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프라이팬에
불을 지피면
그녀가 좋아하던
빛바랜 시간들이
고슬고슬 피어오르고
기억의 기름을 두른
둥근 팬 위로
잘게 다진 그리움의
조각들이 쏟아졌다
당근의 붉은 빛은
부끄러운 내 사랑의
온기 같고
파릇하게 볶이는 채소들은
그해 봄날의
연두빛 약속 같아
프라이팬을 흔들 때마다
투명한 밥알 사이로
삼켜지지 않던
눈물의 얼룩들이
노랗게 하얗게
함께 볶여갑니다
노릇하게 구워진
달걀프라이 하나를
이불처럼 포근히 얹어
마치 함께 마주 앉은 듯
독상 위에 올려놓지만
수저를 들기도 전에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것은
고소한 풍미가 아니라
시린 회한의 숨결입니다
"우와, 오빠! 맛있구로,퍼뜩 묵자"
환하게 밝히던 그 다정한 사투리가
지독한 잔상이 되어
텅 빈 공기를 채울 때
한 숟가락 조심스레
삼키는 무게는
내가 평생을
홀로 견뎌내야 할
부재의 부피가 됩니다
이토록 다정했던 추억이
시린 풍경이 되어
가슴 가장 깊은 곳을
적셔오는 오늘
나는 여전히 등 뒤에서
불어오는 당신의 사투리를 들으며
채워지지 않을
캄캄한 식탁 위에서
오롯이 당신이라는 그리움을
견디고 있습니다.
<김종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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