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서울 성수동의 어느 삼겹살집.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 대기업 총수들과 마주 앉아 불판 위 고기를 뒤집는 장면이 예정돼 있습니다.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회사의 수장이 양복도 아닌 그 특유의 가죽 재킷을 걸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삼겹살을 굽는 거죠. 사진 한 장이면 다음 날 모든 경제지 1면을 장식할 그림입니다.
지난 번 깐부 회동에 이어 이번 삼쏘회동까지… 이 정도면 거의 형, 동생 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한국 총수들이랑 친한 척을 하지? ?"
물론 이건 고도의 협상 전략입니다. 친분처럼 보이는 그 모든 장면 뒤에는, 엔비디아라는 회사가 살아남기 위한 아주 계산된 전략이 깔려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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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단 그 삼겹살 회동이 뭔지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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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성수동 회동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이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은 해외 일정으로 이번엔 빠지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메뉴는 한국인의 영원한 회식 메뉴 0티어. 삼겹살에 소주입니다. 지난번 ‘깐부회동’ 때도 그랬지만 늘 "소탈하다", "격의 없다"는 평이 따라붙었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어요. 황 CEO가 만나는 사람들의 면면입니다. 그냥 아무 기업이나 만나는 게 아니거든요. 반도체, 자동차, 그리고 곧 보겠지만 통신과 플랫폼. 전부 엔비디아의 다음 10년에 꼭 필요한 회사들입니다.
소탈한 캐릭터는 진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가 누구와 삼겹살을 굽느냐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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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엔비디아가 칩을 잘 만든다고 끝이 아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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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엔비디아를 "AI 칩 만드는 회사"라고 압니다. 맞는 말이에요. GPU라고 부르는, AI를 학습시키는 데 쓰이는 그 비싼 칩 말이죠. H100, B200 같은 이름 들어보셨을 거예요. 한 장에 수천만 원씩 하는 물건입니다.
근데 여기서 의외의 사실이 하나 있어요. 엔비디아는 그 칩을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설계만 하고, 실제 생산은 대만 TSMC에 맡기죠. 그리고 그 칩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또 다른 부품이 필수입니다. 바로 HBM이라는 특수 메모리예요.
HBM은 High Bandwidth Memory, 즉 데이터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주고받는 고성능 메모리입니다. AI 칩이 아무리 똑똑해도 데이터를 빨리 못 받으면 무용지물이거든요. 엔진은 좋은데 연료 호스가 가늘면 차가 안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리고 이 HBM을 세계에서 제일 잘 만드는 회사가, 바로 한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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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HBM 최강자 ‘SK하이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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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시장을 사실상 SK하이닉스가 쥐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최신 AI 칩에 들어가는 HBM의 상당 부분을 SK하이닉스가 독점적으로 공급해 왔어요. 한때 점유율이 절반을 훌쩍 넘었죠.
이게 무슨 뜻이냐. 엔비디아가 칩을 아무리 많이 팔고 싶어도, SK하이닉스가 HBM을 안 주면 못 판다는 겁니다. 칩 설계는 엔비디아가 세계 최고지만, 그 칩을 완성품으로 만드는 마지막 퍼즐 조각은 한국 손에 있는 거예요.
그럼 이게 얼마나 큰 돈이냐.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 매출은 분기당 수백억 달러 규모입니다. 그 매출의 상당 부분이 HBM 공급이 원활해야만 발생하는 돈이에요. 만약 HBM 공급이 한 달만 삐끗해도, 수십억 달러가 날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쯤 되면 황 CEO가 왜 그렇게 자주 한국에 오는지 슬슬 감이 오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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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성전자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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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SK하이닉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삼성전자도 HBM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어요. 엔비디아 입장에서 이건 아주 반가운 소식입니다.
왜냐면 공급처가 하나뿐이면 위험하거든요. SK하이닉스 한 곳에만 의존하면, 그 회사가 가격을 올리거나 물량을 못 맞출 때 엔비디아는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요. 근데 삼성이라는 두 번째 공급처가 생기면, 엔비디아는 둘을 경쟁시킬 수 있습니다. "삼성이 이 가격에 준다는데?" 한마디면 협상력이 확 달라지는 거죠.
게다가 삼성은 메모리만 만드는 게 아니라 파운드리, 그러니까 칩을 위탁 생산하는 공장도 갖고 있어요. TSMC 한 곳에만 생산을 맡기는 것도 엔비디아 입장에선 불안한 일이거든요. 삼성이라는 대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보험인 셈입니다.
이번 회동에서 이재용 회장은 해외 일정상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요. 뭐 관계는 여전히 말안해도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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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의선 회장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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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좀 의아할 수 있어요. 반도체야 그렇다 치고, 현대차는 왜 부르는 거지?
이게 엔비디아의 다음 그림과 연결됩니다. 엔비디아는 더 이상 AI 학습용 칩만 파는 회사가 되려 하지 않거든요. 자율주행과 로봇, 이 두 시장을 다음 먹거리로 보고 있어요.
자율주행차는 결국 바퀴 달린 컴퓨터입니다. 차 안에서 카메라와 센서가 받아들이는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려면 강력한 AI 칩이 필요하죠. 엔비디아는 이미 '드라이브'라는 자율주행 플랫폼을 갖고 있어요. 근데 이걸 팔려면 진짜 차를 만드는 회사가 필요합니다. 그게 현대차인 거죠.
로봇도 마찬가지예요. 현대차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로봇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그 로봇의 두뇌에 엔비디아 칩이 들어가면? 양쪽 다 이득이거든요. 차를 만드는 회사와 칩을 만드는 회사가 손잡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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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럼 LG와 네이버는 ?
LG는 가전과 디스플레이로 유명하지만, 사실 AI 인프라 쪽에서도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LG는 자체 초거대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고, 이런 모델을 돌리려면 엔비디아 칩이 대량으로 필요해요. 엔비디아 입장에선 LG가 곧 큰손 고객인 셈입니다. 게다가 LG전자는 로봇 분야에서도 ‘액츄에이터’ 등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있어요.
네이버는 또 다른 결입니다. 네이버는 한국 최대의 인터넷 플랫폼이자, 데이터센터를 직접 운영하는 회사예요. AI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 수억 명에게 뿌리는 회사죠. 이런 회사가 엔비디아 칩을 사서 자기 데이터센터를 채우면, 그 자체로 거대한 매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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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삼성과 SK는 엔비디아에 부품을 대주는 공급자고, 현대차·LG·네이버는 엔비디아 칩을 사주는 고객이에요. 공급자와 고객이 한 나라에 다 모여 있는 거죠.
그러니 황 CEO에게 한국은, 그냥 들러야 하는 곳이 아니라 반드시 관리해야 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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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친한 척이 곧 협상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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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친한 척'의 진짜 효용이 드러납니다. 기업 간 거래는 결국 사람이 합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 신뢰라는 게 쌓여야 하거든요.
황 CEO가 총수들과 삼겹살을 굽고 사진을 찍는 그 순간,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나는 당신들을 단순 거래처가 아니라 파트너로 본다"는 메시지요.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면 협상 테이블에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가격 깎자는 얘기도, 물량 더 달라는 얘기도 한결 부드럽게 오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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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만약 황 CEO가 거만하게 굴면서 "우리가 갑이다"라는 태도를 보였다면? 한국 기업들이 삼성처럼 자체 칩을 개발하거나, 다른 미국 회사와 손잡으려는 움직임이 빨라질 수도 있어요. 친한 척은 그런 이탈을 막는 안전장치이기도 한 겁니다.
.결국 그 소탈한 미소 한 장이, 수십억 달러짜리 협상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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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중 갈등이라는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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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그림에는 더 큰 배경이 깔려 있어요. 바로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다툼입니다.
미국은 중국으로 가는 첨단 AI 칩 수출을 강하게 막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입장에선 거대한 중국 시장을 상당 부분 잃은 셈이에요. 그만큼 다른 우방국 시장이 더 중요해졌죠. 그중에서도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가진 한국은, 미국 진영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있습니다.
미국이 자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 해도, HBM 같은 첨단 메모리는 결국 한국과 손잡아야 합니다. 그 기술을 단기간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거든요. 엔비디아는 이 구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한국 총수들과의 친분은, 지정학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엔비디아가 자기 공급망을 지키는 행위이기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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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한국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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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한국 기업들이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건 아니에요. 이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입니다.
SK하이닉스는 HBM 덕분에 만년 2등 메모리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단숨에 AI 시대의 핵심 기업으로 떠올랐어요. 한때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가, HBM 하나로 분기 영업이익 수조 원을 내는 회사가 됐죠. 엔비디아라는 거대 고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반전입니다.
삼성, 현대차, 네이버도 마찬가지예요. 엔비디아와의 협력은 곧 AI 시대 최전선에 서 있다는 보증서 같은 거니까요. 황 CEO가 내 회사를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에 던지는 강력한 신호가 됩니다.
?그래서 이 삼겹살 회동은, 한쪽이 다른 쪽에 굽히는 자리가 아니에요.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잘 짜인 동맹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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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진짜 비즈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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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성수동 삼겹살집으로 돌아가 봅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고, 잔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들리는 그 평범한 저녁 풍경.
그 안에서 실제로 오가는 건 안부가 아닙니다.
수십억 달러어치의 메모리 계약, 다음 세대 자율주행의 주도권, 그리고 AI 시대 10년의 공급망입니다. 황 CEO는 그걸 회의실의 차가운 협상이 아니라, 삼겹살 한 점과 소주 한 잔으로 풀어내는 법을 아는 사람이에요.
‘친한 척’이라고 불렀지만, 어쩌면 이게 가장 정직한 형태의 비즈니스인지도 모릅니다. 필요하니까 가까이 둔다. 가까이 두니까 진짜 친해진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하거든요.
그러니 다음에 또 그가 어느 식당에서 고기를 굽는 사진을 보게 된다면,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저 불판 위에서, 지금 무엇이 익어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