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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의 답사노트

고창일원 답사보고 - 취석정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08.03.15|조회수260 목록 댓글 0

 

 



 


 


 


 


 


 


 


 


 


 

 

정자 (亭子)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다락식의 집.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이다.
예로부터 시인·묵객(墨客)들은 이 누정에 올라 유흥상경(遊興賞景)하며, 이 모습을 하나의 시로 옮기면서
시우(詩友)들과 교류하였다.
또 마을을 단위로 하여 학문을 논하고, 후학들을 양성하는 역할도 하였는데, 그 역할에 따라 누정의 모습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었으며,
누(樓)·정(亭)·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누각을 돌 혹은 흙으로 쌓아올린
대 위에 세웠을 경우에는 누대(樓臺)라고도 한다.
한편 누정의 위치는 주변 경관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어서, 계곡을 바라보는 산의 절벽, 산을 등진 채 강을 마주한
언덕 위, 냇가나 강가 또는 호수나 바다에 임한 지역, 마을의 유서 깊은 나무 아래,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고지(高地), 왕궁이나 대궐의 후원(後園) 및 성(城)의 고지 등이다.
또 이 누정의 재료로는 기둥의 경우 나무, 지붕은 기와와 풀[茅(묘)]이며, 바닥은 대개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기능
 
누정이 갖는 기능은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첫째 기능은 유흥상경의 기능이고,
둘째는 시단(詩壇)의 형성 기능이며,
셋째는 강학(講學)의 기능,
넷째는 친목의 기능,
다섯째는 활쏘기 수련장으로서의 사장(射場)의 기능,
여섯째는 감시·수비의 기능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유흥상경의 기능은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것으로,
동해에 접한 경포대(鏡浦臺)·의상대(義湘臺)·망양정(望洋亭)·총석정(叢石亭) 등이 있고,
대동강변의 부벽루(浮碧樓), 남강변의 촉석루(矗石樓) 등이 있으며,
경복궁 내의 경회루(慶會樓)나 창덕궁 내의 부용정(芙蓉亭)·관람정(觀纜亭) 등이 유명하다.
시단 형성의 기능으로는 송순(宋純)의 면앙정 가단(歌壇)이 대표적인 예이고,
사장의 기능을 가진 누정은 황학루(黃鶴樓)로서 오늘날까지 기능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감시·수비의 기능은 주로 성루(城樓)가 해당되는데, 비교적 잘 보존된 남한산성(南漢山城)에는
각 문의 누각 외에도 동·서·남·북 장대(將臺)가 설치되어 있다.

형태
 
누정의 형태는 정방형으로부터 장방형과 육각형·팔각형·십자형 및 부채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경복궁의 경회루나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진주 촉석루, 삼척 죽서루(竹西樓) 등
누마루집은 평면이 단순한 장방형이 대부분이나, 궁중에 건립된 것들은 매우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형태 또한 복잡하다.
대표적으로 육각형의 평면을 구성하고 있는 것에는 창덕궁의 존덕정(尊德亭), 경복궁의 향원정(香遠亭) 등이 있고,
평면이 십자형을 이루는 대표적인 것에는 창덕궁의 부용정이 있다.
그러나 창덕궁의 관람정과 같은 경우는 평면이 합죽선의 선면(扇面)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기둥 사이의 자재를
잔뜩 구부린 채 사용하기도 하였다.
구조적으로 보건대, 누정이라는 것은 애당초 오두막이나 그와 유사한 건축물에서 유래, 발전한 것이어서
비록 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하더라도, 새나 이엉을 이었을 때의 지붕처럼 네 귀를 둥글리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평면이 정방형인 누정은 가구(架構)에 있어서 대들보를 쓰지 않으므로 귀접이천장을 하거나
네 귀의 추녀가 꼭대기에서 한데 모이도록 하는 구조법을 사용한다.
천장 구조의 경우 우물반자를 하지 않고 연등천장으로 하고 있으며,
지붕 구조의 경우, 사모정·육모정·팔각정 등에서는 가운데 모아지는 부분에 절병통을 얹어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풀로 지붕을 얹은 모정(茅亭)은 형태면에서 질박(質朴)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평면이 대체로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문학 속의 누정
 
국문학상 누정이 담겨져 있는 대표적 작품으로, 송순(宋純)의 《면앙정가》와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이 있다.
전자는 작자가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면앙정을 지어 놓고 자연을 즐기며 지은 가사(歌辭)로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적 위치에 있다.
그런데 이 면앙정을 중심으로 하나의 가단이 형성되어 신광한(申光漢)·성수침(成守琛)·이황(李滉)·홍섬(洪暹) 등이
송순과 교우하였고, 임제(林悌)·김인후(金麟厚)·임형수(林亨秀)·노진·박순(朴淳)·기대승(奇大升)·고경명(高敬命)·
정철 등이 그 문하에 있었다.
면앙정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가단을 호남가단(湖南歌壇)이라 한다.
《관동별곡》은 제목 그대로 관동지방을 두루 여행하며 쓴 기행가사로서 산영루(山映樓)·총석정·
백옥루(白玉樓)·청간정(淸澗亭)·의상대·죽서루·망양정 등 동해의 빼어난 경치를 배경으로 한
여러 누정을 그리고 있다.
정철은 《성산별곡(星山別曲)》에서도 당시의 문인 김성원(金成遠)이 세운 서하당(棲霞堂)·식영정(息影亭)을
중심으로 철마다 변하는 경치를 읊고 있다.
한편 대표적인 고대소설 《춘향전(春香傳)》에는 주인공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 남원 광한루(廣寒樓)를
배경으로 시작되고 있고,
시조에서는 대동강변의 을밀대(乙密臺)·부벽루를 소재로 한 것이 많다.
특히 고려 말기의 문장가 이색(李穡)이 지은 오언율시인 《부벽루》는 부벽루에 올라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고사를 회고한 것으로, 시간과 공간의 조화있는 묘사를 통하여 수준 높은 한시의 세계를 잘 그려냈다.
또한 개화기 소설 중에는 이해조(李海朝)의 《소양정(昭陽亭)》 등 누정을 제목으로 한 것이 많다.

역사 속의 누정
 
경상남도 진주에 있는 촉석루는 진주성(晉州城)을 지키던 주장(主將)의 지휘소였으며, 고려 말에 창건되었고,
임진왜란 때에는 남쪽 지휘대로 사용하였던 까닭에 남장대(南將臺)라고도 하였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의기(義妓) 논개(論介)가 왜장과 함께 순국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밖에 거창 고운정(孤雲亭), 함양 학사루(學士樓), 합천 학사당(學士堂) 등은 신라 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의
발자취가 스민 곳으로 알려졌으며, 청주의 취경루(聚景樓)는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몽진(蒙塵)하게 된
공민왕이 난을 평정하고서 문과(文科)와 감시(監試)를 행하는 방(榜)을 붙인 곳이라 전해진다.
또 강원도 철원 고석정(孤石亭)은 신라시대 진평왕(眞平王)이 세운 것으로서, 조선 명종(明宗) 때 의적당(義賊黨)의
두목 임꺽정(林巨正)이 정자 건너편에 돌벽을 높이 쌓고 칩거하며 조공물을 탈취하였는데,
이 조공물을 가지고 빈민들을 구제했다고 한다.

미술 속의 누정
 
산과 물을 근본 주제로 한 산수화에 있어서, 누정은 거의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주로 강이나 개천을 배경으로 하는데, 15세기 중엽 안견(安堅)의 《춘경산수도(春景山水圖)》에서는
강가의 2층 누각과 언덕 위 초가로 된 정자가 평온한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16세기 후반 이정근 (李正根)의 《미법산수도(米法山水圖)》에는 강 옆의 적막한 누각이 그려져 있다.
또 이흥효(李興孝)의 《산수도》에서도 잠시 낚싯대를 거두고서 한적하게 정자 아래에 모여 담소하는
사 람들의 모습이 있으며, 장승업(張承業)의 《산수도》는 널찍한 지붕에 단순한 기둥을 가진 정자가
소박한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다.
18세기 중엽 작품인 정선(鄭敾)의 《무봉산중(舞鳳山中)》에도 두 선비가 시냇가 초가정자에 앉아 학문을 논하는
듯한 모습이 있다.
그리고 산과 더불어 그려진 누정으로는 이수문(李秀文)의 《악양루도(岳陽樓圖)》, 이정근의
《설경산수도 (雪景山水圖)》, 이징(李澄)의 《이금산수(泥金 山水)》가 있다. 이외에 이유신(李維新)의
《행정추상도(杏亭秋賞圖)》는 은행나무 옆 축대 위의 정자에서 8명의 사람들을 지극히
자연스럽게 화폭에 담은 것이다.
한편 15세기 이래의 주요 산수화 가운데 누정의 명칭이 제목으로 되어 있는 것들을 꼽아 보면, 최북(崔北)의
《수각산수도(水閣山水圖)》, 이인상(李麟祥)의 《강상초루도(江上草樓圖)》, 이윤영(李胤永)의
《경송초루도(徑松草樓圖)》, 이재관(李在寬)의 《총석정도(叢石亭圖)》, 유숙(劉淑)의 《세검정도(洗劒亭圖)》,
이인문(李寅文)의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 등이 있다                                         -야후의 사전풀이에서 발췌
 
고창읍 노동저수지에서 호동마을 쪽으로 100m 쯤 가면 수백년된 노송, 거목 버드나무가 어울어진 숲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정자가 바로 취석정이다.

취석이란 말은 옛날 중국의 도연명이 한가로이 세상을 살때 술에 취하면 집앞 돌팍위에 잠들기도 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람이 욕심없이 한가롭게 생활한다는 뜻으로 취석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이 취석정은 광산인 노계 김경희가 조선 명종1년(1546)에 세운 정자로서 을사사화를 맞아 선생께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죽음 이만영 규암 송인수 등, 제현과 더불어 정자에 올라 시를 읊고 문의를 강논하였으며 그때의
시집 노계집1권이 지금도 전하고 있다.

또한 경치가 아름다워 이곳에서 시한수 암송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이 정자 담장내에는
아직 훼손되지 않은 크고 작은 지석묘 7기가 널려 있고 담장 사이와 밖으로 3기의 지석묘가 있어
옛 선사문화 유적도 감상할 수 있다.                                         -자료 발췌
 
답사소감                - 일권
취석정의 사계는 아름답다
연두빛으로 물든 봄날이 좋고
짙은 녹음으로 뒤 덮인 여름이 좋아
황금빛 단풍이 물드는 가을은 어떻고
나목의 가지 사이로 함박눈이 내려 쌓이는 겨울은
구들 들인 방이 따뜻해서 좋테나.
 
공부 걱정도 직장 걱정은 더더욱 없었던 코흘리게 시절
봄볕이 따사로운 날, 엄마와 아버지를 따라
절골 화전밭을 따라 갔다.
먼 산등성이에서 뻐꾹이가 울고
인기척에 푸드덕 하고 긴 꼬리 휘날리며 포물선을 그리던 장끼의 멋진 날개짓.
자박자박 앞서 걷는 아버지의 고무신 끌리는 소리가 좋아서
발걸음을 따라 짧으려고 폴짝 폴짝 뛰었다.
루정건물을 마주하고 있으면 
내 유년기의 그 충만한 여유로움이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로
들어서도 밖에 섰는 것 같고
밖에 서 있어도 그 안에 있는 것 같고,
모호함의 공간분할이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거산에 기대어 서 있는 바위가
독립된 객체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열주 사이로 보이는 밖의 풍경이 안에 있는 나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보이는 대상이 시신경을 통해 전달되어도
뇌세포의 어느 정점에 머물지 못한다.
마치 들숨 날숨이 생명을 지탱해 주듯이...
루정 앞에 서면 난 언제나 그것과 연애 하는 기분이다.
 
취석정은 사방이 3칸으로 정방형의 평면이다.
정방형의 평면에 팔짝지붕을 만들려다보니 그 아래엔 아담한 보꾹 천정이 생긴다.
배면은 머름 위 쌍짱을 달았고,
전,좌,우는 세살 쌍문을 달았다.
계자난간과 교살의 고창과 세살문의 조화로움이 매우 세련되어 보인다.
 
겨울의 끝 자락에도 늦은 오후에 만난 취석정은 캐캐 묵은 먼지 때문인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루정의 여유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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