로 이어 오지만,
더 이상 형식적으로 되풀이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고,
율법은 예수님을 통하여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18 참조).
그러나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5,18)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이는 희생 제사와 관련된 율법들처럼 율법의 어떤 규정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완전히 이루어져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처럼 어떤 규정들은 그분과 함께,
그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됨을 뜻합니다.
신앙인은 율법의 본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유연성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어기든 지키든,
누구나 하늘 나라를 향하여 있음을 분명히 하십니다(5,19 참조).
율법은 단죄의 도구가 아니라 하늘 나라로 초대하고자 하는
하느님 자비의 도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삶의 질서이며,
그 질서는 예수님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의 논리로 다시 정리됩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하지만,
율법을 어기는 이에게도 율법의 이름으로
사랑과 연민과 자비를 전하였으면 합니다.
ㅡ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ㅡ
최정훈 바오로 신부
2026. 06. 10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 1열왕기 18,20-39 마태오 5,17-19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으며,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르십니다.
우리는 율법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게 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는 규칙과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율법주의’를 비난하셨지 ‘율법’ 자체를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율법의 참된 의미와 목적은 뒤로 한 채 조항을
지키는 것 자체에서만 의미를 찾고 그로써 하느님께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율법주의는 두려움과 편협함과
완고함을 낳을 뿐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 없음’도 경계하십니다.
‘율법의 폐지’를 바라는 사람들은 법은 필요 없고,
사랑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은 법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곧 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유명한 문장인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가 그러한 뜻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하는 사람이,
사랑으로 말미암은 사랑의 법을 꺼리고
거기에 자신이 얽매여 있다고 여긴다면,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자신 안에 사랑이 없으면서도,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자기만족에 기울게 됩니다.
이기적인 자아 추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화하면서
율법을 없애 버리려 하는 것입니다(『울림』, 200-204면 참조).
우리는 규정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율법주의’와
내적인 기준을 없애고 무분별한 자유를 바라는
‘율법 없음’을 모두 경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율법의 참의미’를 깨닫고,
이를 지키는 율법의 완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ㅡ 서울대교구 최정훈 바오로 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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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
ㅡ ' K 순례자 ' 편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