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점검52: 덕산탁발화(德山托缽話)
하루는 재(齋)가 늦어지자(晚), 덕산이 탁발(托缽: 발우를 들고)하며 법당(法堂)으로 내려갔다.
이때 설봉이 (반두(飯頭: 공양을 짓는 소임)을 맡았는데, 그것을 보고서는 곧 말했다.
“종도 울리지 않았고 북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이 늙은이가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는가?”
덕산은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방장실로 돌아갔다.
설봉이 (이것을) 암두에게 말하자, 암두가 말했다.
“저 덕산이 말후구를 모르는구나.”
덕산이 듣고는 시자로 하여금 불렀는데, 암두가 방장실에 이르자 물었다.
“그대는 노승을 긍정하지 않는가?”
(이에) 암두가 그 말(語)에 대해 밀계(密啟: 비밀하게 열다)하였다.
덕산이 다음날 상당하였는데, 평소와는 같지 않았다.
암두가 승당(僧堂) 앞에서 박수를 치며 크게 웃으며 말했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알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구나. 이후로는 천하 사람들이 그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비록 그렇지만 3년뿐이로다.”(과연 삼년에 입적하였다.)
雪峰在德山會下作飯頭。一日齋晚。德山托缽下至法堂。(時雪峰作飯頭。見便云。這老漢。) 峰云。鐘未鳴鼓未響。這老漢。托缽向什麼處去。山無語低頭歸方丈。雪峰舉似巖頭。頭云。大小德山。不會末後句。山聞令侍者喚至方丈問云。汝不肯老僧那頭密啟其語。山至來日上堂。與尋常不同。頭於僧堂前。撫掌大笑云。且喜老漢會末後句。他後天下人。不奈他何。雖然如是。只得三年。(師果三年而沒。)
여기에 대해 『선요(禪要)』의 저자 고봉 원묘(高峰原妙)선사는 말했다.
“불조(佛祖)의 기연(機緣: 기틀과 인연)과 고금의 공안(公案)에 있어서 그 가운데의 왜곡됨이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혹 말하기를, ‘암두의 지혜가 스승을 능가하였기에 뜻을 밀계했다’라고 하는데, 하늘 가득한 허물과 만겁에 미칠 재앙을 범하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다. 자 말해봐라. 이익과 손해가 어디에 있겠는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말했다.
“시자는 분명히 기억해두라. 30년 후에 어떤 사람이 증명할 것이다.”
이 「덕산탁발화」는 또한 「암두의 말후구」라고도 부른다.
이 화두는 고 성철 큰스님과 진제 큰 스님이 거론해서 특히 유명해졌다.
성철스님은 『본지풍광』에서 말하기를, ‘대중들이여, 이들 공안을 총림에서 흔히들 논란하지마는 산승의 견처로 점검해 보니, 덕산 삼부자가 말후구를 꿈에도 몰랐고 설두의 사족은 지옥에 떨어지기 화살과 같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말후구인가? 물소가 달을 구경하니 문채가 뿔에서 나고 코끼리가 뇌성에 놀라니 꽃이 이빨 사이에 들어간다.”
덕산 삼부자(三父子)는 곧 덕산, 암두, 설봉스님을 일컫는다. 여기에서 덕산은 스승이 되고 암두와 설봉은 모두 덕산의 제자들이다. 따라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부자가 말후구를 꿈에도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말후구를 몰랐다면 어떻게 덕산스님은 조사심인(祖師心印)을 높이 걸었을까? ‘꿈에도 몰랐다’고 한 것에 대한 한자는 책에서 ‘未夢見在(꿈에도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적고 있다. 말후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암두스님은 말후구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덕산을 점검하는 말을 했다는 것인가? 이것은 참으로 대망언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성철스님이 대망언을 범하고 있는 것이 되리라. 그렇다면 어찌 이것이 단순히 말후구를 알고 모르고의 문제이겠는가?
일찍이 설두스님은 여기에 대해 말하였다.
“모든 사람은 말후구를 알고자 하는가? 단지 늙은 오랑캐가 지(知)했다고는 해도 늙은 오랑캐가 회(會)했다고는 하지 못한다.”
諸人要會末後句麼。只許老胡知。不許老胡會。
이것을 성철스님은 사족이라고 평하고 있는 것이다. ‘설두의 사족은 지옥에 떨어지기 화살과 같다.’고 한 것은 설두의 저러한 말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옥에 떨어질 일이라는 것이다. 불경에서는 오무간업(五無間業)을 범하면 산채로 곧장 아비지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성철스님은 『선문정로』에서 ‘대망어죄(大妄語罪)를 범하면 자기를 파멸하고 불종(佛種: 부처의 씨앗)을 단절하여 불법상의 대악마가 되나니 대망어는 참으로 가공(可恐)하다.’라고 하였다. 대망어죄란 곧 내가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았다고 떠벌리는 경우인 것이다.
일찍이 암두스님은 『열반경』을 수십 년 동안 살폈다. 그런 분이 어찌 대망어가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인가? 어찌 가볍게 혀를 놀렸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산 늙은이가 말후구를 모르는구나!’라고 한 것은 마치 천길 절벽이 무너지니, 뭇 산짐승들이 혼비백산해서 달아나는 경우와 같다고 하겠다.
말후구를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감히 스승을 향해 말후구를 알지 못한다는 점검의 말을 낼 수 있을까? 만약 거짓이라면 대망어가 아닐 수 없겠다. 이것은 곧 화합승단을 깨뜨리는 원인이 될 것이며 부모를 죽이고 부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점검하건데, 이것은 보고 보지 못함의 문제가 아니라 지(知)와 회(會)의 문제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말후구를 알고자 하는가?’라고 할 때, 알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은 ‘지득(知得)’이 아니라 ‘회득(會得)’을 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말후구(末後句)란 글자 그대로 보면 ‘최후의 구절, 마지막 구절’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누군가가 저 설두스님의 이 구절을 꿰뚫는다면 어찌 말후구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여기에 대해 이렇게 적어본다.
말후구여
알기는 쉬워도
참으로 회득하기란 어려우니
두 세 차례 물속의 달을 휘저어보고서야
비로소 알았다고 했음을.
법문의 끝에서 성철스님은 스스로 말후구에 대해서 노래하였다.
“어떤 것이 말후구인가?
물소가 달을 구경하니 문채가 뿔에서 나고
코끼리가 뇌성에 놀라니 꽃이 이빨 사이에 들어간다.”
이 구절은 원래 호국 수징선사에서 비롯하였다.
어떤 스님이 호국 수징에게 물었다.
“무엇이 본래심(本來心)입니까?”
호국 수징이 말했다.
“코뿔소가 달을 구경한 것으로 인하여 주름에서 뿔이 생기고
코끼리가 천둥소리에 놀라니 꽃이 상아로 들어간다.”
護國澄因僧問。如何是本來心。師曰。犀因翫月紋生角。象被雷驚花入牙。
본래심(本來心)이란 곧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이다. 무엇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인가? 참고로 번역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 잘 살펴보기를 바란다. 경전(?)에 의하면, ‘천둥소리가 나면 코끼리의 상아에서 꽃이 저절로 생긴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이다.
(한번은) 설봉선사가 말했다.
“저 조사는 용두사미이다. 스무 방망이를 때려야 하겠다.”
(당시에) 부상좌가 곁에서 모시고 있었는데, 이빨을 딱딱거렸다.
설봉선사가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스무 방망이를 맞아야 하리라.”
여기에 대해서 묘희선사가 말했다.
“부상좌를 알고자 하는가? 코뿔소가 달을 구경한 것으로 인하여 문채에서 뿔이 생겼다. 설봉스님을 알고자 하는가? 코끼리가 천둥소리에 놀라니 꽃이 상아로 들어갔다.”
雪峰云。大小祖師。龍頭蛇尾。好與二十棒。孚上座侍次咬齒。峰云。我與麼道。也好與二十棒。妙喜云。要識孚上座麼。犀因玩月紋生角。要識雪峰麼。象被雷驚花入牙。
여기에서 ‘저 조사’란 곧 육조혜능조사를 일컫는다. 이것은 곧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라는 화두를 평한 것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 묻지 않을 수 없겠다. 지금 저 부상좌와 설봉선사는 ‘말후구를 회득함’을 거론한 것이겠는가? 그렇지 않는 것이겠는가? 만약 거론한 것이 아니라면 성철스님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잘 살필 일이다.
끝으로 옛 사람들은 이 「덕산탁발화」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였다.
종과 북이 아직 울리지도 않았는데
발우를 들고 어디로 가는가?
한 차례 내질음에 곧장 고개를 돌렸다면
말후구를 알아차렸으리라. (보봉 조)
鐘鼓猶未鳴。托缽何處去。
一拶便回頭。會得末後句。(寶峰照)。
말후구를 알지 못함이여
덕산 부자(父子)가 크게 소홀하였다.
좌중(座中)에 또한 강남객(江南客)이 있으니
술잔 앞에서 자고새(鷓鴣)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 (천동 각)
末後句會也無。德山父子太含糊。
座中亦有江南客。莫向樽前唱鷓鴣。(天童覺)。
한 차례 퍼붓는 표독함을 듣고 모두 잃었으니
몸이 그 가운데 있어도 전혀 알지 못하였다.
80세 늙은이가 과거장(場屋)에 들어가니
참으로 아이들 장난도 아니다. (대혜 종고)
一撾塗毒聞皆喪。身在其中總不知。
八十翁翁入場屋。真誠不是小兒嬉。(徑山杲)。
여기에 대해 이렇게 노래해보겠다.
주발을 땅에 깨뜨리고
접시를 일곱 조각을 내는 것은
결국 말후구를 부축해 돕는 일인데
누가 참으로 이 일을 알았을까?
귀신은 곡식을 찧고 부처는 담장을 훌쩍 넘는다.
고림선원에서 취산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