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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2025년 3월 2일 / 예수를 제대로 따르는 사람 [마태복음 16:21~28]

작성자박기영목사|작성시간25.03.02|조회수68 목록 댓글 0

어떤 시인은 진짜 시인은 늘 시만 생각합니다. 자나 깨나 시를 생각하면 어떻게 시를 지을 것인지 고민하는 중에 시가 찾아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현철이라는 가수는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남겼습니다. 이 노래는 한 남자의 마음속에 끝까지 남아 있는 한 여인에 대한 그리움, 그 여인만 생각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노랫말로 엄청나게 히트쳤던 노래입니다. 여자분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니 대부분 여자들은 모이면 온통 남편과 자식이야기밖에 없다라는 통계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성분들이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눴다라고 해서 알아보니 시댁이나 친정에 관련된 이야기였다랍니다. 대부분 결혼하신 여자분은 모두 가족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들처럼 예수님 믿고 따르는 사람은 어떤 이야기가 가득해야 할까요? 우리 마음에서, 우리 입에서 어떤 생각, 어떤 말이 흘러나와야 할까요? 저와 여러분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예수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는 항상 예수님이 있어야 하며 그런 사람이 바로 예수를 진정 따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2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라며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희생을 이야기하시는 예수님을 걱정하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사역을 하면 안될 것이라고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더 오랫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하나님 일을 하기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계속 사역하셔야 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의 요청, 베드로가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책망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제 예언을 실천하시려는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베드로는 말려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결단하신 그 길을 베드로는 막으려고 합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망각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라며 책망이었습니다. 우리도 내 나름대로 내 의지를 가지고 내 계획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바르게 교회생활하고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의지, 그런 노력, 그런 계획의 실천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지, 어떤 것이 주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며 주님을 따르는 인생이 되는 것인지를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정말 주님을 따르는 신앙가치관, 주님을 따르는 참다운 인생의 의미, 정말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첫째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1절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우리가 앞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 앞 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주님의 제자 베드로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라며 예수님께 따집니다. 그런 이유로 베드로는 사람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따져보자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가까운 미래에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난과 죽으심, 부활의 사역에 대해 인정하고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 지,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일인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이신 것을 분명히 하신 후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자세히 보면 제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예수님의 사역과는 너무나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20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고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 예수님의 사명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사도 베드로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왕으로 지내시며 권력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평안하게 대접받는 위치에 앉으시고 세상 통치자로 머무시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일을 모르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이 예수님을 잘 섬기며 예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을 예수님을 섬기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내 사명이 되어야 할 줄 모르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사명, 내가 생각하는 신앙생활이 정말 하나님의 사명이며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생각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보기에 이게 신앙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종용하는 것이 될 때 우리는 이런 일들속에서 하나님의 일이 아닌 내 일, 사람의 일을 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개혁신학의 거두 죤 스토트목사님께서 영국 여왕이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할 때의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런 설교를 하였습니다.

캔터베리는 대주교는 성당 안에서 동, , , 북 각 방향의 청중들을 향하여 네 번 소리를 지릅니다. “귀빈 여러분! 저는 이분이 틀림없는 영국 여왕임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분에게 기꺼이 충성을 맹세하겠습니까?”

대주교가 물을 때마다. 웨스트민스터 성당 안에 모인 청중들이 큰 소리로 승인의 대답을 네 번 해야만 비로소 왕관이 여왕의 머리에 씌워집니다. 죤 스토트목사님은 설교중에 다시 이렇게 선포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도 오늘 여러분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 되심을 소개해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분에게 기꺼이 충성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충성을 다짐할 때 그 때에 비로소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국교회 대주교나 죤스토트 목사님이나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어쩌면 영국의 여왕을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일은 어느 인간을 높이거나 사람의 생각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생각하며 하나님의 사명대로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죤스토트 목사님은 예수님이 왕이시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며 이 땅 사역을 마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3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그 이유를 철저히 완성하고 온전히 그 사명에 따라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락한 생활이나 대접받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버리시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서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제물이 되셨고 그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6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셔야 할 일이 무엇인 지를 분명히 알아야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내 이익을 추구하고 내 생각대로 예수님을 믿고 내 의지대로 신앙적 기준을 만들고 있다면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출석도 잘하고 교회의 신앙훈련도 잘 받았지만 삶에서 내 의지와 내 노력을 자랑하며 나의 신앙생활에 대해 인정받으려고만 한다면 어디 가든지 그 곳에서 내가 높아지려고 한다면 절대 바른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인은 될지 몰라도 성도도 될 수 없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더더욱 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행하신 사역속에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일을 잘 판단하는 정말 예수님을 따르는 참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둘째로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62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아이가 갑자기 응급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수술 도중 피가 부족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아이의 피가 아주 희귀한 혈액이어서 병원에 여분의 피가 없었습니다. 병원내부를 수소문해도 그 피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족 중 딱 한 사람, 그 아이 동생만 혈액형이 일치했습니다. 해당 병원은 아무리 혈액이 필요해도 나이가 어린 아동에게 수혈을 요구할 수 없었지만 생명이 달린 문제여서 의사와 부모는 상의를 했고 아이의 동생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의사는 아이의 동생에게 형이 지금 수술을 받는데 피가 모자라서 지금 당장 피를 받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도 있단다. 형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혹시 형에게 피를 좀 나눠 줄 수 있니?”라고 물었습니다. 어린 동생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하고는 형의 수술실로 들어가 형 침대 옆에 누웠습니다. 수혈을 통해 수술은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생은 수혈이 끝났는데도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 아이에게 이제 일어나도 돼. 왜 눈을 안 뜨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선생님, 저는 이제 천국 갈 준비를 하면 되는건가요?”라며 선생님께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가 형에게 피를 주면 자신에게는 피가 없어져서 형대신 죽은 줄 알고 수술실에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놀란 의사선생님은 아이에게 그럼 너는 네가 죽는 줄 알면서도 형에게 피를 준 거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은 , 전 형을 너무 사랑하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각오하는 삶입니다. 나의 의지를 내려놓는 삶입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죽고 하나님만 따르는 삶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육신의 아픔이 찾아오고 노동의 고통이 생기고 시간과 돈에 있어 베풀어주고 나눠주는 노력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나의 자존심, 만족, 나의 욕구, 내가 대접받는 것, 내가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은 다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그 희생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희생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그 이상으로 큰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다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12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에서 말씀하신 큰 일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위해,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복음의 역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이 바로 큰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며 하나님과 그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가면 우리가 십자가를 지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게 되는 십자가는 바로 세상의 가치관에서는 죽고 주님의 가치관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38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히 십자가를 진다고 할 때 내가 어려워하는 것, 내가 불편해하는 것, 내가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자포자기하듯이 말하며 내 십자가를 진다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그 말도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십자가는 세상적 가치관, 세상적 쾌락, 세상적 욕망을 멀리하며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가치관으로 살기에 이 세상속에서는 뭔가 다른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은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을 자랑하며 예수님을 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626, 27절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을 믿는 것, 예수님께 예배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람들과 있을 때 자기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 사람은 참된 예수님의 제자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마지막 때 천국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부끄러워하시며 천국에서 그 사람을 모른 척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926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복된 것이라고 알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면 이것으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임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로마서 116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조쉬 맥도웰이라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아주 불행했고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알콜 중독자였기에 그의 친구들은 아버지와 조쉬, 그리고 그 가족을 조롱했습니다.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조쉬는 친구들이 집 근처에 오면 아버지를 창고에 끌고 가 꽁꽁 묶어놓고 아버지가 없는 척 할 때가 많았습니다. 조쉬는 학교에 가면 겉으로는 항상 웃었지만 속으로는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는 자연스레 분노에 찬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스레 아버지를 증오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조쉬는 대학에 들어갔고 거기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신실한 신앙인을 몇 명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들 안에서 자기의 굶주린 마음이 그토록 갈망했던 무언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엔 그는 너무 똑똑했습니다. 조쉬는 영적인 세계와 성경 속 초자연적인 기적에 대해 도무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성경의 내용, 특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지적으로 반박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반박의 증거를 찾아 성경을 파헤쳐 들었습니다. 성경연구와 그의 심적 갈등이라는 영적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갈등을 거쳐 조쉬는 성경연구 결과를 토대로 확신을 갖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9591219일 저녁 830분에 자기 방에서 혼자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마음과 삶 속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이며 수 많은 미국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명확하게 설명했고 기독교를 설명하는 책을 써서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준 미국 CCC대표강사 조쉬 맥도웰의 회심이야기입니다. 그의 똑똑한 지식을 토대로 기독교신앙에 대한 반박의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고통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고난가운데 십자가의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8절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살아가려고 하지만 그럴 때에도 고난이 찾아오고 고통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고 그 길을 걸어간 이후에 우리에게는 주님의 영광에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람들의 비난과 냉대에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예수님을 자랑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제대로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따라갈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 예수님께서는 어떤 존재로 우리에게 오셨고 그 분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주인이시며 참된 구원자이십니다.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그 분은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려고 친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를 구원하는 과정이기에 그 분은 반드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야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 베드로처럼 혹시 우리가 이 땅에서의 부귀영화를 기대하며 예수님이 이 땅에서 나에게 권력을 주시기를 기대하며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이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 죽으심과 부활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이익과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우리의 삶을 드리며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며 하나님을 높이며 예수님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 우리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며 이제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게 될 때 우리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것과 저 천국에서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고 주안에서의 기쁨이 충만한 인생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참된 예수님의 제자로 항상 예수님을 따라 살다 저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끄러워하는 존재가 아닌 자랑스러워하는 존재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안에서 하나님의 일만 신경쓰며 세상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때 우리 모든 삶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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