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6. 06. 20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 마태오 6,24-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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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기 힘들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숨과 탄식이 주변에 그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요?
우리는 행복할 수 있는 능력마저 잃은 듯합니다.
만일 먹고 살기 힘든 사람에게 하느님과 재물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적지 않은 이들이
재물을 택할지도 모릅니다.
보이지도 않고,
계신지 확신도 안 되는 하느님,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 주지 않으시고,
불의를 묵과하시고,
공평하지도 않으신 듯한 하느님보다는
당장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줄 재물을 원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스트레스가 없으면 인간이 30년은
족히 더 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면 좀 상대적 빈곤감으로부터 해방되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명쾌한 답을 주십니다.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이 지혜가 담긴 두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 됩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떠나게 될 이 세상에 집착하기보다,
매일이 은총의 시간임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기쁘게 살려는 결심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건 믿음의 영역입니다.
단지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내게 필요로 하시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ㅡ 광주대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ㅡ
김대선 신부
2026. 06. 20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 마태오 6,24-34 )
무슨 걱정?
얼마 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에게
“요즘 무슨 고민 있어?”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재미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고민? 어!
오늘 점심 뭐 먹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친구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 농담을 한 것이지만,
전화를 끊고서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 보면 점심 식사 하나를 하는 것에도
걱정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끼 굶는다고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먹는 것 하나에도 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배불리는 일에는 참 신중합니다.
그렇다면 영혼을 살찌우는 데는 얼마나 고민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은 아닐 것입니다.
현실에 허황된 것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ㅡ 예수 성심 전교회, 김대선 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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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
ㅡ ' K 순례자 ' 편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