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골프 하십니까?
내기골프는 칼과 같아서 그 주체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다. 잘만 즐기면 게임의 활력소가 될 뿐더러 집중력을 높여줘 좋은 샷, 좋은 스코어로 보답받는다. 그러나, 매개체인 ‘돈’이나 승패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기도 한다.
서울 근교 골프장을 찾은 135명의 골퍼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라운드 때 내기골프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91%가 ‘그렇다’는 응답을 했다. 빈도는 매번 47%, 어쩌다 한 번 24%, 두 번 중 한 번 20%로 조사됐다. 그들 중 75%는 한 타당 적정 내기금액으로 1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당수의 골퍼들이 내기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야말로 ‘고스톱’이 국민오락이다시피 널리 퍼진 시대의 골퍼들다운 면모다. 최근에는 내기골프에 관련된 책이 출간되기에까지 이르렀다.
내기골프는 칼과 같아서 그 주체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다. 잘만 즐기면 게임의 활력소가 될 뿐더러 집중력을 높여줘 좋은 샷, 좋은 스코어로 보답받는다. 그러나, 매개체인 ‘돈’이나, 승패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기도 한다. 더러 뉴스로 소개되는 내기골프의 폐해가 그런 사례들이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내기골프를 대단히 즐긴 골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업무에 지장이 없을 경우 많게는 1주일에 3회 정도나 라운드를 했고, 이 때 거의 매번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당시 각계 고위인사들과 ‘수요회’라는 모임을 가졌는데 그 모임에서 플레이를 할 때마다 꼭 천원짜리 내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의 내기골프에 대한 지론은 ‘대충 적당히 하는 골프가 아닌 플레이의 묘미를 돋우면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골프를 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끝까지 긴장하게 하는 내기골프
그런가 하면 1970년대의 정부 권력자들도 내기골프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한 타당 당시 돈 100원짜리 내기를 했으니 대단히 큰 금액이다. 그 핵심인물 중에는 중앙정보부장이던 김형욱 씨도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례와는 달리 일반 골퍼들의 기를 죽이는 내기골프도 왕왕 있는 것으로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30대 후반의 공무원이 업무 관련업계 경영자들과의 내기골프로 수천만원을 벌었다거나, 모 기업체 회장님이 1타당 천만원짜리 내기를 했는가 하면, 가산을 탕진한 사람들도 제법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뇌물이며, 죽기살기식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가볍게 즐기는 차원을 넘어선 행위인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내기골프 중 가장 큰 액수의 게임은 ‘배가의 법칙’을 이용한 것이다. 이 내기는 첫 홀에서의 내기금액이 천원이라 무척 단순해 보이지만 마지막홀에서의 1타 당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인 1억3,107만2,000원이 된다.
아래 <도표>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홀이 거듭됨에 따라 실로 놀라운 내기금액이 된다. 17번홀까지 주고받은 돈이 본전이어도 마지막 홀에서 2타만 지면 약 3억원을 잃게 된다. 나의 OB 한 방으로 3명 모두에게 2타씩 지게 된다면 약 8억원이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할 때의 금액이 1천원이 아닌 1만원이라면…….
내기를 크게 하는 경우는 1천만원권 수표를 대신해 1만원권을 가지고 플레이한 후 정식 계산은 19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주위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도박성 내기골프를 하는 골퍼들이 모두 특별한 사람들은 아니다. 주도하는 소수의 ‘타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들러리인 일반 골퍼다. 그렇기 때문에 당하고 나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다.
비제이 싱과 마피아도 내기골프를
세계랭킹 1위인 비제이 싱도 한 때 생활이 어려워 내기골프로 연명했던 시절이 있다. 스코어 오기로 2년간 선수자격을 박탈당한 이후 보르네오골프장에서 클럽프로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 시절 10달러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 홀 티샷을 워터해저드에 넣는 실수를 하고도 파를 잡아 700달러를 땄다고 한다. ‘생활을 하기 위해 무조건 이겨야 했기 때문’이라는 후일담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마피아들도 내기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조직의 보스급들이 내기골프를 할 때면 골프장에는 무장한 조직원들이 배치되어 보스의 안전과 혹시 있을지도 모를 속임수로 인한 싸움에 대비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들 마피아들의 내기골프가 가장 엄정하게 치러진 게임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골퍼들에게 회자되는 유머 중에는 내기골프에 관련된 것도 있다. ‘내기골프에 열중이던 골퍼들이 도로 인근 홀에 이르렀을 때, 마침 영구차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골퍼가 영구차를 향해 모자를 벗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동료들이 내기돈을 따기 위해 살벌한 플레이를 펼치던 그답지 않은 행동에 궁금해했다. 애도를 표하던 친구 왈 “마누라의 마지막 길이니 내가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야지”였다고 한다.’ 내기골프의 중독성을 대변해 주는 유머다.
한편, 내기골프에 임하는 골퍼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일화도 있다. ‘A와 B 가 내기골프를 하던 중 어느 홀에서 A가 티샷한 볼이 그만 러프에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둘이 함께 볼을 찾던 중 B가 먼저 볼을 발견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볼을 밟아버렸다. 그러자, 볼은 흙 속에 묻혀 버렸다. B는 그렇게 해놓고도 시치미를 뗀 채 계속해서 볼을 찾는 시늉을 했다.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른 채 볼을 찾기 시작한지 5분이 다 되어갈 때쯤, A가 주머니에 들어 있던 볼 하나를 슬그머니 옆에 떨어뜨려 놓고는, ‘찾았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볼을 흙에 묻어버린 B로서는 A가 다음 샷을 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기골프는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가볍게 하는 것이 좋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플레이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는 골퍼들 스스로가 해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기골프는 기본으로 알려진 스트로크, 홀매치, 스킨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는 이유는 재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정한 핸디캡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로가 처음 만나거나, 오랫만에 같이 플레이하게 된 경우에는 내기골프의 특성상 핸디캡 적용에서 속고 속이는 일이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골퍼들이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내기골프 방식은 개별적으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두 가지 정도가 조합되어 긴장감을 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킨스나 라스베가스를 하면서 OECD를 적용하는 경우가 그렇다.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내기골프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내기골프의 유형
●스트로크
모든 골퍼들이 알고있다시피 각 홀당 타수의 차이에 따라 기준으로 정한 내기금액을 타수 차이만큼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A가 5타를 치고 B가 4타, C가 6타, D가 4타인 경우 기준금액이 5천원이라면 A는 C로부터 5천원을 받고, B와 D에게 5천원씩을 줘야 된다. 각자의 애버리지 스코어가 다를 경우에는 서로가 용인할 수 있는 적당한 핸디캡을 적용한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
●매치
골프경기가 시작된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약 590년간 계속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방식. 각 홀당 일정한 내기금액을 걸어놓고 해당 홀에서 가장 잘 친 사람이 그것을 가져가는 게임. 애버리지 스코어가 비슷하지 않을 경우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전체 홀을 통틀어 가장 많은 홀을 진 사람이 식사를, 두 번째 많이 진 사람이 캐디피를, 세 번째 많이 진 사람이 카트피를 내기도 한다.
●스킨스
홀매치의 변형된 방식. 참가자 모두의 핸디캡에 따라 적당한 스킨(상금)을 걸고 각 홀당 가장 잘 치는 사람이 스킨을 따는 방식. 이 때, 스킨의 합은 보통 18만원 정도다. 4명이 핸디캡을 적용해 잘 치는 사람이 많은 금액을, 못 치는 사람이 적은 금액을 낸다. 어느 한 홀에서 가장 잘 친 사람이 2명 이상일 경우 스킨은 다음 홀로 이월된다. 이월된 스킨은 전 홀 것까지 합해진다. 상기한 것처럼 각 홀별 같은 금액의 스킨을 걸 수도 있고, 모아진 금액이 많을 경우 뒤로 갈수록 높은 금액의 스킨을 거는 방식도 있다.
●라스베가스
핸디캡 적용이 어려울 경우 편을 먹고 하는 가장 공평한 방식. 1명당 9만원씩 플레이 전에 모으면 4명 1조에 36만원이 되고, 이것을 한 홀당 스트로크로 이긴 편 2명이 1만원씩 2만원을 빼간다. 편을 정하는 방법은 첫 홀에서 드라이브샷 거리에 따라 가장 멀리 나간 사람과 가장 적게 나간 사람이 한 편이 되고, 나머지 2명이 한 편이 된다. 2번홀부터는 전 홀의 스코어에 따라 가장 잘 친 사람과 가장 못 친 사람이 한 편이 되고, 그 나머지가 한 편이 되는 방법으로 편은 계속 바뀌게 되므로 내기의 묘미는 그대로 느끼면서도 개인적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아 많은 골퍼들이 즐긴다.
●하이로
라스베가스식에서 약간 변형된 방식. 편을 가리는 방식은 라스베가스식과 같지만 2명 중 잘 친 사람의 스코어를 10자리에 놓고 못 친 사람의 스코어를 1자리에 놓아 두 편의 점수 차이만큼 기준금을 곱한 값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파5 홀의 경우 한 편은 파와 버디를 했고, 다른 편은 둘 다 파를 했다면 45대 55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기준금 1천원일 경우 만원을 주는 것이다. 각 홀당 계산이 된다.
●OECD
OECD란 개발도상국의 원조와 세계무역 확대 등을 목적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 등 선진국들이 1961년 발족한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약자다. 우리나라도 1996년 가입한 바 있다. 이 방식은 스킨스나 라스베가스에서처럼 각자 낸 금액을 한 데 모아 가장 잘 친 사람이 홀당 스킨을 가져가는 방식에서, 자기의 본전이 넘는 순간부터 선진국이 되어 본전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원조해 주는 의미로 스킨을 토해내게 한다.
예를 들어 벙커, 3퍼트, 트리플보기, 옆그린 온, OB, 해저드, 로스트 등 7가지(칠거지악)의 경우 한 가지당 이길 때 가져갔던 한 회의 금액을 토해내고, 이를 낸 사람이 장타상을 걸면 장타자가 상금을 획득하는 방식이다. 방심하면 한 홀에서 5가지 벌을 적용받기도 한다. 그리고, 7가지 모두가 한 홀에서 적용되면 총 금액의 2배를 물게 되어 한 순간 파산할 수도 있다.
●계 묻기
스킨스나 라스베가스식처럼 일정한 내기금액을 걸고 정해놓은 홀까지의 플레이가 끝난 후 가장 잘 친 사람이 상금을 타 가는 방식. 계산하는 단위별로 9홀 계, 그늘집 계 등이 있다. 급한 성격의 골퍼들은 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냥 가볍게 식사내기나 캐디피내기의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글·최종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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