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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2026. 06. 11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작성자베드로아저씨|작성시간26.06.10|조회수15 목록 댓글 0

이성근 사바 신부

 

2026. 06. 11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2코린토  3,15─4,1.3-6     마태오 5,20ㄴ-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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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고는

모세가 하느님께 받은 십계명 가운데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보기로 드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짐승과 풀과 곡식을 음식으로 주셨지만,

인간의 생명은 범할 수 없는 하느님의 소유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창세기 9장 6절)는 율법이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 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죽음에는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는 과거의 원칙, 

그 공평한 균형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습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상대방에게 온갖 해악이 끼쳐지기를 바랍니다.

남을 혐오하고 경멸하고 배척하는 마음을 곧 살인과 비교하고,

정신적인 살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분노에서 상대방에 대한 독설이 나옵니다.

멍청이라고 하는 자와 바보라고 하는 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화를 내면서 자기 형제를 욕하거나 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자는, 

누구나 살인자와 같다는 말씀이고, 

중앙 법정에 넘겨지거나 불붙는 지옥이란 하느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신앙 공동체로서 살려면 증오와 적개심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장애물입니다.

그것을 정신적인 살인으로 여기시는 주님의 뜻을 되새기며,

어렵더라도 용서와 화해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ㅡ  성 분도회 왜관수도원 이성근 사바 신부  ㅡ

 

 

박형순 바오로 신부

 

2026. 06. 11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2코린토  3,15─4,1.3-6     마태오 5,20ㄴ-26 )  

 

 

한번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과

비교된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의로움이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것들은 형식적이라 하더라도 

착실하게 지키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의로움이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좌절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의로움은

계명 그 자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로움이 커지는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단순하게 살인하면 안 된다는 계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형제들에게 성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욕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물 봉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물을 봉헌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이웃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의로움을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입니다.

럼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지키면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형제와 이웃들을 향해서

욕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고,

 

성당에서 예물과 우리의 마음을 봉헌하면서도

원한 품은 사람들과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의 의로움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다 부족한 것일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하늘 나라는

도달할 수 없는 장소일까요? 

 

지금 우리의 의로움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보다 부족할 수 있습니다.

 

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우리의 시선을 계명 그 자체가 아닌

우리 주변의 형제들에게 두어야 한다는

사실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ㅡ  인천교구 박형순 바오로 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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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

 

ㅡ ' K 순례자 ' 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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