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몇 초간의 말없는 가르침
박 철 한
백로를 넘긴 초가을자리에 삼복더위가 염치없이 들락날락한다. 아침식사 도중 TV 뉴스에 나오는 감동적인 사연이 무더위에 덤거친(주1) 심정을 말끔히 날렸다. 최근 양산 통도사 자장암 시주함에서 편지 한 통과 함께 현금 200만원이 든 봉투가 발견됐단다. 현장의 기자까지 눈시울이 붉어지며 소개한 사연이었으니, 인터넷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 해 봤다. 거기엔 이름도 밝히지 않은 주인공이 손 글씨로 또박또박 쓴 편지의 사진이 올라있었다. 읽으면서 콧등이 시큰했던 그 편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 생각이 없었습니다. 27년 전에 여기 자장암에서 시주함을 들고 산으로 가서 돈을 빼갔습니다. 약 3만 원 가량으로 기억납니다. 그리고 며칠 뒤 또 돈을 훔치러 갔는데 한 스님이 제 어깨를 잡으며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셨습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스님이 주문을 넣어서 착해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못 와서 죄송합니다. 잠시 빌렸다 생각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곧 애기가 태어날 거 같은데 애기한테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날 스님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당시 편지 작성자의 어깨를 말없이 잡고 타일렀던 현문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역임한 후 지금도 자장암에 기거한단다. 현문스님은 “그 편지를 보면서‘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싶어 감동받았다. 그 소년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일은 또렷이 기억난다. 그날 앳된 얼굴의 학생이 찾아와 시주함 주변을 배회하자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어 제지했다. 소년을 보낸 후 그 일도 잊어 버렸다. 당시 시주함이 자주 털리곤 했는데 IMF가 터졌던 무렵인지라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그 소년이 그 일을 계기로 옳은 마음으로 살아왔다니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27년 전에 가져갔던 금액의 66배에 이르는 현금을 남몰래 시주한 편지 주인공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40세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을 봄에 있어 미혹됨이 없다는‘불혹(不惑)’이다. 물론 그는 이미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미혹됨이 없이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고 있음을 그의 편지에서 읽을 수 있다. 특히“곧 애기가 태어날 거 같은데 애기한테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밝힌 부분에서 그렇다.
현문스님이야 얼마나 보람되고 뿌듯했으랴. 편지 주인공은 어린 날에 암자에서 3만 원을 훔쳤고 며칠 뒤 또 훔치러 갔다가,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이후부터 착하게 살았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런데 편지에서 확인되는 그 가르침이란 오직“한 스님이 제 어깨를 잡으며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셨습니다.”라는 대목뿐이다. 하지만 그는 스님에게 받은 그 몇 초간의 말없는 가르침을, 몇 시간의 훈계보다 더 뚜렷하게 마음속에 새겼음을 알 수 있다. 그 사실은 편지 내용의“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날 스님이 주문을 넣어서 착해진 것 같습니다.”라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혹 당시 그 소년을 호되게 꾸짖었다면 지금의 결실이 맺어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스님은 아마 그 편지를 읽고 이 세상을 다 얻은 것만큼이나 기뻤을 것이다.
만약 누구든지 당시 현문스님의 입장이었다면 대개 그 소년을 엄히 꾸짖으며 훈계하였으리라.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만 좌우로 저으며 제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믿음이 전제되지 않은 가르침은 세상에 없을 것이니, 스님에겐 그 방식만으로도 상대가 깨칠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 않았으랴. 더불어 스님의 그 믿음에 보답하여 과거를 마감하고 이후부터 착하게 살아온 편지 주인공 또한 행운아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비록 단 몇 초간의 짧은 만남에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을지언정 둘의 인연은 참으로 깊다고 할 수 있지 않으랴. 더구나 27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용케 옛 그 자리에서 가르침의 결실을 맛본 현문스님이기에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순식간의 말없는 가르침으로 남의 잘못을 깨쳤다면 그건 행운일 것이다. 누구나 대개는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을 말로 해야 남들이 알아들을 것으로 판단하며 많은 말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설령 누가 극히 짧은 시간에 말없이 남을 깨치려 노력했다 치더라도 그게 다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상대가 그 깨침을 알아듣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할지니 그 조합이 일치하기란 그야말로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문스님과 그 편지 주인공의 조합은 완벽하게 일치했다고 할 수 있기에 부럽다는 것이다.
여태껏 살면서 극히 짧은 시간의 말없는 가르침으로 남을 깨친 경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물음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부모·스승을 포함한 남에게, 말없는 가르침을 받아본 경우를 포함해도 마찬가지다. 어려서는 주로 엄한 꾸짖음과 훈계를 들어가며 가르침을 받았고, 커서는 주로 남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가르치려 했을 뿐이었다. 남은 인생에서 혹, 한순간의 말없는 가르침을 상대에게 주거나 또는 받을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다. 만약 단 한 번이라도 그 기회가 주어지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실천하여 둘의 조합이 일치한다면 덩실덩실 춤인들 못 추랴. 끝.
(주1)덤거칠다: 우울하고 답답하다.
| <박철한> - 전남 곡성출생, 2005년 ‘문학예술’ 수필등단, 곡성군 정년퇴임(기술보급과장, 고달면장), 녹조근정훈장 (현)한국문인협회 곡성지부장, 전남문인협회, 전남수필문학회, 광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세월이 머무는 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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