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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전시中

[바르비종파]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

작성자혜련|작성시간12.04.05|조회수43 목록 댓글 0

밀레 Jean-Francois Millet (1814~1875)

 

자연주의- 자연을 주제로 숭고함과 웅대함으로 승화

 

쿠르베나 마네와 달리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사실주의 작가로 활동한 밀레는 다른 주제의식을 소유한 작가였다. 크락은(Clark) Absolute Bourgeois에서 밀레의 주제가 자신의 '노동'으로 주어진 형태에다 의식으로서의 무게가 매일의 일상을 보편적인 숭고함과 웅대함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해석했다. 밀레를 자신의 논의의 틀에 맞게 적용시킨 크락의 주장은 나름대로 그의 작품을 적절하게 이해했고 그의 주제와 당시 계층의 문제를 연결하려는 의도가 돋보인다. 밀레는 자신이 유행하는 양식을 따라 팔릴 그림을 제작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피하고 굳이 이러한 주제를 계속 추구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는 계몽주의적, 금욕주의적 작가이다. 밀레와 바르비종(Barbizon) 파는 사실주의 작가들이면서도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했기에, 농촌 생활의 구체적 노동과 환경을 다루지만, 날카로운 비판의식보다는 미화된 고요함이 있다.

 

밀레가 그린 농민들은 바르비종에서 땅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작품 '만종'에 대해서 밀레 자신은 문학적인 감정보다는 음악적인 감정을 더 강조했다고 합니다.

밀레의 정신은 훗날 쿠르베의 사실주의로 이어졌습니다.

 

1. 밀레는 한 때의 도시생활을 제외하고는 농촌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2. 밀레 자신의 주변에 있는 농촌 풍경과 농민들의 생활을 즐겨 그렸습니다.

3. 밀레는 자연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이 그림들은 자연을 향한 깊은 철학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고일컬어 집니다.

그래서 그는 종교화가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4. 밀레의 중심작품은 농민화가이며, 그의 그림은 한 시대의 풍속화가라고 일컬어 집니다. 그래서 그는 농민 화가라고 불립니다.

5. 밀레의 그림은 고요하고 경건하다고 평가받습니다.

6. 밀레는 유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스케치나 파스텔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7. 밀레의 대표적인 작품은 '만종'과 '이삭줍기'입니다.

8. 밀레의 '만종'은 종교화의 새로운 양식이라고 칭송됩니다.

9. 밀레의 '이삭줍기'는 매우 사실적이고 견고한 구성을 지녔다고 말해집니다.

10. 밀레는 평생 가난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종

<이삭 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 밭에서 일을 끝내고 저녁 종이 울리는 가운데 부부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 장면은, 단순히 노동에서 오는 기쁨뿐만 아니라 삶의 진실과 기쁨을 전해주고 있어 쉽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었다. 먼 지평선에 황혼이 물들어 가고, 이 빛을 받은 부부의 경건한 자세는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교화의 새로운 양식이라고 칭송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작품은 처음 1천프랑에 국외로 팔려 나갔으나, 많은 사람의 손을거쳐 다시 프랑스로 팔려 왔을 때는 그 8백 배가 되는 80만 프랑으로 올랐다는데도 이 그림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1906년에 루브르에 기증되었다.

 

 

 

 

이삭줍기

밀레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상당히 오래 전부터 계획한 흔적을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많은 데상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농민화 가운데서도 비교적 주제가 뚜렷한 것으로, 어떤 점에선 밀레의 사상의 단면을 보여 준다고까지 할 수 있다.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고 있는 두 여인과 그 오른편에 약간 허리를 굽힌 한 여인의 배치가 주는 견고한 짜임새와, 세 여인이 지니는 양감이 먼 지평의 배경을 통해 더욱 리얼하게 전달되고 있다. 농민 가운데 가장 하층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 이 작품은 바로 그러한 견고한 인물의 설정 때문에 일종의 사회적 향의의 성격을 띤다고 비평가들은 말하고 있다.

1857년, 83.5*111cm, 캔버스에 유채
밀레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1857년 살롱에 출품되었던 작품.

 

 

 

 

양치기 소녀와 양떼

밀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가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화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할 무렵 농가에 들어가 생애를 농민 화가로서 보냈다. 이 깊숙한 농민 생활의 체험은 그의 그림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고 있는데, 멀리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입장이아니라 언제나 모티브 깊숙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몸으로 부터 우러나온 자연스러움이 그림 속에 배여 있다. 어린양치기의 모습과 양떼의 조화는 순진한 이미지의 동일성에서 밀레의 화인(畵因)을 자극한 것이 분명하다. 풀을 뜯고 있는 양들의 모습과 지팡이에 기댄 어린 양치기의땅과의 밀착된 관계가 돋보인다.

 

 

 만종(晩鐘)

  양치기 소녀와 양떼

이삭줍기

씨뿌리는 사람

만종

양치기 소녀와 양떼

이삭줍기

씨뿌리는 사람

달빛아래의 양우리

양을 치는 소리

다프니스와 클로에

거위를 지키는 소녀

달빛아래의 양우리

양을 치는 소리

다프니스와 클로에

거위를 지키는 소녀

그레빌의 낭떠러지

海軍士官의 초상

우유를 휘젓는 여인

물통의 물을 옮기는 여인

그레빌의 낭떠러지

海軍士官의 초상

우유를 휘젓는 여인

물통의 물을 옮기는 여인

 파르당 부인의 초상

외제니 카노비유 부인이 초상

건초를 묶는 사람들

봄(spring)

파르당 부인의 초상

외제니 카노비유 부인이 초상

건초를 묶는 사람들

봄(spring)


그림을 클릭하시면 설명과 함께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towo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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