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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강론

[오늘의 강론]2026. 06. 22 /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작성자베드로아저씨|작성시간26.06.21|조회수18 목록 댓글 0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2026. 06. 22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2열왕기 17,5-8.13-15ㄱ.18     마태오 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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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하느님과 나의 관계를 좌우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하느님께 단죄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형제들을

단죄하는 그대로 우리를 단죄하실 것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에서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시며 모든 이를 구원에 초대하시는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시기에,

우리 또한 이웃을 판단하거나 심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때로는

이웃과 갈등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쩌다 이웃의 부족한 모습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모습에서

먼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끌,

먼지는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커다란 기둥,

들보는 보지 못하는 이를 꾸짖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형제’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께 세상 모든 사람은 ‘타인’이 아닌 ‘형제’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의 아주 작은 흠은 쉽게 찾으면서도

자신의 큰 허물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 형제에게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고

말하는 기막힌 현실을 지적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위선자야!” 하시며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의 모습에서 먼저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한 다음,

맑고 따뜻한 눈으로 형제들을 다시 바라본다면,

우리는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닮아 주변의

형제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들은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자주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과 형제들 앞에서

어떠하였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오전 일을 마치고,

또 잠들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하고 매 순간 하느님 말씀에

충실한 자녀로 살아갈 것을 새롭게 다짐해 봅시다.

 

ㅡ  대구대교구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ㅡ

 

 

 

이상영 그레고리오 신부 

 

2026. 06. 22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2열왕기 17,5-8.13-15ㄱ.18     마태오 7,1-5 )

 

우리가 변화하는 순간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 자기를 알 수 없게 하는

온갖 장애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만들어낸 자신의 이미지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는 것 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이

아주 특별한 인간이며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보면 거기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거짓된 이미지들,

거짓된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

자신을 대단히 중히 여기는 등등의 생각들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바라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타인 역시 밖으로 드러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허구도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꿰뚫어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보더라도 그것은 부풀려집니다.

잘못되어 있거나 이상한 것은 언제나 상대방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입니다.

 

자기 자신을 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편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니라 자신이 선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 속에서 모든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선해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선하게 존재하는 것과 상대적으로 선한 것,

두 가지 입니다.

상대적으로 선하다는 것은 곧 상대방이

잘못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이 선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야 말로

악한 자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현상입니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타인이 악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이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토록 쉬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악함을 과장시킬 수 있으며

우리가 과장시킨다 해도 그것을 막을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과장되고 투영된 다른 사람의 악함 앞에서

우리는 마치 순진무구한 사람처럼 비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좋게 평가를 하면

우리는 입에 힘을 주면서 그 사실을 부정하려고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독자적인 방식으로 많든 적든

소위 선한 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타인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누구나 타인을 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변화하는 순간 세계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 속에 생명력으로 가득 찬 한 부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이 세상의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단순하게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그 변화는 우리가 허구를 떨쳐 버릴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만일 자신이 하찮은 존재임을 알게 되면,

우리가 만일 자신의 진실성 없는 삶을 알아차린다면

그런 허구들은 곧 떨어져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우리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허구입니다.

우리는 사물들을 뚜렷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희미합니다.

우리의 눈으로 부터 그 들보를 들어내면

우리는 비로소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ㅡ  대구대교구 이상영 그레고리오 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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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

 

ㅡ ' K 순례자 ' 편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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