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2026. 06. 23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창세기 13,2.5-18 마태오 7,6.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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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식대로 말아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손님 대접을 할 때 제가 거의 매번 실수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희 형제 중에 접대의 황제 형제는 손님이 오시면 손님에게
갖가지 차와 과자 등을 내놓고 손님이 미안해 할 정도로
극진하게 대접을 하는데 저는 아무 것도 내놓지 않다가
얘기가 끝나갈 즈음에야 내가 아무 것도 내놓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커피를 마시지 않고 주전부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같이 술을 한 잔 하는데 술은 못하는 사람 옆에 앉으면
따라줄 줄을 모릅니다.
저를 무시하거나 배려의 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정말 술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말씀
잘 이해해야겠습니다.
술대접을 바라니 술대접을 잘 하라는 말씀이 아니지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기 바라는 것처럼 그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리라고
나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그리고
그를 위한답시고 그것을 그에게 줍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는 다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위하는 마음만 믿고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됩니다.
정말 그를 사랑한다면 정말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정말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정말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압니다.
사랑의 순수성만큼,
사랑의 정도만큼 그것을 압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아야 하고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소중히 여긴다 하여도 상대가 그 가치를 모르고
그래서 바라지 않는다면 그것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주지 말아야 합니다.
짓밟거나 심지어는 싫다는데도 왜 주냐고 시비 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길을 가다보면 어떤 신앙 집단에서 전단을 나눠주곤 합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기에 나눠주는데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그것을 그냥 쓰레기통이나 길바닥에 버립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그들의 좋은 마음과 애씀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마음 아프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 쓰레기가 되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나하고 관련이 없는 전단일지라도
심지어 제가 싫어하는 종파의 전단일지라도 꼭 받습니다.
거기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안 하고는 내 몫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수고에 보람을 주지도 못해도
적어도 그들의 수고를 제가 짓밟지 않기 위해서 그러합니다.
사람에게는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물을 주어도 그 보물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셔도 그것이 은총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ㅡ 작은 형제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ㅡ
오상선 바오로 신부
2026. 06. 23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창세기 13,2.5-18 마태오 7,6.12-14 )
오늘 미사의 말씀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가르치시면서 예까지 보여 주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오 복음 7장 12절)
이 가르침은 참 훌륭하고 바람직하지만,
잘 지켜지기는 그리 쉽지 않은 듯합니다.
사람은 대개 남에게 바라는 건 많으면서,
타인에게 무얼 해줄 때는 자기중심성과 이기심이
발동하는지 좀 야박해질 때가 종종 있어 보이니까요.
"내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세기 13장 9절)
아브람과 롯의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기 어려워서
서로 갈라져 나가기로 합니다.
이때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지요.
먼저 선택을 한다는 자체가 엄청난 기득권이 될 수 있습니다.
비옥하고 물이 넉넉한 좋은 땅을 합법적으로 선점할 기회니까요.
하느님에게서 땅과 후손을 약속 받은 아브람은 어디가 되었든
자기에게 돌아오는 땅이 주님 약속의 땅임을 믿기에
관대히 선취권을 내놓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남에게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 주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물이 넉넉하여 마치 주님의 동산과 같고
이집트 땅과 같"(창세기 13장 10절)은 곳을 선택하고,
아브람은 그가 고른 곳의 반대편으로 나아갑니다.
롯의 선택 기준은 그러나 주님 눈에는 위험하지요.
성경은 풍요를 좇은 그의 영리한 선택이 소돔과 같은 욕망과 쾌락,
이집트와 같은 노예살이의 결과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오 복음 7장 13절)
롯이 자리잡은 소돔은
"악인들, 죄인들의 성읍"이었지요.
그는 당장 눈에 보이는 외적 풍요가 어떤 결과를
잉태하고 있는지 모른 채,
"넓은 문, 널찍한 길"을 택하여 나아갑니다.
복음사가는 이를 두고
"멸망으로 이르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다고 하였지요.
자기가 선택한 땅이 아닌,
하느님께서 선택해 주신 땅으로 나아간 아브람은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창세기 13장 15절)는 축복을 받습니다.
세상에!
"보는 땅"이라니요!
발길이 닿은 땅도 아니고 싸워서 점령한 땅도 아닌,
아브람 시야에 들어온,
보는 땅을 주신다는 말씀에서 주님의 무한하신 스케일이 느껴집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오 복음 7장 6절)
"거룩한 것, 진주"는
우리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가리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진주를 산 상인의 비유에서도
보듯(마태오 복음 13장 45절-46절 참조)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하는 영혼의 본질이고 정수일 겁니다.
하느님의 숨을 받아 이 세상에 와 살고 있는 우리가
목숨처럼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재물이나 현세적 지식,
썩어 없어질 외모가 아닐 겁니다.
무언가 선택을 할 때 (개, 돼지들에게 참 미안한 비유입니다만)
거룩하고 귀한 것을 알아보지 못해 개, 돼지들로 빗대어진 쾌락과 욕망,
허영과 사치들에 자신을 던지지 말라는 뜻이지요.
아무리 삶이 녹록치 않고 제도와 사람들의 이해가
따라오지 못해도 하느님을 향한 거룩한 지향,
귀한 꿈을 세상의 바벨탑,
소돔의 널찍한 문으로 밀어넣어서는 안 되지요.
쉽고 넓고 편한 세상의 달콤한 유혹 뒤에는
"멸망"이 감춰져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함,
우리의 진주를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를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벗님!
나의 선택이 어떤 기준에서 나오는지,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거룩함,
귀한 진주를 잘 간직하며 살아가는지
돌아보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목놓아 기다리시는
생명의 좁은 문을 향하는 이들이니까요.
이 길에 서로 동행이 되어 주는 우리 모두를 축복합니다.
말씀과 함께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이
생명으로 가는 길임을 굳게 믿습니다. 아멘.
ㅡ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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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 -
ㅡ ' K 순례자 ' 편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