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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지

Ⅳ. 한지의 우수성 _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작성자혜련|작성시간17.08.28|조회수742 목록 댓글 0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한지의 우수성은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다라니경은 원래 탑을 쌓은 다음 불경을 염송하여 성불한다는 뜻에서 만드는 경전(기도문)으로 옛부터 탑 속에 다라니경을 넣는 것이 풍습처럼 되어 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6년 10월 14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해체 공사 과정 중 탑신 일부가 무너져 2층 탑신, 탑석, 상륜부가 해체되면서 그 안에서 발견된 것이다. 발견 당시 탑신 복판에는 사방 41cm, 깊이 18cm의 네모 반듯한 사리공에 황산구리 동록이 슨 금동제 사리함이 안치되어 있었으며 그 둘레에는 목재ㆍ소탑ㆍ동경ㆍ비단ㆍ향목ㆍ구슬 등이 가득 차 있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폭이 6.7cm, 길이가 6.228m, 상하괴선 행팔자로서 금동 사리함 안 서쪽 구석에 안치된 또 하나의 직사각형 금동 소사리함 안 비단보에 싸여져 있었는데, 지질은 닥종이로 된 두루마리였다. 권자본이었으며 끝에는 죽심 권축이 있었고 죽심 끝에는 붉은 주칠이 칠해져 있었다.



불국사 석가탑 해체 직전 모습



발굴 당시 사리함 뚜껑을 연 상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작 연대를 704~751년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다음에 제시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첫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당시까지 세계 최고 목판 인쇄물의 실물이었던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보다 적어도 20년 이상은 앞서 있다는 것이다. 대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세계 최고로 오래된 것이라는 학적 고증은 ‘측천무후의 변조 문자’가 여기에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측천무후변조자’란 스스로 제후에 오른 역사상의 여걸인 당나라 고종의 황후 측천무후(기원후 690~705년)가 ‘(지)’자 변자 등 백 자 정도의 새로운 글자를 만든 것을 말한다. 이 변자는 황후가 죽은 뒤에도 약 100년 동안 쓰였는데 금석학상 시대를 고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또 다른 고증으로 석가탑 창건 이래 수리나 해체 여부에 관한 자료로 알 수 있는 것이 일본 사원연기에 해당하는 우리 나라의 「불국사고금창기」가 있다. 752년 석가탑 건립 기록에 목판 인쇄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대한 수장 기록은 없으나 건립 후 수리 해체에 관한 기록도 전혀 없다. 조선 초의 극단적 배불숭유에 의한 박해, 17세기의 병자호란, 16세기의 임진왜란 등 불국사가 여러 번 재난을 당했으나 「고금창기」의 기록이나 발견 당시 탑내 상태로 보아 탑을 한 번도 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창건 연대가 751년이라는 것은 751년에 착공하여 완성하기까지 20년 정도가 소요되었다는 일본의 주장과 불국사의 주요 건물과 탑은 751년에 완성되었다는 연구가 뒷받침해 준다. 또 당나라 스님 미타산이 한역한 것은 704년이며 이때 신라에 전래되어 706년에는 경주 황복사 삼층석탑 내에 다라니경의 사본이 봉납되었다는 사실이 유품인 금문에 의해 확인된다. 따라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작 연대는 704~751년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쓰인 측천문자와도 그 연대가 일치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근거 이외에도 현재 학계에서는 많은 사실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기 전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인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 간행 연수가 기록된 것으로는 중국의 『강반야바라밀경』이 있는데, 이것은 1908년 영국의 스타인경이 중국 돈황석실에서 발견하여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간 것이다.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은 770년에 새긴 것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보다 20년 이상 뒤지고, 중국의 『금강경』은 당 의종 함통 9년(868년)에 목판을 만든 것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보다 118년 후의 것이다. 석가탑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인쇄 시기는 석가탑 건립 이전으로 706년이나 그 이전으로 제작 연대를 소급할 수 있으며 최하한선으로 잡는다 해도 불국사 건립년인 751년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한 다라니회 회원이자 출판 연구가가 저술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견문기』를 보면 “굉장히 훌륭한 서체입니다. 우리 『백만탑다라니경』의 글씨는 상당히 치졸한데 이것은 차원이 다르게 정돈된 품격이 있는 서체입니다. 아마도 이 다라니경을 팠을 무렵에는 이미 목판 조판 인쇄 기술이 상당히 진보했을 듯합니다. 천지() 8cm의 한지로 보이는 얇은 용지는 이미 다색으로 변질되어 있습니다만, 글자의 먹색은 아직 매우 선명하고 돋보입니다.”고 했다. 또한 마지널 존(marginal zone)이 천지에 있는 괴선 부분에서 확인된다. 이것은 볼록판으로 인쇄했을 때 글자의 선이나 괴선의 가장자리 부분이며 잉크가 몰려 안쪽이 엷어지는 현상인데, 이는 볼록 인쇄의 증거이기도 하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1,200년을 탑 속에서 보내고도 그 형체를 보존하고 있다는 것은 그 당시 우리 제지 기술이 중국보다 훌륭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과학적 분석


국보 126호로 지정되어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계적인 문화 유산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수리 및 과학적 분석은 1,200년 동안 좀벌레에 그 두루마리 일부가 침식되어 있던 것을 원지의 수축도, 신장도, 평량 등을 측정하여 동일한 닥종이를 떠서 결손 모양과 동일하게 한 다음, 원지와 땜질 종이와 인접선은 섬유 한가닥 한가닥을 짜깁기식으로 교차시켜 처리하여 수리하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수리에 사용된 배접용 종이는 원지보다 폭과 길이가 약간 큰 아주 얇은 닥종이를 만들어서 배접하였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복원이 완료된 종이 원지의 크기는 폭 6.7cm×길이 6.228m인데 54cm 정도의 종이 12장을 이어서 약 6m로 만든 두루마리 종이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전문이 인쇄된 것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감은 심봉은 지름 약 2mm 정도의 아주 가는 대나무 막대기인데 1,200년 동안 건재했다. 복원할 때 종이에 무리를 덜기 위해서 이 작은 심봉을 수납하는 큰 지름의 심봉을 따로 만들어 배접한 종이 부분이 물려 감기도록 배려하였다.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국보 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의 수리는 안타깝게도 우리의 손으로 이루지 못하고 일본 교토박물관 내 국보수리소 망묵광당()의 전문 표구사들에 의해 복원ㆍ수리되어 현재 각각 국립박물관과 호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당시 우리의 문화재 수리와 종이 복원 기술이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과학적 측정 수치

한 장 : 폭 6.5cm, 길이 54.0~54.7cm
9~12장 : 길이 205.9cm, 중량 8.4g
평균 두께 : 0.080mm
평량 : 8.73÷0.1338=65.2g/m2
밀도 : 0.815g/cm3
D(g/cm3)=W/1000
(65.2/0.080×1000=0.815115)

[네이버 지식백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 2002. 6. 20., 현암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

         2002. 6. 20. 표제어 전체보기

 저자  이승철|

 출판사 현암사http://www.hyeonam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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