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웅풍대천하(雄風大天下) - 죽으면 모든 것이 공(空)인것을
태양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붉은 구름이 하늘을 층층이 수를 놓은 겨
울의 풍경은 제법 볼거리를 제공하였지만, 풍백과 사검비자의 결
투에 몰입한 무사들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화려한 칼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주변이 사나운 경기에 부서져
나가는 살벌함도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투를 보는 사람들은
극도의 긴장감에 몸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일검일도(一劍一刀)에 사력을 다한 두 사람의 결전은 보는 사람
의 심장을 두른거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서너 합의 손속을 겨룬 두 사람의 신형이 갑자기 멈추었다.
명왕 우차운은 감탄한 표정으로 풍백을 보았다. 아무리 십대 고
수라니만 자신과 비교하자면 까마득한 후배인 풍백의 실력은 그를
감탄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대단하네. 하지만 이제부턴 조심하게."
풍백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걸렸다.
"걱정 마시고 오십시오. 이래 보여도 누구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입니다."
우차운은 그의 패기와 기백에 다시 한 번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젊었을 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할까?
아련하게 그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땐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몰랐지. 내가 최고인 줄 알았어.'
추억이란 사람을 훈훈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히 한창때의
즐겁고 호기로웠던 추억은 사람을 감상에 젖게 만들곤 한다.
우차운은 피식 웃었다.
생사를 건 결투를 하면서 무슨 과거 회상이란 말인가? 자신은
늙지 않았다. 아직 몇십 년, 아니 백년은 충분히 더 살 자신이 있
었다. 이제 자신의 나이는 팔십 구 세일 뿐이었다.
풍백은 묵묵히 사검비자를 보고 있었다.
상대가 무엇인가 틈을 보이고 있는 듯했지만, 그의 도는 미미하
게 흔들리다 결국은 공격을 하지 못했다. 빈틈을 보이는 듯하지만
상대의 감각은 여전히 검에 집중되어 있음을 안 때문이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의 정지된 신형은 관도의 긴장을 더욱 가중시켰다.
작은 소슬바람이 길을 따라 서서히 밀려온다. 약간의 먼지를 대
동하고 다가오는 바람은 우차운의 등을 향해 있었다.
이는 풍백의 정면으로 온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구나 마차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하소란 등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리고 바람이 우차운의 등을 스치고 풍백을 향해 밀려오는 순간,
사검비자 우차운의 검이 그 바람의 흐름을 타고 교모하게 찔러
왔다. 사전에 예비동작도 없었고, 근육의 이완도 없었으며, 검을
내지르기 위해 검을 안으로 당기는 동작도 없었다.
검에 전혀 힘이 실리지 않을 것 같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바늘처
럼 예리하게 찔러오는 살기는 검이 도달하기도 전에 벌써 풍백의
심장을 쑤시고 있었으며, 그 살기에 앞서 먼지바람이 풍백의 얼굴
을 스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일장 오척,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우차운과 같은 고수에게 그 거리는 결코 먼 거리도 아니었다.
풍백은 먼지바람이 정면으로 그치는 순간 내기를 누 주위에 뿌
려 먼지가 눈에 들어가지 않게 하였다. 하지만 그 바늘 끝 같은 순
간 심장을 도려내는 살기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다. 자신이 우차운이라도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리라.
풍백은 순간적으로 심장을 막으려 움찔하려다 갑자기 도를 위로
치켜들었다. 순간 심장을 향해 다가오던 살기가 사라지더니 '피리
릿' 하는 묘한 소리와 함께 얼굴을 향해 밀려오던 검기가 풍백의
도기와 충돌하면서 사라졌다.
풍백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살기로 심장
을 공격하는 것처럼 허초를 날리고, 실제는 얼굴을 공격한 셈인데,
그의 행동이 조금만 늦었어도 머리가 뚫리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풍백이 안심하기엔 너무 일렀다.
얼굴로 날아오던 검기가 사라지는 순간, 벌써 두 가닥의 다른 검
기가 그의 좌우 양 가슴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으며, 삼장 밖에 있
던 우차운의 신형은 이미 오 척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풍백의 허리가 교묘하게 돌아가며 금강허리보를 펼쳤고, 그의
도가 금강파랑의 초식으로 뒤틀렸다. 마치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금강도의 도기가 주인의 가슴을 방어하려 하였다.
'슈걱'하는 기음과 함께 공격하려는 검기와 방어하려는 도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검기는 마치 파도를 뚫고 들어가는 한 가닥의
화살처럼 풍백의 도기를 헤치고 있었다.
풍백은 뒤로 서러 걸음 물러섰다.
금강허리보로 피하고, 금강파랑의 도기가 엄밀하게 방어했음에
도 그의 가슴은 이미 선혈이 낭자해 있었다.
기회, 우차운의 검이 푸른빛을 발하면서 풍백의 가슴을 다시 찔
러왔다. 직선, 다르게 말하면 우차운이 풍백을 공격할 수 있는 수
많은 두로 중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가까운 곳으로 공격을 했다는 말
이었다.
이럴 경우 공격을 당하는 사람은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고 피하
기가 쉽게 마련이지만, 지금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우차운의 검은 풀밭을 달리는 뱀처럼 매끄럽고, 빨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했다. 그 강함은 세상의 무엇이라도 한 번에 꿰뚫을
것 같은 시게였다.
그의 검봉은 미세한 떨림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는 직선으로 뻗
어오던 공격이 언제라도 변화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나에 대해서 많은 대비를 하였다.'
풍백은 상대가 왜 직선 공격에 치중하는지 알수 있었다. 쾌도가
장기인 풍백의 도와, 빠르기에서 견주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외상을 입고 뒤로 물러서는 풍백은 다시 직선으
로 찔러오는 상대의 검봉을 노려보았다.
더 이상 피하거나 후퇴한다면 반격의 기회마저 없어질 것 같았
다. 풍백의 도가 밝은 광채를 뿌린다. 그 광채의 기세는 도기가
도강임을 알수 있었다. 비록 적지 않은 외상을 당했지만 풍백은
여전히 당당했다.
상대의 강한 검과 몸에 입은 부상은 풍백의 기를 꺾기는 커녕,
그의 투기에 오히려 불을 지르고 말았다.
'차앗' 하는 외침과 함께 풍백은 우차운의 검을 향해 달려들었
다. 보고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미 부상을 당한 풍백이 옆으로 피하거나 뒤로 물러설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행동이었다.
풍백은 자신의 신형을 검 앞으로 밀어 넣으면서 추혼금강쾌도의
초식 중 무적금강섬(無敵金剛閃)으로 우차운의 심장을 향해 찔러
넣었다.
무적금강섬은 추혼금강쾌도의 일곱 초식 중 위력에서는 두 번째
이지만 빠르기에서는 가장 빠른 도초였다.
풍백의 눈은 번들거리고 있었고, 입가엔 만족한다는 웃음이 걸
려 있었다. 지금 풍백은 동귀어진의 수법을 쓴 상황이었따.
공격해 오는 검의 ?에 신형을 밀면서, 묘하게 몸을 틀어 어깨로
검봉을 방아내려 하는 풍백은, 우차운의 검 끝이 다시 변하면서 그
의 심장을 찌르는 순간, 우차운의 심장을 자신의 금강도로 박살 내
고 말 것이다.
우차운은 망설이지 않았따.
자신의 명성으로 풍백과 동귀어진하면, 그것은 전혀 이득 될 것
이 없었다. 반대로 풍백은 그 명성이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이 뻔했
다. 무엇보다도 우차운은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죽으려고 신강에서 여기까지 오진 않았다.
우차운은 빠르게 검을 회수하면서 풍백의 도강을 휘감았고, 신
형을 비틀어 그의 도강을 피하였다.
'추리릿' 하는 소리가 들리며 둘의 신형이 갈라섰다.
보던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두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
들은 두 줄기 섬광이 번쩍하는 것만 보았을 뿐, 초식의 나눔을 제
대로 보지 못했다.
막 갈라선 듯한 두 사람의 신형은 다시 엉키고 있었다. 이번에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풍백이었다.
' 내가 우차운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기백이다.'
풍백은 몇 번의 겨룸으로 자신의 내공이나 실력이 우차운에게
한 수 뒤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
었다. 어차피 자신이 뒤진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풍백의 금강쾌도는 유성처럼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탄월금강참(彈月金剛斬)으로 선제공격을 가한 풍백은 금강허리보
로 자신의 신형을 우차운에게 최대한 밀착시켰다. 그리고 호흡이
짧고 내공소모가 작은 초식 위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금강쾌영(金剛快影), 금강섬월(金剛殲月)에서 금강탄도(金剛
憚刀)로 이어지는 초식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데 풍백의
도는 방어가 없었다. 그리고 빠르다.
처음 풍백이 자신에게 거리를 좁혀오자 우차운은 그것을 환영했
다. 상대와 정면으로 대결을 한다면 자신이 뒤질 일이 없었다. 게
다가 상대의 공격을 피하게 위해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명왕의 명성이 너무 아까웠으며, 자칫 선기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 간의 간격이 좁아지자, 쾌도의 최고봉이라 일컬어
지는 풍백의 도는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뿐만 아니라 방어는 완전
히 무시한 채, 오로지 공격에만 중점을 둔 풍백의 도는 우차운과
팽팽한 대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차
이지만 상대보다 조금 더 빠른 풍백의 도법은 우차운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십여 합을 겨루었고, 풍백은 조금 더 우차운에게 다가
서려 하였다. 그러나 우차운은 더 이상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강맹한 힘을 실은 우차운의 검이 풍백의 얼굴을 향해 찔러갔다.
그러나 풍백은 그 검봉을 노려보면서 그대로 상대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간결하면서도 쾌속한 금강쾌영은 주인의 안전을 무시
하고 오로지 상대의 사혈만을 노린다.
둘의 결투는 근접전이 되면서 이런 식이었다.
정면으로 충돌하면, 내공과 연륜에서 앞서는 우차운이 강하고
유리하다. 그러나 자신의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고 함께 죽자고 달
려드는 풍백의 기백 앞에 우차운은 번번이 초식을 중간에서 거두
어야 했다.
다시 십여 합이 지나자, 분명한 실력 차이가 드러나며 풍백은
이미 다섯 군데나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다지 깊은 상처
는 아니었다.
풍백에게 상처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우차운은 두 걸음
이나 뒤로 후퇴하고 있었다.
"이익."
우차운은 이를 악물었다.
'이젠 승부를 내야 한다.'
우차운은 더 이상 기세에 밀리면 그, 결과가 자칫 상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공을 끌어 모아 '사인강(死刃강)의 초식을 펼치려 하였다.
사인강은 총 구 식 팔십이 로의 사인묵영검법(死刃墨囹劍法) 중
최정화라 할 수 있는 후 삼 식의 검초였다.
묵영(墨囹)이란 검은 지옥이란 뜻이다.
사검비자의 사인검에 은은한 묵강이 어렸다.
검의 최고 경지 중 하나라는 검강.
풍백은 상대가 검강을 펼치려 하자, 이를 악물었다. 동시에 금강
허리보를 십이 성의 경지로 펼치며, 금강섬월의 초식으로 파고들
었다.
금강섬월은 도강으로 펼치는 초식은 아니었지만, 금강쾌도의 초
식중 세 번째로 빠른 초식이었고, 무엇보다도 그 어떤 자세에서도
펼치기가 용이한 도식이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가장 빠른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우차운은 자신의 검강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풍백의 도를 보아야 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자신이 검강을 펼치면 상대도 도강으로 상대해 오리라 생각했던
것이 다시 한 번 자신을 위기로 몰고 간 셈이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우차운은 이를 악물었따. 동시에 몸을 틀어 자신의 왼쪽 어깨로
풍백의 도를 받으며 그대로 사인강을 펼쳤다. 일단 펼치기 전이라
면 모르되, 펼친 다음에는 풍백도 어쩔 수 없으리라.
풍백은 손에 전해 오는 묵직한 느낌으로 자신이 펼친 도기가 상
대의 어깨를 파고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순간 풍백은 조금도 망
설이지 않고 몸을 뒤로 넘기며 땅바닥을 굴렀다.
사인강의 검강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머리카락을 베어내며 스치
고 지나갔다. 바닥을 구르며 일어선 풍백은 무려 열세 번이나 몸을
뒤집고 보법을 밟은 후에야 제자리에 설 수 있었다.
단 일순간이었다. 만약 아차 하는 사이라도 망설였다면 목이 달아
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차운의 공격을 피한 풍백의 표정을 밝지
않았다.
비록 일 도는 성공했지만, 사실상 결투는 이제부터였고, 지금처
럼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와 결투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검에 검강을 잔뜩 불어넣은 명왕 우차운이 풍백을 보고 있
었다. 그의 왼쪽 가슴 위, 어깨 부분이 관통당해 피가 흐르고 있었
지만, 그 위엄과 기세가 조금도 기울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몇십
년 동안 잠자던 그의 투지와 기백이 새롭게 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풍백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풍백의 도에 젖빛의 광채가 다시 어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 한 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끌어 모아 무적금강섬의 초식
을 펼치려 하였다.
무적금강섬은 추혼금강쾌도에서 거의 마지막 초식이나 마찬가
지 였따. 이제 이 초식이 먹히지 않으면 풍백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엇다. 물론 아직 마지막 초식인 추혼금강뢰(追魂金剛雷)가
있지만 풍백은 그 초식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검강 대 도강. 칠로를 비롯한 사검비문의 제자들이나, 언제 마차
에서 나왔는지 둘의 결투를 지켜보던 사자검 운자개와 오구, 하소
란 등은 적과 아를 떠나 무인으로서 두 사람의 결투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 둘의 대결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느꼈다.
'정면 대결은 승산이 희박하다.'
사자검 운자개는 이미 구십이 다 된 우차운이 정면 대결에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풍백이 명왕 우차운을 상대로 지금까지 싸운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비록 십대 고수와 세외팔왕이 같은 급으로 이름
이 나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엄연히 서열이 정해져 있었고, 특히
세외팔왕의 삼천왕은 전대의 고수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사실상
우내육존의 바로 아래에서 거론되는 최강의 고수들이었다.
풍백은 십대 고수 중에서도 결코 상위의 인물이 아니었다.
용부의 부주인 천룡검 용무성이나 봉성의 성주인 철봉황 담숙우,
신룡각 각주인 신기자 용화성과 금룡각 각주인 금룡광도 용대성
의 무공과 명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으며 , 이들을 따로 무림
사주라 부르기도 했다.
사주의 무공은 삼천왕보다 약간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사주의
아래인 여섯 명의 고수들을 육정(六丁)이라 지칭했다.
실제 연륜이나 나이, 또는 사문으로 보아 육정이나, 세외팔왕에
서 삼천왕을 뺀 오왕의 무공이 삼천왕과 사주에 비해 많이 모자라
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풍백이 강호의 소문과는 다르게 사검비자와 거의
대등한 대결을 펼치고 있었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절대고수에게 있어서 한 수의 차이란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수 있
었다.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무공이 강할수록 잘 안다. 지금 우차
운과 풍백의 결투를 보면 분명히 풍백이 반 수 뒤지고 있었다.
풍백은 그 차이를 기백으로 메운 채 버티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
까지 결투는 대결이라기보다는 풍백의 버티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면대결이 시작되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전력을 다한 충돌에서는 단 일합에 승패가 갈라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패한다는 것은 곧 죽음이라 할 수 있
었다.
사자검 운자개는 자신의 손에 땀이 베는 것을 느꼈다.
사검비지 우차운은 새삼스런 눈으로 풍백을보았다.
'정말 대단하다. 내 수많은 명가 고수들과 대결해 보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우차운은 풍백의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그의 기백과 굽힐 줄 모르
는 의지에 다시 한 번 감탄하였다.
'자칫하다가는 내가 질 수 도 있겠다.'
우차운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묵영섬(墨囹閃)의 기수식으로 자
신의 혼을 검에 주입하였다. 정말로 오랜만에 세포 하나하나에 생
생생한 기운이 주입되는 것을 느꼈다.
가금 위 어깨에서 은은하게 전해 오는 고통은 그에게 경계심과
새로운 투지를 불러일으켰다. 무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 우차운
의 신체는 그의 정신과 함께 완벽한 하나의 검으로 변해 가고 이
었다.
심(心)은 의(意)를 지배하고, 의는 신(身)을 지배하며, 신은 심
과 의를 포함하여 검과 하나가 된다. 어둠은 세상에 감옥을 만들
고 그 안에 갇힌 것은 검의 지배를 받는다.
묵영섬의 구결 중 일부였다.
신검 합일이 있고, 심검합일이 있다고 한다.
마음을 검에 실을 수 있어야 검강의 단계에 올라설 수 있으며,
검에 신(身)을 실을 수 있어야 검기를 펼칠 수 있고 검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신검합일이나, 심검합일 자체가 단순하게 육체나, 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사검비자 우차운은 완벽하게 검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곧
검이오. 검이 우차운이 된 단계, 강력하지 않지만 은은한 묵빛의
광채가 검을 감싸고 있었다.
조금 전 결투를 할 ?보다 강렬하지 않은데, 보는 사람들은 심신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따. 감히 그 누구도 우차운에게 대절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룡당의 당주인 사자검 운자개의 안색이 흐려졌다.
'거의 완전한 심검이다. 살아서 저 경지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이지만.'
운자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풍백을 보았다.
풍백은 얼굴에 비 오듯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창백한 표정으로 보아 우차운에게서 밀려오는 기세에 억지로 대
항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단 한 치고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우차운의 기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실제 풍백은 자신의 도에 이미 모든 진력을 쏟아 넣은 상황이었
다. 이를 악물고 무적금강섬의 구결대로 진기를 모으며 정신을 그
곳으로 집중하였다.
'이대로 가면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진다.'
'어떻게 해야 하지?'
풍백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참아내며 상대의 기세를 어떻게
하면 이겨낼까 생각해 보았다.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어왔다.
우차운과 풍백을 향해 불어오던 바람은 둘의 기세에 휘말려 작
은 회오리를 만들더니 스치듯이 비켜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풍백
의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풍백은 자신의 기를 앞에서 살짝 비튼 다음, 단단하게 밀어넣었
던 기운을 풀어놓았다. 그러자 강하게 뭉쳐 있던 그의 기운이 부드
럽게 변하였다.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우차운의 기세를
안으로 흡수하면서 옆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자 우차운의 기세가 상당 부분 미끄러지듯이 방향을 틀어
흩어졌다.
우차운은 움찍하였다. 설마 풍백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압력을
비켜내리란 생각은 못했었다.
지켜보던 용부의 호위무사들이 조금 안도의 숨을 쉬려는 찰나
우차운의 검이 한줄기 섬광을 그리며 풍백을 향해 밀려갔다.
모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 풍백의 도 역시 섬전처럼 앞으로 뻗어
갔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풍백의 신형이 뒤로 튕겨지듯이 날아
가 바닥에 쳐박혔고, 잠시 움찍하던 우차운의 신형이 다시 한 번
묵영섬의 기세로 풍백을 향해 날아갔다.
풍백은 아득한 충격과 함께 자신의 신형이 뒤로 날아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의 끈을 놓칠 뻔하였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
으로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자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틀
며 우차운을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을 향해 검과 한 몸이 되
어 날아오는 검은 묵광을 보았다.
아득해진다.
전신의 모든 오장육부가 이탈을 한 듯했고, 무엇보다도 무기력
한 정신이 그의 혼백을 앗아간 듯하였다.
풍백은 무의식적으로 도를 들어 올렸다.
사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사공운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
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공운의 기백과 혼이 전이되듯이 풍백
의 정신을 깨웠다.
지금 자신이 죽으면 더 이상 우차운을 막을 사람이 없다. 특히
사공운의 딸이라고 생각되는 용취아가 죽기라도 하면 죽어서 어떻
게 사공운의 얼굴을 본단 말인가? 일수유에 풍백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자신은 죽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이었다.
스친다.
바람도 스쳐가고, 세상의 모든 기운이 그의 혼백을 스쳐가고 있
었다. 그의 기백이 도에 실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진기는 금강쾌도의 마지막 초식인 추혼금강
뢰의 운결에 따라 모아진다.
'혼(魂) 과 백(魄) 이 령(靈) 을 만나, 심(心) 의 벽을 넘고, 심과
의와 정과 신(神)이 기를 만나 신(身)의 한계를 넘는다. 기와 도가
만나 중도에 모이지, 내기(內氣)는 정제되어 태극이 되고 외기(外
氣)는 혼돈이닌 무극이다. 심(心)이 음(陰)으로 환하며 부드러움
을, 신(身)은 양(陽)으로 환하여 강함을 이루고, 둘이 충돌하니 뇌
(雷)가 된다.'
그 느릿한 움직임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번개보다 빠르게 보였다.
묵광과 백광이 충돌하였다
처음엔 '파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다음에 천천히
밀려오는 파장.
"뒤로 피해라!"
칠로와 운자개가 동시에 외치며 피했지만, 동작이 늦은 백팔엽
살수들과 몇몇의 호위무사들이 먼지로 흩어져 버렸다. 이어서 맨
앞에 세워져 있던 말이 쓰러지고 마차의 일부분이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침묵의 순간이 지났을까?
' 꽝 ' 하는 소리와 함꼐 풍백과 우차운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
려났다.
"크으윽"
"크악."
비명과 함께 이차로 전해 오는 음파에 의해 수많은 엽살수들과
호위무사들이 내상을 입고 말았다.
이 엄청난 결과에 칠로와 운자개, 그리고 엽살수들과 호위무사
들은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지금 본 두 사람의 결투는 두고두고
머릿속에 박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불마왕과 관패는 서로 일 장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그들 같은 고수들에게 일 장은 너무도 가까운 거리였다.
두 손을 들어 올린 불마왕의 손이 '웅' 하는 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었다. 그 손을 보면서 관패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불마왕이 인자하게 웃으며 관패에게 말했다. 그의 표정엔 여유
가 있었다.
"시주의 명성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동조자를 보낸 것은 참으로
큰 실수임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불마왕의 이야기를 들은 관패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미친 땡중이군. 나같은 살인마가 천당에 가면 어디가 지옥이란
말인가? 난 싫으니 너나 가라."
고함과 함께 도끼가 불마왕의 머리를 쪼개어 갔다. 순간 불마왕
의 손이 은은한 금빛으로 물들었다가 조개 모양의 강기로 형성되
더니 도끼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뒤로 서너 걸음씩 주르
륵 밀려났다.
두 사람의 안색이 함께 구겨졌다.
불마왕의 입장에서는 서장 무림의 절기라는 모니패엽수(牟尼貝
葉手)를 펼치고도 동수를 이루었으니 조금 놀란 기분이었고, 관패
입장에서는 늙은 중과 동수를 이루었으니 망신이라고 생각해서 기
분이 이상했다.
실제 알고 보면 정말 놀랄 사람은 불마왕이었다.
관패가 아무리 십대 사마의 수위를 다투는 인물이었다고는 하지
만 삼천왕중에서도 가장 무공이 강하다는 자신과 동수를 이루었
다는 사실은 실제 믿기 어려운 일이엇다.
자신의 자이가 지금 이 년이 더 지나면 백세 였다.
관패보다 한참 전대의 고수였고, 무림에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
한 것 역시 몇십 년이 일렀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정말 기가 막힌
일이었다.
'이건 뭐가 잘못되었다.'
불마왕의 입가에 맴돌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관패 역시 인상이 더욱 험악해?다.
"이런 씨불, 내가 죽어라 배운 무공이 겨우 다 죽어가는 늙은 중
하나 때려잡지 못하다니. 이거 창피해서 어디 얼굴을 들 수가 있
나."
불마왕 다비존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힌 말이었다. 처음엔
허탈함이 그 다음엔 분노가 그리고 그 다음엔 오기가 치밀었다.
"아미타불, 이번엔 조심해야 할 거외다."
불마왕의 손이 마치 부은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대..... 대수인(大手印)."
관패도 대수인은 알고 있었다.
밀종 무학의 최고봉 중 하나인 대수일을 모르는 무인은 없다. 그
리고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는 무인들도 거의 없다고 봐
야 한다.
"좋아 중놈. 제법이구나. 뭐 그 정도는 되어야 할 맛이 나긴 하
겠지."
관패가 눈을 치켜뜨고 두 개의 도끼를 월환섬(月幻閃)의 초식
으로 휘두르며 정면으로 치고 나왔다. 그것은 불마왕이 바라던 바
였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크윽' 하는 소리가 들리며 둘의 신형은
다시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각자 두어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둘은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며 침중한 모습이었따.
둘 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관패의 고리눈이 위로 뻗어 올랐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있다니. 늙은 중, 이제부터 한 명이 피를 토
하고 고꾸라질 때까지 정면 대결이다."
"아미타불, 늙은이는 불만이 없소이다."
다비존자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성질 급한 관패의 도끼가 패
왕무(覇王舞)의 초식으로 불마왕의 가슴을 찍어갔다.
불마왕은 대수인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강하다는 금라대수인의
초식으로 마주 공격하였다.
다시 한 번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관패는 가슴이 답답해지며, 피
가 울컥 하고 치미는 느낌이었다. 억지로 올라오는 피를 삼킬 때,
한 수 우위를 점한 불마왕은 다시 한 번 금라대수인을 십이 성의
진기로 쳐내고 있었다.
"으아악."
고합과 함계 울화가 치민 관패의 도끼가 진산마극(鎭山魔極)의
초식으로 변화하며 다시 한 번 정면으로 충돌해 갔다.
'꽈다당'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엔 불마왕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고, 관패 역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뒤로 물러서던
불마왕은 목에 걸고 있던 백팔 염주를 손에 들었고, 신체를 고정하
는 순간 그 염주의 한쪼기 떨어지며 하나의 채찍 같은 모습으로 변
해 있었다.
불마왕은 염주를 묶은 끈의 끝을 잡고 돌리며 그대로 돌진해 갔다.
순간 사방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리며 수십 가닥의 벼락이 관패를
향해 몰려왔다.
관패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상대가 드디어 자신의 모든 것
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들은 적이 있었다.
소뢰음사의 무공 중 백팔 염주로 펼치는 뇌정편(雷霆鞭)이란 무
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소뢰음사의 호교무공이라고 했었다. 그
렇다면 지금 불마왕이 펼치는 이 무공이 바로 뇌정편이리라.
그러나 관패는 물러서지 않고 만월천강추(滿月 天剛椎)의 초식
으로 마주 공격하였다. 전혀 방어는 도외시한 무식한 공격이었고,
불마왕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따다당' 하는 소리와 '꽝' 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관패와 불마왕이 동시에 뒬로 물러섰다. 한데 둘다 크게 다친 듯
다리를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다비존자가 갑자기 들고 있던 뇌정편을 관패에게
던졌다. 순간 하늘에서 백팔 개의 염주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흩어
진 염주들은 낙뢰처럼 관패를 향해 날아왔다.
백팔 방위를 점하고 날아오는 뇌정편 최후의 초식 뇌정우(雷霆雨)
는 아직 실패한 적이 없는 무공이었다.
마치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뇌정우를 보면서 관패가 하얗게 웃고
있었다.
"멋지구나. 정말 싸울 맛이 나는 구나"
관패는 흐뭇하게 중얼거리더니 두 개의 도끼를 한번에 내던졌다.
하나는 마치 바람개비처럼 선회하여 백팔 염주를 향해 날아갔고,
한개의 도끼는 직선으로 불마왕을 향해 날아갔다.
"이기어부술."
불마왕이 입을 딱 벌리고 한 소리였다. 더군다나 두 개의 도끼로
동시에 펼치는 어부술이란 것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마치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도끼가 뇌정우를 한꺼번에 쓸고 지
나갔다. 동시에 하나의 도끼는 불마왕 다비존자를 향해 날아갔다.
뇌정우란 것은 끝까지 기로 백팔 염주를 움직여야 제 위력이 나
오는 절기였다. 즉, 지금 불마왕은 자신의 기로 백팔 염주를 움직
이고 있던 참이었는데, 하나의 도끼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
자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상황만 좌시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불마왕은 뇌정우를 조절하던 일부의 힘을 모아 대수인을 펼침과
동시에 유가신공(踰跏神功)을 끌어올리고 불영보법(佛影步法)을
펼치며 도끼를 피하려 하였다.
뇌정우가 펼쳐지고 두 개의 도끼가 날아간 뒤 다시 대수인이 펼
쳐진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따.
'파르륵' 하는 소리와 '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조용해
졌다. 우선 도끼 하나는 불마왕의 어?에 반이나 들어가 박힌 채
멈추어 있었으며, 나머지 한 개의 도끼는 어느 새 돌아와 관패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리고 관패 또한 불마왕보다 상태가 좋은 상
황은 아니었다.
무려 일곱 개나 되는 염주가 그의 몸 일부 여기저기에 박혀 있
었다.
'양패구상'. 그들은 서로의 상처가 적지 않음을 알았다. 한데 관
패란 인물이 보통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면이 있는 인간임은
이 순간에도 드러났다.
"흐흐! 좋구나. 주군 이외에 나에게 상처를 준 인간이 또 있다니.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니다."
이때만큼은 불마왕도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겉은 여전
히 평온해 보였다.
"흠. 시주. 너무 무리하지 마시게."
불마왕의 말에 관패는 불마왕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폭소
를 터뜨리며 말했다. 염주가 박힌 몸에서 다시 피가 터졌다.
"하하하. 땡중. 급하긴 급했군. 말투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보니
이제 똥줄이 타는 모양이지."
관패의 말에 아직도 미소를 잃지 않던 불마왕의 얼굴이 조금 굳
어졌다.
"시주, 그렇다고 죽을 사람이 사는 것은........."
"그러니, 네놈이 죽으면 되는 것이지."
불마왕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챈 관패의 신형이 번개처럼 그를
덮쳐갔다. 그리고 그의 도끼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고, 마치 초승
달 같은 강기가 ?아져 나와 불마왕을 쳐나갔다.
전광파월참(電光破月斬), 진산천살부범의 팔 초식 절기 중에 최
후의 초식이었다. 그 위력 또한 가장 강해, 도끼로 강기를 펼치는
패도적인 무학이 바로 전광파월참이었다.
수천 년 무림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도끼질이 바로 이 전광파월
참이라고 관패의 사부는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꼭 그 사부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광파월참은 충분히 강했다.
불마왕은 천지 사방이 초승달 같은 강기로 가득해지는 것을 보
았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서늘
한 살기 이전 너머 무엇을 보았음인가.
하늘에 열여덟 개의 달이 뜬다면 정말 세상은 밝고 아름다운 기
경을 연출할 수 있을 거란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불마왕의 손이 움직엿다.
그의 손에 은은한 불광이 어리며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불마왕의 소네서 뿜어진 광채는 마치 부처의 후광처럼 은은한 기
운을 지니고 있었다.
불마왕의 손에서 뿜어진 경기와 관패의 도끼에서 뿜어진 초승달
이 어우러지는가 하더니 서로 소멸하면서 그 자리엔 무시무시한
기의 회오리가 생기며 약 일 장 정도의 구덩이가 파였다.
관패의 얼굴이 더욱 흉하게 변했다. 들은 적 이 있었다.
거장 무림을 제패한 소뢰음사가 자랑하는 삼대 호교무공 중 하
나인 불영금강수(佛影金剛手), 설마 불마왕이 뇌정편에 이어 불영
금강수마저 익혔을 줄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관패에게 부담을 주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투지를 더욱 불을 질렀
고, 천살성의 살기는 더욱 무섭게 뿜어져 나왔다.
둘의 대결은 처음부터 정면 대결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충
돌마저 정면 대결이다. 특히 관패의 경우는 공격 또 공격이었다.
방어도 공격이오, 공격도 공격이었다.
불마왕은 마치 나무를 쳐내듯이 자신의 불영금강수로 관패의 가
공할 공격을 막으며 일면 공격을 겸하고 있었지만, 밀려오는 초승
달을 전부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충독하면서 허공으로 사라지
는 강기만큼 그의 기력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뢰음사
의 삼대 호교무공 중 하나라는 불영금강수는 결코 천살부법에 뒤
지는 무공이 아니었다.
둘의 신형이 아련하게 충돌하는 듯 하다가 뒤로 물러섰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정적이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관패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불마왕은 평온한 표정으
로 천천히 하늘을 본다.
"죽으면 모든 것이 공(空)인 것을, 차므로 허망하도다."
불마왕은 하늘 을 보고 웃는다.
나직한 탄식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그의 입가에 감돈다.
관패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불마왕을 보며 물었다.
"돌중, 왜, 뭣때문에 마지막에 힘을 죽였는가?"
"둘이 죽을 필요는 없겠지요. 그리고 내가 분명히 졌습니다."
불마왕의 말투가 처음으로 돌아왔다.
관패는 그래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실제 불마왕은 어깨에 박힌
도끼로 인해 제힘을 다 발휘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관패도
마찬가지로, 몸에 박힌 몇 개의 염주로 인해 제힘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두 자루가 아닌 한 자루의 도끼로 전광파월참의 위력
을 제대로 펼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조건도 비슷했고, 서로의 무공의 경중이 없었다. 만약 불마왕이
마지막 순간에 힘을 빼지 않았으면 둘 다 죽었으리라.
관패가 미진한 듯한 눈으로 불마왕을 볼 때 불마왕은 그 자리에
정좌한 채, 그렇게 죽어갔다. 그의 얼굴엔 가시적인 웃음이 아니라
무엇인가 깨달은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마도 마지막에 손속을 멈춘 것은 그 미소와 관련이 있으리라.
관패는 불마왕을 보면서 경건함을 느끼고 두 손으로 정중하게
포권을 해 보였다.
관패는 불마왕의 어깨에서 자신의 도끼를 회수하였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던 그의 신형이 우뚝 멈추어졌다.
숲에서 두 명의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났다.
관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 명의 기는 읽고 있어서 이미 숲에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설
마 또 다른 고수가 있는지는 몰랐다. 그리고 그 고수가 여자일 줄
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다.
관패는 두 남녀를 살펴보았다. 우선 남자의 경우 나이를 짐작하
기 어려운 모습이었고, 흰 머리카락에 외눈의 추레한 모습, 키가
겨우 오 척도 안되는 난쟁이에 눈은 유리알처럼 희고 동자가 거의
없었따.
관패의 기억 속에 없는 인물이었다.
비슷한 모습의 인물조차 들은 기억이 없었다.
여자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흑백이 뚜렷한 두 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 정도의 아름
다운 삼십대 초반의 미녀였다. 그런데 그 뚜렷한 눈에 초점이 모호
했다. 그녀의 표정엔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이 가득했지만 무엇인
가 그녀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다. 과연 천살성이란 이름이 부끄럽지 않구나."
노인이 까마귀 우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패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노인의 한마디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았지만, 한마디
로 줄여서 '네가 제법 대단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림도 없어.' 라
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야 항상 당당한 장부지. 한데 고양이처럼 나타난 늙은이는 누구
지?"
"케케. 내 실제 나이는 너와 비교해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관패."
"흥, 몰골을 보니 꽤나 밝힌 모양이군."
관패가 여자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그말을 들은 노인의 안색이 변한다. 무엇인가 모욕적인 말을 들었
을 때의 모습이었다. 한데 그 표정이 좀 묘하다. 노인이 화가 난
거슨 자신보다도 여자에게 모욕을 준 때문인 듯했다. 오히려 여자
는 전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런 찢어 죽일 놈. 네놈이 감히 나의 미희에게 요사스런 언사를
함부로 쓰다니. 죽어 마땅하다."
관패가 멀뚱한 시선으로 여자와 노인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뭐 저런 똥파리가 다 있는가? 오히려 계집은 조용하건만."
"뭐? 계집이라고?"
노인이 분노로 바르르 몸을 떨더니, 여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
금 노인은 자신을 욕한 것보다 미부를 계집이라 부른 것에 더욱 화
가 나 있었다.
" 감히 나의 미희를 모욕하다니. 미희, 저놈을 찢어 죽이시오."
"뭐? 허허 저 미친........"
노인을 욕하려 했던 관패의 눈이 부릅떠졌다.
여자가 움지긴다. 한데 신법을 펼치면서 무릅을 굽히지 않았고,
마치 바람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빠르다.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리고 들어 올린 두 손은 환상처럼 관패를 향해 덮쳐왔다.
천하의 관패도 이번만큼은 기검을 하고 말았다. 우선 여자의 공
격이 빠른것도 빠른 거지만 손에서 뿜어지는 힘이 감당하기 어려
울 정도였다.
'이익'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관패는 두 자루의 도끼로 진산마
극을 펼쳐 마주 공격해 갔다.
도끼와 여자의 손이 마치 음악을 연주하듯이 몇 번에 걸쳐 기음
을 내고 부딪쳤다.
'따르릉',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관패는 일 장이나 뒤로 날아
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염주가 박혔던 곳에서 다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관패는 몸에 전해 오는 아픔보다도 심리적인 공황을 이기기 어려
웠다. 단엽과 대결 이후에 우내육존이 아니면 그 누구도 자신 있
다고 생각했던 그의 자존심이 무참하게 깨진 상황이었다.
물론 심한 내외상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자신을 공격한
미부의 공격은 상상이상으로 무서웠다. 그리고 이제야 자신의 부
상이 생각보다 심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불마왕과 관패의 대결을 지켜보지 못하고 그곳을 떠난 단엽의
신형은 바람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그로서는 사실 관패를 도와주
고 싶어도 그럴 여지가 없었다.
불마왕이나 관패는 느끼지 못했지만, 단엽은 지금 숲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숨어 있는지 알수 있었고,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고 무서운 몇 가닥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가운데 강하고
기묘한 기운이 용취아가 있는 관도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지금
단엽이 느낀 정도의 고수라면 풍백이나 청룡당의 누군가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단엽은 급했다. 지금 용취아에게 다가서는 자의 가공할 능력을
생각했을때, 만약 그가 적이라면 오늘 일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 같았다. 그랫 누대치에게 물어볼 것이 많았지
만, 그것마저 포기하고 우선 그 자리에서 물러 설수밖에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누대치를 쥐어짜서 용설아나 진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아냈으리라.
단엽은 살기를 담아 한 가닥의 기운을 용취아 쪽으로 다가서는
인물에게 쏘아 보냈다.
유령신공으로 완전하게 숨기고 있던 자신의 기운을 상대에게 보
냄으로써 일종의 경고를 보내것이다. 한데 자신의 기운을 쏘아 보
내면서 단엽은 상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용취아에게 다가서던 희미한 기운이 멈추는 듯 보이더니 단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단 단엽의 의도대로 된 듯했다.
단엽은 신법을 멈추었다.
상대는 자신이 쏘아보낸 기운으로 자신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가
늠하고 다가올 것이다. 이젠 굳이 서둘지 않아도 된다.
단엽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오늘 여기 온 고수들의 실력은 모두 사당하다. 대체 세상엔 얼
마나 많은 고수들이 존재한단 말인가?'
단엽은 잠시 자신의 감각을 열어놓고 희미하게 잡히는 고수들의
기를 감지해 보았다. 일부는 너무 멀어서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우
선 몇몇의 기운이 그의 유령신공에 잡혔다.
우선 숲에서 싸우는 두 사람의 기세가 잡힌다.
'이 둘의 무공은 진정 경천동지구나. 누굴까? 그리고 관패와 불
마왕이 싸우는 곳으로도 두 가닥의 기운이........'
숲에 있는 고수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는 것
을 알고 단엽은 자신의 모든 감각을 열었다. 잠시 후 적과 대치
하게 되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기저기 고수들을 탐지하던 단엽의 눈이 부릅떠졌다.
관패와 불마왕이 싸우는 곳으로 다가서는 기운이 아주 익숙했던
것이다. 적인지 아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자에게 처음에 느꼈던 동질
감과는 달리 지금은 적의가 느껴졌다. 잠시 조금 더 상대의 기를
탐지한 단엽의 안색이 굳어졌다.
"흡정음부사공의 기운이다. 그렇다면........."
단엽은 담황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말하던 봉성의
역린.
"관패가 위헙하다."
단엽은 관패가 아무리 십대 사마의 수위에 해당하는 무공을 지
니고 있다고 해도, 삼대 금기마공이 절정에 달한 고수와 싸운다면
결코 그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불마왕과 싸우고 난 후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한데 단엽이 잠시 관패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동안 그에게 다가
서던 기운을 놓치고 말았다. 단엽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유령신공의 이목을 속이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단엽은 상대가 자신 근처 어딘가로 숨었음을 알았따. 그렇다면
상대의 잠영술은 자신의 아래가 아니란 이야기였다.
단엽은 긴장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유령문의 지식에도
유령절기와 필적하는 잠영술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다. 아니, 있긴 했었다. 그러나 그 잠영술의 마지막 후계자는 죽은
것으로 전해졌다. 적은 불과 십여 장 근처에서 사라졌다.
'대체 누굴까? 이 정도라면 우내육존에 필적할 것 같은데.'
단엽의 의문이었다.
"세상은 역시 넓구나."
단엽은 시간이 촉박했다. 취아에게 빨리 가지 못하는 것도 힘들
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관패의 위기였다. 과연 자신이 이 미지
의 고수를 이기고 갈 때까지 관패가 버틸 수 있을까?
단엽은 자신의 감각을 최대로 열어 가장 가까운 곳부터 탐지하
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스치던 바람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지나갔다.
바람 속에는 많은 정보가 들어있다.
우선 바람을 타고 오는 냄새가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 나는 소
리로 그 물체의 크기와 대략의 모양도 추론해 낼 수 있었다. 또한
그 소리로 그 물체의 성질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
우선 가랑잎을 스치는 소리와 고목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달랐다.
또한 바람은 자신이 지나쳐 온 것을을 품에 안고 있따가 단엽에
게 알려주었다.
바람에 흔들려 잔가지가 살랑거리는 소리, 다람쥐가 바람을 가
르고 달려가는 소리도 들린다.
둔덕을 넘어오는 바람은 그 파장이 곡선을 그리고 지나가며, 고
목을 비켜오는 바람은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물 냄새, 오
물 냄새 등등.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상대의 모습은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다
면 상대는 바람을 안고 접근하는 중일것이다.
그는 감각을 바람과 반대 방향으로 돌렸따.
바람이 지나가는 쪽에서 오는 상대의 기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
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은 나름대로의 기를 지니고 있고, 무공
을 익힌 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기운을 감출 수 있는 능력
이 뛰어나도 완전히 자연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혹여 그 무공이
무위자연이라는 경지에 이르러 그럴 수 있다 손 하더라도, 그보다
더욱 뛰어난 고수에게는 발각되기 쉽다. 숨었다가 상대에게 다가
서려면 움직여야 한다. 그렇다면 그 순간 상대의 미세한 기가 나타
날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단엽은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약 십 장 정도
의 거리에서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드러나지 않는 기운. 아주 희미한 그 기운을 감지한 것은
그나마 유령신공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기다릴까?'
단엽은 잠시 망설였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기다리는 자가 유리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단엽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상대는 기다릴 수 있지만, 단엽은 기다
릴 수가 없었다. 지금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너무 촉급했고, 그 상
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단엽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
기운이 점점 희미해졌다.
삼 장. 단엽은 유령검을 뽑아 들었다.
일 장, 단엽은 걸음을 멈추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던 상대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운이 느껴지던 그곳에 단엽의 시선이 머물렀다.
그 자리에는 사람 대신 하나의 작은 바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둘 중 하나였다.
그 바위 속에 누군가가 있든지, 아니면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어딘가로 숨은 것이다. 그도 아니면 그 바위로 변신해 있든지.
단엽은 유령신공의 이목을 속이고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움직였
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고도의 은신술인가? 아니면 환술인가?'
단엽은 자신이 지닌 모든 감각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가
까운 곳부터 하나씩 다시 짚어나갔다. 정말 상대는 유령신공을 속
이고 어딘가로 수믄 것일까?
단엽에게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따. 그리고 그는 자신을
믿었다. 그렇다면 상대는 지금 바위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이다.
단엽이 한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등을 떠밀듯이 실바람 한 가닥이 그의 등을 탄다.
단엽의 신형이 움찔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단엽의 시선 안에 있던
바위가 갈라지면서 검 하나가 튀어나왓다. 파공성조차 내지 않는
그 빠르기는 가공할 만했다.
단엽의 검이 비스듬한 자세로 가로질러 올라갔다. 상대의 검ㅇ르
쳐내는 것이 아니라 비켜내듯이 미끄러졌다.
'칙' 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상대의 검이 옆으로 미끄러지는 순
간 단엽은 바로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하나의 그림자를 봐야 해
다. 해가 기울어지면서 생긴 나무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달려
든 상대는 검은 두건에 검은 경장 차림이었고, 키는 겨우 오척이
나 될까 한 작은 체구였다.
그의 양손에는 각각 한 개씩의 갈고리가 들려 있었는데, 그 모양
이 어떻게 보면 호미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낫 같기도 했다.
복면인의 기이한 무기는 유령처럼 허공을 가른 후 단엽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단엽의 검이 한 가닥 빛으로 변했다.
구환유령검법의 제칠식인 유령섬쾌(幽靈섬快)는 무음무서의 힘
으로 상대의 쌍 갈고리를 휘감았다. 두 개의 무기가 충돌하려는 찰
나, 갈고리의 공격이 멈춰지면서 복면인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회전했다.
단엽의 유령신검 역시 상대가 무기를 거두는 순간 허공에 멈추
었다. 그리고 회전하는 복면인을 향해 재차 찔러갔는데, 그의 검에
서 뿜어진 세 가닥의 검기는 마치 뱀처럼 구불거리며 복면인의 머
리와 늑골, 척추를 노리고 있었다.
유령감시(幽靈三氣)는 검기를 사용하는 검법의 최정점에 다다
른 초식이라 할 수 있었다.
단엽은 이 유령삼기에 유령사(幽靈蛇)의 초식을 함께 운용하였
다. 몸을 회전하며 유령섬쾌를 피하던 복면인은 자신을 향해다가
오는 세 가닥의 미세한 기운을 감지하였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검의 기세를 느낀 복면인은 가슴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상대가 만만치 않은 고수라는 생각은 하
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자
신처럼 기를 감추고 공격해 오는 상대의 검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전하던 복면인의 몸이 허공에서 정지하는 듯했다. 동시에 그
의 몸에서 십여 개의 비침이 단엽을 향해 날아갔다.
불과 일 장도 안 되는 거리에서 발사된 비친은 가공할 빠르기로
단엽을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파공성이나 아무런 기세도 느낄 수
없었다. 만약 유령삼기가 상대의 몸을 관통하게 되면 관엽 역시 비
침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받을 위기였다.
순간 단엽은 깜짝 놀랐다. 물론 상대의 공격에 놀란 것은 아니
었다.
'무영독침(無影毒針).'
상대의 공격을 파악한 순간, 단엽은 유령보법의 최고 단계인 둔
형잠(遁刑潛)을 십이 성의 유령신공으로 펼쳤다.
마치 환상처럼 단엽의 신형이 흩어지면서 무영독침을 피했다.
그러나 둔형잠 자체가 방어와 공격이 겸해진 무공인지라 복면인을
공격하는 그의 유령신검은 멈추지 않았다.
한데 허공에 있던 복면인이 그 자리에서 흩어지면서 단엽의 공
격을 피했다. 그리고 흩어졌던 신형은 어느 새 땅에 내려서고 있
었다.
복면인이 지금 펼친 신법은 무형환(無刑幻)이었다.
단엽은 상대의 무공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무영환, 무영독침, 상대는 무영초자(無影樵者)이거나 그의 후
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대의 실력이나 체형으로 보아 무형초
자일 확률은 거의 십 할이었다.
단엽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체 오늘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모였단 말인가? 더군다나 마
교의 전대 장로인 무영초자라니.'
무영초자라면 마교 전쟁 당시 죽은 것으로 알려진 마교의 전대
장로였다.
마교 전쟁 당시 마교에는 모두 서른 여섯명의 장로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다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불과 열 명 남짓이었다
고 전해졌다. 사부인 유지학이나 한때 마교의 십기 천마대주였던
풍백의 말에 따르면, 살아남은 자들은 서른여섯 명의 마교 장로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하다고 했었다.
마교 내에서는 그들을 따로 구대 마존이라 부른다고 풍백에게
전해 들은 바 있었다.
풍백에 따르면 , 풍백의 사부인 금강마도(金剛魔刀)가 죽었으니
이젠 팔대 마존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풍백의 사부가
죽은 뒤 그를 모함한 무리 중에 한 명이 구대 마존으로 승격이 되
면서 명목상으로는 아직도 구대 마존이 존재한다고 봐야 했다.
놀라운 것은 사부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무영초자가 살아 있고,
그가 바로 마교의 구대 마존 중 한 명일 거란 사실이었다.
"우리 유령무학과 겨룰 수 있는 음영(陰影)의 무학이 세상이 존
잰한다면 그것은 무영초자의 무영지학(無影之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마교의 일맥이지만, 그 무공의 가공함은 능히 유령신공과 견
줄 수 있다. 당시 유령대제께서 그와 겨루어 무려 백여 합 만에 겨
우 이길 수 있었다. 만약 그가 다시 살아온다면 유령신공이 유령종
의 경지가 아니면 무조건 피해라.!"
단엽의 사부인 유지학의 말이었다.
다행히 지금 단엽은 유령종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상
대인 무영초자도 몇 십 년 동안 잠만 자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대 마존의 무서움은 그들 중 한 명인 금강마도의 제자인 풍백
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풍백이 그의 사부를 우내육존과 비교하지 않아도 당시 마교엔
능히 그들과 겨룰 수 있는 고수들이 상당 수 있었으며, 그 이상의
고수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우내육존이 모두 모이고도 모자라 야인족까지 끌어들이고
서야 마교를 이길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
었다.
바로 코앞에 내려선 복면인은 무엇인가 착잡한 눈빛으로 단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종의 회한 같기도 하고, 추억에 잠긴 시선 같
기도 했다.
"자네는 유령대제의 전인인가?"
단엽은 쓸쓸하게 웃었다.
보통 무림에서 유령대제를 유령마제라고 불렀다. 일부는 유령대
제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
음이 내키는 대로 부르는 편이었다. 한데 그의 적이었던 마교의 전
대 장로 무영초자가 그를 유령대제라고 부른다.
그 한마디로 상대에 대한 적의가 다소 누그러졌다. 또한 마교의
전대 장로가 아닌 강호의 노고수 무영초자에 대한 호감도 생겼다.
그러나 어차피 적이다. 단엽은 두손을 모아 포권을 했다.
"무영초자 선배님을 뵙습니다."
무영초자는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과거의 대제보다 더욱 강한 듯하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군. 그리
고 그의 후인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쉽게도 전 살아 있고, 상황이 급박해 선배님과 오랫동안 대화
하기가 곤란합니다."
"이해하네. 나 또한 시간을 오래 끌 수가 없는 상황. 그럼 시작
해 보세."
"그럼."
단엽은 상대가 누구인지 안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유령신검이 다시 한 번 유령섬쾌의 초식으로 밀렸다. 동시에 그
의 두 발은 십팔유령환의 보법을 밟고 있었다. 마치 환상처럼 열여
덟 개로 갈라진 단엽의 신형은 하나의 진법을 형성하고 무영초자
에게 짓쳐들어갔다.
한데 같은 유령섬쾌를 펼치는 열여덟 단엽의 속도가 전부 달랐
다. 무엇보다도 무영초자가 놀란 것은 열여덟 명의 단엽에게서 흘
러나오는 기운이 똑같다는 것이었다. 어느 것이 실체고 어느 것이
환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무영마공으로도 알아채기 어려운 환상들.
"유..... 유령종."
무영초자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금 단엽이 펼치는 십팔유령환은 유령조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
능한 경지였고, 유령무공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정통한 무영초
자였기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과거 유령대제보다 한 수 위다.'
무영초자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영마공을 취고조로 끌어올린 무영초자는 단엽의 실체를 찾아갔다.
무영초자가 든 두 개의 쌍 갈고리가 마치 춤을 추듯이 돌았다.
일체의 파공성도 없는 두 사람의 기운이 스치듯이 엉키는 듯했다.
동시에 무영초자의 갈고리는 정확하게 단엽을 찾아내어 공격해 들
어갔다.
'과연 무영초자다. 실체와 환상의 미세한 기 차이를 이렇게 빨리
찾아내다니.'
잔재주로 상대를 이길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마치 환상처럼 열여덟 개의 신형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
의 보법이 유령미기로 변화하면서 무영초자가 공격하는 갈고리의
그림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구환유령검법의 유령만강(幽靈慢강)을 펼쳤다.
'다르다. 기존의 유령검법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것은 더욱 진
보한 유령검법이다.'
무영초자는 단엽의 유령검법이 유령대제의 유령검법과 다르다
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분명 유령신공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
라 검법 그 자체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과거 유령대제의 유령검법은 음험하고 독했으며, 방어하기가 어
렵긴 했지만, 지금 단엽의 유령검법처럼 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단엽의 유령검법은 분명 강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무형의 검강.
'차앗' 하는 고함과 함께 무영초자의 갈고리가 쌍엽풍인(雙葉風
刃)의 초식으로 변환하였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더욱 가깝게 다가섰
다. 둘다 속전속결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단엽은 갈고리에서 뿜어진 강기가 자신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
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무형검강이 상대의 머리카락을 베고
지나갔다. 둘어 신형이 교차하는 듯하면서 초식이 변화하고 있었
다.
단엽의 유령신검이 구환유령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유령참인(幽
靈斬刃)으로 변화하는 듯싶더니 이내 그의 신형이 갑자기 무영초
자의 앞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무영초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처음 접하는 상황이었으면
당황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미 오래전에 경험한 바 있었다.
당시 무영초자는 유령대제의 유령이환공과 구환유령검법의 마
지막 초식인 유령참인에 패했었다. 유령참인과 유령이환공, 둘이
합해지면 얼마나 무서운 위력을 지니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무영초자였다.
그의 무영마공중에 무영감(無影感)이 십이 성의 공력으로 펼쳐
졌다. 당신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몇십 년의 정력을 쏟아 터득한
두 가지의 무공중 하나였다.
잡혔다. 상대가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곳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그는 감각으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영초자의 갈고리가 열십(十)자로 교차하면서 그의 신형이 환
영처럼 흩어졌다. 동시에 그의 옆에서 나타난 단엽의 무형검강이
흩어진 무영초자의 신형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령참인과 유령이환공이 깨졌다. 단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단엽은 무영초자의 신형이 흩어지면서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위협을 느꼈다. 그러나 미처 그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갈고
리에서 뿜어진 강기가 그의 몸을 열십자로 그어가고 있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단엽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가
약 삼 장 밖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는 작은 상처가 나 있
었다. 단엽의 표정이 조금 더 굳어졌다. 상처는 심하지 않았지만
유령이환공을 막아낸 상대의 무공에 놀란 단엽이었다.
하지만 단엽에게는 놀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다엽이 나타날
장소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두 개의 갈고리가 사납게 짓쳐들어
오고 있었다.
이는 유령대제와의 결투 이후에 무영초자가 마지막으로 터득한
'쌍고혈(雙拷血)이란 초식이었다. 오로지 유령대제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두 가지의 무공 중 마지막 하나.
기세도 없었고, 파공성도 없었다.
둘의 대결은 마치 유령들의 싸움 같았다. 근교에서 누가 봤다면
허깨비들이 날아다니며 춤을 추는 것처럼 여기리라.
형체가 없는 것처럼 고요하게 밀려오는 쌍고혈의 여파는 이미
단엽의 신형을 휘감고 있었다.
단엽의 안색이 파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