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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아홉명과 한 사람

작성자이도형|작성시간25.02.24|조회수71 목록 댓글 0

아홉명과 한 사람

 

부교역자 시절 살고 있던 지역에 큰 홍수가 났었습니다.

그야말로 양동이로 물을 붓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엄청난 비가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려 2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었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온정의 성금과 성품들이 지자체를 통하여 전달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섬기던 교회에도 전국 교회에서 보내준 사랑의 마음들을 피해 입은 가정에 전달하느라 그해에는 진땀을 흘렸습니다.

 

어려움을 당한 가정들을 도우면서 당시에 처절하게 배웠던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크든 적든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후에 불평들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점입니다. 그것도 누구는 얼마를 받았는데 우리는 이것밖에 도와주지 않느냐? 라는 식의 불만이었습니다.

 

그러한 뼈아픈 경험을 하면서 구제하는 일도 지혜롭고 사려가 깊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본성 가운데에는 감사의 고백하기보다 불평과 원망하는 것이 더 쉽고 자연스럽지 않나 싶었습니다.

 

실례로 오지랖 사역이라는 깃발을 흔들면서 가지는 경험 가운데 하나는,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후 사마리아인만 감사 인사를 했을 때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체감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인간의 본성에는 수혜를 받았으면 감사를 표하기보다, 당연시여기거나 아니면 표현하기가 쑥스럽기에 그 순간을 지나쳐 버리는 성향이 있지 않나 싶어집니다.

 

사실 오지랖 사역이라는 명분 아래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에게 크든 적든 물질을 흘려 보내면 어떤 이는 통로로 쓰임받는 입장이 민망할 정도로 고마움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들은 지극히 소수이고 나머지는 덤덤할 정도로 지나쳐 버리는 모습들을 대하게 됩니다.

 

물론 인사를 받고자 하는 일은 아님이 분명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지나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되면 자괴감이 들게 마련입니다.

 

또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줄 수 있는 상황일지라도 그런 분들을 접하게 되면 저 역시 무덤덤해지는 것은 속물근성 때문이겠지요.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촌에서 문둥병자 열사람이 멀리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라 소리를 높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던 길에서 그들은 병이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점이 두 가지입니다.

1. 열 명이 동일하게 천형(天刑)이라는 나병을 고침 받았는데 아홉은 제 갈 길로 갔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 아홉 명에게도 각자의 사정과 형편은 있었겠지요.

 

2. 열 명 가운데 예수님 앞에 찾아와서 인사를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명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인들은 정체성이 모호했던 이방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의 치유>(일부), 1035-40년경, 뉘른베르크, 독일.

 

어느 쪽에도 낄 수 없었던, 온전한 사람으로 평가조차 받기 어려웠던 사마리아인임에도 아홉 명의 유대인은 지나쳤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감사인사를 행하는 모습은

사람답게 사는 것과 그의 직위나 포지션(position)은 별개임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선조들의 격언은 사람(人)됨의 의미를 다시금 살펴보게 합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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