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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2026. 06. 15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작성자베드로아저씨|작성시간26.06.14|조회수18 목록 댓글 0

정황래 시몬 신부

 

2026. 06. 15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1열왕기 21,1ㄴ-16   마태오 5,3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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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가장 현명하고도 공정한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이른바 ‘동태복수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이가 그것에 대해 보상을 하지 않거나 

그 피해자와 화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경우, 

피해를 입은 사람이 그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똑같은 형태로

보복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바로 이 ‘동태복수법’이라는 법이었습니다.

 

이 ‘동태복수법’은 기원전 450년경의 로마법의 모체인

열 두 개의 동판에 새겨진 법조문에서 공식적으로 처음 등장하지만, 

이미 그 이전 시대의 고대 사회의 수많은 법 규정에서 그와 유사한

내용들이 발견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당시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적용된 법의 집행 방법이 바로

‘동태복수법’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성서에서 드러나는 ‘동태복수법’은 어긋난 하느님의

정의를 회복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 ‘복수’는 악을 악으로 무찌르고, 

하느님의 정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의 복수는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확대,

적용되어 집행되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수’는 정의의 궁극적인 실현자인 하느님께

속한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동태복수법’의 근본취지는 하느님의 정의에 어긋난

행위를 한 이에게 그의 행실대로 똑같이 갚아주어 깨어진

하느님의 정의를 회복하고, 

하느님의 정의의 참된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었기에,

이 법은 사전에 범죄를 예방하는 ‘함께함의 법’이었고,

 

또 상대방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것 이상으로 보복하여 이른바

‘복수’의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것을 막는 ‘정의의 법’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법은 ‘함께함’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잃어버린 채,

결국 범죄의 악순환만을 불러 올 뿐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 법의 완전한 폐기를 강력히 선언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고, 

네 속옷을 가지려거든 겉옷까지 내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정의를 

올바르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을 내어놓으며 

용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용서’라는 말을 곰곰이 살펴보면,

 ‘얼굴을 헤아리다’, 또는 ‘얼굴을 밝게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누군가를 ‘용서 한다’는 것,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살피고 헤아린다’는 것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용서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더욱 더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고,

서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으로 용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용서’는 용서를 받는 사람,

용서를 하는 사람 모두의 얼굴을 밝게 해 줄 것입니다.

 

단순히 나한테 죄지은 사람,

잘못한 사람에게 똑같이 복수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의 얼굴을 밝게 해 주는

‘용서’는 분명히 우리 모두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를 올바르게 드러낼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 모두를 함께하게 해줍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를 함께 하도록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

스스로 먼저 잘못된 점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하느님의 정의를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서로를 위해 함께 기도드리도록 합시다.

  

ㅡ   대구대교구 정황래 시몬 신부  ㅡ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6. 06. 15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1열왕기 21,1ㄴ-16   마태오 5,38-42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동태 복수법으로 알려진 이 표현은

어찌 보면 가장 공정한 법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그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

화폐나 물건으로 그것을 교환하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처럼 말입니다.

 

“똑같이 되갚아 준다.”는 말이

섬뜩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똑같이만 갚아 준다면

잘못된 것은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같은 방법으로 갚아 주는 것은

폭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이 정당하지도 않고,

평화로운 방법도 아님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받은 상처는 크게 새기고,

자신이 입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처를 낫게 하는 것은 똑같은 상처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을 주고받아야만 공정한 계산이 되는 경제적,

법적 관념에서는 한없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사랑은 사랑을 낳고,

복수는 복수대로 확대 재생산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응답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계산기를 가지고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분께서 보여 주신 죄 없는 수난과 죽음의 모범에서

찾아야 합니다.

 

 

ㅡ  광주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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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

 

ㅡ ' K 순례자 ' 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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