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 120명에게 임하신 성령강림사건을 말씀 속에서 나눴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안식일 전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세상에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시며 사역하시다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승천하시며 말씀하신 성령강림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2층집 윗 층에서 10일 동안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10일째 되는 날 즉 유대 명절 오순절에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는 성령임재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은 변화된 예수님의 제자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성령의 충만함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제자들을 보며 다 기이하게 생각하며 놀랬습니다. “우리가 지금 16개가 넘는 나라에서 왔는데 배우지 못한 갈릴리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나라 말을 할 수 있냐?” “저 사람들 술에 취해서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거다”라며 조롱합니다. 이에 베드로가 소리를 높여 말합니다. “이 오순절 성령사건은 술 취한 사람들의 짓거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아침 9시부터 술에 취하겠습니까? 이것은 오래전 성경 요엘에 예언된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하신 일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요엘의 성령임재예언에 대해 설교합니다. 이 성령임재는 말세 때 나타날 일이라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동양 종교사상에는 ‘말세’가 없습니다. 동양종교의 역사관은 윤회사상이죠. 끝없이 돌고 도는 이 세상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 또 죽고 다시 태어나 또 죽은 것이 동양사상입니다. 업보와 인과응보의 반복이며 인간은 다음 세상에 어떤 존재로 태어날 것인가만 생각하고 세상이 끝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창조가 있으면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내세가 있습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습니다. 입학할 때가 있으면 졸업할 때가 있습니다. 입사할 때가 있으면 퇴직할 때가 있습니다. 항상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말세’라는 말 속에는 항상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역사의 종말, 즉 세상과 인류의 종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 세상에는 말세가 찾아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인생도 언젠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종말이 언제 찾아올지 우리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의 종말도 언제일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임재사건을 요엘서에 예언된 ‘말세에 일어날 성령강림사건’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일을 통해 이제 우리는 말세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깨닫고 이 말세 중에서도 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역사를 체험하고 살아야 할 지를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구약의 선지자 요엘이 예언하고 베드로를 통해 풀어준 말세의 시대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느끼며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세 때에는 첫째로, 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 베드로가 성령임재에 대해 설교하는 이 본문은 구약성경 요엘 2장 28절부터 32절의 내용입니다. 주전 830년 경, 당시 남쪽 유다 왕국은 풍요로운 경제상황이었지만 이런 경제성장은 우상숭배와 불신앙적인 종교활동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메뚜기 심판이었습니다. 엄청난 메뚜기 떼가 몰려와 유다 땅을 덮게 되었습니다. 모든 농작물을 해쳐 버렸기 때문에, 유다 땅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사람, 요엘은 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 결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돌아와 회개하였고 이들을 불쌍히 보신 하나님께서는 메뚜기 떼를 바다로 몰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을 위한 새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 풍요한 추수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엘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가 언급한 요엘 선지자의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방금 읽은 사도행전 2장 17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구약성경 요엘 2장에서는 ‘그 후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베드로는 ‘말세에’라고 설교합니다. 이 ‘말세’라는 단어는 ‘어느 지정된 날짜’가 아니라 ‘말세의 때’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를 영어성경에서 찾아보면 ‘In the last days’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지막 날들’이고 우리가 흔히 쓰는 ‘마지막 때’라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이 마지막 때,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오시는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오순절 날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역사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정신없는 사람들은 이미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성경학자’요, ‘신학박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는 끝이 났다”라고 주장합니다. 경험주의와 실증주의, 합리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현실적인 모습만 주장하고 자기 실체경험만 주장하면 그런 잘못된 학설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우리 경험이 아니라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는 것이 그렇다고하면 그것에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신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부터 다시 오시는 재림까지의 전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과거 2,0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초대교회 시대에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주후 2020년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입니다. 다시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기 나오는 “예언, 환상, 꿈”이 뭘까요? 분명 구약시대에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를 말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 바로 ‘예언’, ‘환상’,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대 꿈, 환상, 예언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무조건 단정하면 큰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완전하게 부어주신 “예언”, 완전하게 역사하신 “환상”, 완전하게 드러내신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계시의 성격과 내용을 제대로 발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백성들, 하나님과 교회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절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체험, 개인적인 유익으로 꿈, 환상, 예언이 쓸모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곧 하나님 계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깨닫게 하셔야 “꿈” “환상” “예언”이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쓸모 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내용,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계획,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 죽으심, 부활과 승천, 그리고 재림이야말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꿈” “환상” “예언”임을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이런 “예언” “환상” “꿈”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이제 성령이 임하시면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신분고하, 빈부여부 상관없이 말씀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꿈을 꾸고 환상을 보며 예언하게 됩니다. 이 말씀의 참 의미는 성령이 임한 사람이라면 복음을 깨닫게 되고 복음으로 살아가게 되고 복음으로 구원얻고 복음으로 영생을 누리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꿈꾸고 환상을 보며 예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 때가 되면 인종의 차별, 성별의 차별, 빈부의 차별 없이 구원의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말씀의 의미입니다.
로마서 10장 12, 13절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말세에 성령이 임하면 성령으로 인해 우리의 입술로 그리스도 예수를 부를 수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차별 없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꿈꾸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환상을 보는 은혜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마지막 때에 부어주신 성령으로 말씀을 깨닫고 말씀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 예수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세 때에는 둘째로, 인간의 조건이 아닌 은혜로 성령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 17, 18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말세에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육체’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요엘을 보시면 ‘만민’이라고 쓰였던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는 ‘모든 육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같은 말인데 다르게 표현된 것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 17, 18절에서는 이 ‘모든 육체’를 세분화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너희 자녀들’ 둘째로, ‘너희의 젊은이들’ 셋째로, ‘너희의 늙은이들’ 넷째로, ‘내 남종’, 다섯째로 ‘내 여종들’... 이렇게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분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는 인종, 남녀, 노소, 계급, 빈부에 상관없이 택함을 받을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인간의 자격조건이 아닌 하나님 뜻 가운데 성령을 받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차별되지 않고 성령을 받을 존재라는 것입니다. 물론 구약성경에도 성령은 존재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시대 성령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임하셨고 떠나기도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던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로 특별한 역사를 행하였지만 맡겨진 일이 끝났든지 그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버리면 성령님께서는 그들로부터 떠나 버리셨습니다.
시편 51편 11절을 보실까요? 같이 읽겠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이 시편에서 시편 기자 다윗은 “주의 성령을 거두어 가지 말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임하였다가 사라질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이제 오셔서 절대 떠나지 않으시는 보혜사 성령이 우리의 심령에 완전히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십니다.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동행하십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성령충만을 간절히 사모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저와 여러분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말세에 만민에게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 18절을 다시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환상’과 ‘예언’, ‘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뜻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보고 말씀을 배우며 말씀을 익히는 것이 은혜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구약시대, 그리고 신약시대, 심지어 중세 시대까지 하나님의 말씀은 일부 특권층 종교지도자만 소유한 말씀이었습니다. 글자를 배울 수도 없었고 심지어 중세의 교회에서는 일반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라틴어로 성경을 읽고 배우고 설교하는 이상한 짓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면 말씀을 읽고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께서 임하시면 차별 없이 누구나 은사와 능력과 훈련과 체험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남종, 여종... 신분과 나이 상관없이 이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세례, 성령충만을 받을 조건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받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 어르신과 젊은이, 부자와 가난한 자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공헌하게 할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셔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미 요엘을 통해 예언하신 성령의 역사를 이제 이루신 것입니다. 수천 년 전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일이 신약시대 오순절 날 이뤄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은혜를 받은 것을 감사하며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부를 수 있게 하시며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게 하신 것을 기뻐하며 참 신앙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세 때에는 마지막 셋째로, 자연을 통해서도 놀라운 징조가 나타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9, 20절입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오늘 본문 2장 19, 20절에 나오는 현상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우주 만물의 종말을 알리는 현상들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늘에서는 기사”라는 말씀에서 ‘하늘’은 신령한 영역을 말하는 것이고 ‘기사’는 구원의 역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 절대주권, 그 전지전능으로 땅에서 징조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사를 말합니다. ‘땅’은 신령한 세계와 대조된 불순종자들의 거처입니다. 불순종자들에게 ‘심판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의 때가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피와 불과 연기로다”라는 말씀은 ‘땅’에서 베풀어지는 심판의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입니다. ‘피’는 사망을 뜻하고 ‘불’은 환난과 고통, ‘연기’는 앞이 깜깜한 것, 즉 암담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런 징조들이 있고 난 후에 이제 심판의 날이 임합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심판이 있을 날이며 우리 주 예수님 재림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지막 날 한 순간 세상은 암흑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을 보기 전 이 세상은 완전한 암흑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환난이 심하고 악의 세력이 강하여 진리가 가려지고 흑암의 세상이 됩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구원의 동아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 2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누가 주의 이름을 부를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가 부릅니다. 방금 읽은 본문 사도행전 2장 21절에서 ‘부르다’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며 기도 가운데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맺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 것입니다. ‘한국에는 수십 층 아파트가 많은데 지진이 나면 어떻게 하나?’라며 걱정하는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게 걱정하면 밤에 잠이나 잘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 시대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형제나 가족이나 친구 중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 죄 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즉 말세에는 주의 이름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되도록 우리에게 성령세례를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내주하신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부르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염려와 걱정과 불안을 없애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신비로운 경험을 통해 자기만족을 주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시는 구원을 선포하고, 증거하고, 확증하기 위해서 이 땅에 서 있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안정과 마음의 위로와 평안,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그리스도 예수만이 구원자임을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망각하고 우리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게 될 것입니다. 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이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 성령님이 살아서 우리를 이끄셔야 합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없으면 전도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므로 우리는 주님을 영접했고 주님이 허락하신 성령의 임재 안에서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에 매여 살아야 합니다. 성령에 매여 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의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갑니다. 말씀이 예언이 되고 말씀이 환상이 되고 말씀이 꿈이 되어 말씀이 내 삶에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이 생기고 힘든 일이 생길 때 항상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성령님께 우리를 맡기며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주시는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성령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며 하나님께 항상 묻고 하나님의 응답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견고하게 붙잡을 때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의의 길로, 은혜의 길로, 영광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약속을 삶의 순간순간 반드시 이뤄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임재하심 안에서 항상 은혜의 신앙을 체험하고 간증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