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점검35: 석가와 가섭의 염화미소(拈華微笑)
서천의 초조(初祖) 마하가섭존자는 세존을 뵙고 영상회상에 머물었는데, (한 때) 세존께서는 일지화(一枝華: 꽃 한 송이) 청연(青蓮: 푸른 연꽃)을 (손에) 들어서 대중에게 두루 보이셨다.
(이때) 백만 성현(聖賢) 가운데 오직 가섭(迦葉)만이 파안미소(破顏微笑: 얼굴을 쪼개고 미소하다)하였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해탈법문(微妙解脫法門)이 있는데,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대는 마땅히 보호해 간직하고 유통(流通)하여서 끊어지지 않게 하라.”
西天初祖摩訶迦葉尊者。見世尊在靈山會上。拈起一枝華。以青蓮目普示大眾。百萬聖賢。惟迦葉破顏微笑。世尊乃曰。吾有正法眼藏涅槃妙心實相無相微妙解脫法門。付囑於汝。汝當護持流通。無令斷絕。
옛 사람은 말했다.
“모양을 보기는 쉬워도 마음을 보기는 어렵다.”
누가 저 마음을 보았을까?
당시에 저 영산회상에 모인 자의 무리가 백만의 성현(聖賢)이라고 하였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이란 곧 영취산(靈鷲山)에서 석가모니께서 법화경을 설한 모임을 말한다. 그 회상에서 어느 날 이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娑婆世界主大梵王)이 부처님에게 묘법연금광명대바라화(妙法蓮金光明大婆羅華)를 받치며 물었다. 여기에서는 청연(青蓮)라고 기술하고 있다.
“세존께서는 지금 부처이십니다. 이미 바른 깨달음의 정각(正覺)을 하시고 50년 동안 각가지 법문과 각가지 가르침을 보여주시며 모든 종류의 근기를 가진 중생들을 제도하셨습니다. 만약 최상의 큰 법(最上大法)을 아직 설하지 않는 것이 있으시다면 저와 말세에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이나 불도를 행하고자 하는 범부중생을 위해 설명해주시고 말씀해주시기를 청합니다.”
당시에 이 회상에 모인 대중이 백만 성현이라고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인가?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서는 말한다.
“대비구가 8만인으로 사리불, 마하목련, 마하가섭이 맨 앞이 되었고, 보살의 무리가 8만인으로 관세음보살, 미륵보살, 행원보현보살, 문수사리보살이 맨 앞이 되었다. 모든 대범천왕들, 제석천왕, 비사문왕, 대지국왕, 무량한 하늘의 무리들과 해룡왕, 야차왕, 아수라왕, 헤아릴 수 없는 신들의 무리들과 아사세왕, 파사누왕, 재관바라문,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무리들과 달다지옥, 염구아귀, 금색사자,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코끼리왕,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아닌 자들이 모두 부처의 발아래 절을 하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如是我聞。一時佛在大靈鷲山。與大比丘八萬人俱。尊者□。尊者舍利弗。尊者摩訶目連。尊者摩訶迦葉。而為上首。與菩薩眾八萬人俱。觀世音菩薩。阿逸陀菩薩。行願普賢菩薩。文殊師利菩薩。而為上首。諸大梵王。釋提桓因。毗沙門王。大持國王。無量天眾俱。海龍王。夜叉王。阿修羅王。無量神眾俱。阿闍世王。波斯耨王。宰官波羅門。無量人眾俱。達多地獄。焰口餓鬼。金色師子。六牙象王。無量非人俱。各禮佛足。退坐一面。
이 모두를 합해서 백만의 성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성현(聖賢)이란 삼현십성(三賢十聖)을 가리킨다. 대승불교에서 삼현이란 곧 십주보살, 십행보살, 십회향보살을 가리킨다. 십성이란 곧 십지보살을 가리킨다. 즉 초지 환희지에서 10지 법운지까지의 보살을 열 가지 종류의 성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곧 저 관세음보살, 미륵보살, 행원보현보살, 문수사리보살이 모두가 십성에 포함된다.
이들 백만 성현들은 모두 저 대범천왕이 부처님께 연꽃을 받치는 것을 보았고 그처럼 묻는 것을 들었다. 모두는 정말 궁금했을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50년 동안 온갖 법문을 하시고 가르침을 베푸셨는데, 과연 아직까지도 말하지 않는 궁극적인 가르침의 법이 있을까?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지켜보았을 것이다. 일순간 백만의 무리가 모두 침묵한 것이다. 오직 귀를 세우고 부처의 입만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때 여래께서는 보배자리에 앉아 이 연꽃을 받으시고는 말이 없으셨다. 다만 연꽃을 (손에) 들고 계시었다.”
爾時如來。坐此寶座。受此蓮華。無說無言。但拈蓮華。
“이 대법회에 참석한 팔만사천의 인간계과 천상계의 무리들이 모두 침묵하고 있는데, 이때 장로 마하가섭이 부처께서 꽃을 들어 무리에게 보이는 불사(佛事)를 보고서는 곧 확연히 파안미소하였다.”
入大會中。八萬四千人天時大眾。皆止默然。於時長老摩訶迦葉。見佛拈華示眾佛事。即今廓然。破顏微笑。
파안미소란 ‘얼굴을 쪼개고서 미소를 띠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마하가섭존자는 무엇을 보았기에 미소를 띠었을까? 경전 원문을 그대로 살펴보면, 여기에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일에 대해서 저 8만4천의 무리들이 모두 침묵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파안미소를 했다는 것이다.
마하가섭은 어째서 미소했을까? 이것은 매우 살피기 어렵다.
미소란 그저 뭔가를 알았다고 할 때도 띠게 되지만, 반대로 부정의 의미로 비웃음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전혀 모르거나 애매할 때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분명하게 가려낼 수 있어야 이 화두를 제대로 살피는 것이 되는 것이다.
흔히 인터넷을 뒤지면, 이 염화미소를 이심전심 정도의 뜻으로 아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럴까? 만약 그렇게 알고서 이 화두를 참구한다면 나귀의 해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옛 선사들의 지적은 참으로 날카롭고 예리하였다.
‘석가는 머리를 들어 올리고 가섭은 꼬리를 부축하였다’고도 하고, ‘각자는 서로를 호랑이를 빠뜨리는 장치를 펼쳤다’고도 하였다.
또한 노래하였다.
영산의 작용처를 누가 알았다고 하리오.
가섭이 훔치고서 얼굴에 미소하며 눈썹을 폈다.
움직임에 곧 가장 먼저를 누설했는데
자손들은 (여기에) 기대어 상현기(上玄機: 그윽한 가운데 그윽한 기틀)를 취하였다. (초안 방)
靈山用處許誰知。迦葉偷顏笑展眉。
動便最初先漏泄。兒孫扶取上玄機。(楚安方)。
목에 무쇠 형틀이 삼백 근이어서는
분명 이치가 있어도 펼치지 못한다.
묵묵히 계족봉(雞足峰) 앞에 앉아
도리어 금란가사를 쥐고서 후대 사람을 속였다. (비구니 무착 총)
項上鐵枷三百斤。分明有理不容伸。
默然雞足峰前坐。猶把金襴誑後人。(尼無著總)。
옛 사람은 말하기를, ‘물음을 가져와서는 끝내 밝히지 못하며 오직 대답을 가져와 물어야 비로소 얻는다’고 했다. 오직 참으로 바른 안목을 가져와서 물어야지 글자를 쫓고 말에 떨어져서는 끝내 말끔하게 의심을 털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 염화미소에 대해 근래 큰 스님들의 견처를 보고자 했으나 아쉽게도 보기가 어려웠다. 마침 성철스님의 『본지풍광』에는 여기에 대한 법문이 있었다.
맨 끝에 가서 두 구절을 노래했으니, 참으로 좋은 구절이라고 하겠다.
흰 해오라기 밭에 내리니 천 송이 눈이요
누런 꾀꼬리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로다.
그런데 중간에 ‘염화미소’에 대한 불인(佛印) 원(元)선사의 게송을 들었는데, 번역에 있어서 가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
世尊拈花迦葉微笑 水底魚兮天上鳥
誤將彌勒作觀音 熨斗煎茶不同銚 (출처: 본지풍광)
부처님은 꽃을 들고 가섭은 미소지으니
물밑의 고기요 하늘 위의 새로다.
미륵을 잘못 알아 관음보살이라 하고
다리미로 차를 달이니 그릇이 다르구나. (번역: 성철스님)
나라면 이렇게 번역하리라.
세존께서 꽃을 들고 가섭이 미소함이여!
물 아래는 물고기이고 하늘에는 새이다.
미륵을 가지고 관음을 잘못 지었는데
울두(熨斗)와 전다(煎茶)는 같은 그릇(銚)이 아니다. (번역: 취산)
미륵을 관음으로 잘못 알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울두전다부동조(熨斗煎茶不同銚)’라는 구절이다.
성철스님은 ‘다리미로 차를 달이니 그릇이 다르구나.’라고 했는데, 그저 의아스러울 뿐이다.
여기에서 ‘전다(煎茶)’를 구지 ‘차를 달이다’로 번역하는 것은 스스로 많은 갈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렇게 번역하면 혹자는 또한 반문할 것이다. 이렇게 번역하든 저렇게 번역하든 무슨 근거로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스스로의 심증만으로는 결코 주장할 일이 못 된다는 것에 깊이 수긍한다. 그렇기 때문에 멀리 돌아서 기꺼이 물증을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만약 ‘熨斗煎茶(銚)不同’라고 하면 어떨까? 만약 그렇다면 이보다 명확한 증거는 없을 것이다. 과연 이걸 증명하는 증거가 있을까?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정황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문혜계선사어록(無門慧開禪師語錄),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오등전서(五燈全書), 속전등록(續傳燈錄) 등에서는 이렇게 싣고 있기 때문이다.
‘熨斗煎茶銚不同’ 즉 울두(熨斗)와 전다조(煎茶銚)는 같지 않다(不同).
그렇다면 이제 저 울두(熨斗)가 무엇이고 전다조(煎茶銚)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리라. 물건으로 보면 둘 다 비슷한 둥글고 넙적한 그릇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울두(熨斗)의 사전적인 뜻은 ‘다리미’를 가리킨다. 그리고 전다조(煎茶銚)는 ‘차를 다리는 주전자, 냄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결국 같지 않다고 한 뜻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성철스님의 입에서 나왔다.
흰 백로가 밭에 내리니 천 송이의 눈이고
누런 꾀꼬리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의 꽃이다.
白鷺下田千點雪。黃鶯上樹一枝花。
설령 이렇게 말했다고 해도 깊이 꿰뚫지 못한다면 여전히 횡설수설하는 처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열에 아홉을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그저 열에 하나를 드러내고 어떤 사람은 열에 열을 채우고도 넉넉함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염화미소를 깊이 살핀다면 어찌 대롱의 구멍으로 얼룩무늬를 보는 것에 그치겠는가? 그렇지만 어찌하리오! 옛 사람이 아직 말을 끝맺지 못해 자손이 흑산에 떨어지고 악을 쫓아가고 삿됨을 따르게 된 것을.
끝으로 한 구절을 적는다.
여래께서 꽃을 들었음이여
도적과 결탁하여 집안을 부수었다.
아! 금색두타여
지금까지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했음을.
고림선원에서 취산 합장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전항숙 작성시간 19.08.15 목에무쇠 형ㄷ틀이 삼백근이어서는 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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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전항숙 작성시간 19.08.15 울두와 전다조
감사합니다 -
작성자전항숙 작성시간 20.02.26 에존께서 꽃을들고 가섭이 미소 함이여
물아래는 물고기이고 하늘에는 새이다 ㆍ
목에 무쇠 형틀이 삼백 근이어서는
분명 이치가있어도 펼치지 못한다 ㆍ
(합장) -
작성자전항숙 작성시간 20.03.05 파안 미소 ㅡ (얼굴을쪼개고 미소하다)
목에 무쇠 형틀이 삼박 근이어서는 분명 이치가 있어도 펼치지 못한다
흰 해오라기 밭에 내리니 천송이 눈이요
누런 꼬꼬리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로다.
물아래는 물고기이고 하늘에는 새이다 ㆍ
(합장) -
작성자전항숙 작성시간 20.05.05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