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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범나비 산청 기산에 놀다.

작성자정영진|작성시간22.05.24|조회수61 목록 댓글 0

‘범나비 산청 기산에 놀다.’는 기산국악당이 5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20회 펼치는 산청국악축제 토요상설공연의 3회째 공연으로 박경랑의 춤 교방풍류놀음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남사예담촌 기산국악당은 산청이 낳은 국악의 선각자 기산 박헌봉선생(1906~1977)의 업적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한 곳으로 기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교육기관인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와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였고 ‘창악대강’을 저술하여 국악이론의 기틀을 마련한 국악계의 큰 스승이다.

 

기산국악당 장대석기단 위의 전면 다섯 칸 팔작지붕 기산관(岐山官) 중앙 대청마루와 좌우 툇마루에는 이날 공연의 주인공인 박경랑 명무를 비롯한 남녀 8명의 전 출연자가 곱고 아름다운 공연 한복차림으로 사이사이 주안반(酒案盤)을 놓고 자리 잡고 앉아 마당에 설치된 간이무대와 관람석 관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분장실과 대기실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열린 공개 무대에서 풍류를 즐기는 놀음판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의미 있는 구성으로 조명 빛을 받을 수 없는 한 낮 공연무대에서 한복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숨어있는 자태의 우아함이 시각적 충족감을 부풀리며 놀음판의 기대치를 한 층 더 달구고 있었다.

 

최은숙·김정미·김미자, 박경랑류 영남 교방춤 명무의 끝자락에 붉은색 꽃수가 놓인 3장의 하얀 수건이 봄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듯 손끝에서 너울거리자 따라 움직이던 마음이 출렁거린다. “지화자~ 지화자~ 널 어리고 나리소사여” 장기타령 소리가 대금 울음에 실려 덮어 내리는 무대 위에서 하얀 버선코는 치맛단을 삐져나왔다 숨고 또 나왔다 들어가고 현란한 감질거림으로 시선을 현혹한다.

 

셋이서 하나 되어 움질거리는 어깨선을 타고 흐르는 경서도 소리의 달음질이 한손으로 살짝 치켜든 치마 자락으로 스며들며 ‘아’하고 감탄의 소리를 불러낸다. 춤으로 이어온 연륜과 경륜이 뿜어내는 조화의 아름다움이 곱고 편안한 춤사위로 무대를 가득 채우며 한마음 가득 행복으로 채워주는 영남교방 수건춤이다.

 

노란색 저고리에 보라색치마를 다잡아 휘감은 채 맑은 술 한 잔을 따라 접시에 올려 꽃대롱이 달린 붉은 대나무 비녀를 꽂은 틀어 올린 머리 위에 이고 대청마루에서 한 계단 한 계단 네 계단을 내려와 최은숙·김정미·김미자가 펼치는 춤 놀이판 안으로 박경랑이 살며시 스며들자 봄바람에 부르르 몸을 떨어보는 들에 핀 노랑 코스모스 네 송이의 소담스러움이었다.

 

세 춤꾼이 사라진 무대 위를 살포시 밟고 뛰는 디딤발이 만드는 궤적은 하얀 버선발로 그려내는 우리 춤의 백미를 보여주는 설렘이었다. 두 팔을 활짝 뻗어 손목을 꺾어 내려 돌리는가 하더니 손끝은 하늘을 찌르고 뒤태를 실룩거리며 돌아서다 멈추고, 이렇게 정중동(靜中動)의 묘미를 풀어가더니 빠른 발걸음으로 무대를 벗어나 마당 왼쪽 정자에 올라 어느 관객에게 잔을 올리며 교방 소반춤의 풍류를 가르쳐준다.

 

접시를 내려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에 대나무 비녀를 뽑아들고 입춤의 단순미와 요염한 몸짓으로 관객을 홀리더니 객석을 휘젓고 다니며 춤에 취하고 춤사위 따라 요동치는 관객들과 호흡을 맞추며 기쁨을 전달하고 어느새 접시와 비녀를 무구 삼아 접시춤을 춘다. 앉았다 일어서고, 두들기다 펼쳐들고, 땅을 짚고 찍어대다, 훨훨 날아 사라지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흥타령이 무대 한쪽에 마련된 풍류방 선비의 술잔을 진한 욕망으로 가득 채운다. 선비의 마음을 아는 듯 거문고가 울며 박경랑을 불러내자, 우아한 거문고 선율을 따라 물 흐르듯 미끄러지며 넘실넘실 화사한 춤가락으로 눈을 현혹시킨다.

 

박경랑의 춤에 반한 선비는 대(大) 붓을 들어 하얀 넓은 펼친 막 위에 춤의 정서를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박경랑이 앞치마를 살짝 들어 솔솔 거리며 그림 위를 한발 한발 내딛어 지나면서 선비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하얀 속치마를 활짝 펼쳐보이자, 뜨거운 가슴을 주체 못한 선비는 떨리는 손으로 먹을 묻혀 ‘봄꽃 한송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요염한 춤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인 박경랑에 가슴 조이던 선비는 합죽선에 그림을 그려 박경랑에 전하고, 합죽선을 펼쳐든 박경랑이 무대를 돌며 영남교방춤의 애간장 녹이는 교태를 마음껏 뿜어내자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 채 커다란 흰색 벽면에 ‘당신은 꽃이어라’ 큰 글씨를 남기고 속 타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해 연신 부채만 부쳐댄다.

 

살짝만 움찔해도 아름다운 어깨선, 느린 장단에 흐르는 화려한 춤사위, 하얀 버선발을 내디디며 찍고 사뿐거리는 발걸음, 합죽선을 펼쳤다 접는 절제감, 뱅글뱅글 돌며 만들어내는 치마의 둥근 막 요동, 느닷없이 걷어 올리는 속치마에 울렁이는 가슴, 순간순간 양손으로 처올렸다 내리는 치마에 녹아나는 가슴 설렘, 앞을 보며 수줍은 듯 웃는 얼굴에 여릿한 실루엣이 풍기는 아름다운 자태, 속 타는 가슴에 방망이질 하게 만드는 실룩거리는 뒤태, 영남교방청춤의 마력을 더 할 나위 없이 실감나게 인식시켜주는 박경랑이었다.

 

놀음판의 시작과 교방 소반춤에 이어진 경기국악제 경기민요 대통령상 수상자 최은호·김점순의 경서도민요 배띄워라, 창부타령, 뱃노래, 가락은 놀음판의 시작을 알리는 꾀꼬리의 울음이었으며 소반춤의 아름다움에 빠져 혼미해지는 영혼에 맑고 깨끗한 바람을 불어 넣어 ‘흥’에 겨워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며 놀음판의 열기 달구어주는 불소시게였다.

 

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5호 배뱅이굿 예능보유자 박정욱 놀음판장의 놀음판 순서 안내와 각 꼭지에 대한 간략한 해설은 관객들의 이해를 도와주었으며, 놀음판의 대미를 장식하며 관객과 하나가 되어 축제의 향연을 빛나게 한 ‘쾌지나칭칭나네’는 늦은 봄날 서산을 넘어가는 태양의 아름다운 노을빛처럼 관객의 마음을 물들였다.

 

어찌어찌하여 나의 일정과 인연이 닿아 참 오랜만에 박경랑 명무의 춤을 한 달 간격으로 세 번 연속 즐길 수 있었던 행운과 행복이 필자에게 더는 없을 것 같아 이 후기가 무척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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