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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2026. 06. 14 / 연중 제11주일

작성자베드로아저씨|작성시간26.06.13|조회수21 목록 댓글 1

윤용선 바오로 신부

 

2026. 06. 14

연중 제11주일

( 탈출기 19,2-6ㄱ   로마 5,6-11   마태오 9,36-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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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기준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 선발에 있어서 왜 그런 사람들을 뽑으셨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이 우리의 일반적 기준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선택받은 이들은 대부분 무식한 어부들이었고,

항간에 소문이 안 좋았던 세리 마태오도 있었으며,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뤄 보려던 열혈당원 시몬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런 사람들을 뽑으셨을까요?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은 주님의 뜻을 삶의 가장 앞자리에 두는 사람

그리고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선발하신 그들을 당신 가까이 두셨고,

그들에게 권한과 사명을 주시며 길 잃은 양들을 향해

그들을 파견하셨습니다.(마태 10,1.6-8 참조)

 

선발된 그들은 각자의 이름이 성경에 남겨질 정도로(마태 10,2-4 참조)

소중한 이들로서 맡은 몫을 수행했습니다.

실상,

그들 대부분은 부족함 가운데서도 죽기까지 주님의 뜻에 충실했으며,

자신이 부족할수록 주님께 더 의탁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이사 55,8 참조)는 성경 말씀은

예수님의 선발 기준에서도 드러나고 있고,

주님의 생각은 옳았습니다.

 

만약,

우리의 생각대로 제자들이 선발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

주님을 따르려던 이들은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 떠났을 것이며,(마태 19,22; 요한 6,66 참조)

 

복음은 선포되지 못하고

지상 교회가 세워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우리 각자를 통해서도 지속됩니다.

그런데 현실을 봅시다.

 

주님 밭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는 이들은 많지만,

자신의 기준에 따라 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이유로

잘 응답하지 않습니다.(마태 9,37참조)

 

다른 한편,

다양한 자리에서 기꺼이 응답하는 교회의 일꾼(봉사자)들에 대해서는,

일부 신자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함으로써

결국 어떤 이는 교회를 떠나게 되는 마음 아픈 일도 생깁니다.

 

바라건대,

예수님의 부르심과 그 선발 기준이 우리에게 기억되고 존중되며

구현(具現)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는 나부터

기쁘게 응답하는 삶이 된다면 더 좋겠습니다.

 

ㅡ  부산교구 윤용선 바오로 신부  ㅡ

 

정정원 마론 신부

 

2026. 06. 14

연중 제11주일

( 탈출기 19,2-6ㄱ   로마 5,6-11   마태오 9,36-10,8 )

 

제자 공동체

 

'모든 형제들' 에서 보편적 형제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경향들을 지적합니다.

 

공격적인 민족주의,

새로운 형태의 이기주의,

세계화, 버리는 문화(낙태, 장애인, 음식, 노인, 실업,인종차별),

전쟁과 테러, 무관심, 자기 행복에 대한 지나친 집착,

피조물에 대한 폭력, 열광적인 소비주의, 무관심,

디지털의 개인주의 확대와 공격성 등.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희망의 씨앗을 계속 뿌려주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며 희망의 길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돈이 새로운 우상(복음의 기쁨 55항)이 되어버린 세상.

자기중심주의와 버리는 문화에 익숙해진

우리의 신앙생활은 ‘제자로 살기’보다는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아닌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교회의 쇄신을 위한 토론보다는

편안하고 안락한 신자 생활을 위한 민원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하나의 가톨릭교회인데도 관할구역 본당 공동체보다는

내 취향에 따라 본당 공동체를 선택하는 소비자적 신앙이

합리화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희망을 잃고 기가 꺾인 채 절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사람들을 청하고,

부르고, 파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권한을 제자들에게 맡기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세상에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곧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는 성찬례 중에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듣습니다.

 

“(빵과 잔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나이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기 위해 모인 교우들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자신의 안위와 안락함과

편안함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을 품고 세상의 복음화(보편적 형제애)를 위해

파견된 제자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제들의 나라와

거룩한 민족이 되도록 불러주셨고(탈출 19, 6 참조),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하는(로마 5,11 참조) 제자들입니다.

 

 

ㅡ  광주대교구 정정원 마론 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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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

 

ㅡ ' K 순례자 ' 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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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베드로아저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3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기 위해 모인 교우들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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