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사람은 얼마나 악할까?
우리가 하는 대화에서 악한 것을 묻는 것보다는 선한 것을 묻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표현은 그러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듣는 이야기에는 선한 것보다 악한 것에 관한 내용이 더 많을 것입니다.
선한 것보다 악한 것에 왜 관심이 많은지 그 이유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사람이 본래 악해서 그런 것일까요? 사람이 말로는 선하게 산다고 하지만, 그 삶에는 선한 것보다 악한 것이 많아서 그럴까요?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아합 임금과 나봇이라는 사람과 아합 임금의 부인인
이제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과 모든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누구에게 맞추려고 하겠습니까?
악한 사람으로 등장하는 이제벨이 마음에 들까요? 정치와 권력에게 덤비다가 죽은 나봇이 불쌍하다고 말할까요? 가정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아합 임금에게 징벌을 선언한 엘리아 예언자가 훌륭한 사람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옛날에 통용되던 삶의 원칙은 동태복수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행사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진 힘이 없다면 동태복수법을 행동으로 드러내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행동할 수 있는 놀라운 원칙은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할 법한데도 예수님께서는 동태복수법을 넘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억지로 천 걸음을 가자고 하는 사람에게 이천 걸음을 가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이론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도 있고 실제의 삶에서는 행동으로 드러내지 못할 일도 있습니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은 복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은 원수를 갚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옳고 그른 것에 관한 것은 우리가 누구나 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복수하는 일은 세상을 좋고 예쁘게 만든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으로서 우리가 드러내야 할 삶의 좋은 모습은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